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경 21장

도덕경 21장 (채희탁)

반듯해도 남을 해치지 않고
청렴하되 남에게 상처입히지 않으며
곧아도 교만치 아니하고
빛나도 번쩍거리지 않는다
荀子(순자) 는 이렇게 말했다.
군자는 너그럽되 느슨하지 않고
청렴하되 상처주지 않는다.
혹자는 말한다.
화합하되 한 통속이 되지 않았고
부드러우나 물러 터지지도 않았다.
겸손하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나 사치스럽지 않다. (남구만 1629-1711 이 병조판서 총처량의 신도비명에 그의 인품을 표현한 글)
본관은 무슨 말을 할꼬
시기하는 마음이 들면 존경하는 마음으로 바꾸고
나를 욕하는 소리를 들으면
광야의 외치는 소리로 이해하고 나를 곧게 세워 진리의 길로 나아간다.
항상 잔잔한 호수와 같이 평정을 유지하고자 노력한다.
이슬 한 방울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여 휘청이며
자연의 섭리에 순응한다.
앞이 보인다. 내가 보인다.
교만해 지면 자연에 순응한다.…

누가 우리의 주적인가

누가 주적인가?

채희탁 교우

1945년 남과북이 삼팔선으로 분단된 이래 72년의 세월이 흘렀다.20대 후반에 독일을 비롯한 구라파 지역을 여행한적이 있다. 49년 전이었습니다. 독일사업체와 거래가 있어서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그 사업체의 사장을 나이로 보면 저의 아버지 연배였으며 한국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보여주었다. 그분의 얘기를 듣는 나도 참으로 참담한 기분이였다. 솔직히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원래 하나의 나라로 같은 말, 한글을 쓰고,같은 언어로 서로 이야기 했는데 우리 세종대왕을 기리면서…….. 70년 넘는 세월이 흘렀는데…… 여전히 남과 북이 서로를 주적이라고 열을 내고 있다. 주적은 우리 한 사람 생각과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는 오랜 세월과 더불어 쌓이면서 굳어진 무의식의 세월의 표상이라 할까. 남북접촉을 통해서 북한을 대화의 상대로 인정하고 이를 기회로 하나가 되는 통일의 미래를 열어가는 어쩌구.문제의 빨갱이 대통령이 씨부렁거렸네요….그래도 다행스럽게도 북한은 우리의 주적이 아니네요. 지금도 북한을 주적이라고 하는 자들은 자신들의 귄익과 관계기득권을 지키려고 안간힘을 쓸것이다. 북한에서도 사정은 대동소이할 것이다.

미국은 어떠한가? 남한을 강력지원하여 변함없는 우방이라고 떠든다. 왜 지지하는가? 한국을 위해서라고? 극동지역의 정치, 경제, 군사적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미국의 국익에 절대적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인데. 일본을 포함한 극동 아시아 지역의 방어가 극동 아세아가 중국의 관할지역으로 넘어가면 일본을 꼬봉으로 둔 미국의 대아세아 정책의 거의 치명타가 되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사드배치를 그렇게도 서두르고 이를 기정화하는 속내를 알 수 있다. 추가 배치도 우려된다. 러시아는 어떠한가? 러시아는 한국이 많이 필요한 입장이다. 한국은 극동지역 또 태평양으로 발전할 수 있는 최상의 통로이며 요충지이기 때문이다. 한국과의 협조는 러시아 당국에 이익이다. 광대한 시베리아 개발에 한국이 참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우리의 주적이 더 명확해 진다. 미국, 일본, 중국이 우리의 주적이 된다. 여기서 중국은 외교의 상대로 서로 협력할 여지가 충분하다. 일본은 항시 강자에게 꼬리를 흔드는 본성을 가지고 있으니 미국의 최대 협력국이 될 것이다. 특히 한국이 커지는 것을 꺼려 왔다.

그러면 우리의 장단기 주적이 분명해 진다. 미국, 일본이 우리의 주적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미국, 일본과 각기 외교의 역량을 발휘하여 극동지역의 안정과 평화의 지레대 역할을 하여야 할 것이다. 북한과 남한이 서로 주적이라고 야단스럽게 떠들석 하는 것은 그 자체가 주적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미국과 일본도 우리의 성숙된 외교로 우리의 국익에 부합되는 협의가 가능할 것이다. 다수국민의 지지를 받는 문재인 정부는 그 지지를 등에 업고 틀림없이 우리의 희망을 열어 갈 것이다. 어렵겠지만 몹시……

부활 – 치욕의 박근혜, 부활의 노무현

부활 2017
문영조

5월 23일 치욕의 박근혜

산 사람 죽고 죽은 사람 다시 산 날
수갑차고 대강 올림머리에 민 낯
18가지 죄목에 “아니오, 속았어요, 몰랐어요”
마지막 용서 받을 카드도 던지는 503호
꿈속에서 아버지 품에 안기며 “다 배반자들이어요”
그렇게 좋다던 유신 따라하며 우아게 미소까지 뿌렸는데
사슴을 말이라고 우겨대는 무리들
도둑과 아첨의 숲에 묻혀 산 인생
그대의 길은 이미 정해졌다
생과 사 어디서나 버려진 땅에 핀 야생화
거친 바람에 꽃잎이 메마른다

5월 23일 부활의 노무현

산 사람 죽고 죽은 사람 다시 산 날
“삶과 죽음이 자연의 한 조각이 아니냐 운명이다”
고향 길 옆 낮은 언덕 삐죽 나온 비석
5만의 발길 봉화의 함성
“아 ~ 기분 좋다”
다 내려놓고 밀짚모자 눌러 쓰고
자전거 타고 담배 한대 꼬나 물고
“사람 사는 세상”을 하얀 연기속에 새기던 그대
깨끗한 영혼은 삶과 죽음을 자유롭게 거닌다
마른 땅에 솟아 난 생명나무
피 뿌린 뿌엉이 언덕에서
몰아치는 공기의 바람소리
살아 숨쉬는 영혼의 소리…

집착을 버려라

(이글은 채희탁 교우님이 쓰신 글입니다)

집착을 버려라
집착하는 너 자신을 내려 놓아라
집착이 무엇인지, 집착의 의미를 알게 된다.
그러면 주위가 보이고
너 자신이 보인다.
그때에 진리를 깨닫게 된다.
우주에 귀의하게 된다.
너도 없고 나도 없다.
해탈의 경지다.
기독교에는 해탈에 해당하는 말이 있는가?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자신을 버리면서
그러면 해탈의 경지에 이를 것인가?
그것이 부활인가? (5/7/17)

이미지: Allegorische Szene: Allegorie des Geizes, wahrscheinlich aus einer Serie mit den “Sieben Todsünd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