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암표 장사 (목회 서신)

문재인 대통령의 자서전에는 어머니의 암표 장사 이야기가 나옵니다. 가난한 집안을 꾸려 나가기 위해 어머니는 이른 아침 부산역에 가서 기차표를 사자고 중학교 1학년 짜리 문재인을 깨웁니다. 사람이 없을 때 표를 미리 사두었다가 나중에 급한 사람들에게 비싼 값을 받고 되파는 암표장사는 제가 어릴 때까지도 기차역이나 극장, 야구장 앞에서 늘 마주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좌판이나 연탄배달을 하던 문대통령의 어머니도 누군가에게 암표장사가 힘도 덜 들고 수입이 괜찮다는 이야기를 들었었겠지요.

어린 문재인은 영문도 모른 채 어머니를 따라 꼭두새벽에 몇 킬로를 걸어 부산역에 갔지만 부산역에 도착한 순간 어머니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자고 했답니다. 잠도 덜 깬 상태에서 따라 나섰던 문재인은 고픈 배를 움켜 잡고 다시 몇 킬로를 걸어 집으로 돌아왔지만 어머니에게 그 이유를 묻지 못했다고 합니다.

나중에 성인이 되어서야 그 때 왜 그러셨냐고 물었더니 “듣던 거와 다르더라. 못하겠더라.”고 했답니다. 문재인은 자기가 보는 앞에서 떳떳하지 못한 장사를 하는게 부끄러웠기 때문일 것이라고 회고합니다.

어머니에 대한 추억은 누구에게나 소중합니다. 그리고 추억의 편린들은 서로 짜집기되어 후손들의 인생관에 영향을 미칩니다. 우리의 기억 속에는 어떤 조각들이 남아 있을까요? 그리고 또 우리는 자녀들에게 어떤 기억으로 남을까요?

보수집회에는 예외 없이 등장하는 ‘어머니 부대’, 그들은 아무데서나 누구에게나 저주를 퍼붓고 상욕을 서슴없이 내뱉습니다. 그들의 자녀는 어떤 모습으로 어머니를 기억할지 무척 궁금합니다. 이런 상스러운 어머니 좀 안보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당선을 축하합니다.

이미지: 한국일보

목회서신: 탄핵은 법적 판결이 아니라 시민 세력의 승리

한국의 전통종교인 동학을 창시한 수운 최제우는 1863년 모진 고문 끝에 사망합니다. 2대 교조가 된 해월 최시형의 열정 덕에 동학의 성장세는 가파르게 상승했습니다. 여기에 힘을 받은 최시형은 1892년부터 교도들과 함께 교조 신원(伸寃)운동을 전개합니다. 즉 우리 1대 교주가 억울한 일을 당했으니 원한을 풀어달라고 왕실에 청원을 했던 겁니다. 이에 대한 왕실의 반응이 미지근하자 교도들의 원망이 커지고 이 운동은 1894년 동학혁명 즉 갑오 농민전쟁으로 확대됩니다. 한국 근대사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민중혁명은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동학교도들은 계급이 없는 평등세상을 꿈꾸었지만 감히 왕에 대해서는 도전을 하지 못했습니다. 자기들의 교주를 억울하게 죽인 임금(고종)은 극복의 대상이어야 하는데 오히려 그에게 선처를 바라고 있었던 것이지요. 비단 임금뿐 아니라 각 지역에서도 고을 수령은 임금이 임명한 자리라고 해서 저항세력들이 함부로 하지 못했습니다. 사극에서 많이 보는 사약을 받는 장면에서 억울하게 죽는 이들이 임금에게 감사를 올리며 죽습니다. 사약의 사는 죽을 死가 아니라 은혜 賜입니다. 최고의 권력자 앞에서 억울한 죽임을 당해도 감사의 마음을 가질 수 밖에 없는 것이 봉건시대의 풍경이었습니다.

악덕한 고부군수에게 쳐들어가서도 도망갈 빈틈을 주었다가 결국 권력을 되찾은  고부 군수 조병갑에 의해 2대 교조 최시형은 사형을 선고 받고 죽임을 당합니다.

박근혜씨가 탄핵되었다고 해서 세상이 하루 아침에 좋아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다만 자진 사임이 아니라 촛불의 힘으로 최고 권력자를 끌어내렸다는 자신감이 시민들에게 충만했으면 좋겠습니다. 시민들의 자신감, 이것이야 말로 정권교체보다 값진 소득입니다.

