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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tegory Archives: 자유게시판(공개) (page 11)

중앙일보 칼럼: 일본 재무장 지켜만 볼 것인가

[시론] 일본 재무장 지켜만 볼 것인가
신영균/전 한국어진흥재단 이사장
댓글 0 [LA중앙일보] 발행 2015/07/29 미주판 9면 기사입력 2015/07/28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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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초 한국을 다녀왔다. 8년여 만의 방문이었다. 한강에 새로 놓인 멋진 다리, 고층 아파트와 건물들, 값비싼 외제차들을 보면서 놀라운 경제발전을 실감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그 놀라움은 우려와 염려로 바뀌어 갔다. 겉으로만 본 조국과 그 안에서 형성되고 있는 무서운 사회 양극화가 회복할 수 없는 단계에까지 이르지 않았나 하는 느낌 때문이었다. 어딘지 모르게 성장의 동력을 잃어버린 것 같았고 저출산과 초고령화 시대로 접어들면서 빈부격차와 이념대립과 지역갈등은 그 골을 더 깊게 파고 있었다.

정치 지도자들은 위기관리 능력이 없어 보였다. 분야마다 양극화된 사회를 통합할 수 있는 능력은 물론 역사의식의 부재로 외세의 경향 및 민족의 평화를 위한 교류문제는 뒷전이었다. 특히 수단이어야 할 권력이나 재력이 모든 국민이 추구하는 목표가 되면서 나눔과 소통은 사라져버렸다.

우리 민족역사에 가장 고통을 많이 준 일본이 재무장을 시작했고 중국이 경제대국으로 향해 가고 있다. 그런데 한국은 이런 현실을 바로 보지 못하고 미래에 대한 아무런 비전이나 희망도 찾아 볼 수가 없다.

지난 6월 중순으로 기억한다. 일본의 유명한 승려 작가 세토우치(93세)가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추진하는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위한 안보법 개정작업을 반대하는 2000여명의 시민들 앞에 나타났다. 그는 자신이 직접 겪은 처참한 전쟁경험을 이야기하면서 “죽이지 않으면 죽임을 당하는 전쟁에 결사반대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최근 일본의 상황을 보면 점점 전쟁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전쟁도 좋은 전쟁은 없으며 모두가 살인이다. 이대로 가면 여러분의 아들, 손자들이 전쟁에 끌려가고 그리고 죽어간다. 현 상황이 겉으로는 평화로워 보이지만 귀를 기울여 조심스레 들어보면 군화소리가 들려오고 있다”고 덧붙였다.

우리는 16세기 말부터 지금까지 여러 번의 외세 침략으로 많은 것을 잃어 버렸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었고 1910년에는 한일합방으로 우리의 국권을 송두리째 일본에 빼앗겼다. 36년 동안 일본의 식민지로 있었지만 우리 힘으로 나라를 되찾지 못하고 미국을 비롯한 연합군에 의해 1945년 8월15일 일본이 항복함으로써 해방을 맞았다.

이어 승전국들의 편의에 따라 분단된 조국은 두 개의 다른 이념을 가진 정부가 세워지고 결국 1950년 6월25일, 동족상잔의 비참한 전쟁이 일어난다. 3년 후 휴전이 조인되었지만 민족과 국가에 엄청난 상처만 남기고 정전은 오늘 이 순간까지 계속되고 있다. 전쟁은 남과 북 모두 520만의 인명피해와 1000만 이산가족을 만들었다. 하지만 이러한 인적, 물적 손실보다 더 심각한 피해는 민족 내부에 형성된 불신과 적대감이다. 상대방과의 타협과 대화 자체가 죄가 되고 어느 쪽에도 중도적 이념을 추구하는 세력이 성장할 수 없었다.

