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갓진 山길 가에 이름모를 靑綠 야생초를 만났습니다

한갓진 山길 가에 이름모를 靑綠 야생초를 만났습니다
거칠고 메마른 岩面에 혼자서도 端雅하고 듬직하기만 합니다
(연한 뿌리로 유기산을 분비해 바위를 녹이고 무기질을 취하여 산다고합니다. 억척스럽습니다)

“뭐, 그런 교회를 다녀?”
불현듯! 항간에 야멸찬 눈총도 의연하게 버텨야하는 ‘평화의 교회’ 그리고 교인 (나),
친교실벽에 (6.25 68주년 바로 전날, 아무렇지도 않게) 太極旗와 나란히 내걸린 人共旗의 급작스런 隔世感 등등…
애써 무심코 살려던 온갖 雜感들이 교회와 겹쳐 선불을 맞았습니다.

海籃 !
‘누구라도 다 오라! 바다같이 넓은 품’이라 읽혀져 넉넉하고 푸근한 교회 이름였습니다.

너 나가라, 딱히 내쫓는 자는 없었지만 달리 어째볼 도리가 없었습니다
아내와 한살 반 딸애와 萬里異域에 달랑 우리뿐일줄 알았더니
생전 처음, 교회라는 곳에는 속내 하얀 사람들이
빈 맘으로 휘청대던 우리게 위로이고 버팀목이기도 했었습니다.

그러저러 40년! 교회는 이름마저 바뀌었고
업고 온 한살 반 딸애는 이교회 마당에서 뛰다 시집 가 두 딸의 엄마 됐고
곱던 아내는 ‘하미’가 됐습니다 (딸의 딸들이 할머니 할아버지 발음이 어렵다고 하미 하지라 부릅니다)
나 또한 하릴없이 노인되어 책 몇줄 읽을래도 앞으로 읽어나가는 속도와 뒤에서 까먹어 들어오는 속도가 비슷합니다.

나고 자란 내나라에 살던 세월보다 移民살이가 더 길어진 지금
주일 아침마다 교회 마당을 쓸던 엄마도 명을 달리하신지 어느새 십수년
그나마 살갑던 사람들 하나 둘 다 떠나고
어차피, 돌아가기 보다는, 남은 세월 맘 붙이고 살아야할 고향같은 교회
빈 마당이 자못 (생각보다 훨씬) 虛虛합니다.…

일흔번째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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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맞이로 나선 산 들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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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서 지난해 늦가을쯤에나  태어났을 귀가 큰 아이 사슴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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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넘어 사막엔  투박스런 ‘손바닥 선인장’이  큰 가시 헤치고 여리디 여린 노랑꽃읗 피웠다
꿀 일 하는 벌 한놈이 냉큼 날아들어 앉았다.

요행 WiFi가 터진 길섶에 앉아 이해인의 시 [선인장]을 찿아냈다.

“사막에서도 나를 살게 하셨읍니다
쓰디쓴 목마름도
필요한 양식으로 주셨읍니다
내 푸른 살을 고통의 가시들로 축복하신 당신
피묻은 인고의 세월
견딜 힘도 주셨읍니다
그리하여, 살아있는 그 어느날
가장 긴 가시 끝에 가장 화려한
꽃  한송이 피워 물게 히셨읍니다.”

시인의 감성이란 참으로!
보통 사람 내겐 그저,  하필이면 저리 척박한 땅에 온통 가시 돋힌 선인장 꽃일 망정 아름답구나!가 고작인데,
시인은 아예 스스로 선인장 ‘나’가 되어  쓰디쓰게 목마르고  푸른 살 가시의 고통마져 신의 축복으로 인고의 세월을 견뎌
마침내 가장 화려한 한 송이 꽃을 피워 시가 되었다.

 

그 잔인하다는 4월,  화려한 5월,
속절없이 어느새 일흔번째나 보내는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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