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교회를 섬기는 이들 –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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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보수는 자기 희생에 앞장선다.노불리스 오불리즈를 기뻐 실천하는 무리다. 1.2차세게대전에 제일 먼저 참전하여 평민보다 훨씬 많은 희생을 치른 영국의 귀족들이 참보수다.
첩첩히 쌓여진 고전의 가치를 보전하고 문학,철학,정치의 현대화를 실천하는 영국 지식인들의 자연스런 진리의 발현은 어쩔수 없이 세계문화를 선도한다.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질책당한 바리새파도 대표적인 보수라고 할 수 있다. 우선 정직한 헌금으로 자신의 의무를 완수하고 크고 작은 집회마다 정장 차림으로 경건을 지키며, 꾸준한 기도로 자신을 추수리고시정무리 앞에서도 타의 모범을 보였다. “너희의가 서기관과 바리새파보다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못하리라” 이말씀은 예수도 그들의 기초윤리를 인정하는 의미가 있다고 보여진다.
보수는 진보 못지않게 아니 그보다 더 진지한 노력과 자기 관리가 요구되는 집단이다.
한국의 보수는 어떠한가? 우선“종북좌파” 소리를 입에 달고 다닌다. 선한 전통을 이어받기보다 사기,도둑질에 전념한다.그러나지적을 받으면 날카로운 보검을 휘두르며 달려든다. “종북좌빨”, “빨갱이” 등 전가의 보도다.이것 한방이면 모든 허물과 죄악은 거품처럼 사라진다. 머리띠 두르고 태극기까지 휘두르면 완전무장이다.신분상승이 순식간에 이루어지고 애국자로 변신하게 된다.
교회의 지도자가 되고 하늘의 축복받은 자로 자타가 인정한다.가롯유다는 은삼십을받고 예수를 팔았지만 곧 후회하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었다.
한국의 자칭보수는 도둑질과 증거말살과 빨갱이 만들기와 거짓증언까지 인간 최악의 죄악들을 다모아놓고 굿판을벌린악마들의 두목이다.
이미 인간이기를 포기한 가짜 보수다. 한마디로 고급 양아치가 되어버렸지만 그 사실을 자신도 주위도 알수가없다.
왜?그의 입에는 “저놈좌파빨갱이야”가 거침없이 붙어다니며 그를 동행하면서 밀어주니까.
천행인지 촛불 혁명으로 새정부가들어섰다.혼신의 노력을 하지 않으면 한국은 미래가없다.
마지막 기회다.특히 종교 사기꾼을 멀리하고 누적된 600년의 해악을 청산하라.
그래야 그대도 그대의 후손도 살아나고 나라도산다.…
나태
나태는 온갖 사랑의 시초이다.(Clusta Wolf) 나태함은일곱가지 대죄의 하나이지만 사람을 비롯한 모든 선한것의 근원이기도 하다. 카프카는 이렇게 말했다 “나태는 모든 악덕의 시초이며 모든 덕의 압권이다”라고. 역설적이지만 나태해질 권리를 보장해 주지 않는 사회는 악이다. 나는 성실함과 나태함 중 선택의 여지를 주지않고 열심히 살라고만 강요하는 사회가 가장 악한 사회라고 믿는다. 같은 맥락에서 불순종 할 자유를 주지않고 복종만 요구하는 부모가 가장 악한 부모이다.영적 기복을 불허하고 헌신만을 외피는 목회자가 가장 악한 목회자이다. 헐덕이며 이익을 추구하는 시간이 가장 무익할 수 있고 아무것도 하지않는 비효율적 시간이 가장 유익 할 수도 있다 . 빠름의 추구는 항시 폭력과 전쟁으로 귀결되며 느림과 나태야 말로 역사의 진정한 동력임을 우리는 어느때에 가서야 믿게될까? 나의 개임적인 고백이다. 항상 느려터지고 무슨일이든 내일로 미루려고 한다. 한마디로 나태하기 이를때 없음을 고백한다. 그렇다고 해서 볼트가 나태를 온갖 사랑의 기초라고 한다면 이는 무리한 말이다. 최소한 나에게는 나태로 인해 내 인생은 지금의 이꼴이 되었는데 그리고 이 나이에도 여전히 나태한데 어찌할꼬. 나태가 칠거지악 중에 하나라는 것이 나에게는 분명해 진다. 그래도 혹 황혼이 저 앞에서 곧 꺼질려는 불빛을 붙들어 매어 나에게서 나태에서 벗어나라고 한다면 나는 어찌하여야 하는가?
