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들어진 현실, 그리고 꿈

(2013년 회지 “평화의울림“에 개제된 글입니다)

채승학채승학

메이트릭스( Matrix, 1999), 인셉션 (Inception, 2010), 셔터 아일랜드 (Shutter Island, 2010)

위의 제목은 영화 제목들입니다. 살아오면서 많은 영화를 봐왔는데 왜 여기서 이 세 영화에 대해 쓰려는 것일까? 이 세 영화는 이번 우리 교회지와 무슨 연관이 있을까? 종교영화? 아닙니다. 한인간이 역경을 딛고 승리한다는 헐리우드식 감동 드라마? 아닙니다. 굳이 이 세 영화를 연관 짖자면 내가 재미있게 본 영화들 중 하나? 그 정도 일 것입니다. 그래도 굳이 연관을 지어야 하니 일단 세 영화를 간단히 소개하며 제이야기를 시작해보겠습니다.

메이트릭스(Matrix,1999), 내 나이 또래나 30대 중후반들 사이에선 아주 유명한 공상과학 영화다. 간단하게 내용을 간추리면 우리가 사는 세상이 기계가 만든 가상공간인 메이트릭스이며 현실은 기계와 컴퓨터들의 지배하에 인간이 그들의 배터리로 쓰여진다는 지극히 암울한 미래를 배경으로 소수의 인간이 로봇과 기계들의 지배에 저항해 현실과 메이트릭스를 넘나들며 벌이는 액션 공상과학 영화다. 이 영화에서 가장 참신한 것이 우리가 사는 현실을 가상 공간으로 설정했다는 점이다. 컴퓨터와 인터넷상에서 가상현실, 가상커뮤니티, 아바타라는 생소한 단어들을 접해오면서 오로지 가상은 컴퓨터 속에만 있는줄 알고있던 시절, 내 주위 상황과 환경 그리고 처한 현실에대해 어! 그럴수 있겠구나하고 생각케한 영화였다.

COP_Page_058_Image_0001인셉션(Inception, 2010)은 한 사설 집단이 인간의 꿈속에 어떠한 장치로 들어가 그사람의 잠제의식속에 그집단들의 메세지를 심어 한사람을 무의식적으로 조종한다는 내용의 영화다. 요즘 소위 대세 감독으로, 베트멘 시리즈로 유명한 크리스토퍼 놀란(Christopher Nolan)감독의 2010년 작품이다. 이영화에서도 꿈과 현실에대한 우리들의 생각을 비틀어 버린다. 우리들이 인지하는 꿈과 현실은 어떤 상황에서 다른가라는 컨셉에 착안하여 인간의 인식구조의 빈약함에 근거하여 상대방을 조정할수있다고 말한다. 주인공은 부인과함께 이 장치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부인을 자살로 잃게됀다. 부인은 꿈의 연구에 너무 깊이 빠진나머지 꿈과현실을 혼동하게돼고 지금의 꿈에서 깨어나 둘만의 완벽한 세계를 만들자고 호소한다. 주인공은 자식들과 아내가있는 바로 지금이 완변한 세상니라 말한다. 이러한 입장차로인하여 둘은 갈라서게 돼는데 주인공이 다른이의 꿈속으로 진입할때마다 반대편에 서서 자기를 방해하는 요소가 돼어버린다. 주인공의 대사중에 아주 흥미있는 대사가있다. “가장 무섭고 치명적인 회충(parasite)은 아이디어(Idea)다. 한번 인간의 뇌속에 자리잡게돼면 떨쳐버리기가 무척 어렵고 심지어는 자신 또는 상대를 죽이기까지 한다.”라는 것이다.

COP_Page_058_Image_0002셔터 아일랜드(Shutter Island, 2010), 이 영화는 거장 마틴 스콜세시 감독이 만든만큼 무겁기도하지만 영화에서 한시라도 눈을땔수 없을만큼 흥미진진하고 스릴있게 만들었다. 내용은 이러하다. 때는 1950년대, 셔터 아일랜드라는 정신병 죄수들을 수용하는 한섬에 두명의 국가에서보낸 수사관 즉 마샬이 자욱한 안개를 뚫고 들어간다. 이섬은 탈출이 불가능한 곳인데도 실종됀 한여죄수를 조사하기위해 두 국가수사관이 도착한 것이다. 주인공 수사관(네오나드 드카프리오)은 조사과정에서 여러가지 의문과 희괴한 일들을 경험한다. 주인공은 우여곡절 끝에 동굴에 숨어있는 여죄수를 만나고 그죄수가하는 진술에 주인공은 충격과 공포감마저 느끼게됀다. 그 여죄수의 말인즋은 이섬이 형무소를 가장해 인간의 뇌를 실험하는 생체실험실이라고 증언한다. 또한 본인이 이섬의 정신병 죄수들을 치료하러들어온 의사였느나 진실을 폭로하려하니 본인을 이렇게 만들었다는것이다. 그리고 여죄수는 그들이주는 어떤것도 먹지말라고 경고한다. 그러나 때는 이미늦었다. 주인공은 벌써 환상을 여러번 경험하고있었다.…

