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부활절 목회 서신
평화의 교회 성도 여러분
평소같으면 부활절 목회 서신을 “ 여러분들에게 부활의 기쁜 소식을 전합니다”라고 시작했을 터인데 올해 부활절은 이 표현이 어울리지 않는 환경에서 부활의 소식을 전합니다.
그럼에도 예수 부활이 주는 의미는 기억하는 여러분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Corona 19 Virus가 이웃을 경계하게 만들고 웃음기를 사라지게 하지만 우리 교인들은 미소를 간직한 채 살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이전에 경험해 보지 못한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상황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일각에서는 온라인 예배가 옳으냐 예배는 반드시 모여서 드려야 하느냐 논쟁이 많지만 부질없는 짓입니다. 이번 기회에 ‘예배’라는 개념 자체를 뛰어 넘는 경험을 하시기 바랍니다. 예배 없는 상황이 처음이라지만 유대인을 학살하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도 독일인들은 예배를 드렸을 것이고, 식민지 조선에서 신사참배에 굴복한 일제하 교회도 일본의 건승을 바라는 예배를 드렸을 것입니다. 그 예배는 신실한 예배였을까요? 없느니만 못하지 않았을까요? 자본과 혐오의 신이 십자가를 대신한 교회라면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의미 없기는 마찬가지 입니다.
또한 온라인 성찬의 신학적 정당성 여부, 부활절을 연기하는 것에 대한 찬반 여부도 부질없으니 괜한 논쟁들을 그냥 넘기셔도 됩니다.
평화의 교회는 부활주일을 본래 대로 4월 12일에 각 가정에서 지키며 식구들과 혹은 가까운 벗들과 초대교회가 그랬던 것처럼 식사를 나누시는 것으로 성찬을 대신합니다.
아시다시피 사순절, 부활절 등 교회 절기는 초대 교회가 이교도를 선교하는 과정에서 제정된 날짜입니다. 그러니까 꼭 그날이라는 성서적 근거는 미약합니다. 하지만 가톨릭 포함해서 전세계 기독교인이 약속한 날인데 코로나 때문에 주장하는 부활절 연기론이 1,500년 이상 된 약속을 깰만큼 설득력을 가진 것도 아닙니다.
유례없는 사태 때문에 기독교의 전통과 형식에 대한 비난이 도처에서 소리를 높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처럼 전통에 대한 충실함 없이 자유함도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전통에 매이지 않되 전통의 가치를 돌아보는, 자유함 속에서 전통을 되새기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칸트가 “형식 없는 내용은 맹목적이고, 내용 없는 형식은 공허하다”라고 말한 것처럼요.
언제가 설교에서도 말씀드렸듯이 666이란 숫자때문에 페스트의 공포가 유럽인들을 더욱 말세적 공황상태로 몰아 넣던 1666년, 휴교령으로 고향에서 쉬고 있던 뉴턴은 만유인력 법칙을 통해 세상과 자연을 새롭게 보는 시각을 열어 주었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너무 두려워하지 말고 종말적 징후라기보다 모든 갈등과 폭력이 소멸되는 하나님의 진정한 해방으로 나가기 위한 잠시 멈춤의 상태에서 부활을 맞이하시기를 바랍니다. 금요일에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께서 안식일 다음날(일요일)에 부활하기까지 성서에도 기록되지 않은 잠시 멈춤의 그 토요일, Holy Saturday의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2020년 부활절을 기다리며 김기대 목사가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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