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가정에서 예배를 드릴 때 사용하실 수 있는 영상입니다. 주일 오전 11시 (LA 현지 시간)에 공개됩니다.
6월 2일, 2024년
설교: “늘 새롭게 들리는 이야기” (김기대 목사)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은 요한일서 2장 24절 부터 25절까지 말씀입니다.
24 여러분이 처음부터 들은 것을 여러분 속에 간직하십시오. 여러분이 처음부터 들은 그것이 여러분 속에 있으면, 여러분도 아들과 아버지 안에 있게 될 것입니다.
25 이것은 그가 친히 우리에게 주신 약속인데, 곧 영원한 생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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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가정에서 예배를 드릴 때 사용하실 수 있는 영상입니다. 주일 오전 11시 (LA 현지 시간)에 공개됩니다.
5월 25일, 2024년
설교: 내삼위일체는 설명이 아니라 실천으로? (김기대 목사)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은 로마서 11장 17절 부터 24절까지 말씀입니다.
17 그런데 참올리브 나무 가지들 가운데서 얼마를 잘라 내시고서, 그 자리에다 돌올리브 나무인 그대를 접붙여 주셨기 때문에, 그대가 참올리브 나무의 뿌리에서 올라오는 양분을 함께 받게 된 것이면,
18 그대는 본래의 가지들을 향하여 우쭐대지 말아야 합니다. 비록 그대가 우쭐댈지라도, 그대가 뿌리를 지탱하는 것이 아니라, 뿌리가 그대를 지탱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19 그러므로 “본래의 가지가 잘려 나간 것은, 그 자리에 내가 접붙임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하고 그대는 말해야 할 것입니다.
20 옳습니다. 그 가지들이 잘린 것은 믿지 않은 탓이고, 그대가 그 자리에 붙어 있는 것은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교만한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십시오.
21 하나님께서 본래의 가지들을 아끼지 않으셨으니, 접붙은 가지도 아끼지 않으실 것입니다.
22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을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은 넘어진 사람들에게는 준엄하십니다. 그러나 그대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머물러 있으면, 하나님이 그대에게 인자하게 대하실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대도 잘릴 것입니다.
23 그러나 믿지 않았던 탓으로 잘려나갔던 가지들이 믿게 되면, 그 가지들도 접붙임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다시 접붙이실 수 있습니다.
24 그대가 본래의 돌올리브 나무에서 잘려서, 그 본성을 거슬러 참올리브 나무에 접붙임을 받았다면, 본래 붙어 있던 이 가지들이 제 나무에 다시 접붙임을 받는 것이야 얼마나 더 쉬운 일이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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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 설교 동영상은 교회 유튜브 https://www.youtube.com/channel/UC85UmFsDfX7R-O6A3N99HeA 를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또는 십자가 켜코 좌회전으로 검색하셔도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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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영조의 사색(7)
사색 ( 111 )
—— 테스형 ——
” 너 자신을 알라.” 라는 말이 2천 몇백년을 넘도록 생생하게 살아서 우매한 인간들을 잠시나마 제정신 들게하는 사실은 우리를 놀라게한다. 자신을 알고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고귀하고 가치있는 삶인지를 증명이라도 해주는 것 같다. 여기에 집단 살인자가 자신을 알고 처신함으로 인하여 자기 생명을 보전하고 구차하나마 천수를 누린자가 있다. 바로 전두환이다. ” 나는 축구는 자신있지만 공부는 손들었어. 책벌레나 수재중에 똑똑한 애들 골라서 똑바로 하라고 단단히 일러두고 간섭하지 마라, 오케이?” 이 거칠고 투박한 말이 신의 한 수가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3 저 호황에 힘입어 다행이도 경제가 안정이 되니 그 후로는 자기들의 살 길을 찾아낼 여유를 얻게 된 것이다. 자신을 알고 가끔 소환하여 은근히 낮은 목소리로 쳐다보고 준비한 이상한 사과상자를 하사하면 만사 오라잇 이다. 그와 반대로 자신을 알기보다 교만하여 자신을 과대 포장하면서 구름위를 걸으며 손가락으로 일일이 간섭하게되면 실패를 넘어 씻을 수없는 대죄인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우리는 이런 유형의 인간들을 통하여 지옥의 골짜기로 쳐박혀서 허우적거린 경험을 여러번 겪었다. 다시는 무지하고 오만하면서도 자신을 모르고 설치는 고장난 에이 아이와 같은 자를 무대 위에 올리는 우를 범할 일이 아니다. 자신을 알고 사는 사람은 이미 생의 과반을 성공한 것이라고 볼 수 있으리라. 오만은 악이요, 악은 죄를,죄는 사망을 낳는다.
