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en extra topbar

Category Archives: 예배 (page 12)

기억의 재구성

190630 기억의 재구성 Sermon

2019년 6월 30일 평화의 교회
설교: 김기대 목사
제목: 기억의 재구성
본문: 요한복음 21장 1절~14절

그 뒤에 예수께서 디베랴 바다에서 다시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셨는데, 그가 나타나신 경위는 이러하다.

시몬 베드로와 ‘쌍둥이’라고 불리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제자들 가운데서 다른 두 사람이 한 자리에 있었다. 시몬 베드로가 그들에게 “나는 고기를 잡으러 가겠소” 하고 말하니,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소” 하고 말하였다. 그들이 나가서 배를 탔다. 그러나 그 날 밤에는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다. 이미 동틀 무렵이 되었을 때에, 예수께서는 바닷가에 서 계셨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가 예수이신 줄을 알지 못하였다.

그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얘들아, 무얼 좀 잡았느냐?” 하고 물으셨다. “못 잡았습니다” 하고 그들이 대답하니, 예수께서 그들에게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라. 그러면 잡을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제자들이 그물을 던지니, 고기가 너무 많이 걸려서, 그물을 끌어올릴 수가 없었다.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저분은 주님이시다” 하고 말하였다. 시몬 베드로는 주님이라는 말을 듣고서, 벗은 몸에 겉옷을 두르고 바다로 뛰어내렸다. 그러나 나머지 제자들은 배를 탄 채로, 고기가 든 그물을 끌면서, 해안으로 나왔다. 그들은 육지에서 1)백 자 남짓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들어가 있었다. 그들이 땅에 올라와서 보니, 숯불을 피워 놓았는데, 그 위에 생선이 놓여 있고, 빵도 있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지금 잡은 생선을 조금 가져 오너라.” 시몬 베드로가 배에 올라가서, 그물을 땅으로 끌어내렸다. 그물 안에는 큰 고기가 백쉰세 마리나 들어 있었다. 고기가 그렇게 많았으나, 그물이 찢어지지는 않았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와서 아침을 먹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제자들 가운데서 아무도 감히 “선생님은 누구십니까?” 하고 묻는 사람이 없었다. 그가 주님이신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가까이 와서, 빵을 들어서 그들에게 주시고, 또 생선도 주셨다. 예수께서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신 뒤에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신 것은, 이번이 세 번째였다.

____

오늘 본문에서 예수는 부활 후 실의에 빠져 있는 제자들을 방문합니다. 이 장면은 단순히 부활후 현현이 아니라 깊은 의미를 담고 있는 장면입니다. 예수와 제자들의 이 만남에서 제자들은 그와 함께 하던 옛 사건들을 다시 기억해 냅니다. 깊은 곳으로 그물을 던지라던 예수와 베드로의 첫 만남과 베드로의 그리스도 고백사건을 기억나게 합니다. 아침 호숫가에서의 소박한 밥상은 오병이어의 사건도 기억나게 하고요. 예수는 이 만남을 통해 그들의 기억을 새롭게 직조하라고 침묵으로 말씀하고 계십니다. 과거에만 매여있지 말고 이제는 삶의 자리에서 기억을 새롭게 구성함으로써 미래를 향해 나가야 합니다. 발터 벤야민이 파울 클레의 그림 ‘새로운 천사’를 해석한 것 처럼요.
지난 주간 우리는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 같았습니다. 6월 25일의 보수 언론은 6.25 69주년을 소환해내느라 애썼습니다. 어디선가는 모윤숙 시인의 ‘장엄한’ 시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도 고교 졸업 후 처음 봤습니다. 그리고 주말에는 판문점에서의 희망을 보았으니 롤러코스트 같은 지난 주간이었지요. 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희생들이 폄하되어야 할 까닭은 없습니다.…

해방된 성령

190623 해방된 성령 Sermon

2019년 6월 23일 세대통합 예배
본문 : 사도행전 2: 1-13
제목 : 해방된 성령
설교 : 고주열 목사

오순절이 되어서, 그들은 모두 한 곳에 모였다. 그 때에 갑자기 세찬 바람이 부는 듯한 소리가 하늘에서 나더니, 그들이 앉아 있는 온 집안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그들에게 불길이 솟아오르는 것과 같은 혀들이 갈래갈래 갈라지면서 나타나더니, 각 사람 위에 내려앉았다.

