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심어준 사랑의 인술사업
(2015년 평화의교회 40주년 기념회지에 개제된 교인 기고문입니다)
이내운 집사
사랑의 인술사업을 만나게 된 경위
2008년11월 하순경 현재 LA 민주연합 상임대표와 중원포럼 회장을 맏고있는 이병도씨가 가든스 윗호텔에서 만나자는 전화가 걸려 왔다. 본인이 2009년 제 17대 남가주충청향우회장을 취임하는 데 나보고 사무총장을 맏아 달라는 요청 이었다. 나는 이민초 라크라센타에서 8년 정도 살았었 는데 이 당시 어머님이 미국에오셔서 1년 나와 함께 계시다 한국으로 돌아가셨다. 라크라센타 지역은 한인인구도 많지 않았고 한인타운처럼 사람들이 자유스럽게 걸어다닐수 있는 환경도 아니었기에 낮에 아파트에는 어머님이 혼자 계셨었는데 어머님은 농담으로 자신모습을 “창살없는 감옥생활” 이라고 표현을 하셨다. 워낙 소탈하시고 활동적이셨던 이런 어머님을 위해 나는 일간 신문에 난 기사를 보고 어머님을 모시고 충청동우회 월례회에 참석을 하였다. 나가서 어르신들께 자식처럼 반주도 권하고 노래방 도우미로 고향 어르신의 기쁨조 노릇을 하였다. 65세이상 노인모임 인 충청동우 회에 아들뻘인 내가 어머님을 모시고 봉사를 하면서 특별회원으로 가 입이 되었고 현재까지 10년째 기쁨조로 노인들을 섬기며 봉사를 하고 있다. 향우회 이사회를 통하여 나를 보았다는 이병도 회장의 면담을 통하여 나는 그가 본이 같은 전주이씨에 고향도 같은 동향인 논산이고 , 충남대학생회장 출신에다 신앙도 같은 카톨릭이며 정치성향도 나와 비슷한 중도진보성향이라 는 것을 알게 되었다. 최소한 인생관과 가치관의 성향이 비슷하여 나는사무총장직을 수락하게 되었고 충청향우회의 주요사업 이었던 국제적 사랑의인술사업을 처음으로 만나게 되었다. 이 사업은 자민련당 총재를 지내셨던 심대평 충남도지사가 1997년에 LA슈라이너병원과 충청남도 고국 화 상 어린이를 무료로 치료해주겠다는 사랑의인술사업 협약식을 체결하고 미국에서의 그 사업의 관리를 충청향우회가 맏게 됨으로써 본 사업이 시작을 하게 되었다. 2013년도에 본사업이 종료되기 까지의 16년동안 화상어린이 300여명을 무료치료을 해주어 미래가 참담하고 불투명하였던 불쌍한 어린새싹들에게 새로운 삶의 희망을 심어주게된 매우 보람있고 흐믓한 사업의 결과를 가져다 주었다. 1998년 제6대 김흥영 회장이 첫번째 화상입은 이미애 아동환자의 입원치료가 무사히 성 공함에 따라 본사업은 본격적으로 시작이 되었다. 무료치료 자격조건은 18세이하의 극빈층 화상 어린이로써 한국에서 정기검진을 통해 선정이되면 미국 슈라이너병원에 와서 치료를 받을 수가 있 었다. 매년 정기적으로 평균 30여명의 어린이 환자를 한국에서 발굴해서 미국 슈라이너 병 원에서 모든 입원치료를 전액 무료로 해주었다. 2003년도 제 11대 신구현 회장때에 가장 많은 50 명의 어 린이환자를 입원치료를 해주었고, 이상주 약사님이 향우회장이 이었던 2002년도에 충청북도가 추가협정 체결이 이루어지 면서 대전광역시, 충청남도, 충청북도 등 3개시도의 화상어린이가 본사 업의 치료혜택을 보게 되었다. 사랑의인술사업은 화상으로 일그러진 동심과 절망을 가지고 평생 살아가야만 했던 어린이들에게 삶의 새희망을 선사하고 싶어했던 어른들의 마음이 계기가 되었고, 아이들 치료를 맡은 ‘LA 슈라 이너 아동병원’과 충청 지역 ‘지방정부 자치단체’의 후원, 그리고 이들 을 연결하고 지원하는 역할을 맡았던 ‘남가주 충청향 우회’의 연합과 협력으로 3개기관이 든든한 연결고리를 맺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사업 이었다. LA 슈라이너 아동병원 은 1952년에 개원을 하였 는데 병원의 전반적인 운영은 오로지 개인또는 단체의 도네이션만 으로 운영되는 병원이었다. 이 병원에서 현재까지 약 4만여 명의 아동환자를 치료해주는 실적을 보이고 있었는데 1998년 사랑의 인술사업을 체결하여 16년동안 한국어린이 환자 300여명이 무료치료를 받아 지금 정상인으로 생 활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