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을 사랑한 꼬마

(2013년 회지 “평화의울림“에 개제된 글입니다)

COP_Page_008_Image_0002조언정

“니 어릴때, 울다가도 베토벤 운명 교향곡만 틀어주면 금방 뚝 그쳤대이. 그러이 니는 작곡가가 될 운명을 타고난게 분명하다”

대학입시를 위해 작곡공부를 하고있던 나에게 오빠가 한 말이다.

내 기억에도, 유치원도 들어가기전 꼬꼬마 시절 오빠 언니들이 다 학교에 가고 혼자 있을때면 내가 직접 LP판을 올려서 운명 교향곡에 빠져있곤 했었다.

그 곡을 듣고 있으면 어린 가슴에도 알수없는 무엇인가가 와닿는 느낌이 있었다.

얼핏보면 마치 천재 작곡가의 어린시절을 보는듯 하다. 하지만…

그 꼬마는 지금 작곡’가’가 아닌 그냥 작곡’과’를 나온 평범한 아줌마로 살고있다.

 

5남매중 막내로 태어나 온 가족들의 사랑과 관심을 받고 자랐지만 부모님의 자식에 대한 욕심은 다섯째까지 다다르기에는 좀 역부족이었나 보다.

오빠 언니들에게는 상주 가정교사도 붙이고 악기도 가르치고 학교서도 약간의 치맛바람을 날리시던 엄마가 내 담임 선생님은 얼굴조차도 모르셨다.

그러니, 내가 욕심을 내지 않는 한 부모님이 먼저 과외활동을 시키지는 않았다.

언니의 피아노 연주 소리를 그저 일상으로만 듣고 자라던 어느날, 친구를 따라 피아노 학원엘 갔다가 거기서 여러 친구들이 피아노 치는 모습을 보고 나도 배우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그날 엄마한테 통보를 하고 바로 다음날부터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너무 재미 있었다. 내 손가락이 그냥 뚱땅거리는 소음이 아닌 제대로 된 소리를 만들어 내는것도 너무 신기했다.

선생님이 놀라실 정도로 진도도 빨리 나갔다.

언니가 치는걸 옆에서 들었던게 큰 도움이 되기도 했지만 친구들을 따라 잡아야 겠다는 욕심과 나도 모르고 있었던 내 속의 음악적인 재능이 한몫을 한것 같다.

먼저 배우던 친구들을 하나하나 따라잡는 기분이란 정말 짜릿짜릿 했다.

큰 규모는 아니지만 몇몇 대회에서 입상도 했다.

중학교 1학년때 나간 대회에서 제법 큰상을 받고난 후 엄마는 나에게 큰 고민거리 하나를 주셨다.

피아노 실력도 어느정도 인정을 받았으니, 중학생이면 이제 공부에 전념해야 할 때니까 피아노를 전공할거면 계속 배우고 안그럼 그만 두라셨다.

피아노를 치는건 너무 좋지만 전공을 하게되면 피아노를 즐기기보다 억지로 연습을 해야되는 압박감에 시달릴것 같았다.

이 좋은 피아노를 그렇게 질리게 치고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결론은, 전공은 안하지만 피아노는 계속 배우는 거였는데… 그건 내 생각일 뿐이었다.

‘어무이, 정녕 내가 피아노 칠 시간에 공부를 할거라고 생각하셨나요? 레슨비가 부담스러우셨나요? 우리 제법 잘 살았잖아요~’

언니도 당연히 이런 과정을 거쳐서 피아노를 전공한 거라고 생각 했었는데 언니한테는 묻지도 않았다는걸 작년에야 알았다. 어무이~~~~!!!!!!!

다시 음악을 시작하게 된건, 고등학교 1학년때 음악시간 첫 실기과제가 계기가 되었다.

선생님은 곡을 쓰는 요령을 가르쳐 주시면서 16마디짜리 곡을 쓰라고 하셨다.

다른 아이들의 힘들어 하는 모습에 약간의 쾌감을 느끼면서 난 여유있게 곡을 썼고 그날 선생님은 나를 따로 부르셨다.

작곡에 소질이 있다고, 전공을 하면 어떻겠느냐고.

‘맞아, 국민학교때 작곡대회에서 입상한 적도 있었지… 피아노를 그만둘때 선생님이, 나한테 안배워도 되니까 음악은 관두면 안된다고 그렇게 당부를 하셨어… 그래, 나는 음악을 해야되는 사람이야.’

그렇게 해서 작곡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내가 2학년이 되던 해 언니는 연세대학교 피아노과에 입학을 했고 나도 같은 학교를 목표로 삼았다.

그당시 언니는 그 학교에 다닌다는 이유만으로도 이 세상 누구보다  제일 부럽고 따라가고 싶은 사람이었다.

생각보다 힘든 공부였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입시에 실패를 하고 평소에 그렇게 우습게 여기며 무시했던 학교에 입학하게 됐다.

너무 자존심 상하고 내자신이 비참하게 느껴졌지만 워낙 적응력이 빠르고 낙천적인 성격이라 나도 모르는 사이에 새 대학생활에 빠져 들었고 4년을 열심히 살았다.

졸업후에 대학원 진학을 당연한 코스로 여기고 있었는데 졸업연주곡을 준비하면서 서서히 마음이 바뀌었다.

곡이 너무 풀리지가 않아 머리를 거의 쥐어뜯고 있을때, 교생실습때의 즐거웠던 기억들이 스물스물 기어 올라오면서 진로에 대한 새로운 고민이 시작되었고 결국 교사의 길을 택했다.

교사가 되는길도 쉬운건 아니었지만 비겁하게도 나는 사립학교 재단 이사장으로 계시는 외삼촌의 ‘빽’을 믿고 있었던 것이다.

