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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tegory Archives: 자유게시판(공개) (page 12)

아주 가벼운 신학 이야기: 현대 신학 어디까지 왔나?

– Bible Green Class의 로마서 , Bible Red Class의 갈라디아서 공부를 보고

(2013년 회지 “평화의울림“에 개제된 글입니다)

김기대

 <근대(현대)란 무엇인가?>

근대의 시작은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라는 데카르트의 선언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쉽게 말해서 신앙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진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데카르트의 선언은 중세를 지배했던 기독교의 세계관에 대한 정면 도전이었습니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은 이 선언이 운동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시민들은 황제를 폐위하고 이성의 즉위식을 올렸고 많은 성직자들이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이성의 시대는 의학과 과학을 비롯한 여러 학문을 발전시켰습니다. 이성의 시대에 신학은 잠시 위기를 맞았지만 성서 비평학, 성서 고고학과 같은 이성적 분야를 발전시키면서 지위를 유지합니다. 이로써 종교는 이성 신봉자들의 기대와는 달리 소멸되지 않고 이성의 시대를 함께 살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성의 시대가 되면 합리적 존재인 인간이 항상 옳은 판단만을 해서 종교의 시대인 중세보다 좋은 시대가 될 것 같았지만 종교의 배타성 못지 않게 이성도 전횡을 휘둘렀습니다. 두 번에 걸친 전쟁과 인간의 욕망은 이성으로 통제되지 않았습니다. 가장 합리적인 이념체계인 사회주의도 결국은 위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사회주의의 위기는 철학적으로는 이성의 위기와 맥을 같이 합니다.

<포스트 모더니즘(후기근대)의 사회>

이성의 한계에 고민하던 유럽은 1960년대 변화를 시도합니다. 이른바 68세대라고 하는 새로운 문화의 세대가 사회를 바꾸어 나가기 시작합니다. 68세대는 “금지란 단어 이외에 모든 것을 금지한다”는 유명한 슬로건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모든 것은 허용되었고 오직 “이것을 하면 안되!”라는 금지라는 단어만 금지한다는 뜻입니다.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68세대는 다양한 문화를 창출해 내었습니다. 중세의 종교이건, 근대의 이성이건 어떤 것도 독점적이고 우월적인 지위를 차지하지 못하고 개인의 선택은 무한정 허용되었습니다. 상상력이 나래를 펴면서 영화가 단순한 오락을 넘어 철학적으로 사유되기 시작한 것도 이 때부터 입니다.

존재라는 것은 종교적인 것도 아니고 이성적인 것도 아니고 그냥 자유롭게 살아가는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가벼운 것이 되었습니다. 이성의 독선을 넘어 모든 것이 허용되는 분위기에서 사람들은 자유롭게 경쟁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사상은 늘 유한합니다. 무한한 자유라는 것은 무한 경쟁을 가져왔고 신자유주의라는 괴물을 낳았습니다. 사회주의의 퇴조로 자본주의가 승리한 것처럼 보였지만 우리가 고통의 세월을 보내고 있듯이 자본주의는 사회주의보다 더 추하게 종말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사회주의의 퇴조가 이성의 한계를 보여준 것이라면 자본주의의 퇴조는 포스트 모던 시대의 무한 자유의 한계를 보여준 것입니다.

사람들은 시대의 변화 앞에서 당황합니다. 예를 들어 여성운동가들이 종교의 시대나 이성의 시대를 온 몸으로 견디어 내면서 여성해방을 이루어 내었지만 새롭게 만난 현실이 자신들이 믿어왔던 것과 다르게 나타났을 때 설명할 방법을 찾지 못합니다. 유럽에 무슬림 이민자들이 늘어나면서 무슬림 여성들과 조우한 유럽 여성들은 처음에는 무슬림 여성들을 해방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입니다. 때가 되면 그들도 히잡을 벗고 사회의 당당한 주체로서 서게 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자발적으로 히잡을 쓰고, 자발적으로 남성에 종속된 여성성에 머물기를 원하는 낯선 이들 앞에서 유럽은 믿어왔던 것의 흔들림을 경험합니다. 이런 경우뿐 아니라 많은 경우에서 포스트 모더니즘은 장벽에 부딪힙니다.…

