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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ngho Kim 김용호 archives (page 21)

우리 내면이 드러날 때

데살전 3:7-9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여러분을 보고, 우리의 모든 곤경과 환난 가운데서도, 여러분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위로를 받았습니다.
여러분이 주님 안에 굳게 서 있으면, 이제 우리가 살아 있는 셈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우리 하나님 앞에서, 여러분 때문에 누리는 모든 기쁨을 두고, 여러분을 생각해서, 하나님께 어떠한 감사를 드려야 하겠습니까. 아멘.

누가복음 12:4-15
“내 친구인 너희에게 내가 말한다. 육신은 죽여도 그 다음에는 그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너희가 누구를 두려워해야 할지를 내가 보여 주겠다. 죽인 다음에 지옥에 던질 권세를 가지신 분을 두려워하여라. 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분을 두려워하여라.
참새 다섯 마리가 두 냥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그 가운데 하나라도, 하나님께서는 잊고 계시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너희 머리카락까지도 다 세고 계신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인자도 하나님의 천사들 앞에서 그 사람을 시인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 앞에서 나를 부인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천사들 앞에서 부인당할 것이다.
누구든지 인자를 거슬러서 말하는 사람은 용서를 받을 것이지만, 성령을 거슬러서 모독하는 말을 한 사람은 용서를 받지 못할 것이다.

너희가 회당과 통치자와 권력자 앞에 끌려갈 때에, ‘어떻게 대답하고, 무엇을 대답할까’, 또 ‘무슨 말을 할까’ 하고 염려하지 말아라.
너희가 말해야 할 것을 바로 그 시각에 성령께서 가르쳐 주실 것이다.”
무리 가운데서 어떤 사람이 예수께 말하였다. “선생님, 내 형제에게 명해서, 유산을 나와 나누라고 해주십시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관이나 분배인으로 세웠느냐?”
그리고 사람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조심하여, 온갖 탐욕을 멀리하여라. 재산이 차고 넘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거기에 달려 있지 않다.”…

희망을 심어준 사랑의 인술사업

(2015년 평화의교회 40주년 기념회지에 개제된 교인 기고문입니다)

