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en extra topbar

Tag Archives: 채희탁

무제

(2015년 평화의교회 40주년 기념회지에 개제된 교인 기고문입니다)

채희탁 교우

촬스 다윈의 진화론은 약육강식, 자연도태, 적자생존의 이론으로 이를 거처 오늘날의 인간으로 진화했다는 이론입니다. 15세기 당시에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신의 창조론이 대세였는데 독실하고 권위 있는 목사의 집안에서 태어난 다윈이 진화론을 주장하자 그 충격이 대단하였습니다.

갈릴레오의 지동설, 뉴톤의 만류 인력은 진화론 충격을 확산, 가중시켰으며, 또 한편으로는 인간의 시야를 태양계를 너머 먼 우주로 확산 시켰습니다. 미신과 종교 및 정치 지도자들의 무지와 기득권 유지를 위한 노력은 위협을 받았으며 마녀사냥은 더 이상 일어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어 문예혁명과 르네상스로 이어지고 뒤따른 산업혁명은 대세를 바꾸어 기계문명의 시작인 증기기관차가 철로를 따라 괭음을 울리며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E=MC2)은 핵분열이 일으키는 엄청난 파괴력에 전 인류가 경악했습니다. 핵 패기물과 그 처리가 어렵고 환경을 오랫동안 파괴하고 오염시킵니다.

한편으로는 아인슈타인의 빛이 입자인 동시에 파동이라는 이론은 인간의 시야를 태양계를 훌쩍 뛰어 넘어 은하계 우주를 아우르는 병행우주론과 빅뱅이론을 밝히는 단계까지 왔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핵 융을 이용한 수소 폭탄도 그 파괴력이 엄청 나지만 핵융합을 잘 관리하면 깨끗하고 안전한 에너지를 다량 얻을 수 있는 실험이 진행되고 있는데 이 핵융합이 경제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지는 미지수로 남아있다. 또한 양지역학은 우주에 거시적 접근에 더하여 원자, 분자, 단위의 미립자 세계에 대한 접근은 인간신체 내 분자 세포의 세계를 밝혀 신경세포 뉴론의 작동원리와 인간의 DNA를 밝히기에 이르렀습니다.

두뇌의 작동원리는 인간의 인식능력, 감성 그리고 자신의 미래를 생각하는 것이 가능함을 보여 줌으로서 좌절과 고통을 극복하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고 앞으로 전진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이리하여 인간은 명실 공히 만물의 영장의 지위에 올라섰습니다. 신은 더 이상 인간을 지배하는 절대자가 아닙니다. 단테의 신곡에 나타난 연옥, 지옥은 더 이상 인간을 옥죄지 못합니다.

앞으로 전기의 시대에서 자기력의 시대로 대세가 넘어가면 상온에서도 작동하는 고온 초 전도체가 활용되고 상용화 되면 땅 위에 뜬 채 연로도 없이 수백 KM를 달리는 자동차를 볼 수 있으며 멀지 않은 훗날에 상용화 될 것입니다. 여기서 물질, 반물질의 짝인 전자와 양전자는 전하의 부호가 반대다 예를 들어 전자는 음전하를 갖고 있는 반면 전자의 반물질인 양전자는 양전하를 띠고 있습니다. 반물질의 가장 큰 특징은 물질과 접촉하자 마자 사라지면서 에너지를 방출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티스푼 정도의 분량이 물질과 만나 사라지면서 방출하는 에너지는 뉴욕시를 날려 버리고도 남는데, 이는 E=MC2의 100% 효율을 말하고 있습니다.

인공지능의 개발은 지금은 초기단계이지만 그 영역을 계속 확장하고 있으며 그 발전이 크게 이루어 졌을 때 도덕적 윤리적 문제와 정치 경제적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서 갑론을박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Homo Sapience가 인간의 조상으로 출연한 이래 가장 극심하고 빠른 변화를 겪고 있습니다. 이때 우리는 현명하게 상황판단을 하여 우리의 행동을 결정해야 합니다. 어리석은 판단에 근거한 행동은 지옥의 나락으로 인간을 떨어뜨릴 것입니다.

우리는 전지전능한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그를 대신해 결정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나의 신앙 고백 (채희탁)

(2013년 회지 “평화의울림“에 개제된 글입니다)

CoP 2013_Page_007_Image_0001나는 1939년 1월 7일 경상북도 문경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곳에도 작은 예배당이 있었다. 그 해에 서울로 이사를 왔으며 신암교회에서 유아 세례를 받았다. 1950년 6.25가 터졌는데 3개월간 북한 점령 하에 서울에서 살았다. 중공군의 개입으로 다시 고향 문경-부산으로 피난 내려왔다. 휴
전과 더불어 서울로 와서 중학 3학년에 다녔다. 그 이후 고등학교, 대학교를 다니면서 안병무, 이영환, 함석헌 대 선배들을 뵐 기회를 가졌다.

군사 독재 치하에서는 시인 고은, 한빛교회 이해동 목사, 문익환 목사 등과 같이 어울리다 내 개인 기업체가 사찰을 받는 어려움도 겪었다. 개인 사업체의 어려움은 관료 정치, 부정부패와 제대로 타협치 못하는 내 성격으로 더욱 악화되었다. 1991년 마지막 피난처가 된 미국으로 이민을 결행했다. 이민 수속에서 많은 어려움이 뒤따랐는데 부적격으로 판정날 순간에 기적 같이 VISA가 나왔다. 대신 내 이름의 성 표시가 Chae에서 Choe로 바뀌었다. 참으로 기적과 같은 일이었다.

North Carolina에서 20년(그곳의 Bethel교회 김정일 목사는 잊을 수 없는 분이다)을 살았고, LA로 옮겨왔다. 그리고 평화의교회에서 15개월 째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장장 73년이라는 세월 나는 교회를 떠난 적이 없다. 나는 이력서에 종교는 항상 기독교라고 적었다.

그런데 나는 정말 기독교인인가? 구원을 받았는가? 이런 생각으로 나를 돌아보게 된 것은 박신화 목사가 리더가 되어 보그의 <내가 만난 하나님>이란 책을 중심으로 그룹 토론을 시작하고부터였다.

나는 여태까지 구원, 천당/지옥 등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저 교회에 출석하며 설교를 듣고 때로는 감동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60년 전 어머니께서 돌아가실 때 나에게 당부하신 “착하게 살아라, 또 성경을 읽어라”는 유언을 지키기 위하여 성서 신•구약을 처음부터 끝까지 한 자 한 자 한 구절 한 구절 써서 장장 20여 권의 노트를 채웠다. 그 뜻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서 단지 내가 죽기 전에 어머니의 유언을 들어주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나는 하나님을 만났는가?’라는 질문에 노출되어 있는 나를 발견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독생자로서 나를 구원하기 위하여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는가? 역사 속의 예수는 나와 무슨 관계가 있는가?

나는 73년 교회 생활에도 불구하고 이제 와서 믿음이 없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믿음보다 더 중한 것은 사랑이라”하신 말씀에도 불구하고 저에게는 지금 믿음이 필요함을 안다.

그래서 이제는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믿음을 주소서. 그 믿음은 산을 옮겨 바다를 메울 수 있다 했습니다. 나도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게 하소서. 그리하여 나에게 평화를 주소서. 그리하면 나의 마음의 하나님 사랑이 더욱 영역을 확고하게 넓혀 나의 마음속에 자리할 것을 믿습니다. 아멘.

(채희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