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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교회 archives (page 32)

부당한 대접, 현명한 대응

야고보 2:1-4
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영광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마십시오.
이를테면, 여러분의 회당에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이 금반지를 끼고 들어오고, 또, 남루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도 들어온다고 합시다.
여러분이 화려한 옷차림을 한 사람에게는 특별한 호의를 보이면서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십시오” 하고, 가난한 사람에게는 “당신은 거기 서 있든지, 내 발치에 앉든지 하오” 하고 말하면,
바로 여러분은 서로 차별을 하고, 나쁜 생각으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이 된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아멘.

마태복음 15:21-28
예수께서 거기에서 떠나서,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가셨다.
마침, 가나안 여자 한 사람이 그 지방에서 나와서 외쳐 말하였다. “다윗의 자손이신 주님,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내 딸이, 귀신이 들려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한 마디도 대답하지 않으셨다. 그 때에 제자들이 다가와서, 예수께 간청하였다. “저 여자가 우리 뒤에서 외치고 있으니, 그를 안심시켜서 떠나보내 주십시오.”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나는 오직 이스라엘 집의 길을 잃은 양들에게 보내심을 받았을 따름이다.”
그러나 그 여자는 나아와서, 예수께 무릎을 꿇고 간청하였다. “주님, 나를 도와주십시오.”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자녀들의 빵을 집어서, 개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 않다.”
그 여자가 말하였다. “주님, 그렇습니다. 그러나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얻어먹습니다.”
그제서야 예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여자여, 참으로 네 믿음이 크다. 네 소원대로 되어라.” 바로 그 시각에 그 여자의 딸이 나았다.…

짐이 정말 가벼워 질까?

시편 37:1-5
악한 자들이 잘 된다고 해서 속상해하지 말며, 불의한 자들이 잘 산다고 해서 시새워하지 말아라.
그들은 풀처럼 빨리 시들고, 푸성귀처럼 사그라지고 만다.
주님만 의지하고, 선을 행하여라. 이 땅에서 사는 동안 성실히 살아라.
기쁨은 오직 주님에게서 찾아라. 주님께서 네 마음의 소원을 들어주신다.
네 갈 길을 주님께 맡기고, 주님만 의지하여라. 주님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아멘.

마태복음 11: 26-30

그렇습니다. 아버지, 이것이 아버지의 은혜로운 뜻입니다.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맡겨주셨습니다. 아버지 밖에는 아들을 아는 이가 없으며, 아들과 또 아들이 계시하여 주려고 하는 사람 밖에는 아버지를 아는 이가 없습니다.”
“수고하며 무거운 짐을 진 사람은 모두 내게로 오너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한테 배워라. 그리하면 너희는 마음에 쉼을 얻을 것이다.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자비를 못 받은 사람들

시편 103: 2-5
내 영혼아, 주님을 찬송하여라. 주님이 베푸신 모든 은혜를 잊지 말아라.
주님은 너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시는 분, 모든 병을 고쳐 주시는 분,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해 주시는 분, 사랑과 자비로 단장하여 주시는 분, 평생을 좋은 것으로 흡족히 채워 주시는 분, 네 젊음을 독수리처럼 늘 새롭게 해 주시는 분이시다. 아멘.

누가복음 17:11-19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게 되었다.
예수께서 어떤 마을에 들어가시다가 나병환자 열 사람을 만나셨다. 그들은 멀찍이 멈추어 서서,
소리를 높여 말하였다. “예수 선생님,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예수께서는 보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여라.” 그런데 그들이 가는 동안에 몸이 깨끗해졌다.
그런데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은 자기의 병이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서 되돌아와서,
예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다. 그런데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었다.
그래서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열 사람이 깨끗해지지 않았느냐? 그런데 아홉 사람은 어디에 있느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되돌아온 사람은, 이 이방 사람 한 명밖에 없느냐?”
그런 다음에 그에게 말씀하셨다. “일어나서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주 날 인도하시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 없으리
그가 푸른 초장에 누이사 내영혼 평안해
오 내주여 오 내주여

내가 어려운 일 당할 때 주를 방황할 때
주님께서 동행하시네 영원히 주를 따르리
오 내주여 오 내주여

이 험한 세상 지낼때 주께서 인도해 주시니
어디서나 언제든지 주님의 품안에서
이 험한 세상 지낼때 주께서 인도해 주시니
나 모든 것 나 이기며 내 주 따라 살리라.