그들은 모두 성령으로 충만해서, 성령이 시키는 대로 각각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하였다. 예루살렘에는 경건한 유대 사람이 세계 각국으로부터 와서 살았다.

그런데 이런 말소리가 나니, 많은 사람이 모여 와서, 각각 자기네 지방의 말로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서, 어리둥절하였다. 그들은 놀라서, 신기하게 여기며 말하였다. “보십시오, 말하고 있는 이 사람들은 모두 갈릴리 사람이 아니오? 그런데 우리 모두가 저마다 태어난 지방의 말로 듣고 있으니, 어찌 된 일이오?

우리는 바대 사람과 메대 사람과 엘람 사람이고, 메소포타미아와 유대와 갑바도기아와 본도와 아시아와 브루기아와 밤빌리아와 이집트와 구레네 근처 리비아의 여러 지역에 사는 사람이고, 또 나그네로 머물고 있는 로마 사람과 유대 사람과 유대교에 개종한 사람과 크레타 사람과 아라비아 사람인데, 우리는 저들이 하나님의 큰일들을 우리 각자의 말로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있소.”

사람들은 모두 놀라서, 어쩔 줄을 몰라 “이게 도대체 어찌 된 일이오?” 하면서, 서로 말하였다. 그런데 더러는 조롱하면서 “그들이 새 술에 취하였다” 하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___

초대 예수공동체에 약속된 성령이 임재하셨다. 그런데 사도행전 기자는 성령의 출현을 방언의 사건으로 시작한다. 왜 방언의 사건으로 시작하고 있을까?

성령은 유대인들에게 친근한 존재이다. 바람, 하나님의 거룩한 영… 유대의 긴 역사속에 성령은 늘 유대종교 유대문화 유대땅 유대인들을 위한 존재하셨다. 하나님을 믿는 유대인둘에게 당연한 역사적 사실이다. 성령의 임재는 수많은 예언자들을 통해 유대적 언어로 전달되었고 크고 작은 전쟁과 수난속에서 위로와 회복의 영으로 유대인에게 임하셨다.

예수가 초대공동체에 성령을 약속하셨다. 그런데 그 성령이 방언으로 나타나셨다. 그 성령을 기다린 자들은 유대인들이다. 그런데 유대언어가 아닌 이방의 언어로 임하셨다. 이는 매우 충격적인 사건이다.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이방언어로 나타난 성령!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완전히 바뀌었다는 상징적 사건이 바로 성령임재의 방언 사건이다. 더이상 성령은 당신의 구원사역을 위해 유대언어를 사용하지 않으신다. 다시말해 구원은 유대의 소유가 아닌 율법의 소유가 아닌 모든 족속과 나라와 사람들을 위한 구원으로 바뀌었다는 구원의 주체이신 하나님이 선포하시는 역사적 사건이다. 유대중심의 구원이 온 인류를 향한 구원으로 바꾸는 패러다임의 전환인 것이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 말씀의 의미가 무엇일까? 2000년 기독교 역사를 통해 우리는 이찬년전의 유대인들이 아닐까? 이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방언”의 소리를 들어야되지 않을까? 참 구원의 소리를 들려주시는 성령께 들을 귀 있는 자들이 되길 기도한다.

[‘해방된 성령’ 중에서]…

6월 23일 목회 서신

황교안씨는 야당의 지도자로 정부 여당에 대하여 비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지만 분노도 잘 하지 않습니다. 자기 존재를 부각시키기 위해서 대통령과 각을 세우는 것이 정치인의 생존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가 이렇게 자유롭게 말할 수 있게 된
환경은 그가 공안검사로 재직 당시 수없이 감옥에 넣었던 민주화 운동을 해온 분들 덕택이라는 사실만 알아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그의 최근 발언 두가지가 저를 분노케 했습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이 의열단 단장 김원봉에 대해 언급하자 황씨는 보란듯이 백선엽을 찾아가 극진한 예를 갖춘 사실입니다. 김원봉에 대한 언급이 그에게는 불편할 수 있다는 점 인정합니다. 김원봉을 다룬 영화 ‘암살’을 보고 나온 그가 속한 정당의 정치 선배들이 영화감상 후 대한 독립만세를 부른 사실을 잊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백선엽은 아닙니다. 만주 주둔 일본군으로 독립군을 토벌하고 6.25를 전후해서는 수많은 민간인 학살에 책임있는 백선엽을 찾아갔다는 사실은 우리 속담 ‘홧김에 서방질한다’는 짓으로 밖에는 설명되지 않습니다. 현 집권 세력에 반대할 수 있지만 거기도 최소한의 역사의식은 있어야 합니다.

