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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교회 archives (page 7)

두 종류의 꿈

190714 두 종류의 꿈 Sermon

2019년 7월 14일 주일예배 설교
본문 : 창세기 37: 1-11
제목 : 두 종류의 꿈
설교 : 김기대 목사

야곱은 자기 아버지가 몸붙여 살던 땅 곧 가나안 땅에서 살았다. 야곱의 역사는 이러하다.

열일곱 살 된 소년 요셉이, 아버지의 첩들인 빌하와 실바가 낳은 형들과 함께 양을 치는데, 요셉은 형들의 허물을 아버지에게 일러바치곤 하였다. 이스라엘은 늘그막에 요셉을 얻었으므로, 다른 아들들보다 요셉을 더 사랑하여서, 그에게 화려한 옷을 지어서 입혔다.

형들은, 아버지가 그를 자기들보다 더 사랑하는 것을 보고서 요셉을 미워하며, 그에게 말 한 마디도 다정스럽게 하는 법이 없었다. 한 번은, 요셉이 꿈을 꾸고서, 그것을 형들에게 말한 일이 있는데, 그 일이 있은 뒤로부터, 형들은 그를 더욱더 미워하였다.

요셉이 형들에게 말하였다. “내가 꾼 꿈 이야기를 한 번 들어 보셔요.
우리가 밭에서, 곡식단을 묶고 있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내가 묶은 단이 우뚝 일어서고, 형들의 단이 나의 단을 둘러서서 절을 하였어요.”
형들이 그에게 말하였다. “네가 우리의 왕이라도 될 성싶으냐? 정말로 네가 우리를 다스릴 참이냐?” 형들은, 그의 꿈과 그가 한 말 때문에, 그를 더욱더 미워하였다.

얼마 뒤에 그는 또 다른 꿈을 꾸고, 그것을 형들에게 말하였다. “들어 보셔요. 또 꿈을 꾸었어요. 이번에는 해와 달과 별 열한 개가 나에게 절을 했어요.” 그가 아버지와 형들에게 이렇게 말할 때에, 그의 아버지가 그를 꾸짖었다. “네가 꾼 그 꿈이 무엇이냐? 그래, 나하고 너의 어머니하고 너의 형들이 함께 너에게로 가서, 땅에 엎드려서, 너에게 절을 할 것이란 말이냐?”

그의 형들은 그를 시기하였지만, 아버지는 그 말을 마음에 두었다.…

사랑 받았지만 슬픔으로 반응한 청년

2019년 7월 7일 주일예배 설교

본문 : 막 10:17-22
제목 : 사랑 받았지만 슬픔으로 반응한 청년
설교 : 김기대 목사

예수께서 길을 떠나시는데, 한 사람이 달려와서,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예수께 물었다. “선하신 선생님, 내가 영생을 얻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너는 나를 선하다고 하느냐? 하나님 한 분 밖에는 선한 분이 없다.
너는 계명을 알고 있을 것이다. ‘살인하지 말아라, 간음하지 말아라, 도둑질하지 말아라, 거짓으로 증언하지 말아라, 속여서 빼앗지 말아라, 네 부모를 공경하여라’ 하지 않았느냐?”

그가 예수께 말하였다. “선생님, 나는 이 모든 것을 어려서부터 다 지켰습니다.” 예수께서 그를 눈여겨 보시고, 사랑스럽게 여기셨다. 그리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너에게는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 가서, 네가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어라. 그리하면, 네가 하늘에서 보화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그러나 그는 이 말씀 때문에, 울상을 짓고, 근심하면서 떠나갔다. 그에게는 재산이 많았기 때문이다.…

기억의 재구성

190630 기억의 재구성 Sermon

2019년 6월 30일 평화의 교회
설교: 김기대 목사
제목: 기억의 재구성
본문: 요한복음 21장 1절~14절

그 뒤에 예수께서 디베랴 바다에서 다시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셨는데, 그가 나타나신 경위는 이러하다.

시몬 베드로와 ‘쌍둥이’라고 불리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제자들 가운데서 다른 두 사람이 한 자리에 있었다. 시몬 베드로가 그들에게 “나는 고기를 잡으러 가겠소” 하고 말하니,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소” 하고 말하였다. 그들이 나가서 배를 탔다. 그러나 그 날 밤에는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다. 이미 동틀 무렵이 되었을 때에, 예수께서는 바닷가에 서 계셨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가 예수이신 줄을 알지 못하였다.