평화의교회를 위해 드리는 기도

(2013년 회지 “평화의울림“에 개제된 글입니다)

38년 전 주님의 뜻으로 세워주신 평화의교회를 사랑하게 하시옵소서. 저희들 삶의 자리에 평화의교회가 중심이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과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기도가 아버지의 몸 된 교회를 사랑함에서 시작되게 하시옵소서.

우리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주님의 몸이기 때문 에 주님을 위해서 제가 해야 할 일에 최선을 다하여 섬기게 하시옵소서. 솔로몬이 칠 년 동안 성전을 건축하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구했던 간절한 마음을 본받게 하시옵소서.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이 충만해지게 하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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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기도하는 시간이 교회를 위한 간구로 채워지게 하시옵소서. 저희에게 허락하신 재물도 교회를 위해서 더 많이 쓰여지게 하옵소서. 늘 교회를 사모하는 마음을 갖게 하시며, 지체들을 존귀히 섬기게 하옵소서.

여호와 하나님! 주님의 교회를 위해서 제가 들여야 할 것을 다 드리지 못한 죄를 회개 합니다. 교회보다 저 자신을 소중히 여겨서 주님의 영광보다 저의 영광을 구했던 죄를 용서해 주시옵소서. 성령님의 뜨거운 은혜로 거룩함에 도전하게 하옵소서. 성령님의 강권하심에 순종하여 옛사람의 행실을 거절하게 하시며, 세상의 풍조에 미련을 두지 않게 하시옵소서.

CoP 2013_Page_013_Image_0002성령님께서 거하시는 저 자신이 교회인 것을 믿습니다. 평화의교회가 모이는 교회라면, 저 자신은 흩어진 교회임을 깨닫습니다. 모이는 교회를 사모하고, 흩어진 교회로서의 사명을 다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윤제니)…

김정은 체제 북한의 변화를 어떻게 볼 것 인가?: 광명성 3호 발사와 리영호 숙청을 중심으로

(2013년 회지 “평화의울림“에 개제된 글입니다)

안태형김정은 체제하의 북한이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혹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가에 대한 논의가 매우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작년 12월 17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급서로 인해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가 새로운 지도자로 등장했을 당시만 하더라도 김정은 체제가 오래 가지 못할 것이라거나 북한사회가 리더십 교체로 인해 급속히 붕괴될 것이라는 예측이 많았으나 북한의 리더십 교체가 예상과 달리 매우 유연하고 효과적으로 진행되면서 김정은 체제가 빠르게 안정되자 이제는 논의가 김정은 체제하 북한의 변화에 집중되고 있는 것이다.