다른 하나는 외국인 노동자의 임금을 동일하게 주어서는 안된다는 발언입니다. 그의 발언은 외국에서 먹고 살아가는 동포들에 대한 모욕이고 놀라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분노를 일으키는 국격 훼손적 발언입니다. 그가 말한 외국인 노동자는 주로 동남아 출신을 말하는 것이겠지요. 임금차별에는 영어강사같은 백인들도 해당되는지 묻는 기자가 왜 한명도 없는 지 궁금합니다. 그동안 황씨 발언의 맥락을 고려하면 아마도 그는 백인들은 해당안되고 그들에게는 더 주어야 한다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약한 자들은 더 착취하자는 공안검사의 의식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

6월 23일 교회소식

* 오늘은 세대 통합 예배로 드립니다. 청년들을 위해 많은 기도부탁드립니다.

* 예배 후에 신도회 모입니다.

* 어제 홈리스 급식에 함께 한 교우들에게 감사드립니다.

* 장기병 교우 출장중입니다.

* 7월 8월 두달은 점심식사를 간편식으로 합니다.

* 오늘 점심은 주방팀에서 준비했습니다. (설거지 : 길동무회)…

경계를 넘어서

190616 경계를 넘어서 Sermon

본문 : 욥기 38:1-11

그 때에 주께서 욥에게, 폭풍이 몰아치는 가운데서 대답하셨다.

“네가 누구이기에, 무지하고 헛된 말로 내 지혜를 의심하느냐?
이제 허리를 동이고 대장부답게 일어서서, 묻는 말에 대답해 보아라.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거기에 있기라도 하였느냐?
네가 그처럼 많이 알면, 내 물음에 대답해 보아라.

누가 이 땅을 설계하였는지, 너는 아느냐?
누가 그 위에 측량줄을 띄웠는지, 너는 아느냐?
무엇이 땅을 버티는 기둥을 잡고 있느냐?
누가 땅의 주춧돌을 놓았느냐?

그 날 새벽에 별들이 함께 노래하였고, 천사들은 모두 기쁨으로 소리를 질렀다. 바닷물이 땅 속 모태에서 터져 나올 때에, 누가 문을 닫아 바다를 가두었느냐?

구름으로 바다를 덮고, 흑암으로 바다를 감싼 것은, 바로 나다.
바다가 넘지 못하게 금을 그어 놓고, 바다를 가두고 문 빗장을 지른 것은, 바로 나다.

“여기까지는 와도 된다. 그러나 더 넘어서지는 말아라!
도도한 물결을 여기에서 멈추어라!” 하고 바다에게 명한 것이 바로 나다.

___

오늘은 삼위일체주일이다. 삼위일체는 논리적 추론의 대상이 아니라 고백의 대상이다. 현대신학은 삼위간의 교제가 교회에서 어떻게 실현되는가에 주목한다. 삼위도 각각 개별 사역이 존재하는 동시에 경계를 넘어 교제하듯이 우리의 믿음도 그래야 한다. 자신이 줄쳐놓은 경계를 과감하게 뛰어 넘으라.…

6월 16일 교회 소식

* 오늘은 삼위일체 주일이며 아버지 주일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과 함께 하시는 교우들이 되기를 빕니다.

* 친교 시간 후에 신도회별 성경공부 있습니다.

* 다음 주일은 청년회 헌신예배로 드립니다.

* 이번 주 토요일(22일) 홈리스 급식이 있습니다. 식사 준비는 오전 5:40부터 합니다.

* 오늘 점심은 주방팀에서 준비했습니다. (설거지 : 두나미스) …

1 10 11 12 13 14 124