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영조의 사색(5)
사색 ( 61 )
——– 흡연자 구하기 ——-
302호실, 30명이 농성중이다. 하필 문과 대학을 택하여 이 야단이라는 말인가? 그당시 일등 신문이던 ㄷ일보도 ” 교수농성 ” 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사회면에 보도했다. 학생회 간부인 성군이 소식을 전했다. 젊은 교수 한분이 전한 말이다. ” 이봐, 성군, 자네들 우리를 이렇게 내버려 둘건가?
벌써 한달이 지났어. 우선, 리꾸샤꾸가 곪았어.이걸 풀어 주어야 하는데 홀아비 생활에 방법이 없단 말이야. 아마 마누라가 곧 도망갈지도 몰라. 저렇게 내버려두면 일나지. 자네들 우리 사정을 너무 모르체 하는것 아니야? ” 리꾸샤쿠는 작은 주머니란 뜻이다. 참 골치 아픈 일이다. 어찌하랴? 꽉 막힌 이 물길을 뚫어야 할텐데. 몇일을 고민하던 나는 결단의 시간이 오게되고 그 다음날 전교생의 소집 공고가 대자보로 나갔다.
노천광장을 꽉 채운 학생들은 이미 그동안의 울분을 토해 내며 갑론을박 후 어느새 우루루 몰려가니 곧 총장서리로 있던 언더우드 3세의 화강암 이층 양옥집이다. 결과는 예상한 그대로 완전 파괴되고 누구의
짖인지는 모르게 불을 질러버려 나중에는 시커먼 돌덩이만 앙상하게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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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도록 총장하던 용재는 잠시 그 자리를 내려놓고 상하원 합동의장으로 당선되어 나라 민주화 건설에 여념이 없었다. 1960년 4.19후 탄생한 장면 정부는 한창 조국 재건과 민주화 완성에 온 힘을 쏟고 있었다. 그러나 온갖 장애물이 여기 저기 터져 나왔다. 갑자기 쏟아진 자유를 주체하지 못하고 흥분속에 들뜬 학생데모가 끝없이 이어졌다. 또 자유당 정권에 눌려 지내던 각계각층의 요구 사항이 폭팔하니 곧 아비규환, 결국 정치군인들에게 길만 닦아 주는 꼴이 되고 말았다. 학원은 그들대로 새로운 혁신의 꿈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내가 다니던 학교도 꿈틀대기 시작했다. 조선 어학회 사건으로 고문 당하던 교수중심의 국내파와 미국 유학파 교수들의 대립에서 학교당국은 국내파를 외면하고 유학파의 손을 드니 반발이 생기게되고 결국 여러명의 이직이 일어나니 80명의 국내파가 반발하며 일어난것이 바로 국내 최초의 대규모 사학분쟁이다. 8명의 유학파와
80명의 국내파 대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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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교수는 그 당시 도서관장이었다. 학생들은 그를 무서워했다. 그의 눈초리는 첫대면부터 상대를 압도한다. 거기에다 학점도 따기 어렵다. 그의 눈밖에 나면 졸업하기가 힘들 정도다. 더하여 차세대 총장 후보로도 거론되고 있다. 험악하던 학원 분규도 수습되고 서대문 형무소에서 험한 꼴을 당하며 갇혀있던 150명의 학생들도 무사히 풀려났다. 같은 편이었던 언더우드 총장서리와 옹고집으로 유명한 이사장 영감의 양옥집들을 절단낸 놈들도 용서해 주었다. 괘씸한 녀석들. 이제는 내 세상이다. 아, 내 앞 길에이런 행운의 문이 열리다니,하늘도 의인의 길을 평탄케 하는구나 하고 그는 쾌재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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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장실은 총장실보다 더 현대적으로 지어져서 넓직하고 시원하다.들어와 앉은지 5분이 지났을까, 어떤 녀석이 노크도 없이 문을 열고 들어선다. 낯선 얼굴에 인사도 아니하고 무표정으로 뚜벅 거리며 다가오는 것이 몹시 거스린다. 별 놈 다 보겠군하며 대응하려는데 그가 먼저 입을
뗀다.
” 선생님, 부탁이 있습니다. ” ” 그래? 너 누구야? ”
” 예, 저는 학생 자치회 회장입니다. 내 후배 K군이 도서관 복도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선생님께 들켜서 곧 퇴학시킨다고 해서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