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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영조의 사색 (3)

문영조의 사색 (3)

• 4.19의 의미

동숭동 대학로의 문리대가 먼저 달려갔다. 20분만에 효자동 길에 들어서니 건물속에 진을 치고 기다리던 경찰들이 사정없이 사격하여 수십명의 사상자가 나왔다. 그들은 앰블란스에 실려 중앙청 앞길을 지나 안국동과 원남동을 통과하여 창경원 앞 S 대병원으로 앵앵거리며 달렸다. 호송하는 동료들이 피묻은 흰 옷을 흔들며 차옆에 매 달려 위급 상황을 알렸다. 그 뒤로 계속 밀고 효자동길로 들어 선 그룹은 남산의 D대학이었다. 그들은 길 옆에 널려있던 하수구용 시멘트 구조물을 굴리며 청와대로 돌진해 들어갔다. 다시 그들 뒤를 멀리 한강 쪽에서 달려온 C대학이 받쳐주었다. 수많은 희생자가 그 세 대학을 중심으로 생겨나니 시내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대학들이 몰려들어 광화문광장에 북적일 때는 경찰들도 달아난 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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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혁명 이후 였다. 처음 경험한 혁명이 성공하여 눈앞에 펼쳐지는 기이한 현상에 젊은이들의 흥분하는 모습들이 도처에서 분출되기 시작했다. 대학들은 경쟁하듯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되지도 않을 요구 조건을 내 세우며 중구난방으로 외쳤다. 눈뜨면 데모요 행진이요 구호 외침이다. 어깨동무로 판문점으로 달려가서 북쪽 학생들과 대화 하여 통일하자는 대학들도 나왔다. 그런 것은 남쪽 정부가 안정되고 질서가 회복된 후에 요구해도 시의적절할지 의문되는 민감한 문제였다. 또다른 문제는 책임 내각제 총리인 장면이 위급 상황 때마다 결단을 내릴 생각은 아니하고 숨어 다니기에 급하고 청와대에 상징적으로 대통령직에 있던 윤보선은 이리갔다 저리 붙었다 시계 추 모양으로 처신하니 정치 군인 하이에나들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기 시작했다. 결국 식은 죽 먹듯이 낼름 악귀들의 손에 나라 전체가 먹히고마니 과연 죽쒀서 개줬다.억울하게 알면서 당한 꼴이다. 그러나 4.19정신은 1987년에 드디어 계승되며 민주의 여명이 밝혀지기 시작했다. 시간이 걸리고 부끄러운 세월도 겪어가며 투쟁 끝에 얻은 문재인 정권이 성공하여 한반도에 평화가 들 불처럼 퍼지기를 힘 쓸 일만 남았다.

• 대형교회
어느 교회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강조하면 이 시대의 교인들은 모두 다 집으로 가 버릴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 깨끗한 양심을 지니고 사십시다. 돈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좋은 일이 있어도 뒤에 서는 여유를 가집시다. 이웃을 도우며 봉사와 희생하며 즐깁시다. 여러분, 주님은 기득권자나 부자들의 오만을 싫어합니다. 넓고 큰 길보다 좁고 거친 길을 찾아 참 보물을 얻어 가집시다. 이럴 경우 교회당은 텅텅 비고 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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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요즘은 성경의 예언대로 거짓말을 슬쩍 꾸며서 이것 저것 적당히 섞어 아름다운 요리를 차려줍니다. 여러분, 주님은 우리를 위해 고통을 당했으니 우리는 평안을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주님은 가난한 몸으로 먼지 길을 다니셨으니 우리는 깨끗한 환경에서 부를 누르면서 잘 살아야 됩니다. 십일조 내면 하늘 창고에서 여러분 금고로 직접 부어 주실 것입니다. 부자로 살다가 축복받고 구원 받는것이 이 교회의 최종 목표중 하나입니다. 이렇게 선언하고 더해서 신비스런 모습과 이상한 행동으로 연출하면 만사 오케이가 되는 것입니다. 구름처럼 모여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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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코로나19의 공포가 지구 전체를 대상으로 퍼지고 있습니다. 왜 나타났을까. 거짓과 사악을 미워하시던 주님은 많은 대형교회와 그 추종자들을 모른 척하신지 오래되었습니다. 이들은 전염병도 패가망신도 두려워 하지 않고 덤벼드는 광신자들입니다. 우글우글 모여 헛소리로 떠드는 꼴은 인간의 눈에도 역겨운데 정의의 재판장이신 주님의 시선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광경이 어떠하실까 무척 궁금합니다. 독재정권이 틀림없이 타락하듯이 교회가 비대해지면 사람의 욕심이 큰 돈과 어울려 엉망으로 요동치기 마련입니다. 무슨 진리나 고난 극복과 인내의 찌꺼기 나마 남아 있을리가 없습니다. 코로나19의 세력이 사라질 때 교회의 거짓과 기만이 영원토록 날아가기를 바라 마지않습니다.

