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와 정치- 목회 서신

영국의 마거릿 대처 전 총리는 축구의 광적 팬들을 의미하는 훌리건(Hooligan)을 ‘문명사회의 치욕’이라 부른적이 있습니다. 그들의 응원행태를 단지 과열로만 설명하기에는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그렇게 광적이 된 데는 모두 정치적, 지역적 이유가 있습니다.

90년대 유고연방이 해체되면서 베오그라드를 연고로 하는 두 팀, 레드스타와 파르티잔의 경쟁은 세르비아 민족주의 세력과 크로아티아계의 충돌을 대변하는 대리전 모습이었다가 진짜 유혈분쟁으로 격화되었습니다. 이런 부끄러운 역사를 가진 크로아티아는 이번 월드컵에서 개최국 러시아를 꺾고 4강에 진출한 상태입니다.

기성용 선수의 첫 해외진출 구단이었던 스코틀랜드의 셀틱과 글래스고 레인저스의 경기는 가톨릭과 개신교의 대리전으로 유명합니다. 19세기 후반 아일랜드가 기근에 허덕이자 스코틀랜드의 글래스고에 아일랜드 이주민이 늘어났고 하층민으로 전락한 이들이 사회적 갈등을 일으키자 아일랜드 출신인 윌프리드 수사가 사회 통합 차원에서 1887년 현재의 셀틱을 창단합니다. 때문에 엠블럼에는 창단 이후 리그 참가 연도인 1888이 들어가 있습니다. 하지만 융화에는 실패하고 스코틀랜드의 주류인 개신교인들이 글래스고 레인저스를 광적으로 응원하는 빌미만 제공했습니다.

브라질을 축구 강국이라고 하지만 2002년 한일 월드컵 우승 이후 계속 8강 수준에 머물다가 2014년 브라질에서 열린 월드컵에서는 준결승에서 독일에게 7-1로 패하는 수모를 당했습니다. 이번 대회에서도 벨기에에게 지는 바람에 또 8강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선수들 개개인은 유럽 리그에서 엄청난 연봉을 받는 A급들이지만 자국 경기에는 그다지 힘을 기울이지 않아보입니다. 사람들은 그 이유를 ‘카르톨라스’(cartolas)에서 찾습니다. ‘카르톨라스’란 ‘큰 모자’라는 뜻으로 부패한 축구협회 지도부, 구단주, 조직폭력과 연계된 클럽 간부 등이 얽혀 있는 카르텔을 말합니다. 이들 세력이 브라질 축구를 엉망으로 만들었다는 것이지요.

아무튼 이번 주면 월드컵도 끝이 납니다. 전세계가 월드컵 열기에 들떠 있는 동안 평양에서 열린 통일 농구대회는 한국인의 관심에서도 멀어지고 말았습니다. (2108년 7월 일 주보)…

목회서신- 가거라 삼팔선아

1947년 나온 가요 ‘가거라 삼팔선아’(이부풍 작사, 박시춘 작곡, 남인수 노래)의 가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1절 산이 막혀 못오시나요, 물이 막혀 못오시나요, 다같은 고향 땅을 가고 오련만남북이 가로막혀 원한 천리길, 꿈마다 너를 찾어 꿈마다 너를 찾어 삼팔선을 탄한다(헤맨다).
2절 꽃필 때나 오시려느냐 눈올 때나 오시려느냐 보따리 등에 메고 넘든 고개길 산새도 나와 함께 울고 넘었지 자유여 너를 위해 자유여 너를 위해이 목숨을 바친다.
3절 어느 때나 터지려느냐 어느 때나 없어지려느냐 삼팔선 세 글자를 누가 지어서 이다지 고개마다 눈물이던가 손모아 비나이다 손모아 비나이다 삼팔선아 가거라

