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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절에

3.1절에

일본의 천황제도를 지금처럼 만든 것은 이토 히로부미라고 합니다. 그 이전까지의 일본 왕은 구중 궁궐에 있는, 즉 백성들과는 동떨어져 있는 존재였는데 이토 히로부미는 서양의 왕실제도를 연구한 뒤, 순행을 정레화해서 천황을 백성들 속으로 들어가게 만들었다는 겁니다. 천황이 천한 백성들에게 그의 모습을 보인 것은 위신의 하락이지만 그것을 본 백성들은 일본 국민이라는 자긍심을 갖게 되었고 결국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의 부강을 가져왔던 것입니다.

반면 조선의 경우 일본에 의해 국왕제도가 없어졌음에도 해방 이후 누구도 왕실을 복원하는 데 앞장 서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조선의 왕이 국가를 대표하고 국민을 위한 존재라는 의식이 없었다는 것의 반증이라는 겁니다. 왕실은 구중궁궐 속에서 그들만의 삶을 사는 존재로만 여겨졌던 거지요. 19세기 말엽부터 아시아의 맹주로 등장한 일본의 배경에 이런 기획이 있었건 것을 보면 솔직히 (이런 마음을 가져서는 안되겠지만) 우리의 조상들이 원망스럽기도 합니다.

3.1절입니다. 침략국 일본은 반성의 기미를 보이는 것이 아니라 종군 강제 위안부 문제, 야스쿠니 신사 문제 등에서 갈수록 후안무치의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들을 비판하기에 앞서 우리의 자세가 구한말의 그것과 같아 안타까울 때가 많이 있습니다. 민주 사회에서 국민을 존중하고 그들 속으로 낮아지기는 커녕 부와 권력을 독점한 친일 세력들이 온갖 부정을 저지르고도 반성이나 개선의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서류를 위조해 제 백성을 간첩 만드는 나라, 공약을 어기고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지도자, 그것을 보고도 분노할 줄 모르는 백성의 조합이 가져올 파장이 두렵기까지 합니다. 그나마 3.1 운동 당시에는 기독교가 민족혼을 일깨우는 데 앞장이라도 섰는데 오늘의 교회는 어디에 있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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