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 메이지 교육 칙어 그리고 국민교육헌장(목회 서신)

매사추세츠 주립농과대학 학장이었던 윌리엄 클라크는 1876년 7월 일본 삿포로 농림학교 초대 교장에 취임합니다. 그가 일본에 처음 도착했을 때 큰 가방에 든 많은 성경책을 보고 장학관이 성경교육을 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이에 클라크가 돌아가겠다고 하자 장학관은 방과후 성경공부를 허락합니다. 20세기 청소년들에게 꽤 유행했던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도 그의 말입니다.

그의 제자 중에 일본의 신학자 우찌무라 간조가 나왔고 우찌무라의 제자 중에 김교신 유영모가 있습니다. 1891년 1월 도쿄 제일고등중학교 강당에서 메이지 천황의 초상과 그가 서명한 교육칙어에 대한 낭독의식을 거행하는데 30대의 젊은 교사가 그것을 거부합니다. 언론은 ‘불경사건(不敬事件)’으로 부르면서 그 교사를 사회적으로 매장합니다. 그가 우찌무라 간조입니다.

러일전쟁이 끝난 후에는 “앞으로 일본은 동양평화를 위한다면서 더 큰 전쟁을 할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이 일본에 불벼락을 내리게 될 것이다”라고도 말했습니다. 이게 바로 성서의 힘입니다. 성서는 주술서(呪術書)가 아닙니다. 평화를 위한 고백서입니다.

고국에서 목사를 자처하는 한 망나니가 하나님의 이름과 성서를 모욕하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할렐루야 아멘을 외치는 자들에게 우찌무라의 말을 전해주고 싶습니다. ‘당신들에게 불벼락이 내릴 것이다‘.

오늘은 성서주일이며 지난 5일(목)은 제가 초등학교 4학년때인 1968년 만주군 장교 박정희가 일본의 교육칙어를 본 떠 만든 국민교육헌장발표일이었습니다. 어린 아이들에게 얼마나 주입을 시켰으면 국경일도 아닌 그 날을 제가 아직도 기억하고 있겠습니까? 당시 교사들은 국민교육헌장을 못외운 아이들을 고문하듯이 두드려 팼습니다. 역시 일제의 잔재인 조회 시간에 전체 학생들 앞에 데려 나와서 망신을 주기도 했습니다.

왜 그 때 우찌무라 같은 선생이 없었던 걸까요? 교사노조도 없던 시절(물론 지금도 법외노조인 전교조만 있을 뿐입니다) 며칠 내로 못외우는 학생이 없도록 하라는 교육당국의 압박이 얼마나 심했으면 선생들이 망나니 칼을 휘둘렀을까라는 측은함도 있습니다.

이 모든 비극적인 일들이 다시 발생하지 못하도록 막는 힘도 성서에서 발견해야 합니다.

Comments:0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