사색 (112)
—– 빨치산 —–
방문을 총구로 열어졎치며 들어서니 반쯤 열린 창문으로 들어오는 달빛에 방안이 훤하다. 휙 눈알을 돌리며 살피니 경찰모가 벽에 걸린 아래에 제복도 보인다. 아,제대로 걸렸구나. 경찰이면 식량도 넉넉하게 준비되어 있을 것이다. 다시 아랫목을 보니 이불이 보이고 그속에 미세한 움직임이 보이는 순간 빨치산 이태는 소리지르며 이불을 들쳐내니 아,달빛속에 드러나는 완전 나체의 젊은 아낙이 머리를 무릅에 파묻고 벌벌 떨고있다. 이태는 갑자기 숨이 막혀오고 정신마저 혼미한 가운데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며 뒷걸음질 쳤다.
” 빨리 옷입고, 곡식, 알지?” 소리지르며 마루로 뛰어 나왔다. 그는 아직도 쿵쾅쿵쾅 멈출줄을 모르고 뛰고있는 가슴을 쓸어 내리며 심호흡을 세번하고 나서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보니 별들이 쏟아질듯이 총총하다. 마치 수많은 천사들이 손을 흔들며 미소를 던지는 듯하다. 그와 동시에 그의 마음속에서는 양심의 별들이 반짝이는 듯 , 알 수없는 평안과 기쁨의 만족감으로 채워지고 있었다. 잠시후 곡식 자루를 받아쥐고 나오며 “고맙소” 하고 물러날 때 그녀는 고마운 심정을 숨기지 않고 몇마디 작별 인사를 건넨다. 그녀는 오늘이 결혼 첫날이고 남편은 경찰이지만 아까 처음 소동 때 눈치를 채고 혼자 창문으로 내뺐다는 것이다. 이태는 산으로 복귀하면서도 매우 만족해 했다. 자기의 오늘 임무는 혁명 완수를 위한 식량 보급작전이요, 그외의 잡다한 일은 완전 포기가 맞다고 생각하며 이마의 땀을 헤어진 소매로 가볍게 스윽 문질렀다.
사색 (113)
—– 자유 —–
가난하고 못 배운자들은 자유가 무엇인지 모른다. 자유의 필요성도 모른다. 유력한 대선 주자의 주장이다. 이에 더하여 종부세 폐지를 내놓고 부동산 투기꾼들의 세상을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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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6
사색 (78)
——— 변증법 ——–
정반합 없는 민주주의는 가시밭 길이다.자진해서 자기의 기득권을 내놓고 바른 길을 택하는 일은 아직까지는 인류역사에 나타난 적이 없다. 그러면 어떻게 일반 백성의 자유가 그나마 쟁취되었을까? 그 답은 단연 단두대다. 만일 한국도 5.16 군사 구테타 주동자중 열 명만 단두대로 처리했으면 그후의 나라 사정이 지금처럼 난장판이 되지는 않았으리라. 지금까지 가짜들의 형편없는 무대를 보며 속을 태우고 있으려니 아까운 세월만 흘러가고 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단두대가 설치되어 목이 잘려 나갈 때에 비로서 기득권 포기 현상이 시작된다. 영국과 불란서의 단두대는 근대 민주주의 정착에 결정적 역활을 했다. 또 아우슈비츠 학살과 그 역작용으로 나타난 나치의 몰락은 현 독일의 양심 회복과 모범적 사회 민주주의 성공의 기초가 되었다.
한국의 정 반 합이 정과 반만 계속되고 합에 도달하지 못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한민특위의 실패가 그 시작이요 악의 청산 없이 즉 단두대 없이 덮어 버린 불의의 손 길이 70년을 허송하게 만들고있다. 그러면 그대들이 그렇게 선호하는 평화적 촛불 혁명은 가능한가? 적폐 청산없이 사회발전을 이룰 수가 있을까? 그 대답은 지금 한국에서 펼쳐질 미래에 있다. 최초의 시도다. 단두대 없는 사회 정의가 펼쳐지는 새 역사가 성공할지 아닐지는 오직 앞으로의 한반도 정세에 온전히 달려 있다.
