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은 고통과 함께

(채희탁)

고통만큼 시야를 명료하게 하고 주위를 잘 보게 하는것도 없다. 플라톤의 말처럼 고통은 영혼의 질서를 회복해 낸다. 시인 루미는 고통이 무관심의 가지들을 털어낸다고 말한다. ‘찌르는 가시들이 당신의 어떤 사유보다도 더 멀리 대려 갈 것이다”

다른 무엇보다 고통은 출생, 오르가즘, 사랑, 죽음과 같은 인생사의 경험을 제공한다. 고통은 너무 생생해 비 현실적인 상황에 대한 중화제 역할을 한다. 당신이 직접 고른 중화제는 아니더라도 아주 효과적인 것이다. 다음에 당신이 진정한 고통속에 있게 될 때, TV쇼나 새로운 가전제품, 깨끗한 집, 혹은 당신의 이력서에 대해 당신이 어떻게 느끼는지 살펴보라. 그것들 중 당신을 도울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당신을 도울 수 있는 것은 당신을 보살피기 위해 모든 일을 포기한 누군가가 가져다 준 차가운 물 한잔이다. 담요 몇 장, 마른 베개도 도움이 될 것이고 당신이 울면 집안에 누군가가 들을 거라는 사실도 도움이 된다. 그 이상은 기대해도 소용이 없다. 그래서 내생각 같아서는 다윈의 진화론에 한마디 덧부쳐야겠다. 진화과정에서 주된 역할을 항 것은 고통(Pain)이고 이 고통이야말로 인간을 다른 모든 생물을 뛰어넘는 인간이 되게 한 핵심요소로서 이성적 인간이 되게 한 것이다. 인류의 앞날에 희망을 걸어보자. 그 희망은 간헐적인 아픔을 동반(수반)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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