1947년 이라는 시대적 상황을 고려하면 상당히 파격적인 가사입니다. 어느 한쪽을 원망하지 않고 분단상황을 슬퍼하는 이 가사가 이승만 정부의 미움을 샀을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정부는 1절 마지막 ‘헤맨다’가 월북을 조장한다는 이유로 개사를 요구했습니다. 이에 작사가 이부풍이 창작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잠적하자 결국 작사가 반야월이 ‘헤맨다’를 ‘탄(嘆)한다’로 바꾸었다고 합니다. 또한 자유를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 가사가 포함된 2절도 본래 곡에는 없었으나 이데올로기적 의도를 담아 나중에 삽입한 것이라고 합니다.
슬픈 이야기지만 뒤집어 생각해 보면 예술가들에게 이런 용기라도 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1960년 김수영 시인은 ‘김일성 만세’라는 시를 썼습니다.
“김일성 만세, 한국의 언론자유의 출발은 이것을 인정하는 데 있는데 이것만 인정하면 되는데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한국 언론의 자유라고 조지훈이란 시인이 우겨대니 나는 잠이 올 수밖에”
(조지훈 – 청록파 시인)

언제부턴가 사상의 자유는 사라지고 통일을 이야기하면 죽거나 투옥당하는 시대를 거치면서 자기 검열은 더 심해졌습니다. 이 시절을 견디면서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상대방을 악마화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어둠의 시대를 끝낼 때가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2018년 6월 24일 주보)…

담배와 위스키가 어때서요? – 목회 서신

올해 상영된 저예산 한국 영화 ‘소공녀’(전고운 감독, 이솜, 안재홍 주연)를 보았습니다.
배우 이솜이 맡은 여주인공 미소는 대학시절 밴드 활동을 통해 열정을 불살랐지만 대학 졸업 후 마땅한 취업자리도 없어 가사 도우미일을 하며 근근이 살아가는 캐릭터입니다.
옥탑방 월세를 낼 돈 조차 없게 되자 집을 나와 이 친구 저 친구 집에서 잠동냥을 합니다. 하지만 미소에게는 버릴 수 없는 두 가지 취향이 있는데 담배와 위스키입니다. 담뱃값이 올라도 끊을 수 없고 일을 마친 후에 위스키 바에 들러 한 잔 마시는 그 생활은 미소를 지탱하는 힘입니다.
하룻 밤 재워준 대학시절 친구들은 한마디씩 합니다. “그렇게 돈 없어 쩔쩔 매면서 담배 좀 끊어라!”.
영화 대사에는 안 나오지만 주변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네 주제에 무슨 위스키냐, 그렇게 술이 좋으면 멸치에 깡소주나 마실 것이지!”

영화의 주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아프니까 청춘’이 아니라 ‘누구도 훼방놓을 수 없는 자기만의 취향이 있으니 청춘’인 겁니다.
돈도 없는 주제에 ‘담배와 위스키’는 비정상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집을 마련하기 위해 모든 젊음을 투자하는 인생은 과연 정상일까요?
다른 사람 보다 앞서 가기 위해 젊음을 낭비하는 삶의 방식은 정상일까요?
타인의 삶의 방식을 놓고 정상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자격은 누구에게도 없습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요.

결국 미소는 젊은 나이에 머리가 희어지는 병을 고치기 위해 먹던 약도 돈이 없어 끊고 머리가 백발이 되었지만 자신의 취향은 지키면서 한강변에서 텐트를 치고 생활하는 것으로 영화는 끝이 납니다.
백발이 되어도(훗날 나이가 들어도) 이 젊음의 취향은 버리지 않겠다는 은유입니다.

이 영화는 요즘 젊은이들의 아픔과 개성을 보여주는 뛰어난 작품입니다. 그런데 저는 갑자기 이 영화가 요즘의 시국과 얽혀 이해되기 시작했습니다.

