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이 되어 버린 교회- 중앙일보 시론
발행: 06/25/13 미주판 30면 기사입력: 06/24/13 16:36
최근 한국 사회는 갑을 논쟁으로 홍역을 앓고 있다. 자본과 권력을 소유한 이른바 ‘갑’들에 대한 ‘을’들의 작은 저항이 SNS 등을 통해 급속도로 전파되면서 그동안 수면 밑에 있던 가진 자들의 횡포가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갑의 횡포 중에는 대기업들의 골목 상권 침투도 한 몫 한다.
교회의 역할은 을들을 위로하며 갑의 횡포에 맞서야 하는 것일 터인데 교회가 ‘을’들의 시름을 무능한 것이라고 설교하고 모두 축복받아서 갑이 되라고 선포하는 바람에 바알의 제단이 되어 버린 지 오래다. 교회에 대한 사회의 비판에도 아랑곳없이 교회는 꿋꿋이 ‘갑=축복’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최근 미주 한인 교계에서 이슈가 된 두 명의 목사가 교회를 옮긴 것도 교회가 갑이라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건이다. 중형교회 목사가 초대형교회로 옮겨가고, 또 어떤 이는 잠적, 개척과 통합이라는 전광석화 처신으로 화제가 되고 있다. 솔직히 말해서 이런 류의 소식을 접하고 나는 놀라지 않는 편이다. 교회가 갑의 횡포에 맛들인지 오래되었는데 교회의 크기에 상관없이 모두가 갑을 지향하는 풍토에서 초대형 갑으로 말을 갈아탄 그들만을 탓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많은 이들의 분노 속에는 이들의 성장이 자신들에게 미칠 피해에 대한 걱정이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내가 화나는 것은 스타 마케팅에 의존하는 그 교회들의 태도이다. 얼마나 교회에 자신이 없으면 스타에 의존하겠는가. 그 외형이 모래성 같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애잔한 생각도 든다.
나는 진심으로 새롭게 교회를 옮긴 이들이 목회를 잘해서 교회를 더욱 부흥시키기를 바란다. 새신자가 아니라 주변 교회 교인들이 그 교회로 옮겨 가기를 바란다. 이 말은 비아냥이 아니라 진심이다. 그래야 작은 교회든 중형교회든 갑의 위치에 있었던 자신들을 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정말 진심으로 잘되기를 바란다. 그래야 더 이상 보여줄 치부가 없었던 것처럼 여겨졌던 한국 교회가 더 떨어질 나락이 남아 있음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락으로 떨어졌을 때 우리는 비로소 도약을 꿈꿀 수 있다. 정말로 진심으로 잘되기를 바란다. 그래야 좁은 문으로 가는 진실한 남은 자들에 대한 주님의 사랑이 더욱 깊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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