이내운 집사

사랑의 인술사업을 만나게 된 경위

2008년11월 하순경 현재 LA 민주연합 상임대표와 중원포럼 회장을 맏고있는 이병도씨가 가든스 윗호텔에서 만나자는 전화가 걸려 왔다. 본인이 2009년 제 17대 남가주충청향우회장을 취임하는 데 나보고 사무총장을 맏아 달라는 요청 이었다. 나는 이민초 라크라센타에서 8년 정도 살았었 는데 이 당시 어머님이 미국에오셔서 1년 나와 함께 계시다 한국으로 돌아가셨다. 라크라센타 지역은 한인인구도 많지 않았고 한인타운처럼 사람들이 자유스럽게 걸어다닐수 있는 환경도 아니었기에 낮에 아파트에는 어머님이 혼자 계셨었는데 어머님은 농담으로 자신모습을 “창살없는 감옥생활” 이라고 표현을 하셨다. 워낙 소탈하시고 활동적이셨던 이런 어머님을 위해 나는 일간 신문에 난 기사를 보고 어머님을 모시고 충청동우회 월례회에 참석을 하였다. 나가서 어르신들께 자식처럼 반주도 권하고 노래방 도우미로 고향 어르신의 기쁨조 노릇을 하였다. 65세이상 노인모임 인 충청동우 회에 아들뻘인 내가 어머님을 모시고 봉사를 하면서 특별회원으로 가 입이 되었고 현재까지 10년째 기쁨조로 노인들을 섬기며 봉사를 하고 있다. 향우회 이사회를 통하여 나를 보았다는 이병도 회장의 면담을 통하여 나는 그가 본이 같은 전주이씨에 고향도 같은 동향인 논산이고 , 충남대학생회장 출신에다 신앙도 같은 카톨릭이며 정치성향도 나와 비슷한 중도진보성향이라 는 것을 알게 되었다. 최소한 인생관과 가치관의 성향이 비슷하여 나는사무총장직을 수락하게 되었고 충청향우회의 주요사업 이었던 국제적 사랑의인술사업을 처음으로 만나게 되었다. 이 사업은 자민련당 총재를 지내셨던 심대평 충남도지사가 1997년에 LA슈라이너병원과 충청남도 고국 화 상 어린이를 무료로 치료해주겠다는 사랑의인술사업 협약식을 체결하고 미국에서의 그 사업의 관리를 충청향우회가 맏게 됨으로써 본 사업이 시작을 하게 되었다. 2013년도에 본사업이 종료되기 까지의 16년동안 화상어린이 300여명을 무료치료을 해주어 미래가 참담하고 불투명하였던 불쌍한 어린새싹들에게 새로운 삶의 희망을 심어주게된 매우 보람있고 흐믓한 사업의 결과를 가져다 주었다. 1998년 제6대 김흥영 회장이 첫번째 화상입은 이미애 아동환자의 입원치료가 무사히 성 공함에 따라 본사업은 본격적으로 시작이 되었다. 무료치료 자격조건은 18세이하의 극빈층 화상 어린이로써 한국에서 정기검진을 통해 선정이되면 미국 슈라이너병원에 와서 치료를 받을 수가 있 었다. 매년 정기적으로 평균 30여명의 어린이 환자를 한국에서 발굴해서 미국 슈라이너 병 원에서 모든 입원치료를 전액 무료로 해주었다. 2003년도 제 11대 신구현 회장때에 가장 많은 50 명의 어 린이환자를 입원치료를 해주었고, 이상주 약사님이 향우회장이 이었던 2002년도에 충청북도가 추가협정 체결이 이루어지 면서 대전광역시, 충청남도, 충청북도 등 3개시도의 화상어린이가 본사 업의 치료혜택을 보게 되었다. 사랑의인술사업은 화상으로 일그러진 동심과 절망을 가지고 평생 살아가야만 했던 어린이들에게 삶의 새희망을 선사하고 싶어했던 어른들의 마음이 계기가 되었고, 아이들 치료를 맡은 ‘LA 슈라 이너 아동병원’과 충청 지역 ‘지방정부 자치단체’의 후원, 그리고 이들 을 연결하고 지원하는 역할을 맡았던 ‘남가주 충청향 우회’의 연합과 협력으로 3개기관이 든든한 연결고리를 맺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사업 이었다. LA 슈라이너 아동병원 은 1952년에 개원을 하였 는데 병원의 전반적인 운영은 오로지 개인또는 단체의 도네이션만 으로 운영되는 병원이었다. 이 병원에서 현재까지 약 4만여 명의 아동환자를 치료해주는 실적을 보이고 있었는데 1998년 사랑의 인술사업을 체결하여 16년동안 한국어린이 환자 300여명이 무료치료를 받아 지금 정상인으로 생 활을 하고 있다.…

니고데모의 한계

시편 46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이시며, 우리의 힘이시며, 어려운 고비마다 우리 곁에 계시는 구원자이시니,
땅이 흔들리고 산이 무너져 바다 속으로 빠져 들어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물이 소리를 내면서 거품을 내뿜고 산들이 노하여서 뒤흔들려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 강이여! 그대의 줄기들이 하나님의 성을 즐겁게 하며, 가장 높으신 분의 거룩한 처소를 즐겁게 하는구나.
하나님이 그 성 안에 계시니, 그 성이 흔들리지 않는다. 동틀녘에 하나님이 도와주신다. 아멘.

