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en extra topbar

아버지, 저를 당신의 계획에 사용해 주소서

아버지, 저를 당신의 계획에 사용해 주소서

(2013년 회지 “평화의울림“에 개제된 글입니다)

이재경Thursday, August 30 2012

Santiago de Compostella– Negreira – Vilaserio- Santa Marina, 40.75km

아침 10시에 마시는 맥주 맛과 오후 3시에 마시는 맥주 맛이 다르듯, 카미노데프랑세/Camino de Frances와 카미노데피스테/Camino de Fisterra는 상대적으로 다른 멋이 있었어.

구릿빛 밀밭, 영글어가는 포도들의 뚜렷한 젊음, 산양들의 낡은 방울소리, 마치 미로 같은 넓적하고 푹신한 구름, 길 위의 새겨진 셀 수 없는 발자국, 길을 안내하는 노랑 화살표를 닮은 노랑나비, 새까맣게 타버린 고개 숙인 해바라기를 카미노데프란세스에서 맛보았다면, 산록에 남겨진 빈 집의 풍요로움, 옥수수수염의 간지러움, 암소의 느긋한 재롱, 끊임없이 살랑거리는 대서양 바람, 화려한 해돋이와 부드러운 파스텔 톤을 소유한 야생화의 분주함을 제대로 맛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카미노데피스테라야.

제대로 된 갈리시아/Galicia 지방을 맛보려면 피스테라길을 가보라고 권하는 순례객들이 있는데 내가 느낀 이 맛인지 그 맛인지 헷갈려. 날 현혹시킨 이 스페인은 너무 다양한 매력이 있어 뭘 어떻게 간추려야 할지 도무지 모르겠거든.

올베이로아(Olveiroa)를 약 14km 남겨두고 오랫동안 비어진 학교에 도착했어. 관리자도 없고 순례객들이 매트리스를 깔고 잘 수 있는 교실과 화장실이 전부야. 시계 바늘은 다섯 시를 향해 움직이고, 오는 길에 자신의 두 번째 순례길에서 예수님을 만나 세례를 받았다는 체코 파블릭에서온 Viladilin은 옆에서 19km를 더 가겠다고 해. 그럼 나는 가는 길에 알베르게(순례자전용숙소)를 찾으면 멈추겠다며 따라나섰어.

잘하는 짓일까?

스페인의 해는 아주 느릿느릿 저물어. 저녁을 먹고 배가 꺼질 즈음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강열함을 마지막으로 살며시 사라져 주는 해는 곧 다른 곳에서 아침을 열어 주겠지.

빌라딜린에게 여자 친구가 있어. 그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만장일치로 입을 모아 그의 여자 친구를 칭찬한데. 행복해 보여. 그도 그녀를 사랑한다고 했거든. 그런데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있데. 그래서 이 길은 네 번째로 걷고 있다네… 마음속에 하나님으로부터 강한 calling이 있는데 바로 신부님이 되라는 말씀인 것 같데.

“그녀를 사랑한다……. ” , “신부님이 되고 싶다…….”를 계속 반복하는 그에게 사랑도 사역도 중요해 보여서 나는 어떤 도움도 주지 못한 채 망설였어. 이런 상황에 어떤 단어를 어떻게 조합해 어떤 문장을 생성해야 할 지 너무 조심해졌거든.”있잖아, 그녀를 계속 사랑하고, 신부님이 하는 일들을 그녀와 함께하는 건 어때? 예를 들어 성당에서 신부님을 돕고, 마을에 가서 복음을 전하고, 수업도 하고, 봉사하고, 성서도 계속 공부하고, 성당도 청소하고?”

“성당도 청소하라고? ㅋㅋㅋ 그럼 신부님이 되지 말라는 거네?”

사실 나는 “Don’t be a priest” 말은 입 밖에 내지 않았다. 그저 “Do whatever a priest does with her”라고 했을 뿐…….

나중에 피스테라에 도착하기 전부터 이틀을 동고동락한 동갑내기 독일 친구, Nadine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그녀는 아주 단호하게 말했어.

“그는 이미 답을 얻었어, 인정하기 싫은 거겠지” ‘나는 모르겠어. 그게 답인지 아닌지.’ 하지만 확신에 찬 나딘에게도, 여전히 기도하는 빌라딜린에게도 이 길은 여전히 공평하게 그들에게 생명력을 주고 있다는 것이야. 그리고 그런 사실이 나를 미치도록 감동시켰어.

산티아고에 올려진 순례자들에겐 저마다 잠겨있는 문들이 하나씩 있었어. 선택되어진 그 길 위에서 오랫동안 다듬고 깎아서 만들어진 비밀의 열쇠로 그렇게 오랫동안 잠겨있는 문들을 열고 각 자 새로운 세상으로 향했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사실 우리를 위해 계획하신 삶이 있다는 분명한 믿음만 있다면, 열쇠를 획득하는 게 언제가 되던 매일 매일이 기대되지 않을까?

오늘도 기도해….

‘날 사용하실 주님, 뜻 있는 주님의 길에 사용되게 해 주세요.’ 라고 말이지. 행 복 해.(이재경)

사진: Copyright 이재경 2012

CoP 2013_Page_078_Image_0003

CoP 2013_Page_078_Image_0002CoP 2013_Page_078_Image_0001Camino de Santiago: 예수의 열 두 제자 중 하나였던 야고보의 무덤이 있는 스페인 북서쪽의 도시 산티아고 데콤포스텔라로 가는 길이다. 가장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길은 ‘카미노데프란세스(프랑스 사람들의 길)’이라고 불리는 코스. 프랑스 남부의 국경 마을인 생장피데포르에서 시작해 피레네 산맥을 넘어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까지 이어지는 800km다. 모든 갈림길마다 노란 화살표와 조개껍질로 방향을 표시해준다. 덕분에 길을 걷기보다 길에서 헤매기 바쁜 길치들조차 최종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다다를수 있다. 마을마다 있는 ‘알베르게’라 불리는 순례자 전용 숙소에서 잠자리와 취사를 해결할 수 있다. 우리 교회에서는이재경교우(8월~9월), 김기대 목사(9월~10월)가 다녀왔다.

Comments:0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