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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의 추억

살인의 추억

b0025419_4843f805f23678/31/2013 중앙일보에 실린 김기대 목사 칼럼입니다.

영화 ‘살인의 추억’은 ‘설국열차’로 세계적 감독으로서의 위상을 다시 한번 보여주고 있는 봉준호 감독의 2003년 작품이다. 이 영화를 통해 봉준호는 명감독의 대열에 올랐고 이후 ‘괴물’ ‘마더’를 연속으로 히트시켰다. ‘살인의 추억’은 1986년 전국을 떠들석하게 했던 화성연쇄 살인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다. 10여명 이상의 여성들이 강간 살해 당했지만 결국 범인은 잡히지 못한 채 공소시효를 넘겨버리고 말았다. 범인이 잡히지는 않는 영화의 결말,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로 영화를 만들 때 많은 사람들이 실패할 것이라고 걱정했지만 봉감독은 500만 이상을 동원한 재미있는 영화로 만들었다.
영화는 우리에게 범인에게만 연쇄 살인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느냐고 되묻고 있는 듯하다. 젊은 여성들이 계속해서 죽어가는데 권력은 매월 한 번씩 철저하게 소등하는 등화관제 훈련을 어김없이 실시했다. 국가주의자들은 국가의 안보가 한 사람의 생명보다 더 소중하지 않냐고 항변할지 모르지만 등화관제는 어차피 국가의 안위가 아니라 백성들을 끊임없이 겁박하는 권력유지를 위한 퍼포먼스였을 뿐이다. 촛불 하나 허락하지 않던 그 어두운 밤에 꽃다운 한 명이 죽었다. 지역 치안을 더욱 강화해야 할 경찰병력은 민주화 시위를 하는 학생들을 짓밟는 데 동원되었고 그 날도 한명이 죽어나갔다.

영화 제목은 왜 ‘살인의 추억’인가? 추억이란 것은 아련하면서도 여전히 살아서 우리 삶을 구성하는 기억행위다. 그 살인사건들을 만들어낸 사회적 조건들은 과연 극복되었을까 아니면 추억속에서 다시 살아나기 위해 꿈틀거리고 있을까를 질문으로 던지는 영화다.

지금 고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 때문에 ‘살인의 추억’을 다시 보았다. 안보를 무기로 국민들을 겁박하는 일이나 백성들의 요구를 무시하는 권력자들의 오만을 보고 있노라면 과거의 독재자들이 저질렀던 사건들이 추억으로 다가온다. 정치적 반대자들이 대한 초고속 사형 집행, 장준하 선생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의 의문사, 광주학살 사건 등은 누구도 내가 범인이라고 나선 사람이 없는 사건이라는 점에서 화성연쇄살인 사건처럼 미제 사건으로 남아 있다. 세대가 교체될수록 미제 사건들이 추억조차 되지 못하고 잊혀져 가는 현상에 자신을 얻은 것일까? 그들은 갑자기 독재의 추억을 되살리고 있다.

이것은 아니다. 살인의 추억을 되살리는 사회는 건강한 사회가 아니다. 그 조건을 만들었던 사회 현상들을 추억의 창고속에서 꺼내 살려내는 정치는 나쁜 정치다. 나쁜 정치는 결말이 좋지 않다고 나는 확신하기에 고국에 드리운 어둠의 그림자가 싫다. 그래서는 안된다. 그들도 나도 모두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 주연의 영화가 5년동안 관객들의 인기를 얻으며 종영하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독재를 추억해서는 안된다. 대통령을 향해 쏟아지는 진상규명의 소리들을 진솔하게 들어야 한다. 독재의 추억이 잠시 흥행에 성공할 수는 있겠으나 그 시절을 견뎌냈던 사람들에게는 저항의 추억이 살아 있다는 사실이 독재의 향수에 빠져 있는 이들이 놓치지 말아야 할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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