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목의 시험드는 상담소를 시작합니다.
를 가동합니다. 여기는 개인 상담 뿐 아니라 신학 주제, 김목의 잡문등이 포함됩니다.
여러 신앙적 고민들을 기존의 상담과는 다른 방법으로 접근하다보면 시험드는 경우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신앙은 시험을 통해 성장합니다.
1. 우리 목사는 무신론자에요.
사석에서 만나는 분들과 신앙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나는 무신론자에요”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종종 만날 때가 있습니다. 아마도 제가 편해서 목사 앞에서 ‘용기있게’ 도전적인 말을 하거나 전도의 싹을 처음부터 잘라 놓으려는 의도일 것입니다. 그때 저의 대답은 “저도 무신론자인데요!”라는 것입니다. 그럼 서로들 까르르 웃고 끝납니다. 아무리 썰렁해진 분위기를 반전시키려는 조크라 할지라도 목사가 무신론자라고 말하면 이거 큰 문제 아닙니까? 큰 일 날 사건입니다.
그런데 자칭 무신론자라고 하는 분들 중에는 왜곡된 신앙생활, 또는 왜곡된 하나님인식을 갖고 있다가 스스로 깨우친 냥 나는 신을 버렸다라고 하는 사람들이 태반입니다. 다시 말해 그들이 본디 갖고 있던 하나님관은 왜곡된 하나님 인식이었습니다. 자기들이 잘못 찾고 있다가 지금 깨달음을 얻은 것처럼 신이 없다고 말하니 이중의 실수를 범하는 것이지요. 제가 “나도 무신론자”라고 말할 때는 그들이 믿던 그 신이라면 나도 믿지 않는다라는 뜻으로 이야기 한 것이니 “우리 목사가 무신론자라니!”라며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나찌에 저항하다 사형당한 독일의 본회퍼 목사는 우리들에게 “하나님 없이 하나님 앞에”라는 화두를 던집니다. 나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는 그런 하나님이 아니라 있는 듯 없는 듯하면서 나의 선택을 존중해주고 격려해주는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 안에서 무력하고 약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로 그렇게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를 도우십니다.
요즘 가장 hot한 철학자 지젝은 “무신론자야 말로 가장 철저한 유신론자”라고 비아냥 거립니다. 폭력적이고 전횡적인 신관을 상정해 놓은 다음에 무신론 운운하니까 오히려 그들이야말로 근본주의적인 유신론을 역설적으로 선전하고 있다는 비아냥입니다. 주로 리처드 도킨스 같은 다윈 근본주의자들을 향한 비난이지요. 지혜로운 기독교인들은 이미 세속 세계에서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 그래서 그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를 향유하면서 동시에 하나님 앞에 서 있듯이 정의와 평화의 길을 가고 있는데 말이지요.
하나님이 없어도 하나님 앞에 서있는 것처럼 살 수 있는 삶, 가장 고결한 삶입니다. 독일 대부분의 종교인들이 나찌에 부역하느라 미쳐 있을 때 본회퍼에게 나찌에 저항할 수 있도록 힘을 준 것이 바로 “하나님 없이”의 신학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여전히 우리들의 삶 속에서 그의 권능으로서가 아니라 그의 약함과 고난의 능력으로 도우신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권능의 하나님만 믿다가, 내 이익을 위해 봉사하는 하나님만을 믿다가 어느 순간 무신론자가 되어버린 벗들에게 나는 여전히 “나도 그런 신은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