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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tegory Archives: 목회서신

성서, 메이지 교육 칙어 그리고 국민교육헌장(목회 서신)

매사추세츠 주립농과대학 학장이었던 윌리엄 클라크는 1876년 7월 일본 삿포로 농림학교 초대 교장에 취임합니다. 그가 일본에 처음 도착했을 때 큰 가방에 든 많은 성경책을 보고 장학관이 성경교육을 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이에 클라크가 돌아가겠다고 하자 장학관은 방과후 성경공부를 허락합니다. 20세기 청소년들에게 꽤 유행했던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도 그의 말입니다.
그의 제자 중에 일본의 신학자 우찌무라 간조가 나왔고 우찌무라의 제자 중에 김교신 유영모가 있습니다. 1891년 1월 도쿄 제일고등중학교 강당에서 메이지 천황의 초상과 그가 서명한 교육칙어에 대한 낭독의식을 거행하는데 30대의 젊은 교사가 그것을 거부합니다. 언론은 ‘불경사건(不敬事件)’으로 부르면서 그 교사를 사회적으로 매장합니다. 그가 우찌무라 간조입니다.
러일전쟁이 끝난 후에는 “앞으로 일본은 동양평화를 위한다면서 더 큰 전쟁을 할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이 일본에 불벼락을 내리게 될 것이다”라고도 말했습니다. 이게 바로 성서의 힘입니다. 성서는 주술서(呪術書)가 아닙니다. 평화를 위한 고백서입니다.
고국에서 목사를 자처하는 한 망나니가 하나님의 이름과 성서를 모욕하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할렐루야 아멘을 외치는 자들에게 우찌무라의 말을 전해주고 싶습니다. ‘당신들에게 불벼락이 내릴 것이다‘.
오늘은 성서주일이며 지난 5일(목)은 제가 초등학교 4학년때인 1968년 만주군 장교 박정희가 일본의 교육칙어를 본 떠 만든 국민교육헌장발표일이었습니다. 어린 아이들에게 얼마나 주입을 시켰으면 국경일도 아닌 그 날을 제가 아직도 기억하고 있겠습니까? 당시 교사들은 국민교육헌장을 못외운 아이들을 고문하듯이 두드려 팼습니다. 역시 일제의 잔재인 조회 시간에 전체 학생들 앞에 데려 나와서 망신을 주기도 했습니다.
왜 그 때 우찌무라 같은 선생이 없었던 걸까요? 교사노조도 없던 시절(물론 지금도 법외노조인 전교조만 있을 뿐입니다) 며칠 내로 못외우는 학생이 없도록 하라는 교육당국의 압박이 얼마나 심했으면 선생들이 망나니 칼을 휘둘렀을까라는 측은함도 있습니다.
이 모든 비극적인 일들이 다시 발생하지 못하도록 막는 힘도 성서에서 발견해야 합니다.…

안중근과 이토 히로부미

“일본 유명한 정치가 후작 이등박문씨가 이달 23일쯤 입성한다 하니 이등박문씨는 당금 세계에 유명한 정치가요 또 우리 대한 독립한 사업에 대공이 있는 사람이라. 이번에는 유람차로 오니 정부와 인민이 각별히 후대하기를 바라노라.” 1898년 8월20일자 기사입니다. 조선의 독립을 열망하던 사람들이 만든 독립신문에서 조차 7년뒤 을사늑약으로 조선을 침탈한 이토 히로부미의 실체를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의 비공식 유람방문 조차 극진히 환영합니다.

독립신문은 이런 기사도 실었습니다. 8월 31일자 ‘부끄러운 일’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이등 후작이 외교부에 갔다가 안경을 잃었다 하니 당당한 제국 외교부에서 귀한 손님이 안경을 잃은 것은 남에게 들려주지 못한 수치”라고 조선의 관료들을 비난했습니다. 한일간의 갈등이 생기면 일본의 편을 들라고 기사를 쓰는 2019년의 대한민국 보수 언론과 비슷하지 않습니까?

