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큰 바람: 열린 마음, 열린 교회로 가득 찬다면…

(2013년 회지 “평화의울림“에 개제된 글입니다)

박신화, 협동목사CoP 2013_Page_018_Image_0001

몇 달 전부터 이 교회의 협동목사직을 맡으면서 장년부(길동무)그룹의 성경공부를 맡게 되었다. 그룹일원이 함께 선택한 교재는 “새로 만난 하느님” (한인철 역 2004, God We never Knew)”의 제목이었다. 이 책은 지난 30년간 오레곤 주립대학교 종교학을 가르쳤던 마르커스 보그(Marcus Borg)교수가 미국 성서학회의 역사적 예수 분과 책임자이며 예수 아카데미(Jesus Academy)의 정회원으로서 하나님 이해에 대한 연구를 통하여 지금까지 몰랐던 하나님을 새로 만남으로써 우리에게도 새로운 하나님을 만나도록 역설하는 내용이다. 이는 많은 현대 미국 기독교인의 신앙의 길의 갈증을 시원하게 풀어줌으로써 신앙의 길을 돕도록 폭넓게 영향을 주었다. 나는 미국교회의 성경공부그룹에서 이 책을 공부하는 기회를 가지면서 나의 갈증을 풀림을 받는 기쁨을 가졌다.

그 점에서 오늘날 바른 신앙의 길을 찾기 위해 갈등하는 한인교인들에게도 읽혔으면 하는 바램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제목 자체가 전통 신앙관을 뒤집어 놓을 수도 있다는 인상을 주기에 일반한인교회에서 가르칠 수 있는 기회를 아예 생각하지 못하였다. 마침내 번역서가 나와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쉽게 권할 수가 있었는데 장년 그룹에서 선뜻 선택하였기에 적이나 놀라면서 한편 너무 반가웠다. 우리 교회의 이 그룹은 가능하다는 자체가 목사로서의 보람을 갖는 뿌듯한 기쁨을 가져다 주었다. 우리의 공부는 보그 교수가 우리가 전통적으로 가졌던 하나님에 대한 이해를 부활 전 이전의 역사적 예수와 부활 이후의 해석된 예수에 관한 차이점을 해설하며 역사적 예수의 참모습과 우리 삶 한가운데 계시는 하나님으로 인도함을 따라갔다.

그리고 우리의 신앙관이 부활 이후에 해석된 예수의 모습으로 각색된 신앙관에 매여 벗어나지 못하고 부활 전 참된 역사적 예수의 삶을 왜곡하고 있다는 것을 보그를 통하여 성찰할 수 있었다. 소위 우리 한국교회가 흔히 주장하는 “초대교회의 신앙으로 돌아가자”라는 표어를 들으며 교회부흥을 이야기 하는 문구에 지나지 않는다고 과히 흥분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보그 교수는 “역사적 예수를 아는 초기신앙으로 돌아가자”라고 점을 역설한다. 2000여년이 지나오며 역사적 예수를 경험하지 않는 부활 이후의 해석에 따라 “저 하늘 위의 하나님, 심판하는 하나님”으로 이해하는 신앙은 우리의 삶이 예수님의 삶을 통하여 계시한 하나님을 “우리 삶 안팎에서 함께 임재하시는 영의 하나님”과 달리 잘 못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여 주었다. 그것은 그가 강력히 역설하는 “범재신론(panentheism)”에 근거한다. 하나님의 초월성만 강조하는 전통적 신관인 “저 바깥에” 계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모든 것(pan)” 안(en”), 하나님(theos)의 의미를 가진 하나님으로서 “바로 여기에” 계신 것 이상임에도 불구하고 “바로 여기에”계신다고 한다. 즉 “모든 것은 하나님 모든 것 이상이지만, 모든 것은 하나님 안에 있다”. 보그는 자신의 신앙여정을 바탕으로 자신의 하나님인식은 지금까지 몰랐던 하나님을 새로 만남으로써 God We Never Knew(우리가 알지 못하였던 하나님)라는 원제목으로 새로 만난 하나님을 이야기 하였다.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을 바르게 알지 못하였고 이제 하나님을 새롭게 만나야 한다는 역설을 함으로서 우리의 신앙생활이 과연 하나님을 바로 알고 살아왔는지에 대하여 깊이 성찰하도록 도와준다. 즉 우리 역시 전통적 기독교에서 배운 과거의 하나님이 아니라 새로 만난 하나님을 만나야 할 것을 종용하며 신앙생활의 초점을 재조준해야 할 것을 우리에게 도전한다.…

동방의 에덴

(2013년 회지 “평화의울림“에 개제된 글입니다)

문영조

문영조춘추전국시대에 있던 노나라와 그 주변 국가들의 타락은 매우 심각했다. 자식이 아비를 사살하고 왕 자리를 거머쥐기는 보통이요, 왕이 자기 친누이를 첩으로 삼는 자가 있는가 하면 초나라의 왕은 며느리로 맞이하는 진나라 공주를 도ㅜㅈ에 가로채어 자기 왕비로 삼는 기막힌 일도 있었다.