그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얘들아, 무얼 좀 잡았느냐?” 하고 물으셨다. “못 잡았습니다” 하고 그들이 대답하니, 예수께서 그들에게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라. 그러면 잡을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제자들이 그물을 던지니, 고기가 너무 많이 걸려서, 그물을 끌어올릴 수가 없었다.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저분은 주님이시다” 하고 말하였다. 시몬 베드로는 주님이라는 말을 듣고서, 벗은 몸에 겉옷을 두르고 바다로 뛰어내렸다. 그러나 나머지 제자들은 배를 탄 채로, 고기가 든 그물을 끌면서, 해안으로 나왔다. 그들은 육지에서 1)백 자 남짓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들어가 있었다. 그들이 땅에 올라와서 보니, 숯불을 피워 놓았는데, 그 위에 생선이 놓여 있고, 빵도 있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지금 잡은 생선을 조금 가져 오너라.” 시몬 베드로가 배에 올라가서, 그물을 땅으로 끌어내렸다. 그물 안에는 큰 고기가 백쉰세 마리나 들어 있었다. 고기가 그렇게 많았으나, 그물이 찢어지지는 않았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와서 아침을 먹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제자들 가운데서 아무도 감히 “선생님은 누구십니까?” 하고 묻는 사람이 없었다. 그가 주님이신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가까이 와서, 빵을 들어서 그들에게 주시고, 또 생선도 주셨다. 예수께서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신 뒤에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신 것은, 이번이 세 번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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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에서 예수는 부활 후 실의에 빠져 있는 제자들을 방문합니다. 이 장면은 단순히 부활후 현현이 아니라 깊은 의미를 담고 있는 장면입니다. 예수와 제자들의 이 만남에서 제자들은 그와 함께 하던 옛 사건들을 다시 기억해 냅니다. 깊은 곳으로 그물을 던지라던 예수와 베드로의 첫 만남과 베드로의 그리스도 고백사건을 기억나게 합니다. 아침 호숫가에서의 소박한 밥상은 오병이어의 사건도 기억나게 하고요. 예수는 이 만남을 통해 그들의 기억을 새롭게 직조하라고 침묵으로 말씀하고 계십니다. 과거에만 매여있지 말고 이제는 삶의 자리에서 기억을 새롭게 구성함으로써 미래를 향해 나가야 합니다. 발터 벤야민이 파울 클레의 그림 ‘새로운 천사’를 해석한 것 처럼요.
지난 주간 우리는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 같았습니다. 6월 25일의 보수 언론은 6.25 69주년을 소환해내느라 애썼습니다. 어디선가는 모윤숙 시인의 ‘장엄한’ 시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도 고교 졸업 후 처음 봤습니다. 그리고 주말에는 판문점에서의 희망을 보았으니 롤러코스트 같은 지난 주간이었지요. 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희생들이 폄하되어야 할 까닭은 없습니다.…

해방된 성령

190623 해방된 성령 Sermon

2019년 6월 23일 세대통합 예배
본문 : 사도행전 2: 1-13
제목 : 해방된 성령
설교 : 고주열 목사

오순절이 되어서, 그들은 모두 한 곳에 모였다. 그 때에 갑자기 세찬 바람이 부는 듯한 소리가 하늘에서 나더니, 그들이 앉아 있는 온 집안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그들에게 불길이 솟아오르는 것과 같은 혀들이 갈래갈래 갈라지면서 나타나더니, 각 사람 위에 내려앉았다.

그들은 모두 성령으로 충만해서, 성령이 시키는 대로 각각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하였다. 예루살렘에는 경건한 유대 사람이 세계 각국으로부터 와서 살았다.

그런데 이런 말소리가 나니, 많은 사람이 모여 와서, 각각 자기네 지방의 말로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서, 어리둥절하였다. 그들은 놀라서, 신기하게 여기며 말하였다. “보십시오, 말하고 있는 이 사람들은 모두 갈릴리 사람이 아니오? 그런데 우리 모두가 저마다 태어난 지방의 말로 듣고 있으니, 어찌 된 일이오?