러일전쟁 중인 1904년 다시 대한제국을 찾은 이토에게 고종은 최고 훈장인 금척대훈장을 수여합니다. 이토는 궁중 나인들에게도 인기가 좋았다고 합니다. 매 방문때마다 나인들에게 유럽의 과자나 장신구들을 선물했다고 하니 하급나인도 다룰 줄 아는 사람들이었던 거죠. 특히 그의 동양평화론은 제국주의 야욕으로 아시아를 넘보는 서구 세력 경고 차원에서 아시아 진보 지식인들에게도 인기가 높았습니다.
그 중 한 사람이 안중근이었습니다. 그는 동양평화론에 깊은 관심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1908년 동의회라는 연해주 지역 의병단의 부사령관이었던 안중근은 잡혀온 일본군 포로들에게 평화론을 역설하며 다른 의병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풀어줄 정도로 평화주의자였습니다.

그러나 이토의 변절에 실망한 안중근은 그의 거짓 평화론을 징벌하기 위해서 1909년 10월 26일 하얼삔 역에서 이토를 저격합니다. 그리고 감옥에서 일본인들이 읽고 깨달을 수 있도록 한문으로 동양평화론(미완성유고)를 남깁니다.

거사가 있던 날 하얼빈역 관리회사인 ‘남만주 철도’의 이사 다나카 세이지로에 따르면 러시아 병사들과 경찰들이 달려들자 당당한 이 남자(안중근)는 권총을 높이 들어 아직 한 발이 더 남았다는 신호를 보냈다고 합니다. 아마도 병사들과 경찰들은 죄가 없으니 나머지 한 발의 희생자가 되지 말라는 몸짓이었겠지요. 훗날 다나카 세이지로는 자기가 만난 사람 중에 가장 위대한 사람은 안중근이었다고 회고합니다. 이토 히루부미와 같은 조슈번 출신 당시 37세의 다나카 세이지로는 이날 이토 히로부미를 지극 정성으로 대접해 더 높은 자리를 꿈꾸었을지도 모릅니다. 일순간 그의 꿈은 물거품으로 돌아갔지만 안중근 의사가 훌륭해 보였던 것은 어쩔 수 없었나 봅니다.

이 거사로 아시아의 맹주를 꿈꾸던 이토의 야욕도 날아가 버렸습니다. 그로부터 70년 후 종신집권을 꿈꾸던 박정희의 야욕도 김재규의 총탄에 날아 갔습니다. 우리가 어떤 종류의 꿈을 꾸어야 할지 이 두 사람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

목회 서신 – 흐름의 문화 축적의 문화

국중호 요코하마 시립대 교수는 “한국이 흐름의 나라라면 일본은 축적의 나라”라고 말합니다. 일본이 가진 소재 산업의 경쟁력은 오랫동안 쌓아온 경험과 지식에서 나온 것이므로 우리 나라가 따라가기 어려우니 정신차리라는 주장입니다. 맞는 말 같기도 합니다. 일본 하면 떠오르는 노포(오래된 가게) 문화는 일본의 꾸준함과 성실성의 표본입니다. 이어 국교수는 ‘네마와시’(根回し)라는 말을 소개합니다. 네마와시란 나무를 옮겨심기 전 행하는 일련의 준비작업을 뜻하는데 일을 진행할 때 협의나 사전교섭 등을 통해 관계자들 간에 소통하며 공감대를 형성하는 물밑작업을 의미합니다. 여기서부터 국교수는 잘못 짚었습니다. 이번 무역 보복 결정에는 어떤 네마와시도 없었습니다. 있었다면 지난 정권에서 박근혜와 협의한 것 뿐이겠지요. 그런데 국교수는 한국정부가 네마와시 없이 반일운동에 나서고 있다는 듯이 타박합니다.