일본에 의해 합병이 되고 일본에 의해 통치되었던 한반도가 일본이 전쟁에 참패함으로써 분단되었다. 그리고 분단으로 인해 우리가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어 오는 동안 이 전쟁의 근본 원인을 제공한 일본은 그 비참한 역사에서 싹 빠지고 반성은커녕 오히려 6·25를 통해 침체된 경제를 되살리고 요즘 다시 재무장을 시작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나? 깊이 생각해 볼 이유가 분명히 있다.…

평화의 교회 2015년 8월 중보기도표

 함께 기도할 제목 
1.교회를 위해
– 세워진 사역자들(목회자, 당회)과 기관장들을 위해
– 교육부서의 성장과(어린이부, 중고등 대학부)활동을 위해
– 각 기관(길동무: 건강과 열정, 두나미스: 왕성한 활동, 청년부: 성장)을 위해
– 교회의 숫적 부흥과 성장, 건강한 공동체 사역, “전도의 열정”을 위해
– 중보기도의 열매를 위해

2.교우들을 위해서
– 2015년 교우들의 가정, 비즈니스, 건강과 평안을 위해
– 자녀들의 학업(학업성취, 좋은 스승  친구들과의 만남)과 건강한 비전을 위해

3.특별기도
– 광복 70주년을 맞는 조국에 평화가 정착되도록
– 교우들의 가정과 영육간의 풍성한 삶을 위해서
– 40주년 음악제와 40주년사 출판을 위해서
– 선교지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들을 위해서
– 무더위속에 모든 교우들의 건강을 위해서

*이달의 말씀 :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셔서, 자유를 누리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굳게 서서, 다시는
종살이의 멍에를 메지 마십시오” (갈라디아서 5:1)
– 하나님의 말씀을 먼저 읽고 기도합니다 : 갈 5장, 시18편 20편 27편 28편 40편 42편 중 한편이상 읽고 기도함.
*위의 기도제목 외에 특별기도제목이 있으면 목사님께 연락해 함께 나눕니다.…

오강남 교수 신앙강좌(다음 주 9일~11일) 오후 7시

다음 주 7월 9일(목) 부터 11일(토)까지 매일 저녁 7시 교회에서 <예수는 없다> 저자인 오강남 교수를 모시고  ” 바른 예수 바른 믿음” 이라는 주제의 신앙강좌를 갖습니다. 여러분의 많은 참여를 바랍니다.

오교수는 강의를 통해  “오늘날 기독교가,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심각하게 자문하며 종교의 깊숙한 내면을 들어다 보아야 한다”고 강의 목적을 밝히고 있습니다.  .

3일 동안의 강의는 경전이란? 신은 존재하는가?  나를 비움의 종교 윤리 등으로 이루어 집니다. 이 강좌는  평화의 교회,  미주 감리교 신학대학 공동주최입니다.

참가비는 없으며 간단한 스낵과 음료가 제공됩니다.

 …

작고, 큰 바람: 열린 마음, 열린 교회로 가득 찬다면…

(2013년 회지 “평화의울림“에 개제된 글입니다)

박신화, 협동목사CoP 2013_Page_018_Image_0001

몇 달 전부터 이 교회의 협동목사직을 맡으면서 장년부(길동무)그룹의 성경공부를 맡게 되었다. 그룹일원이 함께 선택한 교재는 “새로 만난 하느님” (한인철 역 2004, God We never Knew)”의 제목이었다. 이 책은 지난 30년간 오레곤 주립대학교 종교학을 가르쳤던 마르커스 보그(Marcus Borg)교수가 미국 성서학회의 역사적 예수 분과 책임자이며 예수 아카데미(Jesus Academy)의 정회원으로서 하나님 이해에 대한 연구를 통하여 지금까지 몰랐던 하나님을 새로 만남으로써 우리에게도 새로운 하나님을 만나도록 역설하는 내용이다. 이는 많은 현대 미국 기독교인의 신앙의 길의 갈증을 시원하게 풀어줌으로써 신앙의 길을 돕도록 폭넓게 영향을 주었다. 나는 미국교회의 성경공부그룹에서 이 책을 공부하는 기회를 가지면서 나의 갈증을 풀림을 받는 기쁨을 가졌다.