요한복음 3:1-11

바리새파 사람 가운데 니고데모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유대 사람의 한 지도자였다.
이 사람이 밤에 예수께 와서 말하였다. “랍비님, 우리는, 선생님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임을 압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지 않으시면, 선생님께서 행하시는 그런 표징들을, 아무도 행할 수 없습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다시 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
니고데모가 예수께 말하였다. “사람이 늙었는데, 그가 어떻게 태어날 수 있겠습니까? 어머니 뱃속에 다시 들어갔다가 태어날 수야 없지 않습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육에서 난 것은 육이요, 영에서 난 것은 영이다.
너희가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내가 말한 것을, 너는 이상히 여기지 말아라.
바람은 불고 싶은 대로 분다. 너는 그 소리는 듣지만,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는 모른다. 성령으로 태어난 사람은 다 이와 같다.”
니고데모가 예수께 물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이면서, 이런 것도 알지 못하느냐?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에게 말한다. 우리는, 우리가 아는 것을 말하고, 우리가 본 것을 증언하는데, 너희는 우리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장애우 등반을 다녀와서

(2015년 평화의교회 40주년 기념회지에 개제된 교인 기고문입니다)

유한종 집사

발달 장애우 페루비안 안데스 원정등반

자폐장애를 앓고있는 그들을 두고 무슨 봉사라거나 무위(撫慰)라거나 어줍잖은 보시(普施) 같은 걸 염두에 두지는 않았다. 다만, “당신같은 누군가의 도움이 없다면 평생 등산이라는 게 무었인지도 모르고 살다 길 수 밖에 없는 친구들이다!”라던 발달장애자 토요학교 특수활동 담당목사의 권고를 모질게 외면할 수 없어 자의반 타의반으로 시작된 일일 뿐이다.

어쨋거나, 발달장애자토요학교에 등산 커리큘럼이 시작됐고 장애자 혼자 등산에 나설 수 없어 1:1의 자원봉사자가 따라 붙어야 하는 등의 이러저러한 어려움들을 겪어 넘기면서 5년여 동안 이산 저산을 오르내렸다. 처음에는 평지와 판이하게 불규칙한 산악지형을 걷는 자체가 생소하여 한 발자욱 내 딛기도 어려워하던 그들이 아주 조금씩 산행에 익숙해지고 난이도를 올려가는 동안 나도 모르는 새 정도 들었고, 아주 느리지만 나름으로 차곡차곡 산과 자연과 어우러져 감을 보는 감동 또한 적지않았다.

‘발달장애자 등반대 고산원정등반’은 그렇게 그들이 소속돼있는 장애선교센터의 기치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꿈과 ‘저들로 하여금 높은 산위에 서서 한번쯤 세상을 내려다 보게 해 줄 수잇으면 좋겠다’ 는 내 막연한 욕심이 죽이 맞아 저질러진 일이다.
마침 우리 교회 마당에 인공암벽이 세워지고, 그 시설이 어떤 경로로든 지역사회 관심자들에게 긍정적으로 쓰여질 수 있기를 내심 바라던 터에, 장애자 원정 훈련장으로 안성마춤이었고 실제 그들의 담력을 키워 높은 곳으로 오르는 공포를 삭이는데 결정적 역활을 해 주었다.
‘설마, 우리 아이가?’… 그렇게 막연한 꿈이기만 하던 부모들의 의구심이 아주 천천히 관심과 참여로 부풀어가면서 ‘그래 한번 해보자!’ 내 마음도 덩달아 부풀었다. 일단 불이 붙은 장애학교측의 설득력 과 추진력은 놀라웠다. 아무 것도 갖추지 못한 제로상황에서‘우리도 할 수 있다!’, ‘자폐장애우 페루비 안 안데스 원정등반’은 빠른 속도로 진행되어 불과 몇달 만에 자폐장애자 대원 3명, 자원봉사 대원 2명이 확보 돠었고, 자원봉사 대원 하나가 모자라서 아내 경숙을 반 강제동원하여 나까지 합하여 총원 7명의 원정대가 일단은 꾸려졌다.
막상 시작은 되었으나 이전에 시도해 본 적이 없는 등반인고로 산악계 일원에 삽시간에 소문이 퍼지 기는 했는데, 일반사람들은 ‘참 좋은 일이다!’ 부축였지만 정작 절실했던 산악계의 반응은 싸늘했다. 호응은 고사하고 무모하고 위험한 발상이라며 훈련조차 참여는 커녕 거들어 줄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혼자 외로운 훈련을 시작할 수 밖에 없었다. 기실, 그들의 염려 반대가 오하려 맞기는 하다. 등반은 꿈 보다는 실제다. 대원들의 부모는 물론 주최측 선교회의 많은 사람들의 기도와 격려가 정신적으로 용기를 줄 수는 있겠지만 실제로 산에서는 단 한 발자욱도 가파른 경사를 대신 올라주지도, 단 한 호 흡 가쁜숨을 쉬어주지도, 단 한방울 땀을 흘려주지도 않는다. 그러나 애당초 홀로 부푼 가슴이기에 쫄지는 않는다. 본디 등반은 외롭다.
일반적인 등반대에서는 철저하게 임무를 분담한다. 등반기술, 수송, 장비, 의료, 식량, 기획, 행정, 회계, 기록… 각자의 실수 하나가 등반 전체를 망치기도 하고 때로는 불행한 사고로 연결될 수도
있기에 누구나 자기 임무에 최선을 다한다. 그래서 팀웤이 무엇보다 우선되는 것이다.…