김정은 제1비서의 새로운 통치스타일 또한 북한변화에 대한 관심 집중에 크게 작용했다. 김정은이 사회주의 (혹은 전체주의) 사회에서는 매우 드물게 (파격적으로) 중요 국가행사에서 부인인 리설주와 동행하는 모습이 북한매체에 자주 등장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미키 마우스로 상징되는 서양 문화도 별다른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모습도 자주 보여주고 있다. 김정은 제1비서가 북한의 지도자가 된 지 아직 1년도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러한 단편적인 변화로 북한사회의 변화를 이야기하는 것이 너무 이른 감이 없지 않지만 이런 한계를 염두에 두면서 이 글은 지난 8개월 동안 북한에서 일어났던 사건 중에서 가장 상징적인 두 가지 사건 (광명성 3호와 리영호 숙청)을 중심으로 북한의 변화를 평가하고 앞으로의 변화가능성에 대해 조심스럽게 전망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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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김정은 체제하 북한의 대외정책 변화를 북미관계를 중심으로 살펴보자. 김정은체제하의 북미관계는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대화와 타협국면으로 전환되었다. 올해 2월 북한은 중국 베이징에서 미국과 제3차 고위급 회담을 가진 뒤 2월 29일 회담결과를 합의문 형태로 발표했다. 북한은 우라늄농축프로그램을 중단하고 핵과 미사일 실험발사를 유예하는 등 비핵화 사전조치를 취하고 그 대가로 미국으로부터 24만 톤의 영양(식량)지원을 받기로 합의했다. 이 합의는 미국에서 오바마 행정부가 등장한 이래 북미 사이에 최초의 의미 있는 합의였다. 그러나 이러한 북미간의 화해 분위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북한이 미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유엔안보리결의안 1874호를 위반하면서까지 4월 13일 ‘광명성 3호’를 발사했기 때문이다. 발사 직전 미국의 특사가 극비리에 평양을 방문하기도 했으나 결국 북한의 발사를 막지 못했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광명성 3호’ 발사는 북한의 정책 실패라고 생각한다. ‘광명성 3호’ 발사로 인해 북한은 많은 것을 잃었으며, 그 중에서도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위한 좋은 기회를 저버렸다. ‘광명성 3호’ 발사의 배경과 의도에 대해 다양한 견해가 있지만 특히 다음과 같은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째, ‘광명성 3호’ 발사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유훈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생전에 ‘강성대국’ 진입을 위한 축포로 이 발사를 기획했기 때문에 김정은 제1비서가 이를 취소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둘째, 군부의 지지 확보라는 측면에서 볼 때도 김정은이 ‘광명성 3호’발사를 취소하지 못했을 것이다. 더 나아가 김정은은 외부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는 확고한 리더십을 군부에게 보여주고자 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미국과 2•29 합의를 이루어 놓은 상태에서 이 합의를 무효화시키는 데 결정적 계기를 제공할 ‘광명성 3호’를 발사했다는 것은 북한 외교/국방정책 결정과정에 상당한 마찰과 혼선이 존재했음을 보여주고 또한 이 과정에서 김정은이 이를 효과적으로 통제해내지 못했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번 주 부를 찬송가 558장에 얽힌 이야기입니다.

 

1967년에 간행된 ‘(개편) 찬송가’는 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소속 교단인 예장 통합, 기장, 감리교에서 사용하던 찬송가였다. 예장 합동은 당시 ‘새찬송가’라는 것을 사용했었다. 친가 외가가 모두 장로교인이기는 했지만 통합 합동 고신 기장으로 흩어져 있어서 친척집에서 가정예배라도 드릴 때는 찬송가가 달라 곤혹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이렇게 나뉘어져 있던 찬송가는 1983년 ‘통일찬송가’가 나오면서 비로소 통합을 하게 된다. 새찬송가에는 없고 개편에는 있었지만 통일찬송가에 삽입 안 된 찬송 중 가장 아쉬운 곡은 개편 546장 ‘주의 가정’이었다. 이 곡은 문익환 목사가 작사하고 연세대학교 음대 교수였던 곽상수 교수가 작곡했다.

가정의 달인 5월에 주로 부르던 찬송가로 아름다운 노랫말과 한국적인 가락이 좋았지만 신군부가 집권하고 있던 1983년 상황에서 통일 찬송가 선정위원들은 이 곡을 통일찬송가에 넣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민주화 운동으로 투옥을 거듭하는 문익환 목사의 이름이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한국 교회가 독재 치하에서 부끄러운 짓을 많이 했지만 ‘주의 가정’ 삭제는 잘 알려지지 않은 또 하나의 부끄러운 기억이다.