그 점에서 오늘날 바른 신앙의 길을 찾기 위해 갈등하는 한인교인들에게도 읽혔으면 하는 바램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제목 자체가 전통 신앙관을 뒤집어 놓을 수도 있다는 인상을 주기에 일반한인교회에서 가르칠 수 있는 기회를 아예 생각하지 못하였다. 마침내 번역서가 나와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쉽게 권할 수가 있었는데 장년 그룹에서 선뜻 선택하였기에 적이나 놀라면서 한편 너무 반가웠다. 우리 교회의 이 그룹은 가능하다는 자체가 목사로서의 보람을 갖는 뿌듯한 기쁨을 가져다 주었다. 우리의 공부는 보그 교수가 우리가 전통적으로 가졌던 하나님에 대한 이해를 부활 전 이전의 역사적 예수와 부활 이후의 해석된 예수에 관한 차이점을 해설하며 역사적 예수의 참모습과 우리 삶 한가운데 계시는 하나님으로 인도함을 따라갔다.

그리고 우리의 신앙관이 부활 이후에 해석된 예수의 모습으로 각색된 신앙관에 매여 벗어나지 못하고 부활 전 참된 역사적 예수의 삶을 왜곡하고 있다는 것을 보그를 통하여 성찰할 수 있었다. 소위 우리 한국교회가 흔히 주장하는 “초대교회의 신앙으로 돌아가자”라는 표어를 들으며 교회부흥을 이야기 하는 문구에 지나지 않는다고 과히 흥분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보그 교수는 “역사적 예수를 아는 초기신앙으로 돌아가자”라고 점을 역설한다. 2000여년이 지나오며 역사적 예수를 경험하지 않는 부활 이후의 해석에 따라 “저 하늘 위의 하나님, 심판하는 하나님”으로 이해하는 신앙은 우리의 삶이 예수님의 삶을 통하여 계시한 하나님을 “우리 삶 안팎에서 함께 임재하시는 영의 하나님”과 달리 잘 못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여 주었다. 그것은 그가 강력히 역설하는 “범재신론(panentheism)”에 근거한다. 하나님의 초월성만 강조하는 전통적 신관인 “저 바깥에” 계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모든 것(pan)” 안(en”), 하나님(theos)의 의미를 가진 하나님으로서 “바로 여기에” 계신 것 이상임에도 불구하고 “바로 여기에”계신다고 한다. 즉 “모든 것은 하나님 모든 것 이상이지만, 모든 것은 하나님 안에 있다”. 보그는 자신의 신앙여정을 바탕으로 자신의 하나님인식은 지금까지 몰랐던 하나님을 새로 만남으로써 God We Never Knew(우리가 알지 못하였던 하나님)라는 원제목으로 새로 만난 하나님을 이야기 하였다.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을 바르게 알지 못하였고 이제 하나님을 새롭게 만나야 한다는 역설을 함으로서 우리의 신앙생활이 과연 하나님을 바로 알고 살아왔는지에 대하여 깊이 성찰하도록 도와준다. 즉 우리 역시 전통적 기독교에서 배운 과거의 하나님이 아니라 새로 만난 하나님을 만나야 할 것을 종용하며 신앙생활의 초점을 재조준해야 할 것을 우리에게 도전한다.…

동방의 에덴

(2013년 회지 “평화의울림“에 개제된 글입니다)

문영조

문영조춘추전국시대에 있던 노나라와 그 주변 국가들의 타락은 매우 심각했다. 자식이 아비를 사살하고 왕 자리를 거머쥐기는 보통이요, 왕이 자기 친누이를 첩으로 삼는 자가 있는가 하면 초나라의 왕은 며느리로 맞이하는 진나라 공주를 도ㅜㅈ에 가로채어 자기 왕비로 삼는 기막힌 일도 있었다.

2500년 전 공자가 살던 때의 사회상이 그와 같았다. 공자는 이처럼 소름끼치는 사건들을 피하여 좀 더 나은 나라, 좀 더 윤리가 통하는 곳을 찾아 헤매었다. 발이 부르트도록 다니다가 결국 실패하고는 깊이 한숨 지으며 중얼댔다.