2500년 전 공자가 살던 때의 사회상이 그와 같았다. 공자는 이처럼 소름끼치는 사건들을 피하여 좀 더 나은 나라, 좀 더 윤리가 통하는 곳을 찾아 헤매었다. 발이 부르트도록 다니다가 결국 실패하고는 깊이 한숨 지으며 중얼댔다.

“저 구름 너머 동쪽 하늘 밑에 고조선이 있지. 그곳에는 군자들이 도덕 사회를 이루고 산다는데 정말 가보고 싶구나. 평양성을 한 번만이라도 구경할 수 있다면 죽어도 원이 없겠는데.”

자기 철학이 담긴 대학, 논어가 아직 전달된지도 않은 미지의 세계를 그는 그토록 동경했다. 이 이야기는 고서 산해경에 나오는 내용 중 일이다.

고조선 때의 조상들은 과연 군자였는지도 모른다. 무슨 확실한 고증이나 역사적 기록이 있어서 그것을 확신할 수는 없지만 우리 민족의 깇은 심사를 관찰하면 답을 찾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우수한 두뇌, 남다른 인내심, 차마 못하는 박애의 접근 등이 한민족의 본성이다. 두뇌가 뛰어나다는 것, 이미 세계적인 추인을 받고 있는 바다.

인내심은 어떤가? 고난의 역사 속에서 겪어온 고뇌와 빈곤, 극한 상황을 견뎌낸 백성들이다. 과연 한과 뒤섞여 쌓아 온 인내라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차마하지 못하는 어질 인자의 백성이 우리다. 대다수 백성들이 알면서도 참고 또 참는 착한 사람들이었는데 요사이는 많이 변형됐다. 이상한 돌연변이가 인구의 절반에 육박하고 있다. 그렇게도 열악한 환경이었던가? 원래는 거의 다가 멋있는 신사, 성인군자들이었는데, 참으로 원통하다.

해방이 된 지도 70년이 다 되었다. 이제는 우리의 본성인 즉 공자가 그리워하던 동방의 군자들의 나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그러려면 어쩔 수 없이 첫째로 해결할 사안이 있다. 다 알고 있지만 곧 통일 문제다.

이일은 우리 자신의 일이므로 우리 자신의 손으로 이루어야 할 과제이다. 미·중·일·소 4대 강국이 우리처럼 팔을 걷어 붙이고 나설리가 없고 오히려 삼각파도를 일으키고 발걸이를 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왜? 그들은 그들의 이익과 자기 나라의 부강이 먼저이기 때문에 이웃을 위하여 큰 희생을 할 바보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는 종교학자는 우리의 심성을 이렇게 파헤쳤다. 한국 사람들은 심각성이 부족하다. 깊은 사색이 없다. 들이파지 못한다. 철학도 없고 종교도 없다. 그의 분석은 정확하다. 로켓은 3단계의 폭발이 있어야 한다. 대형 교회는 많은데 내용이 없고 참 실천이 부족하다.

독일 교회는 텅 비어 있어도 국민들의 생활 태도는 매우 성경적이다. 종교세도 바치고 처참한 형제들도 큰 돈 들여 구하고 얼키고 설키어 통일도 이루어 서구의 대표 국가를 이루고 있다. 세계 최고의 종교 철악을 사장시키지 아니하고 손수 실행에 옮겨 무서운 축복을 얻어내고 있는 것이다. 척박한 환경은 그 귀한 보편성을 단순세포로 변형시키고 말았다.

영국은 문학, 미국은 자유, 독일은 철학, 중국은 역사, 그리스는 신화, 소련은 발레, 일본은 경제, 한국은 부요.…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을 사랑한 꼬마

(2013년 회지 “평화의울림“에 개제된 글입니다)

COP_Page_008_Image_0002조언정

“니 어릴때, 울다가도 베토벤 운명 교향곡만 틀어주면 금방 뚝 그쳤대이. 그러이 니는 작곡가가 될 운명을 타고난게 분명하다”

대학입시를 위해 작곡공부를 하고있던 나에게 오빠가 한 말이다.

내 기억에도, 유치원도 들어가기전 꼬꼬마 시절 오빠 언니들이 다 학교에 가고 혼자 있을때면 내가 직접 LP판을 올려서 운명 교향곡에 빠져있곤 했었다.

그 곡을 듣고 있으면 어린 가슴에도 알수없는 무엇인가가 와닿는 느낌이 있었다.

얼핏보면 마치 천재 작곡가의 어린시절을 보는듯 하다. 하지만…

그 꼬마는 지금 작곡’가’가 아닌 그냥 작곡’과’를 나온 평범한 아줌마로 살고있다.

 

5남매중 막내로 태어나 온 가족들의 사랑과 관심을 받고 자랐지만 부모님의 자식에 대한 욕심은 다섯째까지 다다르기에는 좀 역부족이었나 보다.