• 알로하 여인들

300명이 살았다. 1970년의 로스앤젤레스 한인 인구다. 구멍가게 비슷한 마켓 하나가 올림픽 길과 하바드 교차로에 있었다. 그러나 막상 찾아가니 어떤 날은 열기도 닫기도 할 정도로 한산했다. 50년이 지난 지금의 한국타운을 어느 누군들 상상할 수가 없었다.
교회도 네 곳 정도로 로벝슨 거리에 감리교, 제퍼슨에 장로교, 타운에 침레교와 또하나 독립교회가 전부였다. 가까운 장로교회를 택했다. 한인 이민자들의 최초 기념관이요, 애국운동의 중심지인 국민회관과 형제처럼 나란히 서 있는 오래된 벽돌 건물이었다. 그곳에는 하와이에서 건너온 사탕수수 노동자들의 가족도 있었다. 남자는 한분도 안보이고 여자 장로 한 분과 권사 몇몇 분이 계셨다. 그야말로 사진 결혼을 하신 역사의 산 증인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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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80세 전후의 그녀들이 신기하기도하고 존경스럽기도 하여 친할머니처럼 대해서 많이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그들은 교회 정원과 꽃 밭을 가꾸며 옆에서 도우미하며 따르는 나와 여러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남편들은 16시간의 노동후에 돌아와 마루에 쓰러져 자고 아침에 일어나서 보면 신발이 그대로 신겨져있고 또 벗지도 못하고 사탕수수 밭으로 나갔다고 했다. 여자들은 7,8명이나 되는 아이들 돌보고 곧 원주민의 집이나 일터에 나가니 아무도 아이들을 돌볼 수가 없었다. 집에 돌아와서 이것 저것 섞어서 한 냄비그릇에 비벼서 방안에 던지주면 그 많은 아이들이 악귀처럼 달려들어 눈 깜짝할 사이에 비워 놓고 더 달라고 아우성 쳤다는 것이다. 그런 중에도 조국땅이 그리워 빼앗긴 나라를 찾으려고 정성을 다해 돈을 뫃아 상해의 임시정부로 송금하기를 잊지않고 계속했다고 할때마다 나는 너무나 부끄러운 자신을 돌아보며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나는 사랑하는 아름다운 하와이 여인들과 헤어질 날이 오고 말았다.
교회 분규가 나고 살 길을 찾던 머저리 청년은 평화의 교회 교인이 되어 있었다. 9가와 보니브래 근처의 천주교 평신도 회견에서 셋방살이 할 때였다. 내 기억으로 1977년 여름인가 보다. 내 사랑 알로하 여인들이 들이 처 들어 온 것이다. 나를 에워 싸고 소리도 지르고 달래기도 했다. 네 교회 놔두고 왜 여기와서 이게 무슨 꼴이냐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나도 속으로 끝없이 울었지만 확답을 못하고 그들을 위로하며 돌려보내니 아직도 내 가슴엔 첫 사랑의 상처마냥 아련한 자국이 남아있다.

