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서신: 탄핵은 법적 판결이 아니라 시민 세력의 승리

한국의 전통종교인 동학을 창시한 수운 최제우는 1863년 모진 고문 끝에 사망합니다. 2대 교조가 된 해월 최시형의 열정 덕에 동학의 성장세는 가파르게 상승했습니다. 여기에 힘을 받은 최시형은 1892년부터 교도들과 함께 교조 신원(伸寃)운동을 전개합니다. 즉 우리 1대 교주가 억울한 일을 당했으니 원한을 풀어달라고 왕실에 청원을 했던 겁니다. 이에 대한 왕실의 반응이 미지근하자 교도들의 원망이 커지고 이 운동은 1894년 동학혁명 즉 갑오 농민전쟁으로 확대됩니다. 한국 근대사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민중혁명은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동학교도들은 계급이 없는 평등세상을 꿈꾸었지만 감히 왕에 대해서는 도전을 하지 못했습니다. 자기들의 교주를 억울하게 죽인 임금(고종)은 극복의 대상이어야 하는데 오히려 그에게 선처를 바라고 있었던 것이지요. 비단 임금뿐 아니라 각 지역에서도 고을 수령은 임금이 임명한 자리라고 해서 저항세력들이 함부로 하지 못했습니다. 사극에서 많이 보는 사약을 받는 장면에서 억울하게 죽는 이들이 임금에게 감사를 올리며 죽습니다. 사약의 사는 죽을 死가 아니라 은혜 賜입니다. 최고의 권력자 앞에서 억울한 죽임을 당해도 감사의 마음을 가질 수 밖에 없는 것이 봉건시대의 풍경이었습니다.

악덕한 고부군수에게 쳐들어가서도 도망갈 빈틈을 주었다가 결국 권력을 되찾은  고부 군수 조병갑에 의해 2대 교조 최시형은 사형을 선고 받고 죽임을 당합니다.

박근혜씨가 탄핵되었다고 해서 세상이 하루 아침에 좋아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다만 자진 사임이 아니라 촛불의 힘으로 최고 권력자를 끌어내렸다는 자신감이 시민들에게 충만했으면 좋겠습니다. 시민들의 자신감, 이것이야 말로 정권교체보다 값진 소득입니다.

사진: 대기원시보: 광화문 광장 가득 채운 시민들 “박근혜 퇴진” 외쳐

Comments:1

  1. 지금 자유 민주 주의 법치 국가가 법에 의해서가 아니라 불법한 방법으로 탄핵 당했다는 것을 인정하시는군요.
    역시 빨갱이 정기열 데려오는 교회가 어떤 교회인가 했더니 역시 이런 교회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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