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체제 북한의 변화를 어떻게 볼 것 인가?: 광명성 3호 발사와 리영호 숙청을 중심으로
(2013년 회지 “평화의울림“에 개제된 글입니다)
김정은 체제하의 북한이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혹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가에 대한 논의가 매우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작년 12월 17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급서로 인해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가 새로운 지도자로 등장했을 당시만 하더라도 김정은 체제가 오래 가지 못할 것이라거나 북한사회가 리더십 교체로 인해 급속히 붕괴될 것이라는 예측이 많았으나 북한의 리더십 교체가 예상과 달리 매우 유연하고 효과적으로 진행되면서 김정은 체제가 빠르게 안정되자 이제는 논의가 김정은 체제하 북한의 변화에 집중되고 있는 것이다.
김정은 제1비서의 새로운 통치스타일 또한 북한변화에 대한 관심 집중에 크게 작용했다. 김정은이 사회주의 (혹은 전체주의) 사회에서는 매우 드물게 (파격적으로) 중요 국가행사에서 부인인 리설주와 동행하는 모습이 북한매체에 자주 등장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미키 마우스로 상징되는 서양 문화도 별다른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모습도 자주 보여주고 있다. 김정은 제1비서가 북한의 지도자가 된 지 아직 1년도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러한 단편적인 변화로 북한사회의 변화를 이야기하는 것이 너무 이른 감이 없지 않지만 이런 한계를 염두에 두면서 이 글은 지난 8개월 동안 북한에서 일어났던 사건 중에서 가장 상징적인 두 가지 사건 (광명성 3호와 리영호 숙청)을 중심으로 북한의 변화를 평가하고 앞으로의 변화가능성에 대해 조심스럽게 전망해 보고자 한다.
먼저 김정은 체제하 북한의 대외정책 변화를 북미관계를 중심으로 살펴보자. 김정은체제하의 북미관계는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대화와 타협국면으로 전환되었다. 올해 2월 북한은 중국 베이징에서 미국과 제3차 고위급 회담을 가진 뒤 2월 29일 회담결과를 합의문 형태로 발표했다. 북한은 우라늄농축프로그램을 중단하고 핵과 미사일 실험발사를 유예하는 등 비핵화 사전조치를 취하고 그 대가로 미국으로부터 24만 톤의 영양(식량)지원을 받기로 합의했다. 이 합의는 미국에서 오바마 행정부가 등장한 이래 북미 사이에 최초의 의미 있는 합의였다. 그러나 이러한 북미간의 화해 분위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북한이 미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유엔안보리결의안 1874호를 위반하면서까지 4월 13일 ‘광명성 3호’를 발사했기 때문이다. 발사 직전 미국의 특사가 극비리에 평양을 방문하기도 했으나 결국 북한의 발사를 막지 못했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광명성 3호’ 발사는 북한의 정책 실패라고 생각한다. ‘광명성 3호’ 발사로 인해 북한은 많은 것을 잃었으며, 그 중에서도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위한 좋은 기회를 저버렸다. ‘광명성 3호’ 발사의 배경과 의도에 대해 다양한 견해가 있지만 특히 다음과 같은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째, ‘광명성 3호’ 발사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유훈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생전에 ‘강성대국’ 진입을 위한 축포로 이 발사를 기획했기 때문에 김정은 제1비서가 이를 취소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둘째, 군부의 지지 확보라는 측면에서 볼 때도 김정은이 ‘광명성 3호’발사를 취소하지 못했을 것이다. 더 나아가 김정은은 외부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는 확고한 리더십을 군부에게 보여주고자 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미국과 2•29 합의를 이루어 놓은 상태에서 이 합의를 무효화시키는 데 결정적 계기를 제공할 ‘광명성 3호’를 발사했다는 것은 북한 외교/국방정책 결정과정에 상당한 마찰과 혼선이 존재했음을 보여주고 또한 이 과정에서 김정은이 이를 효과적으로 통제해내지 못했다는 점을 보여준다. 