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영조의 사색(8)
사색 (178) —– 장승포 —–
명나라 제독 진린으로 부터 인수한 배와 군인수는 열배가 넘었다. 그러나 순신에게는 많으면 많을수록 더 이상의 전과를 올릴 수가 있었다. 옆에서 그의 군사 작전을 유심히 바라보던 진린은 듣도 보도 못한 순신의 지휘력에 완전히 손을 들었다. 자진하여 그의 부하가 되어 명령을 따랐다. 전쟁이 마무리되고 명나라로 복귀 후에도 순신과 그를 따르던 절도있는 수군들과 심성이 착한 조선의 백성들을 잊지 못하다가 1607년에 숨을 거두며 유언을 남겼다. ” 나는 조일전쟁에 참여하여 공을 세우고 그로 인하여 승진도 하고 상도 많이 받았지만 그 대부분은 이순신의 덕으로 이룬 것이다. 지금 명나라는 부정부패가 반영하여 곧 망할 것이 확실하다. 너희는 모든 재산을 정리하고 큰 배들을 마련하여 조선의 남쪽에 있는 한산도와 고금도로 이민을 가거라. 아직도 내 이름을 기억하는 관리들과 백성들이 남아 있을 것이니 정착하여 그들과 혼인하며 그 나라 백성이 되어라.” 결국 그의 손자인 진영소가 진씨 가족을 배에 태우고 고금도로 향하게 되고 무사히 정착하여 10여대에 까지 후손이 번창하여 수천명의 광동 진씨가 고금도와 장생포에 번창하게 되었다. 후일담이지만 진린의 14대손들이 들고 일어나 미국의 사드 배치를 결사 반대하며 한중친교를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평화의 교회 교육관 구입시에도 진장군의 15대 손인 진집사의 공로와 헌신이 남다르게 뛰어난 일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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