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과 이토 히로부미

“일본 유명한 정치가 후작 이등박문씨가 이달 23일쯤 입성한다 하니 이등박문씨는 당금 세계에 유명한 정치가요 또 우리 대한 독립한 사업에 대공이 있는 사람이라. 이번에는 유람차로 오니 정부와 인민이 각별히 후대하기를 바라노라.” 1898년 8월20일자 기사입니다. 조선의 독립을 열망하던 사람들이 만든 독립신문에서 조차 7년뒤 을사늑약으로 조선을 침탈한 이토 히로부미의 실체를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의 비공식 유람방문 조차 극진히 환영합니다.

독립신문은 이런 기사도 실었습니다. 8월 31일자 ‘부끄러운 일’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이등 후작이 외교부에 갔다가 안경을 잃었다 하니 당당한 제국 외교부에서 귀한 손님이 안경을 잃은 것은 남에게 들려주지 못한 수치”라고 조선의 관료들을 비난했습니다. 한일간의 갈등이 생기면 일본의 편을 들라고 기사를 쓰는 2019년의 대한민국 보수 언론과 비슷하지 않습니까?

러일전쟁 중인 1904년 다시 대한제국을 찾은 이토에게 고종은 최고 훈장인 금척대훈장을 수여합니다. 이토는 궁중 나인들에게도 인기가 좋았다고 합니다. 매 방문때마다 나인들에게 유럽의 과자나 장신구들을 선물했다고 하니 하급나인도 다룰 줄 아는 사람들이었던 거죠. 특히 그의 동양평화론은 제국주의 야욕으로 아시아를 넘보는 서구 세력 경고 차원에서 아시아 진보 지식인들에게도 인기가 높았습니다.
그 중 한 사람이 안중근이었습니다. 그는 동양평화론에 깊은 관심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1908년 동의회라는 연해주 지역 의병단의 부사령관이었던 안중근은 잡혀온 일본군 포로들에게 평화론을 역설하며 다른 의병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풀어줄 정도로 평화주의자였습니다.

그러나 이토의 변절에 실망한 안중근은 그의 거짓 평화론을 징벌하기 위해서 1909년 10월 26일 하얼삔 역에서 이토를 저격합니다. 그리고 감옥에서 일본인들이 읽고 깨달을 수 있도록 한문으로 동양평화론(미완성유고)를 남깁니다.

거사가 있던 날 하얼빈역 관리회사인 ‘남만주 철도’의 이사 다나카 세이지로에 따르면 러시아 병사들과 경찰들이 달려들자 당당한 이 남자(안중근)는 권총을 높이 들어 아직 한 발이 더 남았다는 신호를 보냈다고 합니다. 아마도 병사들과 경찰들은 죄가 없으니 나머지 한 발의 희생자가 되지 말라는 몸짓이었겠지요. 훗날 다나카 세이지로는 자기가 만난 사람 중에 가장 위대한 사람은 안중근이었다고 회고합니다. 이토 히루부미와 같은 조슈번 출신 당시 37세의 다나카 세이지로는 이날 이토 히로부미를 지극 정성으로 대접해 더 높은 자리를 꿈꾸었을지도 모릅니다. 일순간 그의 꿈은 물거품으로 돌아갔지만 안중근 의사가 훌륭해 보였던 것은 어쩔 수 없었나 봅니다.

이 거사로 아시아의 맹주를 꿈꾸던 이토의 야욕도 날아가 버렸습니다. 그로부터 70년 후 종신집권을 꿈꾸던 박정희의 야욕도 김재규의 총탄에 날아 갔습니다. 우리가 어떤 종류의 꿈을 꾸어야 할지 이 두 사람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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