사색 ( 79 )
———– 자유 영혼 ———–
껏뜰 껏들, 검정 기모노 휘날리며 게다짝 딸그락 소리 요란한 중에 엔카 콧노래 소리 높이 부러 제끼며 임시 정부 청사를 제집처럼 들락거리는 꼴은 가히 가관이었다.
모두 손사래를 치며 어서 내쫓기를 주장했다. 그러나 김구는 좀 내버려두면서 지켜 보자고 타일렀다. 그 이유는 이사람, 이봉창군이 서투른 한국 말로 다음과 같이 첫대면을 장식했기 때문이었다.
” 저는 일본에서 쭉 자라며 철근 공장에서 잡일을 거둘다가 기술자가 되어 제법 풍족하게 지냈습니다. 돈도 벌고 온갖 즐거움도 다 경험하였지만 어딘가 허전한 중에 또 인종차별까지 당하게 되었습니다. 뜬금없이 내뱉는 조센진이라는 비하 발언에 저의 적개심이 점점 자라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었습니다. 저는 결심했습니다. 언젠가는 내가 너희들을 복수해 주리라고요. 그런중에 상해에 조국 광복을 위해 일하는 액국자들이 계시다는 사실을 알고 여기까지 찾아 왔습니다. 저는 제 인생에서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한번 사는 인생입니다. 가치있게, 보람되게 살다가 가렵니다. 또 괴롭히던 일본놈에게 시원하게 복수할 수있는 길이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습니다.”
얼마후 그는 상해 어느 철공장에 취직하여 그 돈으로 하루 한끼도 잘 못 챙기는 임정 청사 임원들을 도우면서 여전히 마른 체구를 꺼떡거리며 들락거렸다.
일년여를 지켜보고 있던 김구가 드디어 그를 불러 세우고 천황 암살을 부탁하며 거사 자금을 건네니 그 돈은 풍찬노숙의 처지에서도 거지 옷속에 감춰 두었던 미주 동포가 보내준 독립운동 비밀 자금이었다. 그러나 피식 피식 타들어가던 폭탄의 심지가 스르르 꺼지고 그렇게 공들인 거사가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때는 아무도 이 실패한 일이 곧 이어질 윤봉길 의거를 성공시킬 필요한 전초전인지를 알지 못했다. 김홍일 장군이 준비한 가공할 홍구공원의 고성능 폭탄 제조를 가능하게한 기초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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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 ( 61 )
——– 흡연자 구하기 ——-
302호실, 30명이 농성중이다. 하필 문과 대학을 택하여 이 야단이라는 말인가? 그당시 일등 신문이던 ㄷ일보도 ” 교수농성 ” 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사회면에 보도했다. 학생회 간부인 성군이 소식을 전했다. 젊은 교수 한분이 전한 말이다. ” 이봐, 성군, 자네들 우리를 이렇게 내버려 둘건가?
벌써 한달이 지났어. 우선, 리꾸샤꾸가 곪았어.이걸 풀어 주어야 하는데 홀아비 생활에 방법이 없단 말이야. 아마 마누라가 곧 도망갈지도 몰라. 저렇게 내버려두면 일나지. 자네들 우리 사정을 너무 모르체 하는것 아니야? ” 리꾸샤쿠는 작은 주머니란 뜻이다. 참 골치 아픈 일이다. 어찌하랴? 꽉 막힌 이 물길을 뚫어야 할텐데. 몇일을 고민하던 나는 결단의 시간이 오게되고 그 다음날 전교생의 소집 공고가 대자보로 나갔다.
노천광장을 꽉 채운 학생들은 이미 그동안의 울분을 토해 내며 갑론을박 후 어느새 우루루 몰려가니 곧 총장서리로 있던 언더우드 3세의 화강암 이층 양옥집이다. 결과는 예상한 그대로 완전 파괴되고 누구의
짖인지는 모르게 불을 질러버려 나중에는 시커먼 돌덩이만 앙상하게 드러났다.