투병기

채혜자(2013년 회지 “평화의울림“에 개제된 글입니다)

채혜자

2011년 6월 26일 NORTH CAROLINA 에서 차로 3일을 달려 L A 에 도착했다. 6월 마지막 주일에 이용재 장로님과 이혜정 권사님을 만나기 위해 아들을 따라 평화의 교회에 참석하여 예배를 드렸다. 시누이 부부는 아들 집 SEATLLE에 다니러 갔다고 하여 만나지 못하고 왔기에 다시 교회를 방문 할 생각이었다. 7월 첫 주일에 가서 시누이 부부를 {이용재 장로님 이혜정 권사님}을 반갑게 만났다. 헤어지면서 시누이가 다음주 또 봐 하는 말에 마음에 갈등이 일어났다. L.A.에 오기 전에 딸이 다니는 교회로 가기 약속 했기 때문에 고민이 되었다. 다행히 남편은 목사님 설교를 마음에 들어 했고 설교가 마음에 들지 않았으면 마음을 돌렸을 남편이다.

7월 두째 주일에 참석한 우리 부부는 문명미 권사님이 인도해 주시는 방으로 가서 길동무 분들과 인사를 나누고 신영균 장로님 회의를 진행 하셨고 9월에 CRUISE 가는 계획이 있다고 하기에 우리는 승락했고 2011년 9월 24일에 날짜와 모든 것을 맞첬다. 이사를 왔기에 하는 것이 많았다 내 가슴에 있는 몽얼이가 시급하여 의사를 만나 메모그램을 9월13일에 촬영을 했다.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동안 간호사의 표정이 어두워 보여 암이냐고 물었더니 그런 것 같다고 하길래 듣는 순간 덤덤한 마음이었다. 밖에서 기다리는 남편에게 전화하여 암이라고하니 놀라는 목소리였다. 암 진단 받으면 하늘이 보이지 않는다고들 한다 나는 이겨낼 수 있는 확고한 믿음이 생겼다. 힘들때 위험에 처 할때마다 함께 해주쎴던 주님이 함께하시기에 나는 주님이 사랑해 주시는 딸입니다 라고 고백할 수 있어 두렵지않다. 울트라사운드 .조직검사가 끝나고 수술 날짜를 잡아야했다. 의사한테 CRUISE여행 갔다와서 수술하겠다고 하니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사람이기에 일주일 앞두고 고민 하다가 갔다 와서 할 것을 결정했다. 2011년 9월 24일에 목사님이 우리를 LONG BEACH에 데려다 주기로 했기에 목사님 차에서 말씀 드릴 수 있어 감사했다. “목사님 저 여행 갔다 와서 수술해요. 기도 해 주세요”하니 목사님이 무슨 수술 입니까? 하시며 물으셨다. 유방암 3기래요. 차안은 침묵이 흘렸고 위로의 말씀과 기도해 주시겠다고 말씀하섰다.

약속한 장소에 오니 길 동무 분들이 와 계섰고 여행하는 동안에는 아무생각 하지 않고3일 동안이라도 잊어 버리고 싶었다. 3일 여행은 나에게 많은 활력소가 되었고 정말 즐거웠으며 신영균 장로님과 문영조 장로님의 유머는 우리를 즐겁게 하셨고 한분 한분들에게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고 정도 많으시고 평화의 교회를 무척 사랑 하시는 것을 느꼈고. 우리 부부를 평화의 교회로 인도하심을 감사드렸다. 여행 갔다 와서 2011년 10월12일 8시에 수술 날짜를 받아 난생 처음으로 수술실로 실려 들어갔다. 목사님이 일찍 오셔 기도해 주셨고 교우님들의 기도와 사랑 있었기에 나의 전부를 주님께 맡기며 마음 편하게 두려움없이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회복실에서 눈을 떴을 때 가슴 한쪽이 없어진 것이다. 이젠 할머닌데 어떠랴 했던 마음이 사라지고 여자라는 자세로 돌아와 한 부분이 없어 진 것이 아까웠고 눈물이 나도 모르게 흘리면서 가슴이 많이 아팠다. 수술 통증이 가시기도 전에 한 달이 되어 항암주사를 3주 마다 6 시간 동안 맞았다.…

황제의 강을 건너는 사람들

(2013년 회지 “평화의울림“에 개제된 글입니다)

이만섭이만섭

세상이 만들어지기 전 우주는 혼돈의 상태였다. 혼돈, 카오스, 암흑, 그것은 무질서의 상태가 아니다. 오히려 혼돈은 잠재질서라고 표현해야 맞다. 그것은 잠재성이다. 아직 ‘무엇’이라고 정의하여 부를 수는 없지만, 무엇으로도 될 수 있는 무한한 잠재성이다. 이런 의미에서 혼돈은 현대 천체물리학의 빅뱅이론과도 맞닿아 있다. 아직 분화되기 이전의 우주는 체적은 제로에 가까우면서도 질량은 무한대인 암흑의 상태였다. 그런 암흑의 상태가 현재와 같은 우주의 모습으로 진화되기 까지는 물론 137억년이라는 세월이 흐르기는 했지만, 어쨌든 그 시발점은 암흑상태였다.