한국의 반일 정서가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습니다. 어차피 싸움에는 양측 모두 타격이 있는 법인데 한국의 소위 ‘먹물(식자층)’들은 우리 측의 피해만 과장하며 시민들의 불매운동이 감정적으로 흐른다며 가르치려고만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가르침’이 시민들이 느끼는 분노에 자극제가 된다는 사실을 그들만 모르는 것처럼 보입니다.

일본이 가진 장점이 당연히 있겠지요. 이번에 문제가 된 ‘불화수소’를 생산할 수 있는 기술을 한국의 중소기업이 8년전에 축적했는데 모두가 외면했던 것은 우리가 반성해야 할 부분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일본이 가진 장점들에 대한 지나친 평가는 우리 안에 있는 또다른 식민의 잔재입니다.

저는 최근에야 일본의 투표용지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았습니다. 정당, 이름이 표기되고 그 밑에 도장을 찍는 우리나라의 투표용지와 달리 일본은 지지하는 후보의 이름을 직접 쓰게 되있답니다. 일본 이름은 한자 읽는 방식이 복잡해 발음하기도 어렵습니다. 실제로 일본의 젊은이들 중에 한자를 못 읽는 사람들이 다수라고 합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겠지만 일본은 한자가 히라가나와 함께 공동으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문맹률이 높다는 뜻입니다. 이런 투표지는 익숙한 이름을 쓰게 됩니다. 정치 신인의 발굴을 어렵게 만들고 축적의 나라답게 정치 권력이 교체 없이 축적됩니다. 일본에서 자민당 일당 독재가 가능한 이유이기도 하지요.

루쓰 베네딕트의 말처럼 일본 문화는 수치의 문화(shame culture)입니다. 남들로부터 비난 받거나 모욕당할 때 느끼는 수치심이 일본 문화에 깔려 있는데 그 조차도 잃어가는 일본을 요즘 보고 있습니다. …

6월 23일 목회 서신

황교안씨는 야당의 지도자로 정부 여당에 대하여 비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지만 분노도 잘 하지 않습니다. 자기 존재를 부각시키기 위해서 대통령과 각을 세우는 것이 정치인의 생존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가 이렇게 자유롭게 말할 수 있게 된
환경은 그가 공안검사로 재직 당시 수없이 감옥에 넣었던 민주화 운동을 해온 분들 덕택이라는 사실만 알아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그의 최근 발언 두가지가 저를 분노케 했습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이 의열단 단장 김원봉에 대해 언급하자 황씨는 보란듯이 백선엽을 찾아가 극진한 예를 갖춘 사실입니다. 김원봉에 대한 언급이 그에게는 불편할 수 있다는 점 인정합니다. 김원봉을 다룬 영화 ‘암살’을 보고 나온 그가 속한 정당의 정치 선배들이 영화감상 후 대한 독립만세를 부른 사실을 잊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백선엽은 아닙니다. 만주 주둔 일본군으로 독립군을 토벌하고 6.25를 전후해서는 수많은 민간인 학살에 책임있는 백선엽을 찾아갔다는 사실은 우리 속담 ‘홧김에 서방질한다’는 짓으로 밖에는 설명되지 않습니다. 현 집권 세력에 반대할 수 있지만 거기도 최소한의 역사의식은 있어야 합니다.

다른 하나는 외국인 노동자의 임금을 동일하게 주어서는 안된다는 발언입니다. 그의 발언은 외국에서 먹고 살아가는 동포들에 대한 모욕이고 놀라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분노를 일으키는 국격 훼손적 발언입니다. 그가 말한 외국인 노동자는 주로 동남아 출신을 말하는 것이겠지요. 임금차별에는 영어강사같은 백인들도 해당되는지 묻는 기자가 왜 한명도 없는 지 궁금합니다. 그동안 황씨 발언의 맥락을 고려하면 아마도 그는 백인들은 해당안되고 그들에게는 더 주어야 한다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약한 자들은 더 착취하자는 공안검사의 의식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