“저 구름 너머 동쪽 하늘 밑에 고조선이 있지. 그곳에는 군자들이 도덕 사회를 이루고 산다는데 정말 가보고 싶구나. 평양성을 한 번만이라도 구경할 수 있다면 죽어도 원이 없겠는데.”

자기 철학이 담긴 대학, 논어가 아직 전달된지도 않은 미지의 세계를 그는 그토록 동경했다. 이 이야기는 고서 산해경에 나오는 내용 중 일이다.

고조선 때의 조상들은 과연 군자였는지도 모른다. 무슨 확실한 고증이나 역사적 기록이 있어서 그것을 확신할 수는 없지만 우리 민족의 깇은 심사를 관찰하면 답을 찾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우수한 두뇌, 남다른 인내심, 차마 못하는 박애의 접근 등이 한민족의 본성이다. 두뇌가 뛰어나다는 것, 이미 세계적인 추인을 받고 있는 바다.

인내심은 어떤가? 고난의 역사 속에서 겪어온 고뇌와 빈곤, 극한 상황을 견뎌낸 백성들이다. 과연 한과 뒤섞여 쌓아 온 인내라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차마하지 못하는 어질 인자의 백성이 우리다. 대다수 백성들이 알면서도 참고 또 참는 착한 사람들이었는데 요사이는 많이 변형됐다. 이상한 돌연변이가 인구의 절반에 육박하고 있다. 그렇게도 열악한 환경이었던가? 원래는 거의 다가 멋있는 신사, 성인군자들이었는데, 참으로 원통하다.

해방이 된 지도 70년이 다 되었다. 이제는 우리의 본성인 즉 공자가 그리워하던 동방의 군자들의 나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그러려면 어쩔 수 없이 첫째로 해결할 사안이 있다. 다 알고 있지만 곧 통일 문제다.

이일은 우리 자신의 일이므로 우리 자신의 손으로 이루어야 할 과제이다. 미·중·일·소 4대 강국이 우리처럼 팔을 걷어 붙이고 나설리가 없고 오히려 삼각파도를 일으키고 발걸이를 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왜? 그들은 그들의 이익과 자기 나라의 부강이 먼저이기 때문에 이웃을 위하여 큰 희생을 할 바보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는 종교학자는 우리의 심성을 이렇게 파헤쳤다. 한국 사람들은 심각성이 부족하다. 깊은 사색이 없다. 들이파지 못한다. 철학도 없고 종교도 없다. 그의 분석은 정확하다. 로켓은 3단계의 폭발이 있어야 한다. 대형 교회는 많은데 내용이 없고 참 실천이 부족하다.

독일 교회는 텅 비어 있어도 국민들의 생활 태도는 매우 성경적이다. 종교세도 바치고 처참한 형제들도 큰 돈 들여 구하고 얼키고 설키어 통일도 이루어 서구의 대표 국가를 이루고 있다. 세계 최고의 종교 철악을 사장시키지 아니하고 손수 실행에 옮겨 무서운 축복을 얻어내고 있는 것이다. 척박한 환경은 그 귀한 보편성을 단순세포로 변형시키고 말았다.

영국은 문학, 미국은 자유, 독일은 철학, 중국은 역사, 그리스는 신화, 소련은 발레, 일본은 경제, 한국은 부요.…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을 사랑한 꼬마

(2013년 회지 “평화의울림“에 개제된 글입니다)

COP_Page_008_Image_0002조언정

“니 어릴때, 울다가도 베토벤 운명 교향곡만 틀어주면 금방 뚝 그쳤대이. 그러이 니는 작곡가가 될 운명을 타고난게 분명하다”

대학입시를 위해 작곡공부를 하고있던 나에게 오빠가 한 말이다.

내 기억에도, 유치원도 들어가기전 꼬꼬마 시절 오빠 언니들이 다 학교에 가고 혼자 있을때면 내가 직접 LP판을 올려서 운명 교향곡에 빠져있곤 했었다.

그 곡을 듣고 있으면 어린 가슴에도 알수없는 무엇인가가 와닿는 느낌이 있었다.