주의 선함과 인자하심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 주 되신 여호와 전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오 내주여 오 내주여

이 험한 세상 지낼 때 주께서 인도해 주시니
어디서나 언제든지 주님의 품안에서
이 험한 세상 지낼 때 주께서 인도해 주시니
나 모든것 다 이기며 내 주 따라 살리라

주 날 항상 돌보시고 날 친히 거느리시네
주의 인도하심 따라 나 주를 다라 가리라 주 따르리 …

아버지, 저를 당신의 계획에 사용해 주소서

(2013년 회지 “평화의울림“에 개제된 글입니다)

이재경Thursday, August 30 2012

Santiago de Compostella– Negreira – Vilaserio- Santa Marina, 40.75km

아침 10시에 마시는 맥주 맛과 오후 3시에 마시는 맥주 맛이 다르듯, 카미노데프랑세/Camino de Frances와 카미노데피스테/Camino de Fisterra는 상대적으로 다른 멋이 있었어.

구릿빛 밀밭, 영글어가는 포도들의 뚜렷한 젊음, 산양들의 낡은 방울소리, 마치 미로 같은 넓적하고 푹신한 구름, 길 위의 새겨진 셀 수 없는 발자국, 길을 안내하는 노랑 화살표를 닮은 노랑나비, 새까맣게 타버린 고개 숙인 해바라기를 카미노데프란세스에서 맛보았다면, 산록에 남겨진 빈 집의 풍요로움, 옥수수수염의 간지러움, 암소의 느긋한 재롱, 끊임없이 살랑거리는 대서양 바람, 화려한 해돋이와 부드러운 파스텔 톤을 소유한 야생화의 분주함을 제대로 맛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카미노데피스테라야.

제대로 된 갈리시아/Galicia 지방을 맛보려면 피스테라길을 가보라고 권하는 순례객들이 있는데 내가 느낀 이 맛인지 그 맛인지 헷갈려. 날 현혹시킨 이 스페인은 너무 다양한 매력이 있어 뭘 어떻게 간추려야 할지 도무지 모르겠거든.

올베이로아(Olveiroa)를 약 14km 남겨두고 오랫동안 비어진 학교에 도착했어. 관리자도 없고 순례객들이 매트리스를 깔고 잘 수 있는 교실과 화장실이 전부야. 시계 바늘은 다섯 시를 향해 움직이고, 오는 길에 자신의 두 번째 순례길에서 예수님을 만나 세례를 받았다는 체코 파블릭에서온 Viladilin은 옆에서 19km를 더 가겠다고 해. 그럼 나는 가는 길에 알베르게(순례자전용숙소)를 찾으면 멈추겠다며 따라나섰어.

잘하는 짓일까?

스페인의 해는 아주 느릿느릿 저물어. 저녁을 먹고 배가 꺼질 즈음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강열함을 마지막으로 살며시 사라져 주는 해는 곧 다른 곳에서 아침을 열어 주겠지.

빌라딜린에게 여자 친구가 있어. 그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만장일치로 입을 모아 그의 여자 친구를 칭찬한데. 행복해 보여. 그도 그녀를 사랑한다고 했거든. 그런데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있데. 그래서 이 길은 네 번째로 걷고 있다네… 마음속에 하나님으로부터 강한 calling이 있는데 바로 신부님이 되라는 말씀인 것 같데.

“그녀를 사랑한다……. ” , “신부님이 되고 싶다…….”를 계속 반복하는 그에게 사랑도 사역도 중요해 보여서 나는 어떤 도움도 주지 못한 채 망설였어. 이런 상황에 어떤 단어를 어떻게 조합해 어떤 문장을 생성해야 할 지 너무 조심해졌거든.”있잖아, 그녀를 계속 사랑하고, 신부님이 하는 일들을 그녀와 함께하는 건 어때? 예를 들어 성당에서 신부님을 돕고, 마을에 가서 복음을 전하고, 수업도 하고, 봉사하고, 성서도 계속 공부하고, 성당도 청소하고?”

“성당도 청소하라고? ㅋㅋㅋ 그럼 신부님이 되지 말라는 거네?”

사실 나는 “Don’t be a priest” 말은 입 밖에 내지 않았다. 그저 “Do whatever a priest does with her”라고 했을 뿐…….

나중에 피스테라에 도착하기 전부터 이틀을 동고동락한 동갑내기 독일 친구, Nadine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그녀는 아주 단호하게 말했어.

“그는 이미 답을 얻었어, 인정하기 싫은 거겠지” ‘나는 모르겠어. 그게 답인지 아닌지.’ 하지만 확신에 찬 나딘에게도, 여전히 기도하는 빌라딜린에게도 이 길은 여전히 공평하게 그들에게 생명력을 주고 있다는 것이야. 그리고 그런 사실이 나를 미치도록 감동시켰어.

산티아고에 올려진 순례자들에겐 저마다 잠겨있는 문들이 하나씩 있었어.…

아주 가벼운 신학 이야기: 현대 신학 어디까지 왔나?