오빠 언니들에게는 상주 가정교사도 붙이고 악기도 가르치고 학교서도 약간의 치맛바람을 날리시던 엄마가 내 담임 선생님은 얼굴조차도 모르셨다.

그러니, 내가 욕심을 내지 않는 한 부모님이 먼저 과외활동을 시키지는 않았다.

언니의 피아노 연주 소리를 그저 일상으로만 듣고 자라던 어느날, 친구를 따라 피아노 학원엘 갔다가 거기서 여러 친구들이 피아노 치는 모습을 보고 나도 배우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그날 엄마한테 통보를 하고 바로 다음날부터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너무 재미 있었다. 내 손가락이 그냥 뚱땅거리는 소음이 아닌 제대로 된 소리를 만들어 내는것도 너무 신기했다.

선생님이 놀라실 정도로 진도도 빨리 나갔다.

언니가 치는걸 옆에서 들었던게 큰 도움이 되기도 했지만 친구들을 따라 잡아야 겠다는 욕심과 나도 모르고 있었던 내 속의 음악적인 재능이 한몫을 한것 같다.

먼저 배우던 친구들을 하나하나 따라잡는 기분이란 정말 짜릿짜릿 했다.

큰 규모는 아니지만 몇몇 대회에서 입상도 했다.

중학교 1학년때 나간 대회에서 제법 큰상을 받고난 후 엄마는 나에게 큰 고민거리 하나를 주셨다.

피아노 실력도 어느정도 인정을 받았으니, 중학생이면 이제 공부에 전념해야 할 때니까 피아노를 전공할거면 계속 배우고 안그럼 그만 두라셨다.

피아노를 치는건 너무 좋지만 전공을 하게되면 피아노를 즐기기보다 억지로 연습을 해야되는 압박감에 시달릴것 같았다.

이 좋은 피아노를 그렇게 질리게 치고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결론은, 전공은 안하지만 피아노는 계속 배우는 거였는데… 그건 내 생각일 뿐이었다.

‘어무이, 정녕 내가 피아노 칠 시간에 공부를 할거라고 생각하셨나요? 레슨비가 부담스러우셨나요? 우리 제법 잘 살았잖아요~’

언니도 당연히 이런 과정을 거쳐서 피아노를 전공한 거라고 생각 했었는데 언니한테는 묻지도 않았다는걸 작년에야 알았다. 어무이~~~~!!!!!!!

다시 음악을 시작하게 된건, 고등학교 1학년때 음악시간 첫 실기과제가 계기가 되었다.

선생님은 곡을 쓰는 요령을 가르쳐 주시면서 16마디짜리 곡을 쓰라고 하셨다.

다른 아이들의 힘들어 하는 모습에 약간의 쾌감을 느끼면서 난 여유있게 곡을 썼고 그날 선생님은 나를 따로 부르셨다.

작곡에 소질이 있다고, 전공을 하면 어떻겠느냐고.

‘맞아, 국민학교때 작곡대회에서 입상한 적도 있었지… 피아노를 그만둘때 선생님이, 나한테 안배워도 되니까 음악은 관두면 안된다고 그렇게 당부를 하셨어… 그래, 나는 음악을 해야되는 사람이야.’

그렇게 해서 작곡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내가 2학년이 되던 해 언니는 연세대학교 피아노과에 입학을 했고 나도 같은 학교를 목표로 삼았다.…

쉬우면서도 어려운 건강법

(2013년 회지 “평화의울림“에 개제된 글입니다)

CoP 2013_Page_059_Image_0002이용제

앞으로 다가올 우리들의 세상은 어떻게 변화해 갈까, 참으로 흥미있는 일이기도 하고 나날이 발전하는 Technology의 힘이 과연 우리들을 어디까지 데려다 놓을 까라는 호기심과 기대감이 커지면서 어쨌든 오래 살고 보아야 할 일이다라는 생각이 든다.

의학과 생명공학의 발전도 눈부신 것이어서 그 동안 인류 건강과 수명 연장에 지대한 공헌을 한 것도 사실이며 감사한 일이다. 그러나 모든 일이 그렇듯이 하나의 작용에는 반드시 반작용(反作用)이 있는 법이다.

현대의학이 발전하면서 각 분야가 세분화되고 전문성을 강조하게 된 반면에 전체성(Holism – All, Whole, Entire)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사람의 몸은 모든 기관들이 함께 조화를 이루면서 건강한 생명력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약물이나 수술의 방법으로 병든 몸의 일부 기능을 유지할 수 있겠지만 우리 몸의 공동체 기능이 서로 다 장부들을 도와주션머, 절제하면서 활동하기 보다는 복용하는 약물 위주의 일방적 활동을 우선으로 하게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심장병으로 인해 약물 치료나 수술을 받은 후 심장의 기능을 회복하고 생명 활동을 유지하게 된 것이 무엇보다 감사한 일이지만 이후부터는 심장은 자기 위주의 기능 활동을 강조하게 되면서 상호 도와 주어야 하는 관계에 있는 다른 장부들에게 상당한 부담을 주게 되고, 긴장과 불균형 상태를 야기하면서 또 다른 약물 치료가 필요하게 된다.