하나님과 싸워 이긴 사람

에베소 3:12-15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그분 안에서 확신을 가지고, 담대하게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을 위하여 당하는 나의 환난을 보고서, 여러분이 낙심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내가 당하는 환난은 여러분에게는 영광이 됩니다.
그러므로 나는 아버지께 무릎을 꿇고 빕니다.
아버지께서는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붙여 주신 분이십니다. 아멘.

창세기 32:22-32
그 밤에 야곱은 일어나서, 두 아내와 두 여종과 열한 아들을 데리고, 얍복 나루를 건넜다.
야곱은 이렇게 식구들을 인도하여 개울을 건너 보내고, 자기에게 딸린 모든 소유도 건너 보내고 난 다음에,
뒤에 홀로 남았는데, 어떤 이가 나타나 야곱을 붙잡고 동이 틀 때까지 씨름을 하였다.
그는 도저히 야곱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서, 야곱의 엉덩이뼈를 쳤다. 야곱은 그와 씨름을 하다가 엉덩이뼈를 다쳤다.
그가, 날이 새려고 하니 놓아 달라고 하였지만, 야곱은 자기에게 축복해 주지 않으면 보내지 않겠다고 떼를 썼다.
그가 야곱에게 물었다. “너의 이름이 무엇이냐?” 야곱이 대답하였다. “야곱입니다.”
그 사람이 말하였다. “네가 하나님과도 겨루어 이겼고, 사람과도 겨루어 이겼으니, 이제 네 이름은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다.”
야곱이 말하였다. “당신의 이름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십시오.” 그러나 그는 “어찌하여 나의 이름을 묻느냐?” 하면서, 그 자리에서 야곱에게 축복하여 주었다.
야곱은 “내가 하나님의 얼굴을 직접 뵙고도, 목숨이 이렇게 붙어 있구나!” 하면서, 그 곳 이름을 브니엘이라고 하였다.
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솟아올라서 그를 비추었다. 그는, 엉덩이뼈가 어긋났으므로, 절뚝거리며 걸었다.
밤에 나타난 그가 야곱의 엉덩이뼈의 힘줄을 쳤으므로, 이스라엘 사람들은 오늘날까지 짐승의 엉덩이뼈의 큰 힘줄을 먹지 않는다…

한국, 어디로 가고 있나!

(2015년 평화의교회 40주년 기념회지에 개제된 교인 기고문입니다)

신영균 장로

우리 부부는 지난 6월 초 우리의 조국 한국을 다녀왔다.