북한을 향한 관용구 중 하나인 ‘정상국가’ 라는 말을 들으며 한 나라가 가진 고유한 생존 방식을 놓고 누가 감히 정상 비정상을 말할 수 있나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청춘 영화가 이념 영화로 해석되는 현실, 영화는 참 오묘한 분야인 것 같습니다.…

교회는 대한민국의 파괴자들? (목회서신)

‘대한민국의 설계자들(김건우)’이라는 책은 대한민국이 어떤 사상적 기초위에서 형성되어 왔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1948년 실질적인 남북분단과 한국 전쟁 이후 진보 좌익 세력은 대부분 북으로 갔고 남한 지역은 우익 세력들이 새로운 국체를 형성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입니다. 김건우 박사가 분석한 한국 우익의 계보는 김준엽(고대 총장 역임), 장준하로부터 시작합니다. 두 사람은 학병(지식인) 세대인 동시에 목숨을 걸고 학병에서 탈출해 광복군에 합류했고 반공정서가 강했으며 두 분 모두 서북세력(평안도 지역)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 진보 진영에서 존경받는 장준하 같은 분, 결국 박정희 정권 당시 의문사를 당할 정도로 민주화 운동을 위해 헌신했던 분도 사실은 우익의 정서를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어서 김건우 박사는 이들의 정신적 기초가 된 사람으로는 김교신(김인숙 장로의 시부), 함석헌, 류영모, 유달영(김인숙 장로의 선친)을 거론하고, 개신교에서는 김재준(한신대 설립자) 강원용(경동교회 창립자)과 천주교의 김수환 지학순 등을 우익의 기초를 놓은 사람들로 보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의 평가와는 사뭇 다릅니다. 위에 거론된 분들은 대부분 진보진영에서 존경받는 분들이기 때문입니다.

새가 좌우의 날개로 난다는 말이 있듯이 한 사회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좌우가 건전하게 대립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데 한국 사회에서 우는 실종되고 건전한 우를 대표하는 세력들이 빨갱이로 호명되고, 제 나라 독립운동 기념일(3.1절)에 일장기를 흔들고, 미국에 와서 한반도의 긴장을 오히려 부추기는 사람들을 우파 또는 보수라고 부르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설계자들’ 대부분이 기독교인이었다는 점도 우리가 되짚어야 할 부분입니다. 사회 모든 분야가 발전하고 있는 상황에서 교회만이 대한민국을 설계하기는커녕 ‘파괴’하는 세력인 듯 하여 마음이 씁쓸합니다.

(2018년 5월 20일 주보에서)…

목회서신 – 평화 올림픽을 기다리며

이번 주 우리 고국에서는 평창 동계 올림픽이 열립니다. 1988년 서울 올림픽에 이어 하계와 동계 올림픽 모두를 유치하는 국가적 경사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서울 올림픽 때는 정치군인 전두환이 집권 시절 유치한 올림픽인데다가 서울의 이미지를 개선한다고 빈민들을 강제로 내 쫓는 일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진보 진영에서 올림픽 반대운동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운동들은 국가의 격을 높이는 행사에 재를 뿌리는 행위라고 당시 보수 언론은 많은 질타를 했습니다. 서울 올림픽은 1980 모스크바 올림픽이 자본주의 진영에 의해 보이콧 되고 1984 LA 올림픽이 공산주의 진영에 의해 보이콧 된 후 처음 맞는 평화의 제전이라는 점에서 반대 여론이 지지를 받을 상황이 못되었습니다. 서울 올림픽과 인과 관계는 없겠지만 이듬해에 베를린 장벽은 붕괴되었고 옛 공산 국가들은 모두 개방의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동계 올림픽에서는 이상한 반대가 우리를 의아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여자 아이스하키 팀이 북한과 단일팀을 구성한 결정이 어린 여성 선수들의 공정한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라는 언론의 농간이 일부 여론의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가장 공정하지 않게 올림픽에 출전하는 선수들이 한국의 여자 아이스하키 선수들입니다. 개최국 자동 출전이라는 특혜가 없어진 터라 한국은 로비를 통해서 여자 아이스하키를 합류시켰고 올림픽 수준에 맞추기 위하여 해외 감독을 초빙하는 등 엄청난 물질적 후원을 해왔습니다. 정말 억울해야 할 선수들은 올림픽 메달 따기 보다 국가 대표 선발전 통과가 더 힘들다는 쇼트 트랙에서 0.01초 차로 출전권을 따지 못한 선수들일 것입니다. 그 선수들에 비하면 여자 아이스하키 선수들은 정말 엄청난 특혜를 받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모르지 않을 언론은 평화의 상징인 단일팀과 단일기를 문제 삼으며 여론을 조작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단일팀 여부와 상관없이 참가국의 국기 게양은 상식인데 인공기를 불태우겠다고 난리를 벌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진정한 언론이라면 모처럼 찾아온 평화의 분위기가 올림픽 이후에도 어떻게 지속될 수 있을지 ‘전문가’들의 의견을 소개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일일 것입니다. 평화 올림픽에 재를 뿌리는 일부 언론과 여론, 당신들이 바라는 것은 정말 전쟁입니까?…