우리는 바대 사람과 메대 사람과 엘람 사람이고, 메소포타미아와 유대와 갑바도기아와 본도와 아시아와 브루기아와 밤빌리아와 이집트와 구레네 근처 리비아의 여러 지역에 사는 사람이고, 또 나그네로 머물고 있는 로마 사람과 유대 사람과 유대교에 개종한 사람과 크레타 사람과 아라비아 사람인데, 우리는 저들이 하나님의 큰일들을 우리 각자의 말로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있소.”

사람들은 모두 놀라서, 어쩔 줄을 몰라 “이게 도대체 어찌 된 일이오?” 하면서, 서로 말하였다. 그런데 더러는 조롱하면서 “그들이 새 술에 취하였다” 하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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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예수공동체에 약속된 성령이 임재하셨다. 그런데 사도행전 기자는 성령의 출현을 방언의 사건으로 시작한다. 왜 방언의 사건으로 시작하고 있을까?

성령은 유대인들에게 친근한 존재이다. 바람, 하나님의 거룩한 영… 유대의 긴 역사속에 성령은 늘 유대종교 유대문화 유대땅 유대인들을 위한 존재하셨다. 하나님을 믿는 유대인둘에게 당연한 역사적 사실이다. 성령의 임재는 수많은 예언자들을 통해 유대적 언어로 전달되었고 크고 작은 전쟁과 수난속에서 위로와 회복의 영으로 유대인에게 임하셨다.

예수가 초대공동체에 성령을 약속하셨다. 그런데 그 성령이 방언으로 나타나셨다. 그 성령을 기다린 자들은 유대인들이다. 그런데 유대언어가 아닌 이방의 언어로 임하셨다. 이는 매우 충격적인 사건이다.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이방언어로 나타난 성령!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완전히 바뀌었다는 상징적 사건이 바로 성령임재의 방언 사건이다. 더이상 성령은 당신의 구원사역을 위해 유대언어를 사용하지 않으신다. 다시말해 구원은 유대의 소유가 아닌 율법의 소유가 아닌 모든 족속과 나라와 사람들을 위한 구원으로 바뀌었다는 구원의 주체이신 하나님이 선포하시는 역사적 사건이다. 유대중심의 구원이 온 인류를 향한 구원으로 바꾸는 패러다임의 전환인 것이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 말씀의 의미가 무엇일까? 2000년 기독교 역사를 통해 우리는 이찬년전의 유대인들이 아닐까? 이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방언”의 소리를 들어야되지 않을까? 참 구원의 소리를 들려주시는 성령께 들을 귀 있는 자들이 되길 기도한다.

[‘해방된 성령’ 중에서]…

경계를 넘어서

190616 경계를 넘어서 Sermon

본문 : 욥기 38:1-11

그 때에 주께서 욥에게, 폭풍이 몰아치는 가운데서 대답하셨다.

“네가 누구이기에, 무지하고 헛된 말로 내 지혜를 의심하느냐?
이제 허리를 동이고 대장부답게 일어서서, 묻는 말에 대답해 보아라.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거기에 있기라도 하였느냐?
네가 그처럼 많이 알면, 내 물음에 대답해 보아라.

누가 이 땅을 설계하였는지, 너는 아느냐?
누가 그 위에 측량줄을 띄웠는지, 너는 아느냐?
무엇이 땅을 버티는 기둥을 잡고 있느냐?
누가 땅의 주춧돌을 놓았느냐?

그 날 새벽에 별들이 함께 노래하였고, 천사들은 모두 기쁨으로 소리를 질렀다. 바닷물이 땅 속 모태에서 터져 나올 때에, 누가 문을 닫아 바다를 가두었느냐?

구름으로 바다를 덮고, 흑암으로 바다를 감싼 것은, 바로 나다.
바다가 넘지 못하게 금을 그어 놓고, 바다를 가두고 문 빗장을 지른 것은, 바로 나다.

