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아들과 딸로 살아가기

190519 하나님의 아들과 딸로 살아가기 Ser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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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의 아들과 사람의 딸의 결혼은 신화적인 표현입니다. 신적 가치관과 인간적 가치관이 혼인을 맺었을 때 우생학적으로는 네피림이라는 거인 용사 족을 낳았지만 하나님이 보기에는 추악한 조합이었습니다. 결국 이 결함이 원인이 되어 노아의 홍수 사건도 있게 되는 겁니다.

인간의 추악한 욕망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거룩하게 포장될 때 네피림처럼 외양은 그럴듯하지만 속은 썩은 존재가 나옵니다. 노동자를 착취하면서 기독교 기업으로 포장되는 경우, 자기 계발서 내용이 복음으로 변장하는 경우가 모두 여기에 해당됩니다. 뛰어난 철학자 에디트 슈타인은 유대인이자 여성이라는 이유로 교수의 길이 막혀 고뇌하던 차에 가톨릭에 귀의해서 봉쇄수도원에 들어갑니다. 아우슈비츠에 끌려갔을 때 이미 가톨릭으로 개종했고, 또 그의 학문적 업적을 높이 산 동료철학자들의 구명운동이 있었지만 모든 회유를 거부하고 어린 아이를 대신해서 스스로 가스실로 들어가는 하나님의 딸의 길을 선택 했습니다.

5.18 39주년입니다. 정치군인들의 권력욕이 같은 민족을 학살하고 강간할 때 그들은 인간이기조차 포기한 금수였지만 여기에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해준 이들은 유명 목사들이었습니다. 하나님과 욕망을 억지로 결합시켰습니다. 가해자들은 그나마 재판에라도 섰지만 세상을 떠난 몇몇을 제외하고는 이들은 아직도 원로행세를 하고 그 후예들과 어울려 다닙니다. 네피림같은 괴물들입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인간이 되어 이 땅에 와서 하나님의 일이 사람의 일이 되고 사람의 일이 하나님의 일이 되는 데 협조하라고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닮고 예수를 마음에 담고 살 때 우리 모두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오히려 가장 인간답게 사는 길입니다.…

Pay it Forward

대부분의 어머니 주일 설교 주제는 자애로운 어머니의 사랑과 그에 대한 자녀들의 기억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여성이 어머니는 아니며 어머니의 사랑이 항상 자애로운 것만은 아닙니다. 성서 당시의 가족 윤리를 이 시대에 그대로 적용할 수 없습니다. 물론 자녀들을 위한 숭고한 희생이 존경받을 가치가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 희생의 의미를 혈연 너머로 확장하자는 뜻입니다. 단순히 채무감으로서 pay it back의 효도가 아니라 외부를 향한 pay it forward의 가치관이 진정한 효도일 것입니다.

죽은 자들로 하여금 죽은자를 장사지내게 하라는 예수의 말씀은 가족의 틀을 벗어나라는 이야기입니다. 예수의 발언을 효에 맞추어 오늘의 본문을 억지 해석하는 것이 더 웃깁니다. 성서가 진보적으로 해석되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됩니다.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 경선을 뛰는 신예 피트 부티지지는 그의 진보적 신앙을 전면에 내세우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독실한 성공회 신자인 그는 동성남편과 함께 유세를 하는데 성서가 자기를 진보적인 가치관으로 이끌었다고 고백합니다. 성서 해석을 억지로 꿰맞추어 예수를 전통적 효도의 범위에 포함시키려고 하는 것은 명백한 왜곡입니다. 희생과 채무의 관계가 아니라 그너머를 향하는 가정 또는 사회를 예수와 함께하는 사람들이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190512 Pay it Forward Ser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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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9: 59 -60
또 예수께서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라오너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 사람이 말하였다. “주님, 내가 먼저 가서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도록 허락하여 주십시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에게 말씀하셨다. “죽은 사람들을 장사하는 일은 죽은 사람들에게 맡겨두고, 너는 가서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여라.”…