미더워라 주의 가정 – 새찬송가 558장

1. 미더워라 주의 가정 반석위에 섰으니 비바람이 불어쳐도 흔들리지 않으리

하나님을 믿는 마음 서로서로 믿는 말 얼기설기 하나되어 믿으면서 살리라

2. 평화롭다 주의 가정 아늑하다 그 품이 따뜻하고 포근하여 마음놓고 쉬리라

미소하는 얼굴들에 주의 마음 서리어 하늘평화 풍기면서 서로서로 살리라

3. 즐거워라 주의 가정 사랑의 샘 솟는다 메마른 땅 적시어라 물이 올라 꽃핀다

너도나도 어깨 펴고 노래하며 즐기니 이웃들이 형제로다 내 몸처럼 아끼리

4. 향기롭다 주의 가정 기도하는 이 제단 마음 드려 기도하고 몸을 바쳐 섬기니

타오르는 몸과 마음 온 누리에 향기라 흐뭇하게 퍼져가는 온 누리에 향기라 아멘

다행히 2007년 간행된 새찬송가에는 이 곡이 558장으로 복권되었다. 1983년부터 2007년까지 약 25년 동안 이 아름다운 찬송이 사라졌던 역사를 우리는 부끄러운 고백으로 간직하고 있어야 한다.

582장 3절도 문익환 목사의 작사

2013년 6월, 로스앤젤레스를 방문한 문익환 목사의 차남 문성근씨(그는 스스로를 ‘생업이 연기자인 시민 정치 운동가’로 소개한다)는 평화의 교회에서 행한 강연 ‘아버지 문익환을 말한다’에서 찬송가 582장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했다.

어둔 밤 마음에 잠겨- 새 찬송가 582장

1. 어둔밤 마음에 잠겨 역사에 어둠 짙었을때에 계명성 동쪽에 밝아 이나라 여명이 왔다 고요한 아침의나라 빛속에 새롭다 이빛 삶속에 얽혀 이땅에 생명탑 놓아간다

2. 옥토에 뿌리는 깊어 하늘로 줄기가지 솟을때 가지잎 억만을 헤어 그 열매 만민이 산다 고요한 아침의나라 일꾼을 부른다 하늘 씨앗이 되어 역사의 생명을 이어가리

3. 맑은샘 줄기 용솟아 거치른 땅을 흘러 적실때 기름진 푸른 벌판이 눈앞에 활짝 트인다 고요한 아침의나라 새하늘 새땅아 길이 꺼지지 않는 인류의 횃불되어 타거라

이 곡은 조선신학교(한신대학교)의 설립자인 장공 김재준이 작사하고 작곡가 이동훈이 작곡했다. 현재 새문안 교회 담임 목사인 이수영 목사의 부친인 이동훈은 ‘가슴마다 파도친다'(574장)도 작곡했다.

그런데 문성근씨의 이야기에 따르면 3절은 김재준 목사의 작사가 아니라 문익환 목사의 작사라는 것이다. 내용은 이렇다.

1976년 3월 1일에 발생한 명동 3.1구국선언사건은 1972년 10월 유신 이후 민주화 운동이 제대로 힘조차 쓰지 못하던 시절, 윤보선, 김대중, 함석헌, 정일형, 이태영 등의 사회 정치 세력, 함세웅, 문정현, 김승훈 신부가 주축이 된 천주교 인사들, 문익환, 문동환, 안병무, 서남동 등의 개신교 인사들이 결혼식을 위장해 명동 YWCA 강당에 모여 시국선언을 발표한 사건이었다.…

웹사이트 디자인 수정 중

웹사이트의 영어 파트를 작업 중에 있습니다. 작업 중에 현재 쓰고 있는 디자인이 다중언어 기능과 호환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하고 다른 디자인으로 바꾸어보았습니다. 그런데 몇가지 기능이 없어서 다른 디자인을 찾아보고 있습니다. 디자인 추천받습니다.. 아래의 웹사이트에서 여러 디자인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https://wordpress.org/themes/…