얼핏보면 마치 천재 작곡가의 어린시절을 보는듯 하다. 하지만…

그 꼬마는 지금 작곡’가’가 아닌 그냥 작곡’과’를 나온 평범한 아줌마로 살고있다.

 

5남매중 막내로 태어나 온 가족들의 사랑과 관심을 받고 자랐지만 부모님의 자식에 대한 욕심은 다섯째까지 다다르기에는 좀 역부족이었나 보다.

오빠 언니들에게는 상주 가정교사도 붙이고 악기도 가르치고 학교서도 약간의 치맛바람을 날리시던 엄마가 내 담임 선생님은 얼굴조차도 모르셨다.

그러니, 내가 욕심을 내지 않는 한 부모님이 먼저 과외활동을 시키지는 않았다.

언니의 피아노 연주 소리를 그저 일상으로만 듣고 자라던 어느날, 친구를 따라 피아노 학원엘 갔다가 거기서 여러 친구들이 피아노 치는 모습을 보고 나도 배우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그날 엄마한테 통보를 하고 바로 다음날부터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너무 재미 있었다. 내 손가락이 그냥 뚱땅거리는 소음이 아닌 제대로 된 소리를 만들어 내는것도 너무 신기했다.

선생님이 놀라실 정도로 진도도 빨리 나갔다.

언니가 치는걸 옆에서 들었던게 큰 도움이 되기도 했지만 친구들을 따라 잡아야 겠다는 욕심과 나도 모르고 있었던 내 속의 음악적인 재능이 한몫을 한것 같다.

먼저 배우던 친구들을 하나하나 따라잡는 기분이란 정말 짜릿짜릿 했다.

큰 규모는 아니지만 몇몇 대회에서 입상도 했다.

중학교 1학년때 나간 대회에서 제법 큰상을 받고난 후 엄마는 나에게 큰 고민거리 하나를 주셨다.

피아노 실력도 어느정도 인정을 받았으니, 중학생이면 이제 공부에 전념해야 할 때니까 피아노를 전공할거면 계속 배우고 안그럼 그만 두라셨다.

피아노를 치는건 너무 좋지만 전공을 하게되면 피아노를 즐기기보다 억지로 연습을 해야되는 압박감에 시달릴것 같았다.

이 좋은 피아노를 그렇게 질리게 치고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결론은, 전공은 안하지만 피아노는 계속 배우는 거였는데… 그건 내 생각일 뿐이었다.

‘어무이, 정녕 내가 피아노 칠 시간에 공부를 할거라고 생각하셨나요? 레슨비가 부담스러우셨나요? 우리 제법 잘 살았잖아요~’

언니도 당연히 이런 과정을 거쳐서 피아노를 전공한 거라고 생각 했었는데 언니한테는 묻지도 않았다는걸 작년에야 알았다. 어무이~~~~!!!!!!!

다시 음악을 시작하게 된건, 고등학교 1학년때 음악시간 첫 실기과제가 계기가 되었다.

선생님은 곡을 쓰는 요령을 가르쳐 주시면서 16마디짜리 곡을 쓰라고 하셨다.

다른 아이들의 힘들어 하는 모습에 약간의 쾌감을 느끼면서 난 여유있게 곡을 썼고 그날 선생님은 나를 따로 부르셨다.

작곡에 소질이 있다고, 전공을 하면 어떻겠느냐고.

‘맞아, 국민학교때 작곡대회에서 입상한 적도 있었지… 피아노를 그만둘때 선생님이, 나한테 안배워도 되니까 음악은 관두면 안된다고 그렇게 당부를 하셨어… 그래, 나는 음악을 해야되는 사람이야.’

그렇게 해서 작곡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내가 2학년이 되던 해 언니는 연세대학교 피아노과에 입학을 했고 나도 같은 학교를 목표로 삼았다.…

쉬우면서도 어려운 건강법

(2013년 회지 “평화의울림“에 개제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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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다가올 우리들의 세상은 어떻게 변화해 갈까, 참으로 흥미있는 일이기도 하고 나날이 발전하는 Technology의 힘이 과연 우리들을 어디까지 데려다 놓을 까라는 호기심과 기대감이 커지면서 어쨌든 오래 살고 보아야 할 일이다라는 생각이 든다.