• 인생

너무 깨끗하게 살면 면역력이 떨어져서 작은 시험에도 넘어지기 쉽지요. 인생처럼 자연에 맞춰서 살아가기 힘든 동물도 없다고 봅니다. 동물들은 그야말로 일용할 양식에 만족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내일 걱정없이 하루 하루 먹이감을 얻으면 만족하고 딴 생각을 아예 안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냉장고도 없으려니와 음식을 햇볕에 말려 두거나 소금에 저려서 염장하거나 연기에 그을려 훈제하는 방법을 모릅니다. ” 내일 걱정은 내일이 맡아서 할 것이다. ” 라는 말씀에 꼭 적합한 것이 동물들의 생활이 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다행인지 불행인지 내일을 걱정할 능력이 있습니다. 냉장고에 보관하고 은행에 저축하고 부동산 사놓고 주식에도 투자를 합니다. 그래서 미래 철학은 어찌해야 인간의 욕망을 조절하여 공정과 평등의 사회를 이룰 수있는지를 밝혀내려고 고심할 것 같습니다. 가능한 한 동물들의 생활습관을 답습하는 데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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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깨끗하게 살다가 악마가 던져준 작은 독극물에 희생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의 흘린 피가 완전 허무하게 끝나지 않은 것은 참 다행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희생이 우리 몸속에 들어와서 동화되어 오래도록 흐르며 깨우쳐서 새생명을 부어 주기 때문입니다. 그 피는 하나의 밀과 같이 썩어서 많은 열매를 맺게 합니다. 하찮은 악마의 유혹을 피하는 방법이 전해오고 있습니다. 욕망이 춤추는 인간 세상에서 마음을 가다듬고 편안하게 사는 법을 그리스 철학이 알려주고 있습니다. 용모가 보통으로 수수하고 근력이 생활을 유지할만하고 말솜씨가 보통보다 약간 못하고 경제는 80% 정도로 만족하고 재능도 그저 그렇고, 이러한 경지가 인간 최고의 행복한 조건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우리도 숟가락을 얹어 봅니다.
모임에서 남보다 적게 말하고 의로 인하여 손가락질 받을 때 기뻐하고 이득이 생길때 굼뜨게 움직이며 거짓 선지자들의 말을 분별할 줄알며 남을 용서하고 또 도울 때마다 그날로 잊어버리는 것이 어떨까 생각합니다.

• 하 하 하
노무현이 출두하는 모양새를 윗 층에서 내려다 보며 승리의 미소를 짓는 두 검사. 그렇게 청렴을 장려하고 바른 말로 백성들을 계도하며 호소하던 그 사자후의 노무현 때문에 오물에서 놀던 두 검사는 쾌재를 불렀다. 제가 무슨 통뼈라고 혼자서 양심 내 세우며 큰 소리로 떠버리는 꼴이라니, 내 참. 너 이제 제대로 걸렸다. 검사스러운 된 맛을 제대로 알려주마. 하하하.

• 과유불급

조국백서에 나오는 검사들의 칼춤은 세계적 수치다. 도저히 흉내내기가 불가능한 조국교수의 생활태도는 바로 성인 그룹에 가까운데도 무엇을 뒤져서 뒤를 캐 보겠다는 것인지 옆에서 보기 딱할 지경이다. 검사들의 엉뚱하고 미련함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한 나라 중앙에 이런 무리들이 포진하여 70년을 조작질하며 이리 붙고 저리 붙어 부정을 밥 먹듯하고 백성을 뜯어 먹다니 이들이 과연 인간일 수가 있을까. 독재자에게는 한없이 복종하고 민주정부에는 갑자기 대어들어 물어 뜻는 버릇은 어디에서 배운 것인가. 심은대로 거둘 때가 왔다. 그들이 수확할 열매를 구경할 일만 남은 것같다.

• 슬픈 기억 3가지 ——

제 1 화
우리는 언제부턴가 가난한 자와 약자를 유난히 무시하는 버릇이 있다. 요새 갑자기 기레기들의 창궐로 그 썩은 냄새가 고약하다. 청와대 기자 회견에서 45도 각도로 누워있는 아이가 부시시한 모양으로 일어나서 객기를 부리는 태도는 오래도록 기억되고도 남을 일이다. 자기깐에는 용기를 내 보인 모양인데 과연 그럴까. 유신때에 그랬어도 어색하게 보였으리라. 끌려가 당했다고 쳐도 욕먹을 추태였다. 순하기가 양같은 문재인정부 앞에서 그 짓을 벌리다니 참 아니 어울린다. 인간 찌꺼기를 고백하는 현장이요 그런 짓을 시켜서 밥벌이하는 데스크도 한심하기는 마찬가지다.