2015년 5월 중보기도표

prayer함께 기도할 제목

1.교회를 위해
– 세워진 사역자들(목회자, 당회)과 기관장들을 위해
– 교육부서의 성장과(어린이부, 중고등 대학부)활동을 위해
– 각 기관(길동무: 건강과 열정, 두나미스: 왕성한 활동, 청년부: 성장)을 위해
– 교회의 숫적 부흥과 성장, 건강한 공동체 사역, “전도의 열정”을 위해
– 평화서당 5기의 활성화를 위해
– 중보기도의 열매를 위해

2.교우들을 위해서
– 2015년 교우들의 가정, 비즈니스, 건강과 평안을 위해
– 자녀들의 학업(학업성취, 좋은 스승  친구들과의 만남)과 건강한 비전을 위해

3.특별기도
– 성도들의 건강과 영육간의 풍성한 삶을 위해서
– 남은 40주년 행사(음악제, 40주년 출판)가 잘 마무리될 수 있도록
– 조국의 정치가 안정되게 하소서
– 교회의 성숙한 발전과 성장을 위해

*이달의 말씀 : “열심을 내어서 부지런하며, 성령으로 뜨거워진 마음을 가지고 주님을 섬기십시오. 소망을 품고 즐거워하며, 환난을 당할 때에 참으며, 기도를 꾸준히 하십시오”(로마서 12:11~12)
– 하나님의 말씀을 먼저 읽고 기도합니다 : 로마서 12장, 시18편 20편 27편 28편 40편 42편 중 한편이상 읽고 기도함.
*위의 기도제목 외에 특별기도제목이 있으면 목사님께 연락해 함께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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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편지

(2013년 회지 “평화의울림“에 개제된 글입니다)

김인숙요즈음에는 너 나 없이 편지를 잘 쓰지 않는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화로 문안도 하고 또 필요한 전달사항을 전자메일로 보내던가 또는 휴대전화를 통해서 문자를 보내서 즉시즉시 필요한 일들을 해결한다. 편지지 위에 마음을 가다듬고 쓰는 일은 이 바쁜 세상에 번거로워서 이제는 잊혀져 가는 일에 하나로 꼽게 될 것 같다.

전자메일로는 더 많은 사람들과 더 자주 이야기하고 수 없이 문답을 주고받을 수 있으니 참으로 편리하고 좋은 세상 같다. 그뿐만이 아니라 Facebook에 들으면 많은 사람들과 정보를 교환하고 또 지금 있었던 일과 사진을 아는 이들에게 곧 보내어 알게 할 수도 있다. 그런대도 누가 그 만의 고운 필체로 정성스럽고 따듯하게 쓴 편지를 받게 되는 날은 온 종일 마음이 기쁘고 설렌다. 몇 해 전 가을에 아버지의 유품으로 한 상자의 오래된 편지를 받았다. 사십여 년 전 우리가 미국으로 이민을 왔을 때, 도착한 다음 날부터 내가 아버지께 보낸 편지를 모두 보관하여 두셔서 동생이 보낸 것이다.

나도 아버지를 닮아서인지 내 파일 상자 안에는 “사랑하고 사랑하고 또 사랑하는 딸 인숙에게”로 시작되는 아버지의 낯익은 편지들과 어머니의 궁체로 쓰신 편지와 여러 해를 New York에 있으면서 보내준 내 딸 진영의 유려한 영문편지들, 그리고 멀리 있는 친구들에게서 온 여러 가지 사연들의 편지가 들어 있다.

은퇴를 하고 나서는 아무래도 시간이 많아져서 손자 손녀 아이들에게 편지를 쓰게 하여서 원본과 함께 한글로 바꾸어 써서 아버지께 보내 드렸다. 아버지는 평생에 아는 이들에게서 받으신 것들과 본인이 당신의 스승에게 보낸 편지를 엮어서 “남기고 싶은 사연들”이란 책을 내셨다.

