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시론
발행: 09/24/13 미주판 26면 기사입력: 09/23/13 15:54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988537
아는 분 하나가 동료와 산행 중에 한국의 민감한 정치 상황을 비판하는 슬로건 하나를 들고 소위 인증샷을 찍었다. 요즘 유행처럼 자신의 SNS에 올리기 위한 것이었는데 난데없이 산행 동료들이 그 사진의 삭제를 요구하더란다. 모든 사람의 정치적 지향은 다르기에 그 슬로건이 불편할 수 있지만 산행단체의 단체명이 사진에 포함된 것도 아니고 다른 일행들도 포함되지 않은 독사진이기에 사진의 주인공은 완강히 삭제를 거부했지만 그 사진을 찍어 준 동료 한 사람이 자신의 입장이 난처하다고 사정해 결국 지우고야 말았다. 이 분은 지나가는 백인 등산객에게 부탁해서 보란듯이 같은 사진을 찍어 자신의 SNS에 올렸다. 그제야 동료 등산객들이 아무 말도 못했단다.
이 이야기는 슬프다. 자유로운 미국에 살면서 자신과 다른 정치적 입장표현에 대한 거부감을 넘어 그것이 가져오지도 않을 파장을 두려워하는 이 난센스의 기원은 도대체 무엇일까. 구호의 내용도 모르면서 등산 중에도 자기 입장 표현을 하는 행위 자체에 칭찬을 보내주는 백인 등산객 앞에 부끄러움은 없었을지에 대한 생각이 들면서 나이 든 세대의 정체 모를 두려움에 슬펐다. 이곳에서 자란 젊은 세대에게 이야기를 해주었더니 이해를 못 한다. “뭐가 두려웠던 거죠?”라고 되묻는다. 나도 대답을 찾지 못했으니 그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 슬프고도 재미있는 이야기가 오늘의 교회 현실과 겹쳐져 다가왔다. 오늘날 교회는 민감한 사안에 침묵하도록 교인들을 훈련시키고 있다. 이런 현상들을 젊은이들은 이해 못 할 시선으로 바라본다. 교회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모든 교회들이 젊은이들의 교회 이탈을 걱정하면서 이런저런 시도들을 해보지만 교회를 떠난 젊은이들은 돌아올 줄 모른다. 민감한 정치 사안에 거침없이 입장을 표명하는 가톨릭 교회가 젊은이들에게 인기있는 것을 보면서도 그런 부분은 배우려고 하지 않고 침묵만을 강요한다.
어거스틴은 “희망은 분노와 용기를 가지고 있다. 분노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며, 용기는 사물이 있는 그대로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는 것”이라고 했다. 분노와 용기를 공포로 다스리는 정치에는 희망이 없다.
하물며 그것을 묵인하는 교회에 무슨 희망이 있겠는가.
Comments: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