사진: 대기원시보: 광화문 광장 가득 채운 시민들 “박근혜 퇴진” 외쳐

10월 30일 목회 서신

몇 해 전 한국 SBS는 ‘최후의 툰드라’ 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를 방영한 적이 있습니다. 시베리아 지역의 극한(極寒)의 땅에 사는 일부 원주민들은 순록떼를 따라 함께 이동하면서 순록을 잡아 먹고 삽니다. 그런데 그들은 사냥할 때 한 마리 만을 사냥하여 부족이 함께 양식을 나눕니다. 왜 한꺼번에 여러 마리를 잡아 보관하지 않느냐고 PD가 물었습니다. 영하의 날씨 때문에 보관이 쉬운데도 말이죠.

이 때 원주민 한 사람이 “shaman(무당)이 욕심내지 말고 먹을 만큼만 잡으라”고 가르쳤다고 대답했습니다. 저는 그때 툰드라 지역의 무당들이 자본주의에 편승해서 사는 목사들보다 훨씬 건전한 사고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박근혜씨의 측근 최순실씨가 대한민국을 쥐락펴락 했다는 사실에 모두가 낯뜨거워 하고 있습니다. 일부는 그녀를 무당이라고도 하고 그녀의 아버지가 목사였던 사실을 두고 목사라는 명칭을 쓰면 안 된다는 목사들의 볼 맨 소리도 있습니다. 그러나 무당(샤먼)은 자연과 인간을 연결시켜주는 중재자로 자연이 원하는 바를 인간에게 알려주는 역할을 합니다. 무당의 무(巫)도 하늘과 땅을 연결해주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최순실을 무당이라고 부르는 것은 진짜 무당을 욕보이는 언사입니다.

신명기 18:10-11에는 광야 생활에서 가까이 하지 말아야 할 다양한 종류의 사기꾼들을 소개합니다. 1)자기 아들이나 딸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는 사람 2)점쟁이 3)복술가 4)요술객 5)무당 6)주문을 외우는 사람 7)귀신을 불러 물어 보는 사람 8)박수 9)혼백에게 물어 보는 사람. 광야 생활에 지친 순진한 백성들 등쳐 먹는 직종이 많기도 참 많았습니다.

이중 최순실은 어디에 속할까요? 점쟁이(2) 정도가 아니었을까요? 그러면 박근혜는? 혼백에게 물어 보는 사람(9)입니다. 최순실을 통해 박정희와 최태민의 혼백이 박근혜의 몸과 마음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고국이 지금 이런 지경에 처해 있습니다.

목사들은 최태민에 붙은 목사라는 직함이 거북한 모양이지만 저는 이렇게 말해 주고 싶습니다. 아직도 세상 돌아가는 것을 모르고 박근혜 찬양을 주문처럼 외우고 있는(6) 목사들이나 최태민 목사가 뭐가 다르냐고요.…

목회 서신 – 영화 부산행과 싸드

1953년 일본 미나마타 시에 사지마비, 광분, 의식장애, 사망 등을 일으키는 괴질이 보고되었습니다. 훗날 이 병은 미나마타병으로 명명되었는데 이 곳에 있던 ‘신일본질소비료 공장’에서 방류된 독성물질이 원인이었습니다. 이에 감염된 어패류를 먹은 사람들이 주로 피해자였고 태아에까지 영향을 미쳤다고 합니다.

신질소비료공장이 들어서자 조그만 마을 미나마타는 특급열차가 정차하는 등 여느 대도시 못지 않은 특혜를 받게 됩니다. 그러나 이 특혜는 미나마타 병이라는 무시무시한 괴질과 맞바꾼 재앙이 되고 말았습니다. 괴질이 발생했을 때 피해자들이 보상을 요구하자 한 쪽에서는 그러다가 특급열차가 서지 않는 소도시로 돌아가면 좋겠는가라는 반대의 목소리가 적지 않았고 보상을 요구하는 사람들에게는’돈벌이 사망자들’, ‘좌익’이라는 호칭이 붙여 졌습니다. 겨우(?) 100명에 지나지 않은 피해자와 미나마타 시민 45,000명의 삶을 바꿀 것이냐는 비난도 이어졌습니다. 우리에게는 세월호 이후에 보던 매우 익숙한 장면입니다.

요즘 이곳에서도 상영중인 영화 부산행에서 잔인하게 인간을 공격하던 좀비는 주식거간꾼들이 이른바 ‘작전’을 걸어 겨우 회생시켜 놓은 생화학 공장의 폐기물로부터 시작된 재앙이었습니다. 단기적 이익에만 눈이 멀게 될 때 우리가 마주쳐야 할 재앙은부산행의 좀비 이상이 될 지도 모릅니다.