신의 입자라고 불리는 ‘힉스’라는 것이 있다. 복잡한 천체물리학적 설명을 잘 해낼 수는 없지만,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빅뱅 당시 암흑물질을 변화시켜 현재의 우주로 진화할 수 있게 한 입자라는 것이다. 힉스는 질량이 없던 다른 입자에 질량을 주고는 자신은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고 한다. 천체물리학자들은 힉스 입자가 발견되면 그 동안 밝혀지지 않고 있던 우주 탄생의 비밀이 어느 정도는 해소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인류는 오래 동안 우주가 어떻게 태어났는 지 설명하려고 많은 노력을 기우려 왔다. 여기에 인류가 쌓아온 온갖 지식이 동원됐으며, 과학 그 중에서도 물리학이 그 핵심에 있다.

그런데 힉스가 ‘발견’되면 정말로 우주 탄생의 비밀이 밝혀지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는 것이 과학자들의 설명이다. 힉스가 발견되면 현대 물리학의 기초가 되는 ‘표준이론’은 완성되지만, 표준이론이 모든 물리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궁극의 이론은 아니기 때문에, 힉스는 또 다른 물리이론을 요청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주 탄생의 비밀은 밝혀지지 않은 채 여전히 신비로 남을 것이다. 다만 좀 더 핵심에 가까워질 뿐이다.

아주 오래 전, 우리의 선조들도 우주의 탄생에 대하여 이와 비슷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다음의 이야기는 중국의 창세신화를 재구성한 것이다. 여러 곳에 전해져 내려오는 것을 나름대로 재구성하였다. 물론 창세신화가 중국에서만 전해 내려오는 것은 아니다. 한국에도 있고, 일본에도 있다. 그리고 이집트나 바벨론 등 고대 근동 지역의 창세신화는 많이 알려져 있다. 말할 것도 없이 히브리 성경에 등장하는 창조 이야기도 여기에 속한다. 이들 신화의 근본적인 공통점은 질서의 출발점을 카오스에 두고 있다는 것이다.

옛날 옛날 아주 오래된 옛날, 웃기는 녀석이 하나 있었다. 생긴 것도 웃기고, 하는 짓도 웃긴 것이 정말로 웃기는 녀석이다. 그 녀석은 몸은 하나요, 다리는 여섯에, 날개가 넷인데, 머리가 없었다. 전체적으로 불그레하여 얼핏 보면 달걀 같기도 하고, 또 얼핏 보면 새 같기도 하지만, 날개 달린 것을 빼면 새라고 하기에는 좀 뭐하다. 그래도 사람들은 이 녀석을 새라고 불렀다. 머리가 없으니 당연히 눈. 코. 귀. 입이 없어 냄새도 맡지 못하고, 보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듣지도 못하고 말도 못한다. 정말 웃기지 않은가! 더 웃기는 것은 이 녀석이 노래도 잘 하고 춤도 잘 춘다는 것이다. 어떻게? 그건 나도 모르겠다. 여하튼 춤과 노래를 할 줄 아는 것만이 아니라 좋아한다는 것이다. 생각할수록 말이 안되지만 그런 녀석이 있었다. 그의 이름은 ‘황제의 강(帝江)’이라고 하였다.

세월이 흘러 ‘황제의 강’은 어찌어찌 하다 세상의 중앙을 다스리는 임금이 되었다.…

작고, 큰 바람: 열린 마음, 열린 교회로 가득 찬다면…

(2013년 회지 “평화의울림“에 개제된 글입니다)

박신화, 협동목사CoP 2013_Page_018_Image_0001

몇 달 전부터 이 교회의 협동목사직을 맡으면서 장년부(길동무)그룹의 성경공부를 맡게 되었다. 그룹일원이 함께 선택한 교재는 “새로 만난 하느님” (한인철 역 2004, God We never Knew)”의 제목이었다. 이 책은 지난 30년간 오레곤 주립대학교 종교학을 가르쳤던 마르커스 보그(Marcus Borg)교수가 미국 성서학회의 역사적 예수 분과 책임자이며 예수 아카데미(Jesus Academy)의 정회원으로서 하나님 이해에 대한 연구를 통하여 지금까지 몰랐던 하나님을 새로 만남으로써 우리에게도 새로운 하나님을 만나도록 역설하는 내용이다. 이는 많은 현대 미국 기독교인의 신앙의 길의 갈증을 시원하게 풀어줌으로써 신앙의 길을 돕도록 폭넓게 영향을 주었다. 나는 미국교회의 성경공부그룹에서 이 책을 공부하는 기회를 가지면서 나의 갈증을 풀림을 받는 기쁨을 가졌다.