몇 해 전 7월 아주 오래 알고 지내는 친구 내외와 시애틀에 사는 친구 크리스틴의 초청을 받아서 오랜만에 참으로 즐거운 시간을 함께 보냈다. 크리스틴의 아들은 엄마의 옛 친구들 항공표를 사 보내 주었고 버클리에 사는 딸 헬렌은 우리들의 즐거운 여행을 위해서 시애틀 앞 바다에 있는 아름다운 섬에서 우리가 좋은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모텔을 예약해 주었다. 아주 오랜만에 배가 아프도록 웃으며 솜씨 좋은 친구가 만들어 주는 맛있는 음식을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

로스앤젤레스로 돌아와서 이 사랑스러운 아이들에게 참으로 고마웠다는 편지를 썼다. 쉬운 영문으로 너의 엄마와 정말 좋은 시간을 가졌었다고 정성들여 써서 하나는 홍콩에 사는 제리 내외에게, 다른 하나는 헬렌과 그의 남편 루커스에게 보냈다. 며칠 지나서 시애틀 친구 크리스틴에게서 아이들이 내 편지를 정말 반갑게 읽었다고 전화가 왔다.

우리 교회의 길동무 모임은 이 달부터 “로마서” 공부를 시작했다. 사도 바울이 두기고를 시켜서 필기 한 이 편지를 겐그레아교회의 뵈뵈라는 여교우가 지참하고 로마의 교우들에게 가지고 간 것이다. 그녀가 소중하게 로마교회로 가지고 간 편지를 2000년이란 세월이 지난 후 우리가 공부하고 있다.

(김인숙)…

웹사이트 레이아웃과 기능 등 변경 사항 안내

교회 웹사이트를 여러가지 업데이트 했습니다

  1. 레이아웃
    1. 2015-04-27_20-41-06시험삼아 첫 페이지에서 글이 나오는 모드를 글 요약에서 사진 섬네일로 바꾸어보았는데 결과가 별로네요. 글 요약이 안 뜨니 내용 파악하기도 힘들고, 제목과 날짜 사이에 공간이 너무 많아서 제목이 아래쪽 사진과 혼동되고..이건 제가 바꾸어 본거지만 영 자신이 없습니다. 다시 예전처럼 바꿀까요?
    2. 로그인 링크를 왼쪽 위에서 왼쪽 밑으로 옮겼습니다.
    3. 첫페이지 왼쪽에  “웹사이트 전면에 나오지 않는 자유게시판 (숨김)” 링크를 넣었습니다.
    4. 주간 공지(주보 광고)는 가장 최신 글만 왼쪽에 나오게 하고 나머지는 메인 화면에 나오지 않도록 바꾸었습니다. 옛 공지는 “교회 소식/공지”를 선택해서 읽을 수 있습니다.
    5. 온라인 헌금과 태그 구름을 웹사이트 맨 밑으로 옮겼습니다.
  2. 2013년 회지
    1. 2013년 38주년 회지 페이지를 업데이트 하고 회지 글을 2개 올렸습니다. 정기적으로 회지 글을 웹사이트에 올릴 계획입니다.
    2. 교회 소개 각 페이지에 2013년 회지에서 뽑은 사진을 넣었습니다. 연표에 회지 사진을 다수 추가했습니다.
  3. 기능 추가
    1. 교회 계정을 수동으로 만들지 않고 Facebook, Twitter, Google+ 를 이용해서 교회계정을 만들어서 글을 올릴 수 있는 기능을 넣었습니다.
    2. 첫 화면 왼쪽에 구글 달력 뜨는 것에 문제가 있던 것을 고쳤습니다.
    3. 외부 기사를 올릴 경우의 편의룰 위해 글 제목과 사진은 교회 웹사이트에 뜨지만 실제로 제목을 클릭하면 외부 기사가 직접 뜨는 기능을 넣었습니다. 글 올릴 때 맨 밑에 “Page Links To custom URL” 을 쓰면 되는데.. 일단 초기에는 이런 류의 글을 올리실 경우 제가 수정해드리겠습니다. (이번주에 김기대 목사님이 M 뉴스 기사 올린 것을 수정했음)