이러한 상태가 계속 되면 전체적 불균형 상태로 발전하게 되면서 우리의 몸은 결국 더 많은 약물에 의존하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또 한 가지 현대인들이 Technology에 대한 관심과 믿음이 커지면서 현대 의학이 우리의 모든 병을 치료해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평소의 자기 건강 관리에 소홀하게 된다는 점이다. 설사 내게 큰 병이 온다고 하더라도 건강보험이 있으니 걱정할 필요가 없고 잘 치료받으면 되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감 때문에 자기 자신의 나쁜 습관을 알면서도 애써 고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최근 의료 저널에 의하면 현대의학이 병을 찾아내 진단하는 방법은 최첨단 기술로 발전했지만 이를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은 별로 없다고 한 것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우리 몸에는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회복 기능이 주어져있다. 평소에 올바른 생활 습관을 통하여 뭄의 건강 상태를 유지하고 회복 기능을 높이는 것만이 약물과 병원 방문 횟수를 줄이는 길이라 할 수 있겠다.

누구나 다 아는 몇 가지 방법만 생활에 정용하면 지금 이후 건강 생활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기억하세요. 당신 몸의 주인은 바로 당신입니다.

첫 째, “아침 햇볕 쪼이며 걷기”

하루 30분~45분 정도, 아침 햇살을 즐기면서 걷기도 하고 명상도 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자. 세상에는 태양 에너지만큼 삶의 활력소를 주고 우리 몸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없다. 우리는 햇볕의 중요성을 잊고 살아가는 것 같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가히 놀랄만한 효과를 가지고 있다. 특히 아침 해가 떠서부터 3시간 이내의 아침 햇살이 가장 좋으며 오후에는 햇살이 강해서 외부와 우리 몸에 부작용을 가져 올 수도 있어 주의해야 한다.

아침 햇살은 우리 몸에 적당한 자극을 주어 몸 전체의 신진대사를 도와주며 혈액 순환 기능을 활발히 해주고 두뇌의 자극 호르몬 분비를 증가시켜 몸 전체의 호르몬 활동을 왕성하게 해주며 또한 세로토닌의 분비를 활성화해 침체되고 우울한 감정도 활짝 열어주게 된다.…

아버지, 저를 당신의 계획에 사용해 주소서

(2013년 회지 “평화의울림“에 개제된 글입니다)

이재경Thursday, August 30 2012

Santiago de Compostella– Negreira – Vilaserio- Santa Marina, 40.75km

아침 10시에 마시는 맥주 맛과 오후 3시에 마시는 맥주 맛이 다르듯, 카미노데프랑세/Camino de Frances와 카미노데피스테/Camino de Fisterra는 상대적으로 다른 멋이 있었어.

구릿빛 밀밭, 영글어가는 포도들의 뚜렷한 젊음, 산양들의 낡은 방울소리, 마치 미로 같은 넓적하고 푹신한 구름, 길 위의 새겨진 셀 수 없는 발자국, 길을 안내하는 노랑 화살표를 닮은 노랑나비, 새까맣게 타버린 고개 숙인 해바라기를 카미노데프란세스에서 맛보았다면, 산록에 남겨진 빈 집의 풍요로움, 옥수수수염의 간지러움, 암소의 느긋한 재롱, 끊임없이 살랑거리는 대서양 바람, 화려한 해돋이와 부드러운 파스텔 톤을 소유한 야생화의 분주함을 제대로 맛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카미노데피스테라야.

제대로 된 갈리시아/Galicia 지방을 맛보려면 피스테라길을 가보라고 권하는 순례객들이 있는데 내가 느낀 이 맛인지 그 맛인지 헷갈려. 날 현혹시킨 이 스페인은 너무 다양한 매력이 있어 뭘 어떻게 간추려야 할지 도무지 모르겠거든.

올베이로아(Olveiroa)를 약 14km 남겨두고 오랫동안 비어진 학교에 도착했어. 관리자도 없고 순례객들이 매트리스를 깔고 잘 수 있는 교실과 화장실이 전부야. 시계 바늘은 다섯 시를 향해 움직이고, 오는 길에 자신의 두 번째 순례길에서 예수님을 만나 세례를 받았다는 체코 파블릭에서온 Viladilin은 옆에서 19km를 더 가겠다고 해. 그럼 나는 가는 길에 알베르게(순례자전용숙소)를 찾으면 멈추겠다며 따라나섰어.

잘하는 짓일까?

스페인의 해는 아주 느릿느릿 저물어. 저녁을 먹고 배가 꺼질 즈음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강열함을 마지막으로 살며시 사라져 주는 해는 곧 다른 곳에서 아침을 열어 주겠지.