제2화

김대중이 현해탄에 던져지기전 구출되어 자기 집앞에 나타난 일은 우리를 슬프게한다. 사람이 유기견인가. 이 짓 하고도 살아남을 있을까. 한 나라의 야당 지도자의 이런 모습은 독재자의 마지막에 가던 꼴에 비하여도 너무나 슬프다. 독재를 멈추고 남도 다하는 민주주의를 하자는데 그런 짓을 하다니. 나같은 소인도 그때 이미 짐승들의 마지막을 예언할 수있을 정도의 유치하고 살 떨리는 사건이었다.

제3화

그렇게 핍박받던 김대중이 대통령에 당선되고 2000년 노벨상을 받기전이다. 수만통의 반대 편지가 주최측에 쇄도했다는 것이다. 100년 노벨상 역사상 최초로 생긴 기현상이라고했다. 남북이 갈려 어디를 가나 고개들기가 부끄러운 중에 같은 집안에서 이간질을 해 대다니. 혹 형제끼리 다투다가도 위기에는 힘을 합쳐 대처하는 것이 도리이고 선한 전통이련만 밉기 시작하면 끝까지 가야 속이 풀리는 모양이다. 하긴 그런 마음보로 투표를 하니 괴물들이 지도자로 나타나는 것이리라.
그 편지들이 영원히 기록으로 남아 두고두고 한국의 아픔으로 흔적을 남겨질 일은 생각하지 못했을까. 이제는 우리도 신사 코스프레를 해야 하겠다. 청빈사상과 군자의 위풍과 중용사상도 이미 가지고 있다. 가라앉는 타이타닉호에서 의연히 양보하며 죽음을 맞던 선장과 그 부하들의 신사도를 우리도 할 수있으리라 자부해 본다.