그 점에서 오늘날 바른 신앙의 길을 찾기 위해 갈등하는 한인교인들에게도 읽혔으면 하는 바램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제목 자체가 전통 신앙관을 뒤집어 놓을 수도 있다는 인상을 주기에 일반한인교회에서 가르칠 수 있는 기회를 아예 생각하지 못하였다. 마침내 번역서가 나와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쉽게 권할 수가 있었는데 장년 그룹에서 선뜻 선택하였기에 적이나 놀라면서 한편 너무 반가웠다. 우리 교회의 이 그룹은 가능하다는 자체가 목사로서의 보람을 갖는 뿌듯한 기쁨을 가져다 주었다. 우리의 공부는 보그 교수가 우리가 전통적으로 가졌던 하나님에 대한 이해를 부활 전 이전의 역사적 예수와 부활 이후의 해석된 예수에 관한 차이점을 해설하며 역사적 예수의 참모습과 우리 삶 한가운데 계시는 하나님으로 인도함을 따라갔다.

그리고 우리의 신앙관이 부활 이후에 해석된 예수의 모습으로 각색된 신앙관에 매여 벗어나지 못하고 부활 전 참된 역사적 예수의 삶을 왜곡하고 있다는 것을 보그를 통하여 성찰할 수 있었다. 소위 우리 한국교회가 흔히 주장하는 “초대교회의 신앙으로 돌아가자”라는 표어를 들으며 교회부흥을 이야기 하는 문구에 지나지 않는다고 과히 흥분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보그 교수는 “역사적 예수를 아는 초기신앙으로 돌아가자”라고 점을 역설한다. 2000여년이 지나오며 역사적 예수를 경험하지 않는 부활 이후의 해석에 따라 “저 하늘 위의 하나님, 심판하는 하나님”으로 이해하는 신앙은 우리의 삶이 예수님의 삶을 통하여 계시한 하나님을 “우리 삶 안팎에서 함께 임재하시는 영의 하나님”과 달리 잘 못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여 주었다. 그것은 그가 강력히 역설하는 “범재신론(panentheism)”에 근거한다. 하나님의 초월성만 강조하는 전통적 신관인 “저 바깥에” 계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모든 것(pan)” 안(en”), 하나님(theos)의 의미를 가진 하나님으로서 “바로 여기에” 계신 것 이상임에도 불구하고 “바로 여기에”계신다고 한다. 즉 “모든 것은 하나님 모든 것 이상이지만, 모든 것은 하나님 안에 있다”. 보그는 자신의 신앙여정을 바탕으로 자신의 하나님인식은 지금까지 몰랐던 하나님을 새로 만남으로써 God We Never Knew(우리가 알지 못하였던 하나님)라는 원제목으로 새로 만난 하나님을 이야기 하였다.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을 바르게 알지 못하였고 이제 하나님을 새롭게 만나야 한다는 역설을 함으로서 우리의 신앙생활이 과연 하나님을 바로 알고 살아왔는지에 대하여 깊이 성찰하도록 도와준다. 즉 우리 역시 전통적 기독교에서 배운 과거의 하나님이 아니라 새로 만난 하나님을 만나야 할 것을 종용하며 신앙생활의 초점을 재조준해야 할 것을 우리에게 도전한다.…

동방의 에덴

(2013년 회지 “평화의울림“에 개제된 글입니다)

문영조

문영조춘추전국시대에 있던 노나라와 그 주변 국가들의 타락은 매우 심각했다. 자식이 아비를 사살하고 왕 자리를 거머쥐기는 보통이요, 왕이 자기 친누이를 첩으로 삼는 자가 있는가 하면 초나라의 왕은 며느리로 맞이하는 진나라 공주를 도ㅜㅈ에 가로채어 자기 왕비로 삼는 기막힌 일도 있었다.

2500년 전 공자가 살던 때의 사회상이 그와 같았다. 공자는 이처럼 소름끼치는 사건들을 피하여 좀 더 나은 나라, 좀 더 윤리가 통하는 곳을 찾아 헤매었다. 발이 부르트도록 다니다가 결국 실패하고는 깊이 한숨 지으며 중얼댔다.

“저 구름 너머 동쪽 하늘 밑에 고조선이 있지. 그곳에는 군자들이 도덕 사회를 이루고 산다는데 정말 가보고 싶구나. 평양성을 한 번만이라도 구경할 수 있다면 죽어도 원이 없겠는데.”

자기 철학이 담긴 대학, 논어가 아직 전달된지도 않은 미지의 세계를 그는 그토록 동경했다. 이 이야기는 고서 산해경에 나오는 내용 중 일이다.