빌라딜린에게 여자 친구가 있어. 그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만장일치로 입을 모아 그의 여자 친구를 칭찬한데. 행복해 보여. 그도 그녀를 사랑한다고 했거든. 그런데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있데. 그래서 이 길은 네 번째로 걷고 있다네… 마음속에 하나님으로부터 강한 calling이 있는데 바로 신부님이 되라는 말씀인 것 같데.

“그녀를 사랑한다……. ” , “신부님이 되고 싶다…….”를 계속 반복하는 그에게 사랑도 사역도 중요해 보여서 나는 어떤 도움도 주지 못한 채 망설였어. 이런 상황에 어떤 단어를 어떻게 조합해 어떤 문장을 생성해야 할 지 너무 조심해졌거든.”있잖아, 그녀를 계속 사랑하고, 신부님이 하는 일들을 그녀와 함께하는 건 어때? 예를 들어 성당에서 신부님을 돕고, 마을에 가서 복음을 전하고, 수업도 하고, 봉사하고, 성서도 계속 공부하고, 성당도 청소하고?”

“성당도 청소하라고? ㅋㅋㅋ 그럼 신부님이 되지 말라는 거네?”

사실 나는 “Don’t be a priest” 말은 입 밖에 내지 않았다. 그저 “Do whatever a priest does with her”라고 했을 뿐…….

나중에 피스테라에 도착하기 전부터 이틀을 동고동락한 동갑내기 독일 친구, Nadine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그녀는 아주 단호하게 말했어.

“그는 이미 답을 얻었어, 인정하기 싫은 거겠지” ‘나는 모르겠어. 그게 답인지 아닌지.’ 하지만 확신에 찬 나딘에게도, 여전히 기도하는 빌라딜린에게도 이 길은 여전히 공평하게 그들에게 생명력을 주고 있다는 것이야. 그리고 그런 사실이 나를 미치도록 감동시켰어.

산티아고에 올려진 순례자들에겐 저마다 잠겨있는 문들이 하나씩 있었어.…

아주 가벼운 신학 이야기: 현대 신학 어디까지 왔나?

– Bible Green Class의 로마서 , Bible Red Class의 갈라디아서 공부를 보고

(2013년 회지 “평화의울림“에 개제된 글입니다)

김기대

 <근대(현대)란 무엇인가?>

근대의 시작은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라는 데카르트의 선언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쉽게 말해서 신앙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진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데카르트의 선언은 중세를 지배했던 기독교의 세계관에 대한 정면 도전이었습니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은 이 선언이 운동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시민들은 황제를 폐위하고 이성의 즉위식을 올렸고 많은 성직자들이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이성의 시대는 의학과 과학을 비롯한 여러 학문을 발전시켰습니다. 이성의 시대에 신학은 잠시 위기를 맞았지만 성서 비평학, 성서 고고학과 같은 이성적 분야를 발전시키면서 지위를 유지합니다. 이로써 종교는 이성 신봉자들의 기대와는 달리 소멸되지 않고 이성의 시대를 함께 살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성의 시대가 되면 합리적 존재인 인간이 항상 옳은 판단만을 해서 종교의 시대인 중세보다 좋은 시대가 될 것 같았지만 종교의 배타성 못지 않게 이성도 전횡을 휘둘렀습니다. 두 번에 걸친 전쟁과 인간의 욕망은 이성으로 통제되지 않았습니다. 가장 합리적인 이념체계인 사회주의도 결국은 위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사회주의의 위기는 철학적으로는 이성의 위기와 맥을 같이 합니다.

<포스트 모더니즘(후기근대)의 사회>

이성의 한계에 고민하던 유럽은 1960년대 변화를 시도합니다. 이른바 68세대라고 하는 새로운 문화의 세대가 사회를 바꾸어 나가기 시작합니다. 68세대는 “금지란 단어 이외에 모든 것을 금지한다”는 유명한 슬로건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모든 것은 허용되었고 오직 “이것을 하면 안되!”라는 금지라는 단어만 금지한다는 뜻입니다.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68세대는 다양한 문화를 창출해 내었습니다. 중세의 종교이건, 근대의 이성이건 어떤 것도 독점적이고 우월적인 지위를 차지하지 못하고 개인의 선택은 무한정 허용되었습니다. 상상력이 나래를 펴면서 영화가 단순한 오락을 넘어 철학적으로 사유되기 시작한 것도 이 때부터 입니다.

존재라는 것은 종교적인 것도 아니고 이성적인 것도 아니고 그냥 자유롭게 살아가는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가벼운 것이 되었습니다. 이성의 독선을 넘어 모든 것이 허용되는 분위기에서 사람들은 자유롭게 경쟁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사상은 늘 유한합니다. 무한한 자유라는 것은 무한 경쟁을 가져왔고 신자유주의라는 괴물을 낳았습니다. 사회주의의 퇴조로 자본주의가 승리한 것처럼 보였지만 우리가 고통의 세월을 보내고 있듯이 자본주의는 사회주의보다 더 추하게 종말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사회주의의 퇴조가 이성의 한계를 보여준 것이라면 자본주의의 퇴조는 포스트 모던 시대의 무한 자유의 한계를 보여준 것입니다.