공교롭게 싸드 배치로 정부와 대립하고 있는 경상북도 성주군의 인구가 45,000명입니다. 싸드반대가 지역경제를 망치는 소리로 매도되지 않고 전 주민이 함께 하는 모습은 훗날 닥칠지도 모를 재앙을 대비한다는 점에서 존경스러워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 마음 부디 변치 않기를 바랍니다.…

목회서신 – 평화도 세월호도 교회에서는 금기?

우리의 고국이 THAAD(Terminal High Altitude Area Defense 고고도지역방어체계)로 시끄럽습니다. 사드란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아주 높은 고도에서 날아오는 미사일을 요격할 수 있는 시스템입니다. 저고도에서 날아오는 것을 요격하는 패트리어트 미사일은 이미 대한민국에 배치되어 있는데 이번에 사드 배치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얼핏 들으면 대한민국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것으로 생각되지만 북한의 미사일은 거리상 굳이 고고도까지 올라가지 않아도 얼마든지 남쪽을 향해 발사할 수 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사드는 북한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 중국이나 러시아를 겨냥한 것으로서 미국의 방어를 위해 우리의 땅을 내어주는 것입니다.

사드에서 나오는 전자파를 비롯한 유해파가 상당히 심각하다고 합니다. 일본의 설치 지역 주민들 중에는 모유가 나오지 않는다는 증언이 있을 정도입니다. 일본은 민가에서 상당한 거리에 위치하고 있는데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반경 1.5Km 안에 주민이 밀집되어 있습니다.

세상의 안전을 지키는 것은 무기가 아니라 평화입니다. 서로 신뢰하고 잘 사는 나라들은 못 사는 나라들을 위해 조금씩 양보하고 강대국이 패권주의 야욕만 버린다면 세상의 평화가 불가능하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세상은 평화를 지킨다는 미명 아래 군비 경쟁에 나서고 군비경쟁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상대방에 대한 증오심을 의도적으로 키워나가고 있습니다.

평화를 위해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한국기독교 교회 협의회 평화협정 캠페인 팀이 내일부터 이달 29일까지 미주를 순회하면서 평화 조약의 필요성을 홍보하고 다닐 예정입니다. 첫 기착지인 이곳 LA에서 오는 화요일 기자회견이 준비되어 있었는데 장소를 빌려주기로 한 교회에서 장소 제공 취소를 통보해왔습니다.

평화와 정의와 세월호를 이야기 못하는 교회, 예수께서 뭐라 하실지 마음이 무겁습니다. (2016년 7월 17일 주보)…

목회서신- 베이컨의 난

The_Burning_of_Jamestown (1)1676년 당시 버지니아 총독의 통치 방식에 문제를 느낀 부유한 농장주 베이컨(Nathaniel Bacon)이 백인 자유인, 백인과 흑인으로 구성된 계약직 노동자, 흑인 노예 등 400명을 모아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이른바 ‘베이컨의 난’입니다. 이 ‘난’의 구성원을 보면 백인들 중에서도 계약직 노동자들이 있었고 흑인들은 계약직 노동자와 노예계급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노동에 종사하는 백인 하인들도 있었고 흑인들도 모두 노예가 아니고 계약직 흑인들이 있었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17세기 미국의 노동 계층은 흑백과 신분에 구애 받지 않고 서로 술 주정도 받아 주는 그런 가까운 사이였다고 합니다. 그러기에 이들 모두 농장주의 반란 권유에 적극적으로 동조할 수 있었습니다.

베이컨의 난에 놀란 버지니아 정부는 흑백 연대를 막기 위해 흑백 차별 정책을 시행합니다. 같은 죄를 지어도 백인 노동자들에게는 관대한 반면 ‘열등한’ 흑인들에게는 ‘사지절단형’과 같은 참형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미국의 역사학자 에드먼드 모건(Edmund Morgan)은 미국의 흑백차별이 피부색의 이질감에서 온 자연적인 현상이 아니라 부유한 자본가가 가난한 노동자와의 계급 갈등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고안한 통치구도라고 설명합니다. 결국 돈을 더 벌기 위해 흑백차별을 조장했다는 뜻입니다. 교회는 이 논리를 뒷받침하는 죄를 저질렀습니다.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흑인 두 명이 무저항 상태에서 ‘총살’을 당했고 이에 저항하는 퇴역 군인이 백인 경찰만 겨눠 사살하는 비극이 일어났습니다. 그냥 피부색만 다른 것인데 경제적 위기 상황에서 ‘돈’의 문제가 우리를 지배하다 보니 모두 거칠어져 있습니다. 혹자는 흑인민권운동이 일어나던 1960년대 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재물(맘몬)과 패권을 향해 치닫는 세계를 멈추어 서게 하는 일이야 말로 우리 기독인들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2016년 7월 10일 주보)

이미지: Engraving captioned “The Burning of Jamestown” showing the burning of Jamestown during Bacon’s Rebellion (1676). From Illustrated School History of the United States and the Adjacent Parts of America: from the Earliest Discoveries to the Present Time (1857) available at the Internet Archive. (Public Domain)…

목회서신 – 안타까운 죽음이 없는 세상을 바라며

지난 12일 새벽 올랜드 나이트 클럽에서 일어난 참극으로 마음이 편치 않던 중에 지난 주간에도 아픈 두 죽음이 있었습니다.