• 교회 창립

생활 환경이 너무 열악하면 기본적인 도덕도 떨어지기 마련이다. 소년 시절에 겪은 한국전쟁은 나에게 서울생활을 허락한 셈이 되었다. 1950년 중반부터 눈에 뜨이는 광경은 부녀자들의 고함 소리였다.즉 머리 끄댕이 잡고 싸우는 모습이 여기 저기에서 목격되었다. 그 이유는 사소한 것으로 척박한 살림속에서 자식들 키우는데 필요한 식품과 필수품 절대 부족이 그 주요 원인이었다. 훔쳐 먹은 아이의 에미는 창피해서 더 소리 지르고 피해자도 물러설 수있는 여유가 없었다.
여기 저기에 교회가 들어서고 평화의 메시지를 전했다. 사연 많은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 그러나 막상 찾아가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억울함과 원망의 찌꺼기를 제거하기에는 교회도 역부족이었다. 분열이 일어나고 싸우기 시작하면 그 끝이 안 보였다. 드디어 한국 교회의 분쟁이 세계적인 화제거리로 퍼져나갔다. 유명 국제 선교회와 종교회의에서 안건에 올려놓고 토론을 벌였다. 신학빈곤과 죄의 가공성으로 위협하여 석고화되도록 신앙을 몰아가는 특이한 웅변술로 대중을 현혹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한 환경에서 자란 우리 세대가 배우는 것은 친일파 선생들의 미꾸라지 생존법과 경쟁자를 한방에 보내버리는 “빨갱이” 라는 한마디였다. 반공을 생의 목표로 삼고 일전불사의 기개를 부리며 대어들면 이것이 최고의 의인되는 길인 줄알며 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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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존 케네디가 열어 놓은 이민의 물결이 시작되자 나성에 갑자기 한인들이 불어났다. 그러나 생활 전선은 영어가 서툰 이민자들에게 호락호락할리 만무했다. 낯선 땅에서 긴장속에 살다가 주일에 갈 곳은 한국교회가 유일했다. 미래가 불안한 교인들은 그런대로 위안도 받고 정보도 교환하며 믿음을 키워갔다. 그러다 곧 자기에게 관심을 덜 보이면 주류와 비주류로 갈리기 시작하고 분쟁으로 발전하게되니 그많은 교회가 신기하게도 동일했다. 교회 마다 갈라지고 다투다 보니 미국 교회로도 소문이 나고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다민족 사회에서 살아가야하는 한국인에게는 치명타가 될 수밖에 없었다. 저 친구들은 그렇고 그런 민족이라고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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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있는 젊은이들이 모였다. 이 모양으로 가다가는 한민족 기피 현상이 일어나고 우리의 생존과 후손의 불이익을 염려하지 않을 수없는 사태가 올 것같았다. 그래서 30여명이 모여 의논 후 교회를 창립하니 바로 평화의 교회다. 평화를 표방하고 세운 교회이므로 한국인 교회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그 방지책으로 강령을 제정하니 7가지 세칙이 아래와 같다.
1) 신령함은 귀한 축복으로 내면에서 소화하여 연단을 통해 겸손과 사랑으로 표현된다.
2) 공적인 소통은 복음의 의와 정직한 인간성에 기초한 용서와 감사로 마무리한다.
3) 교회의 모든 기본 의무를 전통 교회 못지않게 지킴으로 믿음과 헌신의 모범이 되자.
4) 선배 교우들의 애국과 민족 정기 함양을 답습하자.
5) 우리가 평화의 민족임을 미국 노회와 사회에 적극 홍보하자.
6) 의와 불의를 분별하여 예와 아니오를 선호하는데 주저하지 말자.
7) 만약 당회나 지도자들의 심각한 분쟁으로 혼란이 발생할 경우 곧 바로 귀가함은 물론 그 순간부터 교회와 교인은 없는 것으로 인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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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 교회들이 여러 곳에 세워지고 인구도 증가했지만 그 내용은 대동소이하니 어느 누구도 타민족과 더불어 사는 법을 알려주지 않았다. 새 이민자들은 교회와 직장과 사입장에서 좌충우돌하며 살아가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여기 저기 상점과 마켓에서 인종간의 충돌이 보도됐다. 대부분 말이 서툰 한인들이 문제인 듯이 몰고갔다. 교회들은 여전히 믿음과 구원을 강조하며 사회적 문제를 다루지 않았다. 작은 교회 하나가 이렇게 밀려 오는 증오의 쓰나미를 막아 서기가 역부족이었다. 모임마다 미소와 친절을 지금부터라도 실천하기를 강조하건만 대다수가 남탓 으로 결론을 내렸다. 결국 1992년 4월 29일 나성 폭동은 터지고 한인들이 그 표적이 되니 소수의 개념있는 청년들은 알면서도 당한 꼴이 됐다. 소수의 새 이민자들을 이용해 제물로 태워버린 음모가 더 컸다. 너무나 무력하고 슬퍼서 외쳐보았지만 아무도 들어 주지않는 나무 한 구루 없는 들판의 들개 신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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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은 코로나19의 해가 되었다.좋아지고 나빠지는 것을 누가 알리요. 모두가 돈을 쫓다가 다 놓치고 결국 1%의 부자에게 부가 몰리고 자연은 파괴되고 인성은 말라가는 세상에 접어들고 있다. 초기 신앙의 혼돈에서 벗어나 신앙의 자유를 구가하며 인간성을 표현하던 시대가 지나니 이제는 천민이 아닌 부도덕의 자본주의가 득세하니 교회도 그쪽으로 가담했다. 보이지 않는 신을 믿는 경건은 살아지고 보이는 설교자와 강단에서 연출되는 황금 송아지 춤속에서 굿판이 벌어진다. 교인 수가 많을 수록 은혜가 넘칠 것이라는 가설은 이미 거짓으로 들어 났다. 평화의 교회가 좁고 거친 길을 찾아 가고 있음은 이 세태가 증명해 주고있으니 우리는 끝까지 믿음을 지킬 일만 남았다.

• 어디에 계십니까?

