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 머핀을 좋아 하세요?
(2015년 평화의교회 40주년 기념회지에 개제된 교인 기고문입니다)
이혜정 권사
TV에선 요즘 영화와 같은 실제 상황을 보여 주고 있다. 사우스 케롤라이나 주에서 며칠 전 있었던 일로 경찰이 도망가는 비무장 흑인 남성을 총 쏘아 죽게 한 사건 때문이다. 그곳은 노스 찰스턴이라는 곳 인데 찰스턴항은 300년이나 계속됐던 노예무역의 주요 항구였던 곳으로 미국 역사의 비극적 어둠의 그림자를 간직한 도시다.
이 사건으로 사망한 흑인 남성을 보며 선명하게 떠오르는 얼굴들이 있다. 또 그 모습들과 함께 생각나는 음식이 콘 머핀이다. 단순히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콘 머핀과 함께 딸려 오는 미스 스미스와 미시즈 버틀러와의 따뜻한 추억 때문에 그 음식은 항상 그리움이 앞선다.
80년대 초 미국에 와서 처음으로 일한 곳이 뉴욕 엘머스트 시립병원 정신과 병동이었다. 경험도 없는 간호사로 밤 근무를 피할 수 있었던 곳이었다. 그러나 몇 개월을 지나기도 전에 난 엄청난 스트레스로 인해 심한 고통을 받기 시작했다. 나의 가장 약한 기관인 소화기가 탈이 나며 잠도 잘 못 자고 몸은 더 마르며 살이 점점 빠지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정신과 병동의 특성상 컨퍼런스나 미팅 또 카운슬링 등 모두 말로 해야 하는 것들 이었다. 난 이민 온지 몇 달 밖에 안 된 상태로 그곳에서 문화적 충격과 함께 영어 소통의 어려움으로 일 하는 것에 거의 공포를 느꼈다.
난 아무래도 이 상황을 이겨내고 계속 일을 할 수 없다는 생각에 그 병동의 수 간호사인 미스 스미스에게 그런 어려움을 털어놨다. 그 곳은 당시 수간호사를 비롯해 거의 모든 스텝이 흑인들이었다. 계속 일하고 싶지만 너무 힘들고 몸까지 아프기 시작하니 그만 두어야겠다고 했을 때 그 말을 듣던 미스 스미스의 얼굴이 지금도 생생이 떠오른다. 어린 딸 하나를 키우던 싱글 맘으로 짧은 곱슬머리가 아주 잘 어울리며 흑인 특유의 여유와 우아미가 넘치는 멋진 여자였다. 그녀는 내 얘기를 듣고는 날 꼭 안아줬다. 당시 얼마나 위로를 받았는지 30년도 더 지났지만 지금도 그 따스함과 진실함이 느껴진다. 지금이나 그때나 미국의 안고 안기는 문화에 적응치 못하는 나인데도 사람이 사람을 꼭 안아줌의 힘을 알게 된 기회였다. 그녀는 내가 매일 웃고 다녀 그렇게 힘든 줄 몰라서 미안하다며 미국으로 이민 와서 몇 달 만에 이런 정신과 병동에서 그 정도 일하면 아주 잘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그만 두기 전에 함께 도와 노력해 보자고 했다.
그 후 나의 엄마뻘 되는 나이의 동료 간호사인 미시즈 버틀러를 나와 짝으로 맺어 주어 모든 것을 같이 도와가며 일을 배워가게 해 주었다. 미시즈 버틀러는 나를 정말 딸인 양 손까지 꼭 잡고 언제 어디든 함께 하며 많은 도움을 주었다. 특히 잊을 수 없는 것은 콘 머핀의 맛이다. 그 병원 7층에 있었던 조그만 구내 매점에서 사먹던 옥수수 빵인데 이걸 반으로 잘라 토스트오븐에 구워 버터를 듬뿍 발라 먹곤 했는데 기가 막히게 맛있었다. 우리 병동에선 거의 매일 오전 커피브레이크에 단체로 콘 머핀을 사다 먹곤 했다. 흑인들의 대표 음식 중 하나이기도 하다. 지금도 콘 머핀만 보면 그때가 생각나고 정다웠던 그 사람들도 그립다.
그렇게 하여 이민 초기의 2-3년간을 미스 스미스와 미시즈 버틀러의 도움으로 미국 정신과 병동과 뉴욕 시립병원이라는 거대한 조식 속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TV뉴스는 노스 찰스턴에서 있었던 사건을 연일 보도하고 있다. 약자에 대한 배려가 있다면 우리가 사는 곳이 어디건 아름다운 곳이 될 수가 있다. 내가 뉴욕의 엘머스트 시립병원을 아름다운 곳으로 마음에 품은 것처럼….
사진: 찰스턴 총기사건 희생자 추모 예배. 사진: Nomader (CC BY-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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