× × ×
오래도록 총장하던 용재는 잠시 그 자리를 내려놓고 상하원 합동의장으로 당선되어 나라 민주화 건설에 여념이 없었다. 1960년 4.19후 탄생한 장면 정부는 한창 조국 재건과 민주화 완성에 온 힘을 쏟고 있었다. 그러나 온갖 장애물이 여기 저기 터져 나왔다. 갑자기 쏟아진 자유를 주체하지 못하고 흥분속에 들뜬 학생데모가 끝없이 이어졌다. 또 자유당 정권에 눌려 지내던 각계각층의 요구 사항이 폭팔하니 곧 아비규환, 결국 정치군인들에게 길만 닦아 주는 꼴이 되고 말았다. 학원은 그들대로 새로운 혁신의 꿈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내가 다니던 학교도 꿈틀대기 시작했다. 조선 어학회 사건으로 고문 당하던 교수중심의 국내파와 미국 유학파 교수들의 대립에서 학교당국은 국내파를 외면하고 유학파의 손을 드니 반발이 생기게되고 결국 여러명의 이직이 일어나니 80명의 국내파가 반발하며 일어난것이 바로 국내 최초의 대규모 사학분쟁이다. 8명의 유학파와
80명의 국내파 대결이다.
× × ×
마교수는 그 당시 도서관장이었다. 학생들은 그를 무서워했다. 그의 눈초리는 첫대면부터 상대를 압도한다. 거기에다 학점도 따기 어렵다. 그의 눈밖에 나면 졸업하기가 힘들 정도다. 더하여 차세대 총장 후보로도 거론되고 있다. 험악하던 학원 분규도 수습되고 서대문 형무소에서 험한 꼴을 당하며 갇혀있던 150명의 학생들도 무사히 풀려났다. 같은 편이었던 언더우드 총장서리와 옹고집으로 유명한 이사장 영감의 양옥집들을 절단낸 놈들도 용서해 주었다. 괘씸한 녀석들. 이제는 내 세상이다. 아, 내 앞 길에이런 행운의 문이 열리다니,하늘도 의인의 길을 평탄케 하는구나 하고 그는 쾌재를 불렀다.
× × ×
도서관장실은 총장실보다 더 현대적으로 지어져서 넓직하고 시원하다.들어와 앉은지 5분이 지났을까, 어떤 녀석이 노크도 없이 문을 열고 들어선다. 낯선 얼굴에 인사도 아니하고 무표정으로 뚜벅 거리며 다가오는 것이 몹시 거스린다. 별 놈 다 보겠군하며 대응하려는데 그가 먼저 입을
뗀다.
” 선생님, 부탁이 있습니다. ” ” 그래? 너 누구야? ”
” 예, 저는 학생 자치회 회장입니다. 내 후배 K군이 도서관 복도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선생님께 들켜서 곧 퇴학시킨다고 해서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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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부활절 남북(북남) 기도문
생명의 하나님, 우리에게 부활의 복음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긴 겨울 속에서도 새 봄을 준비하셨듯이 우리에게도 새 시대를 허락해주시기 간구합니다. 십자가 고난이 부활의 영광을 담고 있는 것처럼 한(조선) 반도의 역경 속에서도 새 역사를 열게 하소서.
세계 곳곳에서 울음소리가 그치지 않습니다. 전쟁과 기아, 기후변화와 전염병 등 천재와 인재가 뒤섞여 고통이 가중되고 있습니다. 이 모든 불행의 뿌리에 인간의 죄악이 자리 잡고 있음을 고백하오니 모두가 행복한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주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게 하소서.
한(조선) 반도에 전쟁이 일어난 지 70년이 되었습니다. 동족끼리 총을 겨눈 결과가 얼마나 끔찍한지를 경험했으니 다시는 싸우지 않기 위해 이제는 공식적으로 전쟁을 끝내게 하소서. 종전선언과 평화조약 체결로 이 땅에서 전쟁의 기운은 몰아내고 평화의 기운이 되살아나게 하소서.
올해로 6·15 선언이 20주년을 맞이합니다. 이 위대한 선언을 단지 추억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함께 살아내게 하소서.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 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는 불가역적 대원칙을 실제로 적용하고 실천하게 하소서.
한(조선) 반도의 남북(북남) 관계가 다시 살아나기를 소원합니다. 4·27 판문점 선언으로 한껏 부풀었던 희망의 불씨가 꺼지지 않고 들불처럼 타오르도록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워 주소서. 좌절의 침울한 기운을 걷어내고 신선한 새 공기를 한(조선) 반도 전체에 불어넣어 주소서.