사람들은 시대의 변화 앞에서 당황합니다. 예를 들어 여성운동가들이 종교의 시대나 이성의 시대를 온 몸으로 견디어 내면서 여성해방을 이루어 내었지만 새롭게 만난 현실이 자신들이 믿어왔던 것과 다르게 나타났을 때 설명할 방법을 찾지 못합니다. 유럽에 무슬림 이민자들이 늘어나면서 무슬림 여성들과 조우한 유럽 여성들은 처음에는 무슬림 여성들을 해방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입니다. 때가 되면 그들도 히잡을 벗고 사회의 당당한 주체로서 서게 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자발적으로 히잡을 쓰고, 자발적으로 남성에 종속된 여성성에 머물기를 원하는 낯선 이들 앞에서 유럽은 믿어왔던 것의 흔들림을 경험합니다. 이런 경우뿐 아니라 많은 경우에서 포스트 모더니즘은 장벽에 부딪힙니다.…

평화의교회를 위해 드리는 기도

(2013년 회지 “평화의울림“에 개제된 글입니다)

38년 전 주님의 뜻으로 세워주신 평화의교회를 사랑하게 하시옵소서. 저희들 삶의 자리에 평화의교회가 중심이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과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기도가 아버지의 몸 된 교회를 사랑함에서 시작되게 하시옵소서.

우리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주님의 몸이기 때문 에 주님을 위해서 제가 해야 할 일에 최선을 다하여 섬기게 하시옵소서. 솔로몬이 칠 년 동안 성전을 건축하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구했던 간절한 마음을 본받게 하시옵소서.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이 충만해지게 하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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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기도하는 시간이 교회를 위한 간구로 채워지게 하시옵소서. 저희에게 허락하신 재물도 교회를 위해서 더 많이 쓰여지게 하옵소서. 늘 교회를 사모하는 마음을 갖게 하시며, 지체들을 존귀히 섬기게 하옵소서.

여호와 하나님! 주님의 교회를 위해서 제가 들여야 할 것을 다 드리지 못한 죄를 회개 합니다. 교회보다 저 자신을 소중히 여겨서 주님의 영광보다 저의 영광을 구했던 죄를 용서해 주시옵소서. 성령님의 뜨거운 은혜로 거룩함에 도전하게 하옵소서. 성령님의 강권하심에 순종하여 옛사람의 행실을 거절하게 하시며, 세상의 풍조에 미련을 두지 않게 하시옵소서.

CoP 2013_Page_013_Image_0002성령님께서 거하시는 저 자신이 교회인 것을 믿습니다. 평화의교회가 모이는 교회라면, 저 자신은 흩어진 교회임을 깨닫습니다. 모이는 교회를 사모하고, 흩어진 교회로서의 사명을 다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윤제니)…

김정은 체제 북한의 변화를 어떻게 볼 것 인가?: 광명성 3호 발사와 리영호 숙청을 중심으로

(2013년 회지 “평화의울림“에 개제된 글입니다)

안태형김정은 체제하의 북한이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혹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가에 대한 논의가 매우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작년 12월 17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급서로 인해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가 새로운 지도자로 등장했을 당시만 하더라도 김정은 체제가 오래 가지 못할 것이라거나 북한사회가 리더십 교체로 인해 급속히 붕괴될 것이라는 예측이 많았으나 북한의 리더십 교체가 예상과 달리 매우 유연하고 효과적으로 진행되면서 김정은 체제가 빠르게 안정되자 이제는 논의가 김정은 체제하 북한의 변화에 집중되고 있는 것이다.