영화 ‘생일’에서 제사상이 말하는 것

2019년 4월 14일 세월호 5주기 목회서신

영화 ‘생일’을 봤습니다. 세월호 영화라고 알려져 있지만 세월호 이야기는 나오지 않습니다. 이런 선입견때문에 가슴이 무거울까봐 못봤다는 분들도 있고 반대로 세월호 사건이 불편한 사람들은 세월호를 부각시켰으리라는 짐작에 안 보기도 했을 것입니다. 어떤 사건(물론 관객들은 세월호 사건이라고 알고 있습니다)으로 아들을 잃은 엄마(전도연)가 그 날의 슬픔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이야기입니다. 하필 사건 당시 남편(설경구)은 외국에 있어서 3년간 들어오지 못했기에 사건의 충격은 엄마 혼자서 감당해야 했습니다. 요즘같은 세상에 외국에 있다고 못들어 온다는게 말이 되느냐는 비판이 있을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영화 중반부에 밝혀집니다.

전도연은 유가족 모임도 외면하고 그렇다고 보상금을 수령하지도 않습니다. 이 부분은 매우 중요합니다. 세월호 비판자들은 유가족 모임의 강경한 입장 때문에 온건한 유가족들이 보상금 수령을 못한다고 가짜 뉴스를 퍼뜨리는데 영화에서 전도연은 유가족 모임에 나가지도 않았지만 보상금을 거부했습니다. 보상금을 수령하지 않은 유가족들은 보상금을 받고 유가족 모임을 떠난 사람들을 원망하지도 않습니다.

이처럼 어느쪽에도 끼지 않고 혼자의 방식으로 슬픔을 이겨내던 전도연에게 유가족 모임에서 아들의 생일 파티를 열어주자고 제안합니다. 죽은 아이의 생일 잔치가 무슨 의미가 있냐고 반대하던 엄마는 결국 생일 파티를 받아들이고 그 자리에서 다른 이들과 화해합니다.

영화 생일에서 대비되는 사건은 조상 제사입니다. 아내는 남편과 이혼을 고려중이지만 설경구가 장손이기에 시아버지 제사상을 자신의 집에서 차립니다. 아마 죽은 아들 역시 살아 있으면 장손이므로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댁 가족이 모인 제사의 대화 주제는 ‘돈’ 즉 보상금이었습니다. 결국 삭혀왔던 전도연의 넋나간 울음이 터져 버립니다.
영화 생일의 주제는 바로 이겁니다. 우리는 그날을 제삿날로 기억해서는 안됩니다. 사람들이 잊을 때도 되지 않았냐고 말하는 이유는 제삿날로는 기억해 줄 터이니 그냥 보상금 받고 가족 단위에서 죽음만 추모하라는 데 있습니다. 하지만 세월호가 발생한 날은 생일이어야 합니다. 희생자를 죽음이 아니라 삶으로 기억하고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진상을 끝까지 규명해서 정의를 세우는 ‘삶의 날’(생일)이 되어야 합니다. 영화 ‘생일’은 진상규명을 끝까지 하자고 선동하지 않습니다. ‘생일’의 은유를 통해 진상규명이 필요하지 않냐고 관객들에게 울리는 감동으로 전달합니다. …

축구와 정치- 목회 서신

영국의 마거릿 대처 전 총리는 축구의 광적 팬들을 의미하는 훌리건(Hooligan)을 ‘문명사회의 치욕’이라 부른적이 있습니다. 그들의 응원행태를 단지 과열로만 설명하기에는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그렇게 광적이 된 데는 모두 정치적, 지역적 이유가 있습니다.

90년대 유고연방이 해체되면서 베오그라드를 연고로 하는 두 팀, 레드스타와 파르티잔의 경쟁은 세르비아 민족주의 세력과 크로아티아계의 충돌을 대변하는 대리전 모습이었다가 진짜 유혈분쟁으로 격화되었습니다. 이런 부끄러운 역사를 가진 크로아티아는 이번 월드컵에서 개최국 러시아를 꺾고 4강에 진출한 상태입니다.