– Bible Green Class의 로마서 , Bible Red Class의 갈라디아서 공부를 보고

(2013년 회지 “평화의울림“에 개제된 글입니다)

김기대

 <근대(현대)란 무엇인가?>

근대의 시작은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라는 데카르트의 선언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쉽게 말해서 신앙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진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데카르트의 선언은 중세를 지배했던 기독교의 세계관에 대한 정면 도전이었습니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은 이 선언이 운동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시민들은 황제를 폐위하고 이성의 즉위식을 올렸고 많은 성직자들이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이성의 시대는 의학과 과학을 비롯한 여러 학문을 발전시켰습니다. 이성의 시대에 신학은 잠시 위기를 맞았지만 성서 비평학, 성서 고고학과 같은 이성적 분야를 발전시키면서 지위를 유지합니다. 이로써 종교는 이성 신봉자들의 기대와는 달리 소멸되지 않고 이성의 시대를 함께 살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성의 시대가 되면 합리적 존재인 인간이 항상 옳은 판단만을 해서 종교의 시대인 중세보다 좋은 시대가 될 것 같았지만 종교의 배타성 못지 않게 이성도 전횡을 휘둘렀습니다. 두 번에 걸친 전쟁과 인간의 욕망은 이성으로 통제되지 않았습니다. 가장 합리적인 이념체계인 사회주의도 결국은 위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사회주의의 위기는 철학적으로는 이성의 위기와 맥을 같이 합니다.

<포스트 모더니즘(후기근대)의 사회>

이성의 한계에 고민하던 유럽은 1960년대 변화를 시도합니다. 이른바 68세대라고 하는 새로운 문화의 세대가 사회를 바꾸어 나가기 시작합니다. 68세대는 “금지란 단어 이외에 모든 것을 금지한다”는 유명한 슬로건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모든 것은 허용되었고 오직 “이것을 하면 안되!”라는 금지라는 단어만 금지한다는 뜻입니다.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68세대는 다양한 문화를 창출해 내었습니다. 중세의 종교이건, 근대의 이성이건 어떤 것도 독점적이고 우월적인 지위를 차지하지 못하고 개인의 선택은 무한정 허용되었습니다. 상상력이 나래를 펴면서 영화가 단순한 오락을 넘어 철학적으로 사유되기 시작한 것도 이 때부터 입니다.

존재라는 것은 종교적인 것도 아니고 이성적인 것도 아니고 그냥 자유롭게 살아가는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가벼운 것이 되었습니다. 이성의 독선을 넘어 모든 것이 허용되는 분위기에서 사람들은 자유롭게 경쟁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사상은 늘 유한합니다. 무한한 자유라는 것은 무한 경쟁을 가져왔고 신자유주의라는 괴물을 낳았습니다. 사회주의의 퇴조로 자본주의가 승리한 것처럼 보였지만 우리가 고통의 세월을 보내고 있듯이 자본주의는 사회주의보다 더 추하게 종말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사회주의의 퇴조가 이성의 한계를 보여준 것이라면 자본주의의 퇴조는 포스트 모던 시대의 무한 자유의 한계를 보여준 것입니다.

사람들은 시대의 변화 앞에서 당황합니다. 예를 들어 여성운동가들이 종교의 시대나 이성의 시대를 온 몸으로 견디어 내면서 여성해방을 이루어 내었지만 새롭게 만난 현실이 자신들이 믿어왔던 것과 다르게 나타났을 때 설명할 방법을 찾지 못합니다. 유럽에 무슬림 이민자들이 늘어나면서 무슬림 여성들과 조우한 유럽 여성들은 처음에는 무슬림 여성들을 해방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입니다. 때가 되면 그들도 히잡을 벗고 사회의 당당한 주체로서 서게 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자발적으로 히잡을 쓰고, 자발적으로 남성에 종속된 여성성에 머물기를 원하는 낯선 이들 앞에서 유럽은 믿어왔던 것의 흔들림을 경험합니다. 이런 경우뿐 아니라 많은 경우에서 포스트 모더니즘은 장벽에 부딪힙니다.…

죄인을 사랑하신 예수의 길

2015-05-17 Sermon 죄인을 사랑하신 예수의 길

시편 85:8-13
주님께서 우리에게 평화를 약속하신다.
주님께서는, 주님의 백성 주님의 성도들이 망령된 데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진정으로 평화를 주실 것이다.
주님의 구원은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에게 가까이 있으니,
주님의 영광이 우리 땅에 깃들 것이다.
사랑과 진실이 만나고, 정의는 평화와 서로 입을 맞춘다.
진실이 땅에서 돋아나고, 정의는 하늘에서 굽어본다.
주님께서 좋은 것을 내려 주시니, 우리의 땅은 열매를 맺는다.
정의가 주님 앞에 앞서가며, 주님께서 가실 길을 닦을 것이다.

로마서 5:6-8
우리가 아직 약할 때에, 그리스도께서는 제 때에, 경건하지 않은 사람을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의인을 위해서라도 죽을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더욱이 선한 사람을 위해서라도 감히 죽을 사람은 드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이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실증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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