김정은 제1비서의 새로운 통치스타일 또한 북한변화에 대한 관심 집중에 크게 작용했다. 김정은이 사회주의 (혹은 전체주의) 사회에서는 매우 드물게 (파격적으로) 중요 국가행사에서 부인인 리설주와 동행하는 모습이 북한매체에 자주 등장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미키 마우스로 상징되는 서양 문화도 별다른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모습도 자주 보여주고 있다. 김정은 제1비서가 북한의 지도자가 된 지 아직 1년도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러한 단편적인 변화로 북한사회의 변화를 이야기하는 것이 너무 이른 감이 없지 않지만 이런 한계를 염두에 두면서 이 글은 지난 8개월 동안 북한에서 일어났던 사건 중에서 가장 상징적인 두 가지 사건 (광명성 3호와 리영호 숙청)을 중심으로 북한의 변화를 평가하고 앞으로의 변화가능성에 대해 조심스럽게 전망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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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김정은 체제하 북한의 대외정책 변화를 북미관계를 중심으로 살펴보자. 김정은체제하의 북미관계는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대화와 타협국면으로 전환되었다. 올해 2월 북한은 중국 베이징에서 미국과 제3차 고위급 회담을 가진 뒤 2월 29일 회담결과를 합의문 형태로 발표했다. 북한은 우라늄농축프로그램을 중단하고 핵과 미사일 실험발사를 유예하는 등 비핵화 사전조치를 취하고 그 대가로 미국으로부터 24만 톤의 영양(식량)지원을 받기로 합의했다. 이 합의는 미국에서 오바마 행정부가 등장한 이래 북미 사이에 최초의 의미 있는 합의였다. 그러나 이러한 북미간의 화해 분위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북한이 미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유엔안보리결의안 1874호를 위반하면서까지 4월 13일 ‘광명성 3호’를 발사했기 때문이다. 발사 직전 미국의 특사가 극비리에 평양을 방문하기도 했으나 결국 북한의 발사를 막지 못했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광명성 3호’ 발사는 북한의 정책 실패라고 생각한다. ‘광명성 3호’ 발사로 인해 북한은 많은 것을 잃었으며, 그 중에서도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위한 좋은 기회를 저버렸다. ‘광명성 3호’ 발사의 배경과 의도에 대해 다양한 견해가 있지만 특히 다음과 같은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째, ‘광명성 3호’ 발사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유훈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생전에 ‘강성대국’ 진입을 위한 축포로 이 발사를 기획했기 때문에 김정은 제1비서가 이를 취소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둘째, 군부의 지지 확보라는 측면에서 볼 때도 김정은이 ‘광명성 3호’발사를 취소하지 못했을 것이다. 더 나아가 김정은은 외부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는 확고한 리더십을 군부에게 보여주고자 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미국과 2•29 합의를 이루어 놓은 상태에서 이 합의를 무효화시키는 데 결정적 계기를 제공할 ‘광명성 3호’를 발사했다는 것은 북한 외교/국방정책 결정과정에 상당한 마찰과 혼선이 존재했음을 보여주고 또한 이 과정에서 김정은이 이를 효과적으로 통제해내지 못했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리운 편지

(2013년 회지 “평화의울림“에 개제된 글입니다)

김인숙요즈음에는 너 나 없이 편지를 잘 쓰지 않는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화로 문안도 하고 또 필요한 전달사항을 전자메일로 보내던가 또는 휴대전화를 통해서 문자를 보내서 즉시즉시 필요한 일들을 해결한다. 편지지 위에 마음을 가다듬고 쓰는 일은 이 바쁜 세상에 번거로워서 이제는 잊혀져 가는 일에 하나로 꼽게 될 것 같다.

전자메일로는 더 많은 사람들과 더 자주 이야기하고 수 없이 문답을 주고받을 수 있으니 참으로 편리하고 좋은 세상 같다. 그뿐만이 아니라 Facebook에 들으면 많은 사람들과 정보를 교환하고 또 지금 있었던 일과 사진을 아는 이들에게 곧 보내어 알게 할 수도 있다. 그런대도 누가 그 만의 고운 필체로 정성스럽고 따듯하게 쓴 편지를 받게 되는 날은 온 종일 마음이 기쁘고 설렌다. 몇 해 전 가을에 아버지의 유품으로 한 상자의 오래된 편지를 받았다. 사십여 년 전 우리가 미국으로 이민을 왔을 때, 도착한 다음 날부터 내가 아버지께 보낸 편지를 모두 보관하여 두셔서 동생이 보낸 것이다.

나도 아버지를 닮아서인지 내 파일 상자 안에는 “사랑하고 사랑하고 또 사랑하는 딸 인숙에게”로 시작되는 아버지의 낯익은 편지들과 어머니의 궁체로 쓰신 편지와 여러 해를 New York에 있으면서 보내준 내 딸 진영의 유려한 영문편지들, 그리고 멀리 있는 친구들에게서 온 여러 가지 사연들의 편지가 들어 있다.

은퇴를 하고 나서는 아무래도 시간이 많아져서 손자 손녀 아이들에게 편지를 쓰게 하여서 원본과 함께 한글로 바꾸어 써서 아버지께 보내 드렸다. 아버지는 평생에 아는 이들에게서 받으신 것들과 본인이 당신의 스승에게 보낸 편지를 엮어서 “남기고 싶은 사연들”이란 책을 내셨다.

몇 해 전 7월 아주 오래 알고 지내는 친구 내외와 시애틀에 사는 친구 크리스틴의 초청을 받아서 오랜만에 참으로 즐거운 시간을 함께 보냈다. 크리스틴의 아들은 엄마의 옛 친구들 항공표를 사 보내 주었고 버클리에 사는 딸 헬렌은 우리들의 즐거운 여행을 위해서 시애틀 앞 바다에 있는 아름다운 섬에서 우리가 좋은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모텔을 예약해 주었다. 아주 오랜만에 배가 아프도록 웃으며 솜씨 좋은 친구가 만들어 주는 맛있는 음식을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

로스앤젤레스로 돌아와서 이 사랑스러운 아이들에게 참으로 고마웠다는 편지를 썼다. 쉬운 영문으로 너의 엄마와 정말 좋은 시간을 가졌었다고 정성들여 써서 하나는 홍콩에 사는 제리 내외에게, 다른 하나는 헬렌과 그의 남편 루커스에게 보냈다. 며칠 지나서 시애틀 친구 크리스틴에게서 아이들이 내 편지를 정말 반갑게 읽었다고 전화가 왔다.