의학과 생명공학의 발전도 눈부신 것이어서 그 동안 인류 건강과 수명 연장에 지대한 공헌을 한 것도 사실이며 감사한 일이다. 그러나 모든 일이 그렇듯이 하나의 작용에는 반드시 반작용(反作用)이 있는 법이다.

현대의학이 발전하면서 각 분야가 세분화되고 전문성을 강조하게 된 반면에 전체성(Holism – All, Whole, Entire)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사람의 몸은 모든 기관들이 함께 조화를 이루면서 건강한 생명력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약물이나 수술의 방법으로 병든 몸의 일부 기능을 유지할 수 있겠지만 우리 몸의 공동체 기능이 서로 다 장부들을 도와주션머, 절제하면서 활동하기 보다는 복용하는 약물 위주의 일방적 활동을 우선으로 하게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심장병으로 인해 약물 치료나 수술을 받은 후 심장의 기능을 회복하고 생명 활동을 유지하게 된 것이 무엇보다 감사한 일이지만 이후부터는 심장은 자기 위주의 기능 활동을 강조하게 되면서 상호 도와 주어야 하는 관계에 있는 다른 장부들에게 상당한 부담을 주게 되고, 긴장과 불균형 상태를 야기하면서 또 다른 약물 치료가 필요하게 된다.

이러한 상태가 계속 되면 전체적 불균형 상태로 발전하게 되면서 우리의 몸은 결국 더 많은 약물에 의존하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또 한 가지 현대인들이 Technology에 대한 관심과 믿음이 커지면서 현대 의학이 우리의 모든 병을 치료해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평소의 자기 건강 관리에 소홀하게 된다는 점이다. 설사 내게 큰 병이 온다고 하더라도 건강보험이 있으니 걱정할 필요가 없고 잘 치료받으면 되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감 때문에 자기 자신의 나쁜 습관을 알면서도 애써 고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최근 의료 저널에 의하면 현대의학이 병을 찾아내 진단하는 방법은 최첨단 기술로 발전했지만 이를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은 별로 없다고 한 것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우리 몸에는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회복 기능이 주어져있다. 평소에 올바른 생활 습관을 통하여 뭄의 건강 상태를 유지하고 회복 기능을 높이는 것만이 약물과 병원 방문 횟수를 줄이는 길이라 할 수 있겠다.

누구나 다 아는 몇 가지 방법만 생활에 정용하면 지금 이후 건강 생활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기억하세요. 당신 몸의 주인은 바로 당신입니다.

첫 째, “아침 햇볕 쪼이며 걷기”

하루 30분~45분 정도, 아침 햇살을 즐기면서 걷기도 하고 명상도 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자. 세상에는 태양 에너지만큼 삶의 활력소를 주고 우리 몸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없다. 우리는 햇볕의 중요성을 잊고 살아가는 것 같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가히 놀랄만한 효과를 가지고 있다. 특히 아침 해가 떠서부터 3시간 이내의 아침 햇살이 가장 좋으며 오후에는 햇살이 강해서 외부와 우리 몸에 부작용을 가져 올 수도 있어 주의해야 한다.

아침 햇살은 우리 몸에 적당한 자극을 주어 몸 전체의 신진대사를 도와주며 혈액 순환 기능을 활발히 해주고 두뇌의 자극 호르몬 분비를 증가시켜 몸 전체의 호르몬 활동을 왕성하게 해주며 또한 세로토닌의 분비를 활성화해 침체되고 우울한 감정도 활짝 열어주게 된다.…

아버지, 저를 당신의 계획에 사용해 주소서

(2013년 회지 “평화의울림“에 개제된 글입니다)

이재경Thursday, August 30 2012

Santiago de Compostella– Negreira – Vilaserio- Santa Marina, 40.75km

아침 10시에 마시는 맥주 맛과 오후 3시에 마시는 맥주 맛이 다르듯, 카미노데프랑세/Camino de Frances와 카미노데피스테/Camino de Fisterra는 상대적으로 다른 멋이 있었어.