개성공단 여기저기에 다시금 공장의 불빛이 타오르게 하시고, 인적 끊긴 금강산 골짜기마다 화해의 걸음을 다시 내딛게 하소서. 이산가족의 평생소원을 들어주셔서 감격의 눈물로 이 땅을 적시게 하소서. 비무장지대에서 군사와 무기를 철수하는 평화의 걸음이 이어지고 확산되게 하소서. 정치와 사회 각 분야의 끊어진 교류를 회생시켜 주소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온 세계를 위협하고 있는 상황에서 남과 북이 생명의 안전을 위해 협력하게 하소서. 이로 인해 고통당하는 모든 이들이 속히 회복되므로 우리 모두가 일상의 평온을 찾을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소서.
부활은 생명·정의·평화의 하나님 나라를 위해 죽임 당한 자의 부활임을 고백합니다. 남과 북의 그리스도인들이 두 손을 맞잡고 지금 여기에서부터 한(조선)반도 희년을 향한 부활의 거룩한 행진을 시작할 수 있도록 주님의 영을 충만히 내려주소서.
이 세상 모든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2020년 4월 12일
한국기독교 교회 협의회
조선 그리스도교 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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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교회 성도 여러분
평소같으면 부활절 목회 서신을 “ 여러분들에게 부활의 기쁜 소식을 전합니다”라고 시작했을 터인데 올해 부활절은 이 표현이 어울리지 않는 환경에서 부활의 소식을 전합니다.
그럼에도 예수 부활이 주는 의미는 기억하는 여러분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Corona 19 Virus가 이웃을 경계하게 만들고 웃음기를 사라지게 하지만 우리 교인들은 미소를 간직한 채 살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이전에 경험해 보지 못한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상황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일각에서는 온라인 예배가 옳으냐 예배는 반드시 모여서 드려야 하느냐 논쟁이 많지만 부질없는 짓입니다. 이번 기회에 ‘예배’라는 개념 자체를 뛰어 넘는 경험을 하시기 바랍니다. 예배 없는 상황이 처음이라지만 유대인을 학살하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도 독일인들은 예배를 드렸을 것이고, 식민지 조선에서 신사참배에 굴복한 일제하 교회도 일본의 건승을 바라는 예배를 드렸을 것입니다. 그 예배는 신실한 예배였을까요? 없느니만 못하지 않았을까요? 자본과 혐오의 신이 십자가를 대신한 교회라면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의미 없기는 마찬가지 입니다.
또한 온라인 성찬의 신학적 정당성 여부, 부활절을 연기하는 것에 대한 찬반 여부도 부질없으니 괜한 논쟁들을 그냥 넘기셔도 됩니다.
평화의 교회는 부활주일을 본래 대로 4월 12일에 각 가정에서 지키며 식구들과 혹은 가까운 벗들과 초대교회가 그랬던 것처럼 식사를 나누시는 것으로 성찬을 대신합니다.
아시다시피 사순절, 부활절 등 교회 절기는 초대 교회가 이교도를 선교하는 과정에서 제정된 날짜입니다. 그러니까 꼭 그날이라는 성서적 근거는 미약합니다. 하지만 가톨릭 포함해서 전세계 기독교인이 약속한 날인데 코로나 때문에 주장하는 부활절 연기론이 1,500년 이상 된 약속을 깰만큼 설득력을 가진 것도 아닙니다.
유례없는 사태 때문에 기독교의 전통과 형식에 대한 비난이 도처에서 소리를 높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처럼 전통에 대한 충실함 없이 자유함도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전통에 매이지 않되 전통의 가치를 돌아보는, 자유함 속에서 전통을 되새기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칸트가 “형식 없는 내용은 맹목적이고, 내용 없는 형식은 공허하다”라고 말한 것처럼요.
언제가 설교에서도 말씀드렸듯이 666이란 숫자때문에 페스트의 공포가 유럽인들을 더욱 말세적 공황상태로 몰아 넣던 1666년, 휴교령으로 고향에서 쉬고 있던 뉴턴은 만유인력 법칙을 통해 세상과 자연을 새롭게 보는 시각을 열어 주었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너무 두려워하지 말고 종말적 징후라기보다 모든 갈등과 폭력이 소멸되는 하나님의 진정한 해방으로 나가기 위한 잠시 멈춤의 상태에서 부활을 맞이하시기를 바랍니다. 금요일에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께서 안식일 다음날(일요일)에 부활하기까지 성서에도 기록되지 않은 잠시 멈춤의 그 토요일, Holy Saturday의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2020년 부활절을 기다리며 김기대 목사가 보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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