고조선 때의 조상들은 과연 군자였는지도 모른다. 무슨 확실한 고증이나 역사적 기록이 있어서 그것을 확신할 수는 없지만 우리 민족의 깇은 심사를 관찰하면 답을 찾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우수한 두뇌, 남다른 인내심, 차마 못하는 박애의 접근 등이 한민족의 본성이다. 두뇌가 뛰어나다는 것, 이미 세계적인 추인을 받고 있는 바다.

인내심은 어떤가? 고난의 역사 속에서 겪어온 고뇌와 빈곤, 극한 상황을 견뎌낸 백성들이다. 과연 한과 뒤섞여 쌓아 온 인내라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차마하지 못하는 어질 인자의 백성이 우리다. 대다수 백성들이 알면서도 참고 또 참는 착한 사람들이었는데 요사이는 많이 변형됐다. 이상한 돌연변이가 인구의 절반에 육박하고 있다. 그렇게도 열악한 환경이었던가? 원래는 거의 다가 멋있는 신사, 성인군자들이었는데, 참으로 원통하다.

해방이 된 지도 70년이 다 되었다. 이제는 우리의 본성인 즉 공자가 그리워하던 동방의 군자들의 나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그러려면 어쩔 수 없이 첫째로 해결할 사안이 있다. 다 알고 있지만 곧 통일 문제다.

이일은 우리 자신의 일이므로 우리 자신의 손으로 이루어야 할 과제이다. 미·중·일·소 4대 강국이 우리처럼 팔을 걷어 붙이고 나설리가 없고 오히려 삼각파도를 일으키고 발걸이를 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왜? 그들은 그들의 이익과 자기 나라의 부강이 먼저이기 때문에 이웃을 위하여 큰 희생을 할 바보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는 종교학자는 우리의 심성을 이렇게 파헤쳤다. 한국 사람들은 심각성이 부족하다. 깊은 사색이 없다. 들이파지 못한다. 철학도 없고 종교도 없다. 그의 분석은 정확하다. 로켓은 3단계의 폭발이 있어야 한다. 대형 교회는 많은데 내용이 없고 참 실천이 부족하다.

독일 교회는 텅 비어 있어도 국민들의 생활 태도는 매우 성경적이다. 종교세도 바치고 처참한 형제들도 큰 돈 들여 구하고 얼키고 설키어 통일도 이루어 서구의 대표 국가를 이루고 있다. 세계 최고의 종교 철악을 사장시키지 아니하고 손수 실행에 옮겨 무서운 축복을 얻어내고 있는 것이다. 척박한 환경은 그 귀한 보편성을 단순세포로 변형시키고 말았다.

영국은 문학, 미국은 자유, 독일은 철학, 중국은 역사, 그리스는 신화, 소련은 발레, 일본은 경제, 한국은 부요.…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을 사랑한 꼬마

(2013년 회지 “평화의울림“에 개제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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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 어릴때, 울다가도 베토벤 운명 교향곡만 틀어주면 금방 뚝 그쳤대이. 그러이 니는 작곡가가 될 운명을 타고난게 분명하다”

대학입시를 위해 작곡공부를 하고있던 나에게 오빠가 한 말이다.

내 기억에도, 유치원도 들어가기전 꼬꼬마 시절 오빠 언니들이 다 학교에 가고 혼자 있을때면 내가 직접 LP판을 올려서 운명 교향곡에 빠져있곤 했었다.

그 곡을 듣고 있으면 어린 가슴에도 알수없는 무엇인가가 와닿는 느낌이 있었다.

얼핏보면 마치 천재 작곡가의 어린시절을 보는듯 하다. 하지만…

그 꼬마는 지금 작곡’가’가 아닌 그냥 작곡’과’를 나온 평범한 아줌마로 살고있다.

 

5남매중 막내로 태어나 온 가족들의 사랑과 관심을 받고 자랐지만 부모님의 자식에 대한 욕심은 다섯째까지 다다르기에는 좀 역부족이었나 보다.

오빠 언니들에게는 상주 가정교사도 붙이고 악기도 가르치고 학교서도 약간의 치맛바람을 날리시던 엄마가 내 담임 선생님은 얼굴조차도 모르셨다.

그러니, 내가 욕심을 내지 않는 한 부모님이 먼저 과외활동을 시키지는 않았다.

언니의 피아노 연주 소리를 그저 일상으로만 듣고 자라던 어느날, 친구를 따라 피아노 학원엘 갔다가 거기서 여러 친구들이 피아노 치는 모습을 보고 나도 배우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그날 엄마한테 통보를 하고 바로 다음날부터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너무 재미 있었다. 내 손가락이 그냥 뚱땅거리는 소음이 아닌 제대로 된 소리를 만들어 내는것도 너무 신기했다.

선생님이 놀라실 정도로 진도도 빨리 나갔다.

언니가 치는걸 옆에서 들었던게 큰 도움이 되기도 했지만 친구들을 따라 잡아야 겠다는 욕심과 나도 모르고 있었던 내 속의 음악적인 재능이 한몫을 한것 같다.

먼저 배우던 친구들을 하나하나 따라잡는 기분이란 정말 짜릿짜릿 했다.

