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 서신 – 흐름의 문화 축적의 문화

국중호 요코하마 시립대 교수는 “한국이 흐름의 나라라면 일본은 축적의 나라”라고 말합니다. 일본이 가진 소재 산업의 경쟁력은 오랫동안 쌓아온 경험과 지식에서 나온 것이므로 우리 나라가 따라가기 어려우니 정신차리라는 주장입니다. 맞는 말 같기도 합니다. 일본 하면 떠오르는 노포(오래된 가게) 문화는 일본의 꾸준함과 성실성의 표본입니다. 이어 국교수는 ‘네마와시’(根回し)라는 말을 소개합니다. 네마와시란 나무를 옮겨심기 전 행하는 일련의 준비작업을 뜻하는데 일을 진행할 때 협의나 사전교섭 등을 통해 관계자들 간에 소통하며 공감대를 형성하는 물밑작업을 의미합니다. 여기서부터 국교수는 잘못 짚었습니다. 이번 무역 보복 결정에는 어떤 네마와시도 없었습니다. 있었다면 지난 정권에서 박근혜와 협의한 것 뿐이겠지요. 그런데 국교수는 한국정부가 네마와시 없이 반일운동에 나서고 있다는 듯이 타박합니다.

한국의 반일 정서가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습니다. 어차피 싸움에는 양측 모두 타격이 있는 법인데 한국의 소위 ‘먹물(식자층)’들은 우리 측의 피해만 과장하며 시민들의 불매운동이 감정적으로 흐른다며 가르치려고만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가르침’이 시민들이 느끼는 분노에 자극제가 된다는 사실을 그들만 모르는 것처럼 보입니다.

일본이 가진 장점이 당연히 있겠지요. 이번에 문제가 된 ‘불화수소’를 생산할 수 있는 기술을 한국의 중소기업이 8년전에 축적했는데 모두가 외면했던 것은 우리가 반성해야 할 부분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일본이 가진 장점들에 대한 지나친 평가는 우리 안에 있는 또다른 식민의 잔재입니다.

저는 최근에야 일본의 투표용지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았습니다. 정당, 이름이 표기되고 그 밑에 도장을 찍는 우리나라의 투표용지와 달리 일본은 지지하는 후보의 이름을 직접 쓰게 되있답니다. 일본 이름은 한자 읽는 방식이 복잡해 발음하기도 어렵습니다. 실제로 일본의 젊은이들 중에 한자를 못 읽는 사람들이 다수라고 합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겠지만 일본은 한자가 히라가나와 함께 공동으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문맹률이 높다는 뜻입니다. 이런 투표지는 익숙한 이름을 쓰게 됩니다. 정치 신인의 발굴을 어렵게 만들고 축적의 나라답게 정치 권력이 교체 없이 축적됩니다. 일본에서 자민당 일당 독재가 가능한 이유이기도 하지요.

루쓰 베네딕트의 말처럼 일본 문화는 수치의 문화(shame culture)입니다. 남들로부터 비난 받거나 모욕당할 때 느끼는 수치심이 일본 문화에 깔려 있는데 그 조차도 잃어가는 일본을 요즘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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