내 나이 80을 넘겼습니다. 주위가 조용해지니 이 작은 교회에서 같이 주님을 섬기던 선배님들이 자주 떠오르는 요즘입니다. 한국에서 다 한가닥 하던 노인들이 늦게 이민와서 식구들을 정착시키는 중에도 진실하게 교회를 섬기던 분들이 대부분이 셨습니다. 노익장으로 관리 청소나 재봉일을 계속하시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또 은퇴하신 분중에는 각종 김치담그기, 함경도식 가자미 식혜 만들기와 음식 바자를 통해서 건축헌금을 모으거나 그 분위기를 긍정적으로 끌어 올리는 권사님들도 많았지요.
그럴 때는 그 옛날 이천년전의 초대교회가 생각날 정도로 모두가 열심이었어요. 그런데 그 많던 분들이 아침 안개가 걷치듯이 그 자리에 아니 계십니다. 그 중에는 한국 신학대학 졸업 동기 삼총사 여인들이 고고하신 미를 뽑내기도 하고 한국교회 각 분야에서 활동하시되 청렴하게 몸을 지키신 어른들은 그 말씀과 걸음거리 마저 절도가 있으시면서도 당당했습니다. 공동회의 때는 조용히 계시다가 젊은이들의 이말 저말이 나오고 잠시 지루해지면 일어나서 ” 당회 결정대로 통과하기를 재청합니다.” 하고 회의를 미치도록 하는 노련미도 멋이 있었습니다. 물론 이 교회 전통에 재정등의 비리는 거의 없었고 매우 건전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어느새 세월은 가고 그 분들이 차지했던 자리는 허전합니다.
” 우리의 년수가 70이요 강건하면 80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 가나이다.” 시편 90:10
참 인생은 순간이더군요. 날아 간다니까요. 그 시절 반 세기가 지나고 꾸어다 논 보리자루 같이 구석에 박힌 제 신세가 누가 보아도 처량합니다. 후배들이여, 나처럼 어영부영 살지말고 힘 내어 교회와 이웃을 진심으로 섬기세요. 그러면 우리들의 훌륭하신 선배님들의 뚜렷한 발자국을 따라 갈 수있습니다. 그나저나 그렇게 근사하시던 선배님들, 도대체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 친구

노가 말했다지. 나는 대통령 감이 맞다. 그 이유는 문재인이 나의 친구이기 때문이다. 그 말은 내가 문재인의 친구가 아니라는 말이다. 내가 대통령이 됬다고 나를 주어로 박아 놓고 서술하는 것은 잘못이다. 문이 주어가 되어야 두 사람의 인간 가치가 들어날 것이다. 즉 문이 노의 친구이므로 노가 깜이 될 수있다는 말이다. 어느 누가 문의 진정한 친구가 될 수있으리요.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다.아, 빛나는 나, 노무현이여. 나는 어쩌다 문과 같은 사람을 단짝으로 끌어 들였는가. 그는 백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한 천하의 의인이요 참다운 영웅이다. 나는 정말 행운아중의 행운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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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전국시대 최고의 의인으로 위나라 정승인 신릉군이 있었다. 그는 문무겸전으로 국가의 운명이 걸린 전쟁에서 큰 공을 세웠다. 백전백승하던 진나라의 백기장군을 세번이나 물리친 불세출의 영웅이다. 그러나 그대는 아는가. 그의 가장 친하던 친구는 모공과 설공이었다. 자기 집에는 3000명의 식객이 십년을 넘게 머무르며 천하를 논하고 있었다.그 중에는 이름난 선비와 학자와 장수들이 무수했지만 그들과 대화도 하고 토론을 벌이다가 속이 답답하고 막힐 때에는 시장통으로 달려가 모공과 설공을 찾았다. 모공은 도박장에서 심부름하는 천인이요 설공은. 간장장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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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여러번 신릉군의 청을 거절하니 그 이유가 절묘했다. 우리가 하루 벌어 하루 사는데 큰 불편이 없어요. 만일 신정승 밑에 들어 가서 벼슬하면 큰 집에서 하인들 부리며 호의호식하겠지만 마음은 항상 긴장속에 살면서 위 아래 눈치를 보아야하니 그 수고도 만만치 않을 것이외다. 지금의 우리 생활은 그렇게 편할 수가 없어요. 남의 눈치도 아니 보고 긴장도 아니하고 하루하루를 즐기니 온 천하가 내 것같고 즐겁습니다. 이렇게 신릉군이 오시면 시정 민심도 아뢰고 천하 정세도 논하게 되니 참 좋습니다 그려. 상하 관계도 아니고 친구로 평등을 유지하니 피차 얼마나 편합니까. 다시는 그런 제안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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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은 야망이 있었다. 어려운 환경에서 상고를 나와 고시에 합격하여 그 힘들었던 가난을 벗어나 체면도 차리고 돈맛도 보며 기를 펴게되니 살 맛이 난다. 그러나 그는 신중한 사람이라서 인생의 본질을 탐구하며 고민하니 혹 두번 사는 인생이라면 몰라도 오직 한 번 사는 인생을 시류에 떠 내려 가듯 가치없이 보내기는 너무 억울했으니 마치 평화의 가족같은 분이었다. 그후 그는 모든 일에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걸면서 큰 뜻을 펴서 후세까지 아름다운 가르침과 본보기를 남겼다. 이 모든 것이 친구를 잘 둔 덕이다. 그의 친구는 물론 문재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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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은 인간 그 자체가 진국이다. 야망 같은 것이나 사나이의 기개 등은 아예 체질에 맞지 않았다. 민권 운동하며 부산 광복동 거리를 노무현 옆에서 행진하던 문재인은 투사 라기보다 얌전한 선비였다. 짐작컨데 모친의 교육이 청빈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전쟁중에 흥남 부두를 떠나 LST배를 타고 거제도에 도착한 피난민중에 그와 같은 드높은 기상의 소유자들이 있었다니 놀라운 일이다. 뜻이 있으면 길이 있다던가. 고난 속에 피어난 연꽃인가. 세계적인 의인을 키워내니 한민족과 온 세계의 홍복이 될 것이다. 그는 과연 진리의 길로 사라진 노무현의 진정한 보호자요 영원한 친구다.