영화 ‘밍크코트’를 보고

(2013년 회지 “평화의울림“에 개제된 글입니다)

고선화고선화

‘밍크코트’ 이 영화는 ‘연명치료중단’이라는 무거운 현실적인 문제에 직면하면서 기독교 가족 내에서의 질투, 시기, 무관심 그리고 갈등과 그 해결책으로 제시되는 이해 소통, 사랑, 그리고 화해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좀더 시야를 넓혀서 보자면 가족관계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인간관계에서 발견되고 있는 문제들을 보게 한다.

현실의 어려운 문제와 직면했을 때 그리고 감추고 싶었던 사실이 드러났을 때 우리는 수치심, 당혹감과 분노 등을 느낄 수 있다. 결국 진면모가 드러났을 때, 그 무게를 잘 감당하고 밝혀진 비밀의 무거운 진실 앞에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기에 무너질 수 밖에 없고, 분노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밍크코트’는 탐욕, 부와 부정적인 허영의 상징적인 의미이다.

영화를 보면서 나 역시 이 상징적인 밍크코트를 입고 끊임없이 현실을 외면하고, 사실을 왜곡시키면서 살고자 하는 자신을 바라보게 한다. 현실을 극복하려는 의지보다는 내 마음 속에 있는 미움, 질투, 의심, 상처, 내가 저지른 일 등의 현실을 감추면서 살기 위하여 나에게도 밍크코트가 그리고 신앙이 필요한 것은 아닌지 반추해 볼 수 있는 영화이다. 영화의 스토리만 따라가다 보면 그저 그렇다고 볼 수도 있지만 영화 속의 주인공들의 감정에 이입되어 가다 보면 마치 어떤 경우는 나의 감정을 대신 토해내는 듯하기도 하다. 그래서 이 영화의 시작은 내내 무거움으로 전율하게 한다. 나의 문제는 무엇인가? 나에게 있어서 가족은 어떤 존재인가? 나의 신앙은 어디를 향해서 가고 있는가?

물론 영화가 끝까지 무겁지만은 않다. 따뜻함이 있는 영화이다.

극중에서 밍크코트는 가난한 현순, 넉넉하게 사는 언니 명순, 그리고 남동생의 처 경숙의 경제적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 주는 소품이지만, 현순의 어머니는 부자 딸이 사준 밍크코트를 우유 배달을 하며 힘들게 살아가는 가난한 딸 현순에게 몰래 벗어 준다. 현순은 자신의 딸 수진이 돈이 필요하다고 하자 그 밍크코트를 팔아 돈을 마련해 준다. 어머니의 밍크코트는 잠시나마 가난한 딸에게 따뜻함을 전해 주고 또 그 딸의 딸에게 필요한 양식이 된다. 이처럼 밍크코트는 모녀 삼대를 이어 주는 따뜻한 사랑이 된다.

어머니의 연명치료중단이라는 문제에 부딪혔을 때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도 알 수 없는 이 가족의 반목과 질시와 갈등이 극에 달한다. 허울만 좋게 밍크코트를 걸쳤을 뿐 그것으로 가려진 현실은 신앙으로도 극복 할 수 없는 갈등의 고조를 이룬다. 그러나 갈등이 고조를 이루고 현실을 직면하게 되었을 때 이 가족은 입고 있던 밍크코트를 벗고 자신들이 숨겨 온 것들을 고백하게 된다.

어머니의 연명치료중단을 결정하는 문제를 놓고 동의와 반대의 입장의 씬을 보면 우리는 지극히 자기가 처한 현실을 반영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경제적인 이유로 어머니의 존엄사를 원했던 가족에게 분노하고 막말로 저주까지 했던 현순도 결국 자신의 딸의 생명을 위해서는 어머니의 존엄사를 원하게 된다.. 이에 명순이 분노하고, 경숙 역시 자신의 친정 어머니였다면 연명치료 중단을 원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처럼 인간은 철저히 자기 중심적이라는 것을 이 영화는 부인하지 않게 한다.