어머니의 암표 장사 (목회 서신)

문재인 대통령의 자서전에는 어머니의 암표 장사 이야기가 나옵니다. 가난한 집안을 꾸려 나가기 위해 어머니는 이른 아침 부산역에 가서 기차표를 사자고 중학교 1학년 짜리 문재인을 깨웁니다. 사람이 없을 때 표를 미리 사두었다가 나중에 급한 사람들에게 비싼 값을 받고 되파는 암표장사는 제가 어릴 때까지도 기차역이나 극장, 야구장 앞에서 늘 마주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좌판이나 연탄배달을 하던 문대통령의 어머니도 누군가에게 암표장사가 힘도 덜 들고 수입이 괜찮다는 이야기를 들었었겠지요.

어린 문재인은 영문도 모른 채 어머니를 따라 꼭두새벽에 몇 킬로를 걸어 부산역에 갔지만 부산역에 도착한 순간 어머니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자고 했답니다. 잠도 덜 깬 상태에서 따라 나섰던 문재인은 고픈 배를 움켜 잡고 다시 몇 킬로를 걸어 집으로 돌아왔지만 어머니에게 그 이유를 묻지 못했다고 합니다.

나중에 성인이 되어서야 그 때 왜 그러셨냐고 물었더니 “듣던 거와 다르더라. 못하겠더라.”고 했답니다. 문재인은 자기가 보는 앞에서 떳떳하지 못한 장사를 하는게 부끄러웠기 때문일 것이라고 회고합니다.

어머니에 대한 추억은 누구에게나 소중합니다. 그리고 추억의 편린들은 서로 짜집기되어 후손들의 인생관에 영향을 미칩니다. 우리의 기억 속에는 어떤 조각들이 남아 있을까요? 그리고 또 우리는 자녀들에게 어떤 기억으로 남을까요?

보수집회에는 예외 없이 등장하는 ‘어머니 부대’, 그들은 아무데서나 누구에게나 저주를 퍼붓고 상욕을 서슴없이 내뱉습니다. 그들의 자녀는 어떤 모습으로 어머니를 기억할지 무척 궁금합니다. 이런 상스러운 어머니 좀 안보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당선을 축하합니다.

이미지: 한국일보

목회서신: 탄핵은 법적 판결이 아니라 시민 세력의 승리

한국의 전통종교인 동학을 창시한 수운 최제우는 1863년 모진 고문 끝에 사망합니다. 2대 교조가 된 해월 최시형의 열정 덕에 동학의 성장세는 가파르게 상승했습니다. 여기에 힘을 받은 최시형은 1892년부터 교도들과 함께 교조 신원(伸寃)운동을 전개합니다. 즉 우리 1대 교주가 억울한 일을 당했으니 원한을 풀어달라고 왕실에 청원을 했던 겁니다. 이에 대한 왕실의 반응이 미지근하자 교도들의 원망이 커지고 이 운동은 1894년 동학혁명 즉 갑오 농민전쟁으로 확대됩니다. 한국 근대사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민중혁명은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동학교도들은 계급이 없는 평등세상을 꿈꾸었지만 감히 왕에 대해서는 도전을 하지 못했습니다. 자기들의 교주를 억울하게 죽인 임금(고종)은 극복의 대상이어야 하는데 오히려 그에게 선처를 바라고 있었던 것이지요. 비단 임금뿐 아니라 각 지역에서도 고을 수령은 임금이 임명한 자리라고 해서 저항세력들이 함부로 하지 못했습니다. 사극에서 많이 보는 사약을 받는 장면에서 억울하게 죽는 이들이 임금에게 감사를 올리며 죽습니다. 사약의 사는 죽을 死가 아니라 은혜 賜입니다. 최고의 권력자 앞에서 억울한 죽임을 당해도 감사의 마음을 가질 수 밖에 없는 것이 봉건시대의 풍경이었습니다.