• 극약처방

러시아의 공산혁명이 성공하고 그 이웃인 중국 대륙으로 그 세력을 뻗치던 21세기초, 텐진의 한 성당을 찾아 문을 두드리는 초로의 여교수는 양손에 바겟트빵과 포도주가 들려있었다. 교인은 아니지만 20여년을 교류하며 격동기를 이겨내고 있는 동료다. 문을 열어 주며 반갑게 맞는 사람은 불란서 신부다. 진한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시작하니 여교수가 진지한 모습으로 묻는다.
“중국에서 과연 공산혁명이 가능할까요? 신부님.”
“성공합니다. 중국은 부조리와 부패의 총 본부입니다. 이럴 때 공산혁명이 러시아에서 성공개했다는 것은 정말 큰 의미로 다가옵니다.”
신부는 깊은 사색속에서 유영하듯 고개를 들어 허공을
응시하며 계속 이어나갔다.
“그 혁명은 중국이 갈망하던 모든 문제를 해결할 가장 적합한 열쇠를 쥐고 나타났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경우에 중국인들은 운명이라고 하겠습니다만 우리종교인들은 신의 섭리라고 하겠지요.”
“신부님, 신의 섭리라니요? 공산주의는 무신론을 주장하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교수님, 그러나 신의 영역은 인간 사고의 한계 안에 구속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신의 선택은 인강의 이성과 판단의 영역을 초월하는 경우가 있지요. 생각해보세요. 무서운 부패의 늪에 잠기던 러시아와 중국에 공산혁명이 아니면 그 어떤 다른 방법이나 극약처방이 가능하겠어요?”
“왜 구미식 민주주의도 있는데.”
“교수님, 민주주의는 오랜 시간의 희생없이는 불가능합니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오랜 전지 작업이 필요하지요. 그러나 신의 선택에는 필연성이 있습니다. 절대로 우발적이거나 맹목적인 경우가 없씁니다. 착오나 실수가 결코 있을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신부님 말씀은 중국이 공산혁명을 성공하더라도 그것을 신의 개입으로 볼 수있다는 것인가요?”
“맞습니다.바로 신의 섭리라고 봅니다. 인간 이성이 접근하기 불가능한 역사 현상입니다.”