“여기까지는 와도 된다. 그러나 더 넘어서지는 말아라!
도도한 물결을 여기에서 멈추어라!” 하고 바다에게 명한 것이 바로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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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삼위일체주일이다. 삼위일체는 논리적 추론의 대상이 아니라 고백의 대상이다. 현대신학은 삼위간의 교제가 교회에서 어떻게 실현되는가에 주목한다. 삼위도 각각 개별 사역이 존재하는 동시에 경계를 넘어 교제하듯이 우리의 믿음도 그래야 한다. 자신이 줄쳐놓은 경계를 과감하게 뛰어 넘으라.…

바벨

2019년 6월 9일 성령강림주일 설교
본문: 창세기 11:1-9
제목: 바벨
설교: 김기대 목사

처음에 세상에는 언어가 하나뿐이어서, 모두가 같은 말을 썼다. 사람들이 동쪽에서 이동하여 오다가, 시날 땅 한 들판에 이르러서, 거기에 자리를 잡았다. 그들은 서로 말하였다. “자, 벽돌을 빚어서, 단단히 구워내자.” 사람들은 돌 대신에 벽돌을 쓰고, 흙 대신에 역청을 썼다. 그들은 또 말하였다. “자, 도시를 세우고, 그 안에 탑을 쌓고서, 탑 꼭대기가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의 이름을 날리고, 온 땅 위에 흩어지지 않게 하자.”

주께서는, 사람들이 짓고 있는 도시와 탑을 보려고 내려오셨다. 주께서 말씀하셨다. “보아라, 만일 사람들이 같은 말을 쓰는 한 백성으로서, 이렇게 이런 일을 하기 시작하였으니, 이제 그들은, 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하지 못할 일이 없을 것이다. 자, 우리가 내려가서, 그들이 거기에서 하는 말을 뒤섞어서,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주께서 거기에서 그들을 온 땅으로 흩으셨다. 그래서 그들은 도시 세우는 일을 그만두었다. 주께서 거기에서 온 세상의 말을 뒤섞으셨다고 하여, 사람들은 그 곳의 이름을 바벨이라고 한다. 주께서 거기에서 사람들을 온 땅에 흩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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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묘호렌게쿄’라고 들어 보셨을 겁니다. 이 말은 나무묘법연화경의 일본식 발음이며 묘법연화경 즉, 불교경전인 법화경에 모든 것을 맡긴다는 의미입니다. 박정희 정권 시절에는 이 주문을 외우는 일종의 종교인 창가학회 이야기가 언론에 자주 등장했던 기억이 납니다. 언론을 통해 창가학회는 그냥 주문만 외우면 되는 종교, 우민 종교, 왜색짙은 종교로 대중들에게는 각인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국에는 지금 창가학회 회관이 버젓이 자리잡고 있으며 언론으로부터 비난도 받지 않습니다. 도대체 어떤 종교이기 때문에 그럴까요? 창가학회는 1930년대 가치를 창조한다는 의미의 창가교육학회로부터 시작했는데 초기에는 교육자들의 모임이었습니다. 초등학교 교장이었던 초대 회장 마키구치 쓰네사부로의 교육철학이기도 했습니다. 이 사람은 2차 대전 중 구속되어 옥사하는데 일본의 군국주의와 전쟁을 반대했기 때문입니다.

한국 기독교에서 존경하는 일본 침략기의 신학자인 우찌무라 간조, 가가와 도요히코 모두 국가주의자였습니다. 많은 한국 기독교인들이 이 두 사람을 존경하지만, 그들도 극복할 수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와 달리 창가학회의 설립자는 일본의 폭력성과 맞섰습니다. 그들은 이런 경험을 기초로 평화를 강조하며, 여기 LA에서 멀지 않은 곳(Aliso Viejo)에 있는 Soka(창가) 대학은 미국에서 인문단과대학 20위권에 랭크되어 있는 평화학으로 유명한 학교입니다. 또한 창가학회는 일본의 공명당을 창당해서 자민당의 우경화 정책에 제동을 거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왜 갑자기 일본의 이상한 종교 창가학회를 이야기하냐구요? 빨갱이 죽이자며 폭력을 선동하고, 평화정책에 시비를 거는 일부 기독교인들이 부끄러워서 그렇습니다. 남묘호렌게쿄를 주문으로 외우는 사람들보다 못하니 어디가서 그들과 같은 종교를 믿는다고 고개를 들 수 있겠습니까?

[목회서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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