큰 규모는 아니지만 몇몇 대회에서 입상도 했다.

중학교 1학년때 나간 대회에서 제법 큰상을 받고난 후 엄마는 나에게 큰 고민거리 하나를 주셨다.

피아노 실력도 어느정도 인정을 받았으니, 중학생이면 이제 공부에 전념해야 할 때니까 피아노를 전공할거면 계속 배우고 안그럼 그만 두라셨다.

피아노를 치는건 너무 좋지만 전공을 하게되면 피아노를 즐기기보다 억지로 연습을 해야되는 압박감에 시달릴것 같았다.

이 좋은 피아노를 그렇게 질리게 치고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결론은, 전공은 안하지만 피아노는 계속 배우는 거였는데… 그건 내 생각일 뿐이었다.

‘어무이, 정녕 내가 피아노 칠 시간에 공부를 할거라고 생각하셨나요? 레슨비가 부담스러우셨나요? 우리 제법 잘 살았잖아요~’

언니도 당연히 이런 과정을 거쳐서 피아노를 전공한 거라고 생각 했었는데 언니한테는 묻지도 않았다는걸 작년에야 알았다. 어무이~~~~!!!!!!!

다시 음악을 시작하게 된건, 고등학교 1학년때 음악시간 첫 실기과제가 계기가 되었다.

선생님은 곡을 쓰는 요령을 가르쳐 주시면서 16마디짜리 곡을 쓰라고 하셨다.

다른 아이들의 힘들어 하는 모습에 약간의 쾌감을 느끼면서 난 여유있게 곡을 썼고 그날 선생님은 나를 따로 부르셨다.

작곡에 소질이 있다고, 전공을 하면 어떻겠느냐고.

‘맞아, 국민학교때 작곡대회에서 입상한 적도 있었지… 피아노를 그만둘때 선생님이, 나한테 안배워도 되니까 음악은 관두면 안된다고 그렇게 당부를 하셨어… 그래, 나는 음악을 해야되는 사람이야.’

그렇게 해서 작곡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내가 2학년이 되던 해 언니는 연세대학교 피아노과에 입학을 했고 나도 같은 학교를 목표로 삼았다.…

쉬우면서도 어려운 건강법

(2013년 회지 “평화의울림“에 개제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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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다가올 우리들의 세상은 어떻게 변화해 갈까, 참으로 흥미있는 일이기도 하고 나날이 발전하는 Technology의 힘이 과연 우리들을 어디까지 데려다 놓을 까라는 호기심과 기대감이 커지면서 어쨌든 오래 살고 보아야 할 일이다라는 생각이 든다.

의학과 생명공학의 발전도 눈부신 것이어서 그 동안 인류 건강과 수명 연장에 지대한 공헌을 한 것도 사실이며 감사한 일이다. 그러나 모든 일이 그렇듯이 하나의 작용에는 반드시 반작용(反作用)이 있는 법이다.

현대의학이 발전하면서 각 분야가 세분화되고 전문성을 강조하게 된 반면에 전체성(Holism – All, Whole, Entire)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사람의 몸은 모든 기관들이 함께 조화를 이루면서 건강한 생명력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약물이나 수술의 방법으로 병든 몸의 일부 기능을 유지할 수 있겠지만 우리 몸의 공동체 기능이 서로 다 장부들을 도와주션머, 절제하면서 활동하기 보다는 복용하는 약물 위주의 일방적 활동을 우선으로 하게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심장병으로 인해 약물 치료나 수술을 받은 후 심장의 기능을 회복하고 생명 활동을 유지하게 된 것이 무엇보다 감사한 일이지만 이후부터는 심장은 자기 위주의 기능 활동을 강조하게 되면서 상호 도와 주어야 하는 관계에 있는 다른 장부들에게 상당한 부담을 주게 되고, 긴장과 불균형 상태를 야기하면서 또 다른 약물 치료가 필요하게 된다.

이러한 상태가 계속 되면 전체적 불균형 상태로 발전하게 되면서 우리의 몸은 결국 더 많은 약물에 의존하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또 한 가지 현대인들이 Technology에 대한 관심과 믿음이 커지면서 현대 의학이 우리의 모든 병을 치료해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평소의 자기 건강 관리에 소홀하게 된다는 점이다. 설사 내게 큰 병이 온다고 하더라도 건강보험이 있으니 걱정할 필요가 없고 잘 치료받으면 되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감 때문에 자기 자신의 나쁜 습관을 알면서도 애써 고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최근 의료 저널에 의하면 현대의학이 병을 찾아내 진단하는 방법은 최첨단 기술로 발전했지만 이를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은 별로 없다고 한 것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우리 몸에는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회복 기능이 주어져있다. 평소에 올바른 생활 습관을 통하여 뭄의 건강 상태를 유지하고 회복 기능을 높이는 것만이 약물과 병원 방문 횟수를 줄이는 길이라 할 수 있겠다.