김정은이 ‘광명성 3호’ 발사 실패를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모습을 보고 김정은의 새로운 통치스타일과 대외관계에서의 변화를 예견하는 분석이 있기는 하지만 결국 이 시기의 김정은은 대외관계에서 급속한 변화보다는 (군부와의) 타협과 (김정일 유훈통치의) 지속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다음으로 김정은 체제하 북한의 국내정책 변화에 대해서 간단히 살펴보자. 김정은 체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핵심정책이었던 ‘선군정치’를 유지하는 한편 경제성장에 중점을 둘 것으로 전망되었다. 선군정치는 김정일의 정책을 계승한다는 상징적 의미에서도 반드시 필요하고 김정은이 군부의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정은은 올해 7월, 리영호 총참모장을 해임하고 그 후임에 현영철을 임명하는 등 북한 군부권력 개편을 단행했다. 리영호 해임과 군부개편에는 김정은 제1비서의 ‘6•28지침 (우리식의 새로운 경제관리 체계를 확립한 데 대하여)’가 밀접하게 관련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6•28 지침’은 2004년 박봉주 내각 총리가 구상했던 일련의 경제개혁 구상인 ‘7•1 경제관리 개선조치’의 재판 혹은 부활이라고 할 수 있다.
리영호의 해임은 작게는 군부가 소유하고 있던 모든 무역회사를 내각 (당) 산하로 이전하고 군부 주도의 외화벌이 사업을 내각 (당) 주도의 민생 경제로 돌리고자 하는 군부개혁 과정에서 발생한 정치적인 사건이며, 크게는 군부를 중심으로 하는 ‘선군파’를 숙청하면서 ‘선군정치’에서 ‘선경정치’로의 변화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당, 내각, 군부에서 장택상 라인의 ‘선경파’가 약진하는 모습을 보면 이러한 정책변화는 더욱 뚜렷해진다. 한편, 리영호의 해임은 김정은의 권력이 매우 안정적일 뿐만 아니라 공고하다는 것을 보여주며, 아직도 북한의 공식매체는 ‘선군’을 강조하고는 있지만 이는 상징적인 차원에서의 수사에 그칠 확률이 높고 ‘선군’에서 ‘선경’으로의 흐름에 영향을 미치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결론적으로 김정은은 권력이양 초기에는 군부의 입장을 어느 정도 지지하다가 군부에 대한 통제력을 확보하자 군부세력 개편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은 매우 치밀하게 계산된 것으로 보인다.) 더 나아가 최근 장성택의 방중에서 보이듯이 김정은 체제하의 북한은 확실히 민생경제를 중심으로 한 경제개혁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이며 이 과정에서 어느 정도의 개혁, 개방은 필수적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북한은 중국이나 베트남을 모델로 삼아 경제개혁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겠지만 그 노력이 어느 정도까지 진행이 될지, 또는 성공할지는 앞으로 계속 지켜봐야 할 것이다.
‘선군’에서 ‘선경’으로의 정책변화와 그 성공여부는 김정은의 결단과 지도력, 북한 내부의 권력투쟁, 새로운 경제개혁 도입의 성공 여부 등과 더불어 북한 외부의 환경에도 달려있다. 미국, 일본, 한국 간의 삼각군사 동맹이 강화되고 이로 인해 한반도에서 긴장이 고조된다면 이는 북한의 군부나 강경파들의 입지를 강화시켜주고 결과적으로 김정은을 ‘선군정치’로 회귀하게 만들 것이다. 북한의 대외정책에서 아직 뚜렷한 변화가 보이지 않고 (특히 북미관계에서 뚜렷한 진전이 없는 상황인데다) 북한의 경제개혁이 아직 가시적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의 군부나 강경파들의 입지를 강화시켜 주는 행위는 북한의 변화를 바라는 입장에서는 반드시 피해야만 하는 현명하지 못한 정책일 것이다. 그러므로 한반도에서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고 경제교류를 확대해서 북한이 주체적이고 평화적으로 개혁, 개방에 나설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일이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할 것이다.
(안태형, 국제관계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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