구릿빛 밀밭, 영글어가는 포도들의 뚜렷한 젊음, 산양들의 낡은 방울소리, 마치 미로 같은 넓적하고 푹신한 구름, 길 위의 새겨진 셀 수 없는 발자국, 길을 안내하는 노랑 화살표를 닮은 노랑나비, 새까맣게 타버린 고개 숙인 해바라기를 카미노데프란세스에서 맛보았다면, 산록에 남겨진 빈 집의 풍요로움, 옥수수수염의 간지러움, 암소의 느긋한 재롱, 끊임없이 살랑거리는 대서양 바람, 화려한 해돋이와 부드러운 파스텔 톤을 소유한 야생화의 분주함을 제대로 맛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카미노데피스테라야.

제대로 된 갈리시아/Galicia 지방을 맛보려면 피스테라길을 가보라고 권하는 순례객들이 있는데 내가 느낀 이 맛인지 그 맛인지 헷갈려. 날 현혹시킨 이 스페인은 너무 다양한 매력이 있어 뭘 어떻게 간추려야 할지 도무지 모르겠거든.

올베이로아(Olveiroa)를 약 14km 남겨두고 오랫동안 비어진 학교에 도착했어. 관리자도 없고 순례객들이 매트리스를 깔고 잘 수 있는 교실과 화장실이 전부야. 시계 바늘은 다섯 시를 향해 움직이고, 오는 길에 자신의 두 번째 순례길에서 예수님을 만나 세례를 받았다는 체코 파블릭에서온 Viladilin은 옆에서 19km를 더 가겠다고 해. 그럼 나는 가는 길에 알베르게(순례자전용숙소)를 찾으면 멈추겠다며 따라나섰어.

잘하는 짓일까?

스페인의 해는 아주 느릿느릿 저물어. 저녁을 먹고 배가 꺼질 즈음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강열함을 마지막으로 살며시 사라져 주는 해는 곧 다른 곳에서 아침을 열어 주겠지.

빌라딜린에게 여자 친구가 있어. 그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만장일치로 입을 모아 그의 여자 친구를 칭찬한데. 행복해 보여. 그도 그녀를 사랑한다고 했거든. 그런데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있데. 그래서 이 길은 네 번째로 걷고 있다네… 마음속에 하나님으로부터 강한 calling이 있는데 바로 신부님이 되라는 말씀인 것 같데.

“그녀를 사랑한다……. ” , “신부님이 되고 싶다…….”를 계속 반복하는 그에게 사랑도 사역도 중요해 보여서 나는 어떤 도움도 주지 못한 채 망설였어. 이런 상황에 어떤 단어를 어떻게 조합해 어떤 문장을 생성해야 할 지 너무 조심해졌거든.”있잖아, 그녀를 계속 사랑하고, 신부님이 하는 일들을 그녀와 함께하는 건 어때? 예를 들어 성당에서 신부님을 돕고, 마을에 가서 복음을 전하고, 수업도 하고, 봉사하고, 성서도 계속 공부하고, 성당도 청소하고?”

“성당도 청소하라고? ㅋㅋㅋ 그럼 신부님이 되지 말라는 거네?”

사실 나는 “Don’t be a priest” 말은 입 밖에 내지 않았다. 그저 “Do whatever a priest does with her”라고 했을 뿐…….

나중에 피스테라에 도착하기 전부터 이틀을 동고동락한 동갑내기 독일 친구, Nadine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그녀는 아주 단호하게 말했어.

“그는 이미 답을 얻었어, 인정하기 싫은 거겠지” ‘나는 모르겠어. 그게 답인지 아닌지.’ 하지만 확신에 찬 나딘에게도, 여전히 기도하는 빌라딜린에게도 이 길은 여전히 공평하게 그들에게 생명력을 주고 있다는 것이야. 그리고 그런 사실이 나를 미치도록 감동시켰어.

산티아고에 올려진 순례자들에겐 저마다 잠겨있는 문들이 하나씩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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