• 테스와 무혀니

그리스의 기득권은 자기들의 달콤한 부정을 방해하는 테스형을 놀려댔다. 극장에서는 그를 창녀의 뒤를 따라 다니며 침흘리는 거지 두목으로 표현하면서 박수를 치고 침을 튀기며 배부른 황혼의 늑대같이 춤을 추었다. 마치 대학로에서 못난이 연극을 펼치며 무혀니를 ×같이 껄덕이는 놈이라고 놀릴 때 유신공주님이 손바닥을 치며 쾌락을 맛보던 모습과 동일했다. 조국을 그 모양으로 만들어 보려고 검찰 심장부가 총동원되고 언론은 추미애를 옹고집쟁이로, 또 도둑 소굴의 윤돼지와 같은 급으로 몰고간다. 단 문재인을 삼지창으로 찔러 치명상을 입히고 싶은데 이 사람은 마치 반신반인처럼 틈새를 보이지 않는다. 어디를 쑤셔야 할꼬. 이 친구가 인간이라면 약점을 내 놓을 때도 되었건만 묘하도다. 바보같은데 혹 천재인가.
아,아침마다 내 책상 서랍에서 나를 반겨주던 두툼한 봉투가 그립구나. 너를 못 본지 몇 해던가. 내가 이대로 시들어 버릴 수는 없다. 나는 소피스트의 갑옷을 입고 오늘도 싸움터에 나가 혈투를 벌리리라. 있는 이론과 없는 괘변과 어떤 짓을 해서라도 무혀니 졸개들을 부셔버리리라. 하늘이여, 도우소서. 나의 무기는 빨갱이라는 녹슨 칼과 지역감정의 창과 부패의 젖과 기득권의 꿀이다. 잘하면 뒤집을 수있는 오래된 전통과 관습이 나를 도와주리라.

• 바보들의 꿈

인간의 욕심이 존재하는 한 우리 모두가 바라는 새 세상을 만들기는 불가능한 것같다.
코로나19로 지쳐버린 국민을 위해 마련한 추석 나훈아쇼가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 왕이나 대통령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일이 인류역사에 있었나. 안중근, 윤봉길등의 평범한 일반 국민이 나라를 위해 몸을 바쳤다. 국민이 애국자다. 고로 여러분이 이 나라의 주인이다. ”
그런데 이 쇼가 동시에 시간차 없이 중국 대륙으로 퍼져나갔다.
” 이 친구 맹랑하네. 국민이 주인이라니. 그럼 당 지도부인 우리는 무엇이란 말인가. 이거 문제로구나.
자유나 민주라는 말 때문에 홍콩에서 격는 고통이 얼마나 큰지 남들은 모르지. 다시 언론 통제다. ”
네트워킹 서비스를 차단하기에 정신없는 중국 당국은 정권 안위에 온 신경을 쓰고 있다. 언론 자유지수가 180개국중 176등이니 오죽하리요. 그러나 세계 사상계가 가장 주목하고있는 나라와 체제가 중국이다. 과연 관이 주도하고 관리하는 나라가 국민의 생명과 행복을 이루어 낼지 아니면 또다른 부패와 부조리로 궤멸할지를 지켜보고 있다는 말이다.
몇 천년의 세월을 거치며 다 겪은 정치제도 중 오직 우리에게 남겨진 단 하나의 제도가 지금 중국에서 시험중이다. 그렇게 떵떵거리며 큰 소리치던 미국의 민주주의도 금이 가고 있다. 신자본주의라는 지진에 언제 무너질지 알 수가 없다. 백인 불루칼러의 기득권 지키기와 양심을 저당잡힌 천민 자본가들의 몽니로 나라 꼴이 말이 아니다. 이상촌 건설을 꿈꾸며 온갖 재주를 다 부려온 호모 싸피엔스의 능력은 여기서 끝을 보려나. 개와 고양이를 거세하듯 인간의 욕심을 거세할 수는 없스려나. 이웃 사랑이라는 장기를 만들어 이식해 주는 의술이라도 생겼으면 하고 꿈을 꾸는 2020년 년말이다.

November 29,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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