악덕한 고부군수에게 쳐들어가서도 도망갈 빈틈을 주었다가 결국 권력을 되찾은  고부 군수 조병갑에 의해 2대 교조 최시형은 사형을 선고 받고 죽임을 당합니다.

박근혜씨가 탄핵되었다고 해서 세상이 하루 아침에 좋아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다만 자진 사임이 아니라 촛불의 힘으로 최고 권력자를 끌어내렸다는 자신감이 시민들에게 충만했으면 좋겠습니다. 시민들의 자신감, 이것이야 말로 정권교체보다 값진 소득입니다.

사진: 대기원시보: 광화문 광장 가득 채운 시민들 “박근혜 퇴진” 외쳐

10월 30일 목회 서신

몇 해 전 한국 SBS는 ‘최후의 툰드라’ 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를 방영한 적이 있습니다. 시베리아 지역의 극한(極寒)의 땅에 사는 일부 원주민들은 순록떼를 따라 함께 이동하면서 순록을 잡아 먹고 삽니다. 그런데 그들은 사냥할 때 한 마리 만을 사냥하여 부족이 함께 양식을 나눕니다. 왜 한꺼번에 여러 마리를 잡아 보관하지 않느냐고 PD가 물었습니다. 영하의 날씨 때문에 보관이 쉬운데도 말이죠.

이 때 원주민 한 사람이 “shaman(무당)이 욕심내지 말고 먹을 만큼만 잡으라”고 가르쳤다고 대답했습니다. 저는 그때 툰드라 지역의 무당들이 자본주의에 편승해서 사는 목사들보다 훨씬 건전한 사고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박근혜씨의 측근 최순실씨가 대한민국을 쥐락펴락 했다는 사실에 모두가 낯뜨거워 하고 있습니다. 일부는 그녀를 무당이라고도 하고 그녀의 아버지가 목사였던 사실을 두고 목사라는 명칭을 쓰면 안 된다는 목사들의 볼 맨 소리도 있습니다. 그러나 무당(샤먼)은 자연과 인간을 연결시켜주는 중재자로 자연이 원하는 바를 인간에게 알려주는 역할을 합니다. 무당의 무(巫)도 하늘과 땅을 연결해주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최순실을 무당이라고 부르는 것은 진짜 무당을 욕보이는 언사입니다.

신명기 18:10-11에는 광야 생활에서 가까이 하지 말아야 할 다양한 종류의 사기꾼들을 소개합니다. 1)자기 아들이나 딸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는 사람 2)점쟁이 3)복술가 4)요술객 5)무당 6)주문을 외우는 사람 7)귀신을 불러 물어 보는 사람 8)박수 9)혼백에게 물어 보는 사람. 광야 생활에 지친 순진한 백성들 등쳐 먹는 직종이 많기도 참 많았습니다.

이중 최순실은 어디에 속할까요? 점쟁이(2) 정도가 아니었을까요? 그러면 박근혜는? 혼백에게 물어 보는 사람(9)입니다. 최순실을 통해 박정희와 최태민의 혼백이 박근혜의 몸과 마음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고국이 지금 이런 지경에 처해 있습니다.

목사들은 최태민에 붙은 목사라는 직함이 거북한 모양이지만 저는 이렇게 말해 주고 싶습니다. 아직도 세상 돌아가는 것을 모르고 박근혜 찬양을 주문처럼 외우고 있는(6) 목사들이나 최태민 목사가 뭐가 다르냐고요.…

목회 서신 – 영화 부산행과 싸드

1953년 일본 미나마타 시에 사지마비, 광분, 의식장애, 사망 등을 일으키는 괴질이 보고되었습니다. 훗날 이 병은 미나마타병으로 명명되었는데 이 곳에 있던 ‘신일본질소비료 공장’에서 방류된 독성물질이 원인이었습니다. 이에 감염된 어패류를 먹은 사람들이 주로 피해자였고 태아에까지 영향을 미쳤다고 합니다.