우리 교회의 길동무 모임은 이 달부터 “로마서” 공부를 시작했다. 사도 바울이 두기고를 시켜서 필기 한 이 편지를 겐그레아교회의 뵈뵈라는 여교우가 지참하고 로마의 교우들에게 가지고 간 것이다. 그녀가 소중하게 로마교회로 가지고 간 편지를 2000년이란 세월이 지난 후 우리가 공부하고 있다.

(김인숙)…

영화 ‘밍크코트’를 보고

(2013년 회지 “평화의울림“에 개제된 글입니다)

고선화고선화

‘밍크코트’ 이 영화는 ‘연명치료중단’이라는 무거운 현실적인 문제에 직면하면서 기독교 가족 내에서의 질투, 시기, 무관심 그리고 갈등과 그 해결책으로 제시되는 이해 소통, 사랑, 그리고 화해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좀더 시야를 넓혀서 보자면 가족관계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인간관계에서 발견되고 있는 문제들을 보게 한다.

현실의 어려운 문제와 직면했을 때 그리고 감추고 싶었던 사실이 드러났을 때 우리는 수치심, 당혹감과 분노 등을 느낄 수 있다. 결국 진면모가 드러났을 때, 그 무게를 잘 감당하고 밝혀진 비밀의 무거운 진실 앞에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기에 무너질 수 밖에 없고, 분노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밍크코트’는 탐욕, 부와 부정적인 허영의 상징적인 의미이다.

영화를 보면서 나 역시 이 상징적인 밍크코트를 입고 끊임없이 현실을 외면하고, 사실을 왜곡시키면서 살고자 하는 자신을 바라보게 한다. 현실을 극복하려는 의지보다는 내 마음 속에 있는 미움, 질투, 의심, 상처, 내가 저지른 일 등의 현실을 감추면서 살기 위하여 나에게도 밍크코트가 그리고 신앙이 필요한 것은 아닌지 반추해 볼 수 있는 영화이다. 영화의 스토리만 따라가다 보면 그저 그렇다고 볼 수도 있지만 영화 속의 주인공들의 감정에 이입되어 가다 보면 마치 어떤 경우는 나의 감정을 대신 토해내는 듯하기도 하다. 그래서 이 영화의 시작은 내내 무거움으로 전율하게 한다. 나의 문제는 무엇인가? 나에게 있어서 가족은 어떤 존재인가? 나의 신앙은 어디를 향해서 가고 있는가?

물론 영화가 끝까지 무겁지만은 않다. 따뜻함이 있는 영화이다.

극중에서 밍크코트는 가난한 현순, 넉넉하게 사는 언니 명순, 그리고 남동생의 처 경숙의 경제적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 주는 소품이지만, 현순의 어머니는 부자 딸이 사준 밍크코트를 우유 배달을 하며 힘들게 살아가는 가난한 딸 현순에게 몰래 벗어 준다. 현순은 자신의 딸 수진이 돈이 필요하다고 하자 그 밍크코트를 팔아 돈을 마련해 준다. 어머니의 밍크코트는 잠시나마 가난한 딸에게 따뜻함을 전해 주고 또 그 딸의 딸에게 필요한 양식이 된다. 이처럼 밍크코트는 모녀 삼대를 이어 주는 따뜻한 사랑이 된다.

어머니의 연명치료중단이라는 문제에 부딪혔을 때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도 알 수 없는 이 가족의 반목과 질시와 갈등이 극에 달한다. 허울만 좋게 밍크코트를 걸쳤을 뿐 그것으로 가려진 현실은 신앙으로도 극복 할 수 없는 갈등의 고조를 이룬다. 그러나 갈등이 고조를 이루고 현실을 직면하게 되었을 때 이 가족은 입고 있던 밍크코트를 벗고 자신들이 숨겨 온 것들을 고백하게 된다.

어머니의 연명치료중단을 결정하는 문제를 놓고 동의와 반대의 입장의 씬을 보면 우리는 지극히 자기가 처한 현실을 반영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경제적인 이유로 어머니의 존엄사를 원했던 가족에게 분노하고 막말로 저주까지 했던 현순도 결국 자신의 딸의 생명을 위해서는 어머니의 존엄사를 원하게 된다.. 이에 명순이 분노하고, 경숙 역시 자신의 친정 어머니였다면 연명치료 중단을 원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처럼 인간은 철저히 자기 중심적이라는 것을 이 영화는 부인하지 않게 한다.

가족이라는 것이 남들에게 자랑하고 싶다가도 한편으로는 한없이 무거운 삶의 업보이며 때로는 그 어떤 풍파도 막아 줄 따듯한 울타리지만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 날 수 없는 핏줄로 견고하게 얽힌 덤블가시처럼 잔인한 감옥일 수 있음은 역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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