약 8년여 만에 방문이어서 기대도 많았고 흥분도 되었지만 건강이 여의치 못해 많은 우려를 가지고 갔었다. 입국하는 순간에서부터 엄청난 중국 관광객 때문에 다소 불편은 있었지만 오랜만에 돌아온 고국에 대한 흥분은 가라 안칠 수가 없었다.

도착한 날이 금요일 오후라 교통이 많이 복잡했지만 한강위에 새로 놓여 진 멋드러진 다리며 또 빽빽이 들어선 아파트와 처음 본 고층 건물들 그리고 값비싼 외제 차들의 행렬에서 그동안 경제 발전의 높은 눈금을 바라보는 듯 놀라왔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그 놀라움은 곧 우려와 염려로 바뀌어 갔다.

겉으로만 본 조국과 그 안에서 형성되고 있는 무서운 사회양극화가 회복할 수 없는 단계에까지 이르지 아니했나 하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어딘지 모르게 성장의 동력은 잃어버린 것 같았고 저 출산과 초 고령화 시대로 접어들면서 빈부의 격차와 이념 대립과 지역갈등은 그 골을 이 더 깊게 파고 있었다. 정치 지도자들은 위기관리 능력도 없어보였고 이렇게 분야마다 양극화된 사회를 통합할 수 있는 능력은 물론 역사의식의 부재로 외세의 경향 및 민족의 평화를 위한 교류 문제는 아예 덮어 두고 종북 좌파만 양산 시켜 사회 올가미만 쓰여 놓고 오만과 독선으로만 가득 찬 그런 함량 미달의 역량을 보여 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수단이여야 할 권력이나 재력이, 모든 국민이 추구하여야 할 목표가 되면서부터 그 가치와 개념을 변화 시킨 이 나눔과 소통이 부재한 현실을 체감할 때 MERS사태 까지 겹치면서 온 나라는 깊은 수령에 빠져 버린 모습이었다. 게다가 종교마저 그 역할을 잃어버린 지 오래된 것 같아 그 안타까움이 더 하였다.

우리 민족 역사에 가장 고통을 많이 준 일본이 재무장을 시작했고 중국이 경제 대국이 되어 민족주의로 점점 우경화 되어 가는데 이 절실한 현실을 바로 보지 못하고 미래에 대한 아무런 비전이나 희망도 찾아 볼 수가 없고 그저 패거리 싸움만하는 정치계, 분배와 나눔을 저버리고 이윤만 창출하려는 재벌위주의 경제계, 그리고 문화, 교육등 사회 모든 분야에서 갑과 을로 갈라 져 서로 상처만 키우는 현실이 마치 4대강위에 펼쳐지는 기분 나뿐 녹조처럼 아주 흉측하게 번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난 6월 중순으로 기억한다. 일본에 유명한 승려 작가 세토우치(93새)옹이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추진하는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위한 안보법 개정작업을 반대하는 2천여 명의 시민들 앞에 나타났다. 그는 자신이 직접 겪은 처참한 전쟁경험과 죽이지 않으면 죽임을 당하는 전쟁에 결사반대한다며 “최근 일본의 상황을 보면 점점 전쟁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전쟁도 좋은 전쟁은 없으며 모두가 살인이다.

이대로 가면 여러분의 아들들과 손자가 전쟁에 끌려가고 그리고 죽어간다.

현 상황이 겉으로는 평화로워 보이지만 귀를 귀울여 조심스레 들어보면 군화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고 하였다.
우리는 16세기 말부터 지금까지 여러 번의 외세의 침략으로 많은 것을 잃어 버렸다.

임진왜란 6년7개월 동안 수십만의 인명피해는 물론 경복궁, 창경궁, 창덕궁을 비롯해 수많은 문화재와 역사실록 등이 소실되었고 나라는 거의 거덜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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