행복
생물학자들에 따르면 우리의 정신세계와 감정세계는 수백만년의 진화에 의해 만들어진 생물학적 체제에 의해 지배를 받는다. 가름 모든 정신적 상태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행복도 월급이나 사회관계 정신적 권리 같은 외부 변수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신경, 뉴런, 시빕스, 그리고 세로토닌, 도파인, 옥시토신 등의 다양한 생물학적 물질에 의해 걸정된다. 복권에 당첨되거나 집을 사거나 승진하거나 심지어 진정한 사랑을 찾거나 하는 일로 행복해지는 사람은 없다.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것은 오로지 하나 밖에 없다. 바로 신체 내부의 쾌락적인 감각이다. 방금 복권에 당첨되거나 새로운 연인을 찾아서 기뻐 날뛰는 사람은 실제로 연인이나 돈에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혈관속을 요동치며 흐르는 다양한 호로몬과 뇌의 여러 부위에서 나오는 전기신호의 폭풍에 반응하는 것이다. 지상에 낙원을 창조하려는 희망을 가진 모든이에게는 불행한 일이지만 우리의 내부 생화학적 시스템은 행복수준을 상대적으로 일정하게 유지하도록 프로그램되어 있는 듯 하다. 자연 선택은 보통 말하는 의미의 행복을 선호하지 않는다….. 그런데 내 생각은 지상의 낙원을 창조하려는 희망을 가진 모든이에게 불행한 일이 결코 아니다. 우리의 정신세계와 감정세계가 생물학적 지배를 받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의 불행을 불행으로 지속시키거나 가중시키지 앟고 이를 불행을 거르고 걸러서 그 불행에 대한 정신과 감정을 오히려 미화하는 과정을 거치므로서 그 불행을 행복으로 변환시킴을 뜻한다. 그래서 우라는 그 불행중에도 삶을 유지할 뿐 아니라 이때 창조적 활동을 활발히 전재한다. 길동무가 그렇다. 아픔이 없는 행복은 행복일 수 없으며 그런 행복은 존재한바 없다.레이저 핵 융합기는 일말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정밀한 장치이다. 192개의 레이저는 바늘끝 만한 샘플 덩어리가 균일하게 내파되도록 정확하게 조준되어야 한다. 위치뿐만 아니라 시간도 중요하여 192개의 레이저 빔은 300억분의 1초라는 오차 범위 안에서 동시에 도달해야 한다.…
(채희탁)
고통만큼 시야를 명료하게 하고 주위를 잘 보게 하는것도 없다. 플라톤의 말처럼 고통은 영혼의 질서를 회복해 낸다. 시인 루미는 고통이 무관심의 가지들을 털어낸다고 말한다. ‘찌르는 가시들이 당신의 어떤 사유보다도 더 멀리 대려 갈 것이다”
다른 무엇보다 고통은 출생, 오르가즘, 사랑, 죽음과 같은 인생사의 경험을 제공한다. 고통은 너무 생생해 비 현실적인 상황에 대한 중화제 역할을 한다. 당신이 직접 고른 중화제는 아니더라도 아주 효과적인 것이다. 다음에 당신이 진정한 고통속에 있게 될 때, TV쇼나 새로운 가전제품, 깨끗한 집, 혹은 당신의 이력서에 대해 당신이 어떻게 느끼는지 살펴보라. 그것들 중 당신을 도울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당신을 도울 수 있는 것은 당신을 보살피기 위해 모든 일을 포기한 누군가가 가져다 준 차가운 물 한잔이다. 담요 몇 장, 마른 베개도 도움이 될 것이고 당신이 울면 집안에 누군가가 들을 거라는 사실도 도움이 된다. 그 이상은 기대해도 소용이 없다. 그래서 내생각 같아서는 다윈의 진화론에 한마디 덧부쳐야겠다. 진화과정에서 주된 역할을 항 것은 고통(Pain)이고 이 고통이야말로 인간을 다른 모든 생물을 뛰어넘는 인간이 되게 한 핵심요소로서 이성적 인간이 되게 한 것이다. 인류의 앞날에 희망을 걸어보자. 그 희망은 간헐적인 아픔을 동반(수반)하여야 한다.…
함께 기도할 제목
1. 교회를 위해
– 세워진 사역자들(목회자, 당회)과 2017년 각 기관장들을 위해
– 교육부서의 성장과(어린이부, 중고등 대학부)활동을 위해
– 각 기관(길동무: 건강과 열정, 두나미스: 왕성한 활동, 청년부: 성장)을 위해
– 교회의 숫적 부흥과 성장, 건강한 공동체 사역, “전도의 열정”을 위해
– 중보기도의 열매를 위해
2. 교우들을 위해서
– 2017년 교우들의 가정, 비즈니스, 건강과 평안을 위해
– 자녀들의 학업(학업성취, 좋은 스승 친구들과의 만남)과 건강한 비전을 위해
3. 9월 특별기도
– 평화의 교회 부흥을 위해
– 모든 사람들이 종교, 신념, 인종, 결혼에 의해 차별받지 않는 세상을 위해
– 연약한 교우들의(김인숙장로,신영균장로,윤제니권사)건강회복과, 교우들의 강건한 삶을 위해
– 남북관계, 북미관계에 평화를 모색하도록
– 새로운 학기를 시작한 자녀들을 위해 (U:조예진,성세현,정성하,유제나,김지수,김대영 /H:고성결 /M:채유진,김지원,고성하,고성은 /E:Hannah)
– 교우들의 사업장을 위해
*이달의 말씀 : “너희는 그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야 한다. 가시나무에서 어떻게 포도를 따며, 엉겅퀴에서
어떻게 무화과를 딸 수 있겠느냐?(마태복음 7:16)
– 하나님의 말씀을 먼저 읽고 기도합니다 : 마태복음7장, 시18편 20편 27편 28편 40편 42편 중 한편이상 읽고 기도함.