41살의 조 콕스 영국 노동당 하원의원이 총격으로 사망했습니다. 콕스 의원은 영국의 브렉시트(British Exit) 정책의 반대 입장에 서있던 대표적인 인물이었습니다. 브렉시트란 유럽연합(EU)으로부터 영국이 탈퇴를 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오는 23일 영국에서 찬반 국민투표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유럽연합이 처음 출범할 때는 하나의 유럽이라는 공동체의 정신을 표방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유럽내 부유한 나라들을 중심으로 우리의 돈으로 가난한 나라를 도울 수 없다는 불만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리스, 불가리아, 루마니아 등 경제 사정이 안좋은 나라들의 이민자가 해를 입힌다는 우려가 영국으로 하여금 브렉시트의 여론을 조성했습니다. 반면 조 콕스 의원은 우리가 가난한 사람들을 배척할 수 없다는 철학에 따라 브렉시트 반대 운동을 해오다가 변을 당했습니다. 자국의 이익보다 이웃을 향해 열려 있던 한 젊은 여성 정치인의 별세가 더욱 아픈 까닭입니다. 아내의 사망후 남편 브렌든 콕스는 성명을 내 “증오는 신념이나 성취, 종교가 아니다”며 “그녀를 숨지게 한 증오에 맞서 싸워야한다”고 밝혔습니다.

한국에서는 세월호 구조 활동을 하던 한 잠수사가 석연치 않은 죽음으로 세상을 등졌습니다. 김관홍(43)씨는 세월호 사고 당시 자원봉사로 나서 많은 시신들을 수습했습니다. 세월호 청문회 당시 거짓으로 일관하던 관리들을 향해 일침을 날리기도 했던 그는 그때의 기억으로 힘들어 하다가 안타깝게 젊은 목숨을 마감했습니다.

이웃을 먼저 생각하는 이들의 안타까운 죽음이 사라지는 세상이 되기를 바랍니다. (2016년 6월 19일)

Image: Vigil in support of the victims of the 2016 Orlando nightclub shooting, Washington, D.C. (CC BY-SA)…

목회 서신 – 전쟁에 나서는 원효의 용기

2016년 5월 29일 목회 서신

시인이자 소설가인 김선우 작가의 ‘발원’이라는 소설을 읽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원효와 김춘추(신라 무열왕)의 딸인 요석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입니다. 원효의 ‘효’는 새벽 효이고 요석의 ‘석’은 저녁 석이니 모든 것이 시작하는 새벽과 모든 것을 덮어 주는 저녁의 사랑 이야기가 소설의 주 내용입니다.

원효에 대한 자료는 ‘삼국유사’를 비롯해서 몇 안되기 때문에 소설의 대부분은 작가의 상상력에 기초하고 있을 겁니다. 그런데 이 상상력 중에 백제와의 전쟁에 나선 원효의 태도가 인상적입니다. 소설에 따르면 원효를 총애하던 선덕여왕은 백제와의 전쟁에 승군을 모아 앞장 서달라고 원효에게 부탁합니다.

자신을 알아봐주는 왕의 부탁, 그것도 사사로운 일이 아니라 풍전등화 같은 운명에 처한 조국을 구해달라는 부탁을 거절하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여기서 원효는 선덕여왕에게 자기를 비롯한 승군은 참전은 하겠으나 무기는 잡지 않고 위생병으로 참여하겠으며 위생병의 구호 대상에는 백제병사도 포함시켜 달라는 부탁을 합니다. 선덕여왕의 표정은 어그러졌지만 원효를 총애한 왕답게 허락하게 됩니다.