‘빽도 실력이야’ 라는 말로 스스로를 정당화 시키면서.

아무튼 그것은 제대로 된 선택이었고 재미와 보람을 느끼며 교사생활을 했다.

나랑 몇살 차이 나지않는 고등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니, 아이들이 제자가 아니라 동생처럼 느껴졌고 아이들도 나를 언니처럼 따랐다.

개인적으로는 이해하기 힘들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음악시간을 싫어한다고 들었다.

그래서 나에게 배우는 아이들은 음악시간이 즐거웠던 기억이 되게끔 노력을 많이 했다.

가끔은 교과서 밖의 노래들도 가르치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가요도 같이 부르고 지루한 이론들도 재미있는 이야기를 덧붙여서 가르쳤다.

나도 진작에 나같은 선생님을 만났으면 공부를 더 잘할수 있었을텐데… 하는 자화자찬에 빠져서.

그러다 결혼을 하고,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 한다는 나의 신념과 엄마가 잠시라도 안보이면 자지러지는 딸아이 덕분에 조금은 아쉬운마음으로 교사생활을 접어야 했다.

아이가 어느정도 자라면서 피아노 레슨도 시작하고 쉬었던 교회 음악봉사도 다시 시작했다.

그렇게그렇게 시간이 흘러 우리 가족은 미국으로 건너오고 나는 지금 평화의 교회에서 12년째 반주를 하고있다.

 

내 인생에서 음악이란 무엇인가…

부모님은나에게, 작지만 아주 소중한 ‘음악’이라는 재능을 물려주셨다.

귀로 듣고 감상하는데만 그치는게 아니라 직접 내 손가락을 통해서 좋은 음악들을 만나게 되고 내 머리를 통해서 졸작이나마 새로운 음악들이 만들어 졌다.

음악은 나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었고 마음이 힘들때 위로가 되어주고 고된 작업을 통해 탄생하는 창작의 희열감마저 주었다.

성격이 밝고 낙천적인 반면에 소극적인 면도 많아서 남들앞에 나서는걸 두려워 했던 내가 음악활동을 하면서 무대에도 서고 비록 지방방송이지만 방송국 카메라 앞에서도 연주를 했다.

교회생활도 소극적이었지만 ‘음악’ 이라는 무기를 가지면서 예배반주, 어린이 성가대 지휘, 오케스트라 편곡, 중창단 반주 등 내가 가진 능력에 비해 너무나 많은것들로 헌신할수 있었고 사람들에게 인정도 받았다.

지금와서 돌이켜 보면, 엄마가 피아노를 그만 두라고 하셨을때 많이 원망스러웠지만 결론적으로는 작곡으로 우회를 하게 됨으로써 피아노 외에 더 다양한 모습으로 봉사할수 있게돼서 너무 감사하다.

우스운 얘기, 아니 교회 집사로서 위험한 발언인지 모르겠지만  음악은 사람들이 나의 신앙심마저 과대평가 하게 만들었다.

목사님 가정에서 태어나 –할아버지가 목사님이셨다- 뼛속까지 크리스챤이라 신앙의 뿌리는 깊지만 그 가지는 그리 튼튼하지 않다.

학교를 다니듯 그냥 교회를 다녔다. 지금도 성경공부는 지루하고 싫다. 기도도 내가 아쉬워야 한다.

그렇지만 교회에서 활동하는 것들은 너무 재미 있었다.

그것들은 위에서 언급했듯이 대부분 음악과 관련된 일들이다.

어릴때부터 교회에 열심히 봉사하는 나의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신앙이 좋다고들 했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 하시는 분들이 많으리라 생각한다.

하나님은 나의 이 부족함을  너무 잘 아시기에 ‘음악’이라는 매체를 통해서나마 교회에 헌신 봉사하게 하시고 그 기쁨도 누릴수 있게 하신것 같다.

그리고 너무나 감사하게도 하나님은 나의 딸들에게도 이 소중한 재능을 물려주셔서 악기 연주로 교회에 봉사하고 그 즐거움을 알아가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뭉클해 진다.

내 아이들은 엄마보다 더 큰 신앙심으로 무장하길 바라며 교인들에게도 엄마가 그랬던것보다 더 큰 감동을 주길 소망한다.

 

베토벤의 그 위대한 작품을 사랑했던 꼬마의 운명이 비록 훌륭한 작곡가가 되는건 아니었지만, 그 꼬마는 아직도 여전히 음악을 사랑하며 음악과 함께 나이들어 가고 있다.

꼬마는 어느덧 중년의 모습으로 오늘도 피아노에 앉고, 생을 마칠때까지 음악과의 운명적인 사랑을 나눌것이다.

Comments:2

  1. 와, 정말 멋진 글입니다. Beethoven의 Symphony #5 제게도 현존하는 지상 최대의곡이라 생각하며 제일 사랑하는 곡인데요 이곡을 꼬꼬마때부터 좋아하셨다는 분을 이곳에서 우연히 알게되니 참 신기하네요. 평화의교회는 지난 몇년간 한인사회 모임때문에 가면서 친근하게 느껴지는 교회가 되버렸읍니다. 음악이란것이 우리의삶에 큰영향을 주는것을 새삼 느끼게 되네요. 이글이 읽혀질런지 궁금해지네요.

  2. 님의 댓글을 이제야 봤네요.
    이런 졸필을 멋지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지금은 교회 반주를 하는게 제 음악활동의 거의 전부라고 할수 있지만 음악이 없는 삶은 상상도 할수가 없네요.
    작은 재주지만 필요한 곳에 열심히 써보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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