신질소비료공장이 들어서자 조그만 마을 미나마타는 특급열차가 정차하는 등 여느 대도시 못지 않은 특혜를 받게 됩니다. 그러나 이 특혜는 미나마타 병이라는 무시무시한 괴질과 맞바꾼 재앙이 되고 말았습니다. 괴질이 발생했을 때 피해자들이 보상을 요구하자 한 쪽에서는 그러다가 특급열차가 서지 않는 소도시로 돌아가면 좋겠는가라는 반대의 목소리가 적지 않았고 보상을 요구하는 사람들에게는’돈벌이 사망자들’, ‘좌익’이라는 호칭이 붙여 졌습니다. 겨우(?) 100명에 지나지 않은 피해자와 미나마타 시민 45,000명의 삶을 바꿀 것이냐는 비난도 이어졌습니다. 우리에게는 세월호 이후에 보던 매우 익숙한 장면입니다.

요즘 이곳에서도 상영중인 영화 부산행에서 잔인하게 인간을 공격하던 좀비는 주식거간꾼들이 이른바 ‘작전’을 걸어 겨우 회생시켜 놓은 생화학 공장의 폐기물로부터 시작된 재앙이었습니다. 단기적 이익에만 눈이 멀게 될 때 우리가 마주쳐야 할 재앙은부산행의 좀비 이상이 될 지도 모릅니다.

공교롭게 싸드 배치로 정부와 대립하고 있는 경상북도 성주군의 인구가 45,000명입니다. 싸드반대가 지역경제를 망치는 소리로 매도되지 않고 전 주민이 함께 하는 모습은 훗날 닥칠지도 모를 재앙을 대비한다는 점에서 존경스러워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 마음 부디 변치 않기를 바랍니다.…

목회서신 – 평화도 세월호도 교회에서는 금기?

우리의 고국이 THAAD(Terminal High Altitude Area Defense 고고도지역방어체계)로 시끄럽습니다. 사드란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아주 높은 고도에서 날아오는 미사일을 요격할 수 있는 시스템입니다. 저고도에서 날아오는 것을 요격하는 패트리어트 미사일은 이미 대한민국에 배치되어 있는데 이번에 사드 배치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얼핏 들으면 대한민국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것으로 생각되지만 북한의 미사일은 거리상 굳이 고고도까지 올라가지 않아도 얼마든지 남쪽을 향해 발사할 수 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사드는 북한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 중국이나 러시아를 겨냥한 것으로서 미국의 방어를 위해 우리의 땅을 내어주는 것입니다.

사드에서 나오는 전자파를 비롯한 유해파가 상당히 심각하다고 합니다. 일본의 설치 지역 주민들 중에는 모유가 나오지 않는다는 증언이 있을 정도입니다. 일본은 민가에서 상당한 거리에 위치하고 있는데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반경 1.5Km 안에 주민이 밀집되어 있습니다.

세상의 안전을 지키는 것은 무기가 아니라 평화입니다. 서로 신뢰하고 잘 사는 나라들은 못 사는 나라들을 위해 조금씩 양보하고 강대국이 패권주의 야욕만 버린다면 세상의 평화가 불가능하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세상은 평화를 지킨다는 미명 아래 군비 경쟁에 나서고 군비경쟁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상대방에 대한 증오심을 의도적으로 키워나가고 있습니다.

평화를 위해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한국기독교 교회 협의회 평화협정 캠페인 팀이 내일부터 이달 29일까지 미주를 순회하면서 평화 조약의 필요성을 홍보하고 다닐 예정입니다. 첫 기착지인 이곳 LA에서 오는 화요일 기자회견이 준비되어 있었는데 장소를 빌려주기로 한 교회에서 장소 제공 취소를 통보해왔습니다.

평화와 정의와 세월호를 이야기 못하는 교회, 예수께서 뭐라 하실지 마음이 무겁습니다. (2016년 7월 17일 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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