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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Archives: 김용호

작은 것이 아름다우려면

190526 작은 것이 아름다우려면 Sermon

본문: 마가복음 11:12-14

이튿날 그들이 베다니를 떠나갈 때에, 예수께서는 시장하셨다. 멀리서 잎이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시 그 나무에 열매가 있을까 하여 가까이 가서 보셨는데, 잎사귀 밖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무화과의 때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그 나무에게 “이제부터 영원히, 네게서 열매를 따먹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하고 말씀하셨다. 제자들이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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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일본에서 미군들의 탈영을 조직적으로 지원하는 자텍(JATEC, 반전 탈영 미군 원조 일본기술위원회)이라는 단체가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그들은 한국계 미국인 김진수를 비롯한 6명의 탈영 미군을 탈출시킨 것을 시작으로 이어 3명, 4명을 스웨덴으로 보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본래 베트남전 참전 미군의 탈영을 돕던 몇몇 사람이 주축이 되어서 조직된 단체입니다.

쉽지 않은 일입니다. 미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는 데 있어서는 한국못지 않은 일본 입장에서는 이런 시민단체가 반가울리 없습니다. 특히 ‘탈영’이라는 불법적 행위를 돕는 것은 법의 논리와도 맞지 않기 때문에 진보적인 사람들에게도 환영받기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한국에서 자기 신념에 따라 군대를 거부하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은 진보 진영에서도 많은 것을 보면 자텍같은 운동이 얼마나 위험하고 외로운 운동인가를 짐작할 수 이 있습니다.

1923년 간토(관동)대지진 때 일본인들은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을 탄다는 등의 유언비어를 퍼뜨려 자경단을 조직해 조선인을 학살했습니다. 20가구 정도가 살던 마루야마에는 2명의 조선인이 살고 있었습니다. 자경단이 한 밤중에 조선인을 내어 놓으라며 들이닥치자 마을 사람들이 나서서 조선인에게는 손가락 하나 못건드린다며 총과 칼로 무장한 자경단 맞서 결국은 조선인 2명을 지켜 내었습니다.

나는 일본의 국가적 지향성은 싫어하지만, 이에 끌려다니지 않는 일본 시민들의 개인적 신념은 존경할 부분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신앙도 이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전체의 강요로부터 자신의 고유성을 지키는 것’ 이것은 좁은 길을 걸어가는 신앙인의 태도입니다. 특히 한국처럼 집단적 사고가 강한 사회에서 우리가 신앙의 길을 지키는 것은 더욱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한 걸음 더

190210 한 걸음 더 Sermon

로마서 9: 20 – 33
오, 사람아, 그대가 무엇이기에 하나님께 감히 말대답을 합니까? 만들어진 것이 만드신 분에게 “어찌하여 나를 이렇게 만들었습니까?” 하고 말할 수 있습니까?

토기장이에게, 흙 한 덩이를 둘로 나누어서, 하나는 귀한 데 쓸 그릇을 만들고, 하나는 천한 데 쓸 그릇을 만들 권리가 없겠습니까?
하나님께서 하신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진노하심을 보이시고 권능을 알리시기를 원하시면서도, 멸망받게 되어 있는 진노의 대상들에 대하여 꾸준히 참으시면서 너그럽게 대해 주시고,
영광을 받도록 예비하신 자비의 대상들에 대하여 자기의 풍성하신 영광을 알리시고자 하셨더라도, 어떻다는 말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부르시되, 유대 사람 가운데서만이 아니라, 이방 사람 가운데서도 부르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호세아의 글 속에서 하신 말씀과 같습니다. “나는, 내 백성이 아닌 사람을 ‘내 백성’이라고 하겠다. 내가 사랑하지 않던 백성을 ‘사랑하는 백성’이라고 하겠다.”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다’ 하고 말씀하신 그 곳에서, 그들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자녀라고 일컬음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또 이사야는 이스라엘을 두고 이렇게 외쳤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바다의 모래와 같이 많을지라도, 남은 사람만이 구원을 얻을 것이다.
주님께서는 그 말씀하신 것을 온전히, 그리고 조속히 온 땅에서 이루실 것이다.”
그것은 또한, 이사야가 미리 말한 바 “만군의 주님께서 우리에게 씨를 남겨 주지 않으셨더라면, 우리는 소돔과 같이 되고, 고모라와 같이 되었을 것이다” 한 것과 같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무엇이라고 말해야 하겠습니까? 의를 추구하지 않은 이방 사람들이 의를 얻었습니다. 그것은 믿음에서 난 의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의의 율법을 추구하였지만, 그 율법에 이르지 못하였습니다.
어찌하여 그렇게 되었습니까? 그들은 믿음에 근거하여 의에 이르려고 한 것이 아니라, 행위에 근거하여 의에 이르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걸림돌에 걸려 넘어진 것입니다.
그것은 성경에 기록한 바와 같습니다. “보아라, 내가 시온에,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를 둔다. 그러나 그를 믿는 사람은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역설의 뱃속에서

180819 역설의 뱃속에서 Sermon

요한복음 12:1-8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가셨다. 그 곳은 예수께서 죽은 사람 가운데에 살리신 나사로가 사는 곳이다.
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를 베풀었는데, 마르다는 시중을 들고 있었고, 나사로는 식탁에서 예수와 함께 음식을 먹고 있는 사람 가운데 끼여 있었다.
그 때에 마리아가 매우 값진 순 나드 향유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 발을 닦았다. 온 집 안에 향유 냄새가 가득 찼다.
예수의 제자 가운데 하나이며 장차 예수를 넘겨줄 가룟 유다가 말하였다.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지 않고, 왜 이렇게 낭비하는가?”

(그가 이렇게 말한 것은, 가난한 사람을 생각해서가 아니다. 그는 도둑이어서 돈자루를 맡아 가지고 있으면서, 거기에 든 것을 훔쳐내곤 하였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그대로 두어라. 그는 나의 장사 날에 쓰려고 간직한 것을 쓴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지만, 나는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는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