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이 세상에 온 이유
(2015년 평화의교회 40주년 기념회지에 개제된 교인 기고문입니다)
김일선 교우
우선 제가 하는 일부터 소개하는 것이 순서일 것 같습니다. 저는 한인들도 많이 거주하는 글렌데일 교육구에서 통역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제가 한 일들의 9할 이상이 개별교육 프로그램(IEP) 통번역이었습니다. 어떠한 이유로 학생이 학업에 부정적 영향을 받는 경우, 교육구는 학생에게 특수교육을 제공합다. 그리고 이러한 특수교육을 받는 학생과 학부모가 언어적으로 불편을 겪지 않도록 IEP 모임 통역과 모임 내용을 한국어로 번역하는 일이 저의 주된 업무입니다.
지난 여름방학 동안 오랜만에 가족이 모여 영화를 함께 보았습니다. 훌륭한 영화라는 평판이 자자한 ‘말아톤’이란 제목의 한국영화이었습니다. 마침 이 영화는 나의 일과도 크게 연관된 자폐 증상을 겪고 있는 자녀와 그 가족이 겪는 고통을 그린 영화로서 우리들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훌륭한 영화입니다.
정상적인 사람도 하기 힘든 42.195 킬로미터 전 코스를 완주한 우리의 주인공 초원이에게 무한한 찬사와 박수를 보냅니다. 그리고 초원이를 위해 헌신의 노력을 다하는 초원이 어머니에게도 존경의 말씀을 먼저 드립니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작가나 감독이 하려는 이야기는 초원이에게 마라톤을 가르친 코치가 초원이 어머니에게 하였던 이야기, 즉 어머니의 헌신은 어머니 자신을 위한 위안이나 자기만족 또는 현실도피이지 고통을 겪는 초원이에게 도움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가족이 겪는 고통에 더 많은 초점을 두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사실 외부 세상과의 교류보다는 자기만의 세계에 안주하려는 자폐아들이 이 사회에서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원하는지 말로 표현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이것을 우리 판단에 의해 자의적으로 해석할 수 밖에 없습니다. 특히 사회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자식에 대한 일방적인 모정에 휩싸인 어머니들은 객관적인 판단보다는 어머니 자신의 주관적 판단에 빠지는 것도 어쩔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자폐아들 역시 이 세상을 살아야 하는 까닭에 실제로 이들에게 살아가는데 무엇이 필요하고 이 세상을 살아갈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 더욱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적 능력이 떨어지는 이들에게 대학에서 공부할 학습 능력을 기대한다는 것은 무리일 수 밖에 없습니다. 사실 지식이라는 것은 우리들이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수단일 뿐이지 절대적인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지식이 아니라 얼마나 행복하게 이 세상을 살아가느냐에 달린 것입니다.
자신이 진심으로 원하고 바라는 것을 하였을 때 비로소 행복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어머니가 원하기 때문에 달려야 했던 초원이는 정말 행복했을까요. 어머니에게 만족감을 제공하였다는 포만감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스스로 정말 달리고 싶다는 생각을 가졌을 때만이 초원이는 진정한 행복감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이제, 초원이는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수단이 요구됩니다. 그리고 초원이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수단을 사회가 책임져야 할 것입니다. 초원이가 필요한 수단을 사회가 제공하였을 때, 어머니의 소망은 초원이보다 하루 늦게 죽는 것이 아니라 초원이가 오래 오래 행복하게 사는 것으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모든 인간은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갖고 있다”고 미 독립선언서에 명시되어 있습니다. 초원이와 어머니 그리고 가족 모두가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되었을 때 우리는 공공의 복지 사회, 하나님의 나라에서 산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