기성용 선수의 첫 해외진출 구단이었던 스코틀랜드의 셀틱과 글래스고 레인저스의 경기는 가톨릭과 개신교의 대리전으로 유명합니다. 19세기 후반 아일랜드가 기근에 허덕이자 스코틀랜드의 글래스고에 아일랜드 이주민이 늘어났고 하층민으로 전락한 이들이 사회적 갈등을 일으키자 아일랜드 출신인 윌프리드 수사가 사회 통합 차원에서 1887년 현재의 셀틱을 창단합니다. 때문에 엠블럼에는 창단 이후 리그 참가 연도인 1888이 들어가 있습니다. 하지만 융화에는 실패하고 스코틀랜드의 주류인 개신교인들이 글래스고 레인저스를 광적으로 응원하는 빌미만 제공했습니다.

브라질을 축구 강국이라고 하지만 2002년 한일 월드컵 우승 이후 계속 8강 수준에 머물다가 2014년 브라질에서 열린 월드컵에서는 준결승에서 독일에게 7-1로 패하는 수모를 당했습니다. 이번 대회에서도 벨기에에게 지는 바람에 또 8강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선수들 개개인은 유럽 리그에서 엄청난 연봉을 받는 A급들이지만 자국 경기에는 그다지 힘을 기울이지 않아보입니다. 사람들은 그 이유를 ‘카르톨라스’(cartolas)에서 찾습니다. ‘카르톨라스’란 ‘큰 모자’라는 뜻으로 부패한 축구협회 지도부, 구단주, 조직폭력과 연계된 클럽 간부 등이 얽혀 있는 카르텔을 말합니다. 이들 세력이 브라질 축구를 엉망으로 만들었다는 것이지요.

아무튼 이번 주면 월드컵도 끝이 납니다. 전세계가 월드컵 열기에 들떠 있는 동안 평양에서 열린 통일 농구대회는 한국인의 관심에서도 멀어지고 말았습니다. (2108년 7월 일 주보)…

목회서신- 가거라 삼팔선아

1947년 나온 가요 ‘가거라 삼팔선아’(이부풍 작사, 박시춘 작곡, 남인수 노래)의 가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1절 산이 막혀 못오시나요, 물이 막혀 못오시나요, 다같은 고향 땅을 가고 오련만남북이 가로막혀 원한 천리길, 꿈마다 너를 찾어 꿈마다 너를 찾어 삼팔선을 탄한다(헤맨다).
2절 꽃필 때나 오시려느냐 눈올 때나 오시려느냐 보따리 등에 메고 넘든 고개길 산새도 나와 함께 울고 넘었지 자유여 너를 위해 자유여 너를 위해이 목숨을 바친다.
3절 어느 때나 터지려느냐 어느 때나 없어지려느냐 삼팔선 세 글자를 누가 지어서 이다지 고개마다 눈물이던가 손모아 비나이다 손모아 비나이다 삼팔선아 가거라

1947년 이라는 시대적 상황을 고려하면 상당히 파격적인 가사입니다. 어느 한쪽을 원망하지 않고 분단상황을 슬퍼하는 이 가사가 이승만 정부의 미움을 샀을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정부는 1절 마지막 ‘헤맨다’가 월북을 조장한다는 이유로 개사를 요구했습니다. 이에 작사가 이부풍이 창작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잠적하자 결국 작사가 반야월이 ‘헤맨다’를 ‘탄(嘆)한다’로 바꾸었다고 합니다. 또한 자유를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 가사가 포함된 2절도 본래 곡에는 없었으나 이데올로기적 의도를 담아 나중에 삽입한 것이라고 합니다.
슬픈 이야기지만 뒤집어 생각해 보면 예술가들에게 이런 용기라도 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1960년 김수영 시인은 ‘김일성 만세’라는 시를 썼습니다.
“김일성 만세, 한국의 언론자유의 출발은 이것을 인정하는 데 있는데 이것만 인정하면 되는데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한국 언론의 자유라고 조지훈이란 시인이 우겨대니 나는 잠이 올 수밖에”
(조지훈 – 청록파 시인)