누구나 다 아는 몇 가지 방법만 생활에 정용하면 지금 이후 건강 생활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기억하세요. 당신 몸의 주인은 바로 당신입니다.

첫 째, “아침 햇볕 쪼이며 걷기”

하루 30분~45분 정도, 아침 햇살을 즐기면서 걷기도 하고 명상도 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자. 세상에는 태양 에너지만큼 삶의 활력소를 주고 우리 몸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없다. 우리는 햇볕의 중요성을 잊고 살아가는 것 같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가히 놀랄만한 효과를 가지고 있다. 특히 아침 해가 떠서부터 3시간 이내의 아침 햇살이 가장 좋으며 오후에는 햇살이 강해서 외부와 우리 몸에 부작용을 가져 올 수도 있어 주의해야 한다.

아침 햇살은 우리 몸에 적당한 자극을 주어 몸 전체의 신진대사를 도와주며 혈액 순환 기능을 활발히 해주고 두뇌의 자극 호르몬 분비를 증가시켜 몸 전체의 호르몬 활동을 왕성하게 해주며 또한 세로토닌의 분비를 활성화해 침체되고 우울한 감정도 활짝 열어주게 된다.…

2011년 평화의 울림 음악회 사진

음악회 동영상 보기

 

아버지, 저를 당신의 계획에 사용해 주소서

(2013년 회지 “평화의울림“에 개제된 글입니다)

이재경Thursday, August 30 2012

Santiago de Compostella– Negreira – Vilaserio- Santa Marina, 40.75km

아침 10시에 마시는 맥주 맛과 오후 3시에 마시는 맥주 맛이 다르듯, 카미노데프랑세/Camino de Frances와 카미노데피스테/Camino de Fisterra는 상대적으로 다른 멋이 있었어.

구릿빛 밀밭, 영글어가는 포도들의 뚜렷한 젊음, 산양들의 낡은 방울소리, 마치 미로 같은 넓적하고 푹신한 구름, 길 위의 새겨진 셀 수 없는 발자국, 길을 안내하는 노랑 화살표를 닮은 노랑나비, 새까맣게 타버린 고개 숙인 해바라기를 카미노데프란세스에서 맛보았다면, 산록에 남겨진 빈 집의 풍요로움, 옥수수수염의 간지러움, 암소의 느긋한 재롱, 끊임없이 살랑거리는 대서양 바람, 화려한 해돋이와 부드러운 파스텔 톤을 소유한 야생화의 분주함을 제대로 맛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카미노데피스테라야.

제대로 된 갈리시아/Galicia 지방을 맛보려면 피스테라길을 가보라고 권하는 순례객들이 있는데 내가 느낀 이 맛인지 그 맛인지 헷갈려. 날 현혹시킨 이 스페인은 너무 다양한 매력이 있어 뭘 어떻게 간추려야 할지 도무지 모르겠거든.

올베이로아(Olveiroa)를 약 14km 남겨두고 오랫동안 비어진 학교에 도착했어. 관리자도 없고 순례객들이 매트리스를 깔고 잘 수 있는 교실과 화장실이 전부야. 시계 바늘은 다섯 시를 향해 움직이고, 오는 길에 자신의 두 번째 순례길에서 예수님을 만나 세례를 받았다는 체코 파블릭에서온 Viladilin은 옆에서 19km를 더 가겠다고 해. 그럼 나는 가는 길에 알베르게(순례자전용숙소)를 찾으면 멈추겠다며 따라나섰어.

잘하는 짓일까?

스페인의 해는 아주 느릿느릿 저물어. 저녁을 먹고 배가 꺼질 즈음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강열함을 마지막으로 살며시 사라져 주는 해는 곧 다른 곳에서 아침을 열어 주겠지.

빌라딜린에게 여자 친구가 있어. 그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만장일치로 입을 모아 그의 여자 친구를 칭찬한데. 행복해 보여. 그도 그녀를 사랑한다고 했거든. 그런데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있데. 그래서 이 길은 네 번째로 걷고 있다네… 마음속에 하나님으로부터 강한 calling이 있는데 바로 신부님이 되라는 말씀인 것 같데.

“그녀를 사랑한다……. ” , “신부님이 되고 싶다…….”를 계속 반복하는 그에게 사랑도 사역도 중요해 보여서 나는 어떤 도움도 주지 못한 채 망설였어. 이런 상황에 어떤 단어를 어떻게 조합해 어떤 문장을 생성해야 할 지 너무 조심해졌거든.”있잖아, 그녀를 계속 사랑하고, 신부님이 하는 일들을 그녀와 함께하는 건 어때? 예를 들어 성당에서 신부님을 돕고, 마을에 가서 복음을 전하고, 수업도 하고, 봉사하고, 성서도 계속 공부하고, 성당도 청소하고?”

“성당도 청소하라고? ㅋㅋㅋ 그럼 신부님이 되지 말라는 거네?”