*위의 기도제목 외에 특별기도제목이 있으면 목사님께 연락해 함께 나눕니다.
잿빛 승복속에 같힌채 출구를 잊은 육체 속 춤추는 핏물.
이름도 없고 모양도 없고 냄새도 없고 색깔도 없는 도, 도라는 물건, 보일듯 잡힐듯 하지만 그때마다 빈 손이다.
웬 윤회는 그리 빠른지 30이 되니 급하고 허무하다.
깨치기만 하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더니, 천재들의 이야기인가. 범부는 시간만 보낸다.
일회밖에 배당되지 않은 청춘을 적막한 산속에서 장사 지내고 있다. 중얼거리는 언어마다 죽은 언어다. 그 뜻을 알리가 없다.
선승들이 그때 그때 허접한 마음을 뱉어내서 생긴 죽은 언어, 사어들, 계면적어 터뜨린 공허의 언어 모듬 접시다.
아! 너무나 허무하다. 생피처럼 뚝뚝 떨어지던 그 허무의 언어, 그 절망의 언어들이 배암처럼 내 몸둥이를 휘감고 있구나.
출구를 못 찾고 펄떡이는 피의 고뇌를 누가 알리오. 새벽마다 힘차게 발기하는 성기와도 같은 젊은 비구승의 번뇌를 누가 알리오.
석가라는 종교의 천재가 꿈꾸던 부처의 나라, 불국토. 모든 번뇌와 고토잉 끊어진 경지,
불교 최고의 이상사회가 불국토였지만 위대한 자의 마지막 망상은 아니었을가? 비구승은 가부좌를 풀고 하산한다.
동네 거지들 모아 발이라도 씻어 줄가 보다. 고독의 사어들이여, 안녕.…
(채희탁)
예수가 세상을 거닐 때는 여자가 사람축에 들지 못했다.
깨끗하지 못하고 아는 것이 없으며 그래서 사람 축에 들지 못했다.
하지만 예수는 깨끗하지 못하고
아는 것이 없는 사람과 어울렸다.
창녀가 돌팔매에 죽게 되었을 때
그녀를 구했다.
나도 너를 정죄치 않는다고
그래서 예수는 진보다.
시공을 훌쩍 뛰어 넘어
21세기 오늘의 한국, 예수는 무엇이라 할꼬?
여자는 직관에 의한 판단이 정확하고 남자보다 빠르다
남자는 직관에 이한 사태 판단은 느리나 종합적이고 장기적인 판단에는 강하다
이제는 너희 둘의 공동 책임이다.
서로 도와주고 보완해야 한다.
잘못되면 이제는 아무도 너희를 도와주지 못한다.
하늘에서도 땅에서도
부처는 해탈에 들기 전에
여자에 대해 특별한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다.
여자냐 남자냐가 아닌 인간 일반에 대하여 설법했다고 생각된다.
세상사에 직접 관여 하는 것 같은 이야기는 하지 않은 것 같다.
나를 따라서 해탈하도록 설법하였다고 생각된다.
그 해탈의 설법이 무슨의미였겠는가?
더럽고 죄많은 사람들을 마음에 두고 설법을 펼쳤다고 생각되는데
이게 그의 중생 구제의 핵심정신이다.
그도 예수와 같이 진보였다. …
(문영조 장로의 기고문입니다)
저승이 있는 것 같은데 손에 안 잡혀. 국가나 사회가 돌아가는 과정을 길게 관찰하면 결국 초월적인 힘이 관좌를 하는 것 같단 말이야. “이데아”라는 말을 만들어 놓고 진리의 최고봉이라고 떠들어 봤지. 내가 만들고 내가 소리치면 선전해 보았지만, 그리고 어느정도 다수의 제자들의 동의도 얻었지만 나 자신은 허무하더라고. 저 세상이 있다는 말도 못하겠고 또 없다고도 못하겠고 그래서 저승의 그림자 정도의 가상의 이상향을 그려 본 것이지. 그래서 “이데아”가 과연 정의의 법칙에 따라 움직이느냐 아니냐를 고민하고 있지. 결국 신은 보이지 않고 신은 꼭 필요하고 그러나 신은 있음직 하면서 그 그림자만 희미하게 비쳐주고 있거든. 미치겠어.