언제부턴가 사상의 자유는 사라지고 통일을 이야기하면 죽거나 투옥당하는 시대를 거치면서 자기 검열은 더 심해졌습니다. 이 시절을 견디면서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상대방을 악마화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어둠의 시대를 끝낼 때가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2018년 6월 24일 주보)…

담배와 위스키가 어때서요? – 목회 서신

올해 상영된 저예산 한국 영화 ‘소공녀’(전고운 감독, 이솜, 안재홍 주연)를 보았습니다.
배우 이솜이 맡은 여주인공 미소는 대학시절 밴드 활동을 통해 열정을 불살랐지만 대학 졸업 후 마땅한 취업자리도 없어 가사 도우미일을 하며 근근이 살아가는 캐릭터입니다.
옥탑방 월세를 낼 돈 조차 없게 되자 집을 나와 이 친구 저 친구 집에서 잠동냥을 합니다. 하지만 미소에게는 버릴 수 없는 두 가지 취향이 있는데 담배와 위스키입니다. 담뱃값이 올라도 끊을 수 없고 일을 마친 후에 위스키 바에 들러 한 잔 마시는 그 생활은 미소를 지탱하는 힘입니다.
하룻 밤 재워준 대학시절 친구들은 한마디씩 합니다. “그렇게 돈 없어 쩔쩔 매면서 담배 좀 끊어라!”.
영화 대사에는 안 나오지만 주변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네 주제에 무슨 위스키냐, 그렇게 술이 좋으면 멸치에 깡소주나 마실 것이지!”

영화의 주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아프니까 청춘’이 아니라 ‘누구도 훼방놓을 수 없는 자기만의 취향이 있으니 청춘’인 겁니다.
돈도 없는 주제에 ‘담배와 위스키’는 비정상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집을 마련하기 위해 모든 젊음을 투자하는 인생은 과연 정상일까요?
다른 사람 보다 앞서 가기 위해 젊음을 낭비하는 삶의 방식은 정상일까요?
타인의 삶의 방식을 놓고 정상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자격은 누구에게도 없습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요.

결국 미소는 젊은 나이에 머리가 희어지는 병을 고치기 위해 먹던 약도 돈이 없어 끊고 머리가 백발이 되었지만 자신의 취향은 지키면서 한강변에서 텐트를 치고 생활하는 것으로 영화는 끝이 납니다.
백발이 되어도(훗날 나이가 들어도) 이 젊음의 취향은 버리지 않겠다는 은유입니다.

이 영화는 요즘 젊은이들의 아픔과 개성을 보여주는 뛰어난 작품입니다. 그런데 저는 갑자기 이 영화가 요즘의 시국과 얽혀 이해되기 시작했습니다.

북한을 향한 관용구 중 하나인 ‘정상국가’ 라는 말을 들으며 한 나라가 가진 고유한 생존 방식을 놓고 누가 감히 정상 비정상을 말할 수 있나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청춘 영화가 이념 영화로 해석되는 현실, 영화는 참 오묘한 분야인 것 같습니다.…

교회는 대한민국의 파괴자들? (목회서신)

‘대한민국의 설계자들(김건우)’이라는 책은 대한민국이 어떤 사상적 기초위에서 형성되어 왔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1948년 실질적인 남북분단과 한국 전쟁 이후 진보 좌익 세력은 대부분 북으로 갔고 남한 지역은 우익 세력들이 새로운 국체를 형성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입니다. 김건우 박사가 분석한 한국 우익의 계보는 김준엽(고대 총장 역임), 장준하로부터 시작합니다. 두 사람은 학병(지식인) 세대인 동시에 목숨을 걸고 학병에서 탈출해 광복군에 합류했고 반공정서가 강했으며 두 분 모두 서북세력(평안도 지역)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 진보 진영에서 존경받는 장준하 같은 분, 결국 박정희 정권 당시 의문사를 당할 정도로 민주화 운동을 위해 헌신했던 분도 사실은 우익의 정서를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어서 김건우 박사는 이들의 정신적 기초가 된 사람으로는 김교신(김인숙 장로의 시부), 함석헌, 류영모, 유달영(김인숙 장로의 선친)을 거론하고, 개신교에서는 김재준(한신대 설립자) 강원용(경동교회 창립자)과 천주교의 김수환 지학순 등을 우익의 기초를 놓은 사람들로 보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의 평가와는 사뭇 다릅니다. 위에 거론된 분들은 대부분 진보진영에서 존경받는 분들이기 때문입니다.