사실 나는 “Don’t be a priest” 말은 입 밖에 내지 않았다. 그저 “Do whatever a priest does with her”라고 했을 뿐…….

나중에 피스테라에 도착하기 전부터 이틀을 동고동락한 동갑내기 독일 친구, Nadine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그녀는 아주 단호하게 말했어.

“그는 이미 답을 얻었어, 인정하기 싫은 거겠지” ‘나는 모르겠어. 그게 답인지 아닌지.’ 하지만 확신에 찬 나딘에게도, 여전히 기도하는 빌라딜린에게도 이 길은 여전히 공평하게 그들에게 생명력을 주고 있다는 것이야. 그리고 그런 사실이 나를 미치도록 감동시켰어.

산티아고에 올려진 순례자들에겐 저마다 잠겨있는 문들이 하나씩 있었어.…

아주 가벼운 신학 이야기: 현대 신학 어디까지 왔나?

– Bible Green Class의 로마서 , Bible Red Class의 갈라디아서 공부를 보고

(2013년 회지 “평화의울림“에 개제된 글입니다)

김기대

 <근대(현대)란 무엇인가?>

근대의 시작은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라는 데카르트의 선언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쉽게 말해서 신앙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진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데카르트의 선언은 중세를 지배했던 기독교의 세계관에 대한 정면 도전이었습니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은 이 선언이 운동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시민들은 황제를 폐위하고 이성의 즉위식을 올렸고 많은 성직자들이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이성의 시대는 의학과 과학을 비롯한 여러 학문을 발전시켰습니다. 이성의 시대에 신학은 잠시 위기를 맞았지만 성서 비평학, 성서 고고학과 같은 이성적 분야를 발전시키면서 지위를 유지합니다. 이로써 종교는 이성 신봉자들의 기대와는 달리 소멸되지 않고 이성의 시대를 함께 살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성의 시대가 되면 합리적 존재인 인간이 항상 옳은 판단만을 해서 종교의 시대인 중세보다 좋은 시대가 될 것 같았지만 종교의 배타성 못지 않게 이성도 전횡을 휘둘렀습니다. 두 번에 걸친 전쟁과 인간의 욕망은 이성으로 통제되지 않았습니다. 가장 합리적인 이념체계인 사회주의도 결국은 위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사회주의의 위기는 철학적으로는 이성의 위기와 맥을 같이 합니다.

<포스트 모더니즘(후기근대)의 사회>

이성의 한계에 고민하던 유럽은 1960년대 변화를 시도합니다. 이른바 68세대라고 하는 새로운 문화의 세대가 사회를 바꾸어 나가기 시작합니다. 68세대는 “금지란 단어 이외에 모든 것을 금지한다”는 유명한 슬로건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모든 것은 허용되었고 오직 “이것을 하면 안되!”라는 금지라는 단어만 금지한다는 뜻입니다.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68세대는 다양한 문화를 창출해 내었습니다. 중세의 종교이건, 근대의 이성이건 어떤 것도 독점적이고 우월적인 지위를 차지하지 못하고 개인의 선택은 무한정 허용되었습니다. 상상력이 나래를 펴면서 영화가 단순한 오락을 넘어 철학적으로 사유되기 시작한 것도 이 때부터 입니다.

존재라는 것은 종교적인 것도 아니고 이성적인 것도 아니고 그냥 자유롭게 살아가는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가벼운 것이 되었습니다. 이성의 독선을 넘어 모든 것이 허용되는 분위기에서 사람들은 자유롭게 경쟁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사상은 늘 유한합니다. 무한한 자유라는 것은 무한 경쟁을 가져왔고 신자유주의라는 괴물을 낳았습니다. 사회주의의 퇴조로 자본주의가 승리한 것처럼 보였지만 우리가 고통의 세월을 보내고 있듯이 자본주의는 사회주의보다 더 추하게 종말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사회주의의 퇴조가 이성의 한계를 보여준 것이라면 자본주의의 퇴조는 포스트 모던 시대의 무한 자유의 한계를 보여준 것입니다.

사람들은 시대의 변화 앞에서 당황합니다. 예를 들어 여성운동가들이 종교의 시대나 이성의 시대를 온 몸으로 견디어 내면서 여성해방을 이루어 내었지만 새롭게 만난 현실이 자신들이 믿어왔던 것과 다르게 나타났을 때 설명할 방법을 찾지 못합니다. 유럽에 무슬림 이민자들이 늘어나면서 무슬림 여성들과 조우한 유럽 여성들은 처음에는 무슬림 여성들을 해방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입니다. 때가 되면 그들도 히잡을 벗고 사회의 당당한 주체로서 서게 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자발적으로 히잡을 쓰고, 자발적으로 남성에 종속된 여성성에 머물기를 원하는 낯선 이들 앞에서 유럽은 믿어왔던 것의 흔들림을 경험합니다. 이런 경우뿐 아니라 많은 경우에서 포스트 모더니즘은 장벽에 부딪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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