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의 강을 건너는 사람들
(2013년 회지 “평화의울림“에 개제된 글입니다)
세상이 만들어지기 전 우주는 혼돈의 상태였다. 혼돈, 카오스, 암흑, 그것은 무질서의 상태가 아니다. 오히려 혼돈은 잠재질서라고 표현해야 맞다. 그것은 잠재성이다. 아직 ‘무엇’이라고 정의하여 부를 수는 없지만, 무엇으로도 될 수 있는 무한한 잠재성이다. 이런 의미에서 혼돈은 현대 천체물리학의 빅뱅이론과도 맞닿아 있다. 아직 분화되기 이전의 우주는 체적은 제로에 가까우면서도 질량은 무한대인 암흑의 상태였다. 그런 암흑의 상태가 현재와 같은 우주의 모습으로 진화되기 까지는 물론 137억년이라는 세월이 흐르기는 했지만, 어쨌든 그 시발점은 암흑상태였다.
신의 입자라고 불리는 ‘힉스’라는 것이 있다. 복잡한 천체물리학적 설명을 잘 해낼 수는 없지만,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빅뱅 당시 암흑물질을 변화시켜 현재의 우주로 진화할 수 있게 한 입자라는 것이다. 힉스는 질량이 없던 다른 입자에 질량을 주고는 자신은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고 한다. 천체물리학자들은 힉스 입자가 발견되면 그 동안 밝혀지지 않고 있던 우주 탄생의 비밀이 어느 정도는 해소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인류는 오래 동안 우주가 어떻게 태어났는 지 설명하려고 많은 노력을 기우려 왔다. 여기에 인류가 쌓아온 온갖 지식이 동원됐으며, 과학 그 중에서도 물리학이 그 핵심에 있다.
그런데 힉스가 ‘발견’되면 정말로 우주 탄생의 비밀이 밝혀지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는 것이 과학자들의 설명이다. 힉스가 발견되면 현대 물리학의 기초가 되는 ‘표준이론’은 완성되지만, 표준이론이 모든 물리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궁극의 이론은 아니기 때문에, 힉스는 또 다른 물리이론을 요청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주 탄생의 비밀은 밝혀지지 않은 채 여전히 신비로 남을 것이다. 다만 좀 더 핵심에 가까워질 뿐이다.
아주 오래 전, 우리의 선조들도 우주의 탄생에 대하여 이와 비슷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다음의 이야기는 중국의 창세신화를 재구성한 것이다. 여러 곳에 전해져 내려오는 것을 나름대로 재구성하였다. 물론 창세신화가 중국에서만 전해 내려오는 것은 아니다. 한국에도 있고, 일본에도 있다. 그리고 이집트나 바벨론 등 고대 근동 지역의 창세신화는 많이 알려져 있다. 말할 것도 없이 히브리 성경에 등장하는 창조 이야기도 여기에 속한다. 이들 신화의 근본적인 공통점은 질서의 출발점을 카오스에 두고 있다는 것이다.
옛날 옛날 아주 오래된 옛날, 웃기는 녀석이 하나 있었다. 생긴 것도 웃기고, 하는 짓도 웃긴 것이 정말로 웃기는 녀석이다. 그 녀석은 몸은 하나요, 다리는 여섯에, 날개가 넷인데, 머리가 없었다. 전체적으로 불그레하여 얼핏 보면 달걀 같기도 하고, 또 얼핏 보면 새 같기도 하지만, 날개 달린 것을 빼면 새라고 하기에는 좀 뭐하다. 그래도 사람들은 이 녀석을 새라고 불렀다. 머리가 없으니 당연히 눈. 코. 귀. 입이 없어 냄새도 맡지 못하고, 보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듣지도 못하고 말도 못한다. 정말 웃기지 않은가! 더 웃기는 것은 이 녀석이 노래도 잘 하고 춤도 잘 춘다는 것이다. 어떻게? 그건 나도 모르겠다. 여하튼 춤과 노래를 할 줄 아는 것만이 아니라 좋아한다는 것이다. 생각할수록 말이 안되지만 그런 녀석이 있었다. 그의 이름은 ‘황제의 강(帝江)’이라고 하였다.
세월이 흘러 ‘황제의 강’은 어찌어찌 하다 세상의 중앙을 다스리는 임금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