메모리얼 데이입니다. 국가는 지킬만한 숭고한 가치가 있는 것이지만 따라서 그 일을 위해서 희생한 이들을 추모하는 일은 필요하지만 그보다 더 소중한 가치는 평화와 용서입니다. 잔뜩 독이 오른 국가주의 앞에서 승려로서 자신의 신앙에 따라 용기있게 나선 원효의 태도가 오늘 우리들 모두에게 필요한 가치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늘 이런 상상을 합니다. 한국전쟁에서 희생된 남북 병사들을 남북의 국립묘지에서 각각 이장해서 비무장 지대에 화해의 묘지를 만드는 날이 오기를요…

신학자 스탠리 하우어워스는 자신의 저서인 <하나님의 나그네 된 백성>에서 자신이 청년 시절을 보내던 사우스캐롤라이나(SC) 그린빌의 기억을 되살립니다. 1963년 어느 날 보수적인 SC주에서 마침내 일요일에 영화관을 열었습니다. 극장이라는 세속적인 공간이 미국에 자리잡은 지 오래되었어도 보수주의 기독교인들이 대다수인 SC에서 극장은 ‘주일은 쉽니다’의 원칙을 지켜왔었는데 결국 영화관을 주일에 열 수 밖에 없는 현실을 당시 기독교인들은 매우 안타까워 했었다는 겁니다. 당시 그린빌에는 주일 아침만 되면 교회 가는 인파로 인해 교통이 마비될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 시절 분위기를 스탠리 하우어워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들은 그 세상에서 잘못되어 있는 것들- 그때는 인종차별의 세상이었다는 점을 기억하라-에는 눈을 감아 버리고 좋고 의로워 보이는 세상만을 보았다. 부모들은 자녀를 주일학교에 보내 놓고는 만사가 좋고 건전하고 합당하고 또 미국적이라고 믿었다”

지난 주간 SC 주 찰스턴에 있는 흑인 교회에 21살의 백인청년이 총을 난사해 담임목사인 클레멘타 핑크니(Clementa Pinckney) 포함, 9명이 희생되었습니다. 올해 41세의 클레멘타 목사는 13살에 설교를 시작했으며 23살에 사우스캐롤라이나 최연소 주 하원의윈에 당선된 이력을 가진 흑인 사회 뛰어난 지도자였다고 NY Times는 애도했습니다. 클레멘타 목사는 현재 주 상원으로 의정활동과 목회를 병행하다가 변을 당했습니다.
영화관은 막아 내려고 하고, 아이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신앙교육을 시키려고 하면서, 정작 사회불의는 외면하던 SC 주의 50여년 전 그 생각들은 전혀 바뀌지 않은 것 같습니다. 나는 그런 신앙관을 가진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이 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우리 아시안들은 흑인들보다 더 소수자들입니다. 흑인들의 민권 운동 덕분에 그나마 우리가 이렇게 살아가는데 그들의 희생을 잊고 사는 것은 아닌지요? 더군다나 다수의 성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것도 권력이라고 ‘성소수자’를 함부로 증오하는 한인 기독교인들과 피부색을 권력으로 생각하는 백인들과 어떤 차이가 있는 걸까요?…

미국 장로교 이야기

우리 교단 PCUSA 잡지인 Presbyterians Today 신년호는 다음과 같은 통계를 싣고 있습니다. 우리의 현실을 잘 보여주는 자료라고 생각되어 여기 소개합니다.

* 2012년 기준 미국 장로교 인종 비율
백인 89.9%(1,661,952명), 아시안 3.8% (70,286명 )
African American 3.3% (60,311명), 히스패닉 1.6% (28,931명),
African 0.4 % 0.4% (7,270명), 미국원주민 0.3% (5,923명),
중동 0.1 % (2,442명), 기타0.6% (12,381명)
 
* 다양하지만 그것이 다문화 목회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Diverse but not always multicultural). 미국회중 (전체 교회 10,262개) 중 45%가 같은 인종끼리 모이고 있습니다.
백인 4,047개 교회, 아시안 177개 교회
African American 230개 교회, 히스패닉 122개 교회
African 3개 교회, 원주민 55개 교회, 중동 4개 교회, 기타 1개 교회

* 98%의 백인 장로교인이 백인 교인 비율이 80% 이상인 교회에 출석합니다.
0.1 %의 백인 장로교인이 소수 인종 교회(백인 비율이 20%미만인) 에 출석하고 있습니다.
 
 제 생각

저는 PCUSA안에서 한인 교회의 위상이 크다고 생각했는데 Asian 장로교인 전체 비율이 3.8% 밖에 안되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Asian 교회에는 타인종을 받아들이는 비율이 높은 것 같습니다전체 교인 70,286명 중에 177개 교회(22,094명)만이 자기들끼리 모이고 나머지 48,000명의 교회는 다른 인종도 수용하고 있습니다.
백인의 소수 인종 교회 출석 비율이 0.1 % 밖에 안되네요. 하기야 우리교회에서는 0.1%도 안됩니다. 새해에는 백인 전도를 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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