욥이 자신을 벗어나다

190505 욥이 자신을 벗어나다 Ser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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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은 잘못한게 없는데 하나님의 처사가 가혹하다며 항변하고 욥의 친구들은 욥에게 문제가 있다고 충고하는게 욥기의 구조입니다. 세상에 죄없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 따진다든가 죄없는 욥에게 가혹한 고통을 주는 하나님의 폭력성을 지적하면 욥기가 깔아놓은 ‘밑밥’만 보는 겁니다. 욥과 세 친구의 소득없는 공방이 오가던 중 욥은 타자에게 눈을 돌리며, 사회구조적 모순을 발견합니다. 그런 점에서 욥에게 가해지던 가혹한 고통들은 문자 그대로가 아니라 욥이 겪어야 할 불편함 같은 것들로 치환될 수 있습니다. 자신의 행복에만 갇혀있는 삶은 견딜 수 없이 불편한 삶이 되어야 합니다. 힘에 의해 발생하는 지구촌의 수많은 비극을 보며 불편해야 합니다. 수잔 손택은 ‘타인의 고통’에서 현대인들이 타인의 고통도 미디어를 통해서 비디오 게임을 하듯이 소비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라크 전쟁 당시 미국의 폭격을 미디어를 통해 보면서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이 사라진다는 말이지요. 아름다운 자연, 화목하고 풍요한 가정, 어린이들의 천진한 웃음소리, 집에서 키우는 반려 동물들의 재롱 그런 것들만 보고 있으면 행복합니다. 욥이 그랬던 것처럼 죄는 아니지요. 그런데 거기만 갇혀 있으면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가 일어나기 어렵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여러분들을 타인의 고통의 자리로 초대해 그곳에서 깊은 교제를 나누시기 원합니다.

성경 본문: 욥기 24: 1-10

어찌하여 전능하신 분께서는, 심판하실 때를 정하여 두지 않으셨을까? 어찌하여 그를 섬기는 사람들이 정당하게 판단받을 날을 정하지 않으셨을까?
경계선까지 옮기고 남의 가축을 빼앗아 제 우리에 집어 넣는 사람도 있고,
고아의 나귀를 강제로 끌어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과부가 빚을 갚을 때까지, 과부의 소를 끌어가는 사람도 있구나.
가난한 사람들이 권리를 빼앗기는가 하면, 흙에 묻혀 사는 가련한 사람들이 학대를 견디다 못해 도망가서 숨기도 한다.
가난한 사람들은 들나귀처럼 메마른 곳으로 가서 일거리를 찾고 먹거리를 얻으려고 하지만, 어린 아이들에게 먹일 것을 찾을 곳은 빈 들뿐이다.

가을걷이가 끝난 남의 밭에서 이삭이나 줍고, 악한 자의 포도밭에서 남은 것이나 긁어 모은다.
잠자리에서도 덮을 것이 없으며, 추위를 막아 줄 이불 조각 하나도 없다.
산에서 쏟아지는 소낙비에 젖어도, 비를 피할 곳이라고는 바위 밑밖에 없다.
아버지 없는 어린 아이를 노예로 빼앗아 가는 자들도 있다. 가난한 사람이 빚을 못 갚는다고 자식을 빼앗아 가는 자들도 있다.
가난한 사람들은 입지도 못한 채로 헐벗고 다녀야 한다. 곡식단을 지고 나르지만, 굶주림에 허덕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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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소식이 기쁨이 되기까지

190421 부활의 소식이 기쁨이 되기까지 Ser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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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16: 1-8
안식일이 지났을 때에,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살로메는 가서 예수께 발라 드리려고 향료를 샀다.
그래서 이레의 첫날 새벽, 해가 막 돋은 때에, 무덤으로 갔다.
그들은 “누가 우리를 위하여 그 돌을 무덤 어귀에서 굴려내 주겠는가?” 하고 서로 말하였다.
그런데 눈을 들어서 보니, 그 돌덩이는 이미 굴려져 있었다. 그 돌은 엄청나게 컸다.
그 여자들은 무덤 안으로 들어가서, 웬 젊은 남자가 흰 옷을 입고 오른쪽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몹시 놀랐다.

그가 여자들에게 말하였다. “놀라지 마시오. 그대들은 십자가에 못박히신 나사렛 사람 예수를 찾고 있지만, 그는 살아나셨소. 그는 여기에 계시지 않소. 보시오, 그를 안장했던 곳이오.
그러니 그대들은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말하기를 그는 그들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실 것이니, 그가 그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들은 거기에서 그를 볼 것이라고 하시오.”
그들은 뛰쳐 나와서, 무덤에서 도망하였다. 그들은 벌벌 떨며 넋을 잃었던 것이다. 그들은 무서워서, 아무에게도 아무 말도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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