제자들아, 그러니 어찌할꼬?
방법은 하나. 몸 건강 유지하고 밥벌이를 하며 열심히 생계를 유지하게. 그러나 철학을 통한 진리의 길에서 이탈하면 안되네. 만약 빗나갈 경우 자네의 인생자체가 무가치의 늪에 빠지고 말게 되네. 젊은 시절에 특히 기초 철학을 잊지 말게. 그러다 늙어지면 취미를 가지고 소일거리를 찾는 거야. 즐겁게 인생을 마무리 지워야지. 카드놀이, 낙시, 정원 가꾸기 또 그림그리기 등. 그러나 잊지 말게. 즐기면서도 반 이상의 시간을 인문과 철학에 집중 투자하여 참 인간이 되어야 하네. 그래야 그대의 고독한 인생이 “이데아” 건너편 언덕에 있을지도 모르는 저승에 갈 수가 있지., 그렇게 해서 보상을 받아야지.
나, 소크라테스는 확신하네. 진리 속에 살고 진리를 붙잡고 늘어지다 죽으면 그 보상이 있을 거 라고. 진리가 아무 소용없이 안개나 뜬 구름처럼 없을 무로 살아진다고 생각되면 내가 뭐 잘 낫다고 겁없이 이 독주를 마시고 편안히 죽을 수 있겠나. 안 그래?
현 실권자 아니토스가 자기 실패를 숨기려 하고 있어. 스파르타와 싸우다가 패전하고는 그 희생양을 찾고 잇다가 나를 발견한 거지. 나는 그의 더러운 손에 죽기 싫어 내 손으로 직접 나를 없애기로 했지. 나는 죽었고 아니토스는 살았지. 그러나 나는 반대로 생각해. 나는 살고 그가 죽은거야. 이게 철학이지.…
(채희탁 교우의 기고입니다)
전쟁의 한 복판에 평화는 꽃으로 피어 난다.
전쟁터에는 의와 악이 공존한다.
평화는 의와 악의 싸움터에서 자란다.
평화의 교회는 참으로 힘든 싸움의 한 복판에 있다.
평화의 교회는 외롭다.
평화의 교회는 외로움을 딛고 그 외로움을 운명처럼 받아 들인다.
정치가 문제가 되는 상황에서는 보수는 악이고 진보는 선이다.
문화가 문제가 되는 상황에서는 보수와 진보가 겹칠 수 있다.
사회적 문제가 대두되는 상황에서는 그 구분이 모호할 때가 있으나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장기적으로 옳은 해답이다.
역사는 되풀이 된다.
그러나 천편일률적으로 되풀이되는 것은 아니다.
변화를 동반해서 되풀이 된다.
그 변화는 진보적 발걸음으로 이어져 왔다.
그래서 역사적 발전이라고 하였고 왕권정치- 귀족정치- 시민 정치의 발자취를 보여 왔다.
평화의 교회는 선의 방향으로 역사가 발전할 것을 굳게 믿고 있다. 어떤 힘센 자가 무엇이라 해도… …
(채희탁 교우의 기고입니다)
한국에 미리 설치된 사드는 몇 개나 될까? 그 수도 불확실하다. 그 숫자는 대통령도 모르고 있다.
사드는 미국의 무기 체계다. 그런데 한국의 국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이 그 도입 및 설치 상황을 모르고 있다. 군부의 보고 받지 못했다.
도대체 어찌 된 일인가?
전시 작전권은 미국이 쥐고 있고 한국은 미국의 작전에 복속되어 있다. 그렇더라도 대통령도 그 배치 관련사항을 모르고 있다면 이는 잘못되어도 한 참 잘못된 것이다. 이것이 나라인가를 외치던 때가 생각난다. 미국에 다녀 온 한민구 전 국방장관의 기자회견 내용도 어처구니 없다.
미국이 우리의 입장을 십분 이해하고 있으며 어쩌니 저쩌니 하는데 요지는 미국이 한국의 방위를 위한 조치로 그리고 극동 및 동남아시아의 안전을 위한 조치라는 것이다.
목구멍에 무언가 걸려 있는 것 같다. 걸린 것이 너무 커 뱉을 수도 없고 넘어가지도 않는다. 많이 아프다.
어느 동창 선배의 말이 기억난다. 언제나 정의와 자유를 앒세워서 항상 불의와 속박하는 것이 그들의 과거고 현재인데 미래에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가? 미국의 힘은 막강하다. 사드 배치는 한국의 법에 따라 설치 여부가 결정되어야 한다. 한국민의 결정에 따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