가족이라는 것이 남들에게 자랑하고 싶다가도 한편으로는 한없이 무거운 삶의 업보이며 때로는 그 어떤 풍파도 막아 줄 따듯한 울타리지만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 날 수 없는 핏줄로 견고하게 얽힌 덤블가시처럼 잔인한 감옥일 수 있음은 역설하고 있다.…

나의 신앙 고백 (채희탁)

(2013년 회지 “평화의울림“에 개제된 글입니다)

CoP 2013_Page_007_Image_0001나는 1939년 1월 7일 경상북도 문경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곳에도 작은 예배당이 있었다. 그 해에 서울로 이사를 왔으며 신암교회에서 유아 세례를 받았다. 1950년 6.25가 터졌는데 3개월간 북한 점령 하에 서울에서 살았다. 중공군의 개입으로 다시 고향 문경-부산으로 피난 내려왔다. 휴
전과 더불어 서울로 와서 중학 3학년에 다녔다. 그 이후 고등학교, 대학교를 다니면서 안병무, 이영환, 함석헌 대 선배들을 뵐 기회를 가졌다.

군사 독재 치하에서는 시인 고은, 한빛교회 이해동 목사, 문익환 목사 등과 같이 어울리다 내 개인 기업체가 사찰을 받는 어려움도 겪었다. 개인 사업체의 어려움은 관료 정치, 부정부패와 제대로 타협치 못하는 내 성격으로 더욱 악화되었다. 1991년 마지막 피난처가 된 미국으로 이민을 결행했다. 이민 수속에서 많은 어려움이 뒤따랐는데 부적격으로 판정날 순간에 기적 같이 VISA가 나왔다. 대신 내 이름의 성 표시가 Chae에서 Choe로 바뀌었다. 참으로 기적과 같은 일이었다.

North Carolina에서 20년(그곳의 Bethel교회 김정일 목사는 잊을 수 없는 분이다)을 살았고, LA로 옮겨왔다. 그리고 평화의교회에서 15개월 째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장장 73년이라는 세월 나는 교회를 떠난 적이 없다. 나는 이력서에 종교는 항상 기독교라고 적었다.

그런데 나는 정말 기독교인인가? 구원을 받았는가? 이런 생각으로 나를 돌아보게 된 것은 박신화 목사가 리더가 되어 보그의 <내가 만난 하나님>이란 책을 중심으로 그룹 토론을 시작하고부터였다.

나는 여태까지 구원, 천당/지옥 등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저 교회에 출석하며 설교를 듣고 때로는 감동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60년 전 어머니께서 돌아가실 때 나에게 당부하신 “착하게 살아라, 또 성경을 읽어라”는 유언을 지키기 위하여 성서 신•구약을 처음부터 끝까지 한 자 한 자 한 구절 한 구절 써서 장장 20여 권의 노트를 채웠다. 그 뜻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서 단지 내가 죽기 전에 어머니의 유언을 들어주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나는 하나님을 만났는가?’라는 질문에 노출되어 있는 나를 발견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독생자로서 나를 구원하기 위하여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는가? 역사 속의 예수는 나와 무슨 관계가 있는가?

나는 73년 교회 생활에도 불구하고 이제 와서 믿음이 없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믿음보다 더 중한 것은 사랑이라”하신 말씀에도 불구하고 저에게는 지금 믿음이 필요함을 안다.

그래서 이제는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믿음을 주소서. 그 믿음은 산을 옮겨 바다를 메울 수 있다 했습니다. 나도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게 하소서. 그리하여 나에게 평화를 주소서. 그리하면 나의 마음의 하나님 사랑이 더욱 영역을 확고하게 넓혀 나의 마음속에 자리할 것을 믿습니다. 아멘.

(채희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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