새가 좌우의 날개로 난다는 말이 있듯이 한 사회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좌우가 건전하게 대립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데 한국 사회에서 우는 실종되고 건전한 우를 대표하는 세력들이 빨갱이로 호명되고, 제 나라 독립운동 기념일(3.1절)에 일장기를 흔들고, 미국에 와서 한반도의 긴장을 오히려 부추기는 사람들을 우파 또는 보수라고 부르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설계자들’ 대부분이 기독교인이었다는 점도 우리가 되짚어야 할 부분입니다. 사회 모든 분야가 발전하고 있는 상황에서 교회만이 대한민국을 설계하기는커녕 ‘파괴’하는 세력인 듯 하여 마음이 씁쓸합니다.

(2018년 5월 20일 주보에서)…

목회서신 – 평화 올림픽을 기다리며

이번 주 우리 고국에서는 평창 동계 올림픽이 열립니다. 1988년 서울 올림픽에 이어 하계와 동계 올림픽 모두를 유치하는 국가적 경사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서울 올림픽 때는 정치군인 전두환이 집권 시절 유치한 올림픽인데다가 서울의 이미지를 개선한다고 빈민들을 강제로 내 쫓는 일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진보 진영에서 올림픽 반대운동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운동들은 국가의 격을 높이는 행사에 재를 뿌리는 행위라고 당시 보수 언론은 많은 질타를 했습니다. 서울 올림픽은 1980 모스크바 올림픽이 자본주의 진영에 의해 보이콧 되고 1984 LA 올림픽이 공산주의 진영에 의해 보이콧 된 후 처음 맞는 평화의 제전이라는 점에서 반대 여론이 지지를 받을 상황이 못되었습니다. 서울 올림픽과 인과 관계는 없겠지만 이듬해에 베를린 장벽은 붕괴되었고 옛 공산 국가들은 모두 개방의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동계 올림픽에서는 이상한 반대가 우리를 의아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여자 아이스하키 팀이 북한과 단일팀을 구성한 결정이 어린 여성 선수들의 공정한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라는 언론의 농간이 일부 여론의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가장 공정하지 않게 올림픽에 출전하는 선수들이 한국의 여자 아이스하키 선수들입니다. 개최국 자동 출전이라는 특혜가 없어진 터라 한국은 로비를 통해서 여자 아이스하키를 합류시켰고 올림픽 수준에 맞추기 위하여 해외 감독을 초빙하는 등 엄청난 물질적 후원을 해왔습니다. 정말 억울해야 할 선수들은 올림픽 메달 따기 보다 국가 대표 선발전 통과가 더 힘들다는 쇼트 트랙에서 0.01초 차로 출전권을 따지 못한 선수들일 것입니다. 그 선수들에 비하면 여자 아이스하키 선수들은 정말 엄청난 특혜를 받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모르지 않을 언론은 평화의 상징인 단일팀과 단일기를 문제 삼으며 여론을 조작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단일팀 여부와 상관없이 참가국의 국기 게양은 상식인데 인공기를 불태우겠다고 난리를 벌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진정한 언론이라면 모처럼 찾아온 평화의 분위기가 올림픽 이후에도 어떻게 지속될 수 있을지 ‘전문가’들의 의견을 소개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일일 것입니다. 평화 올림픽에 재를 뿌리는 일부 언론과 여론, 당신들이 바라는 것은 정말 전쟁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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